이미지 크게보기배우 이병헌 배우 이병헌

넷플릭스 오리지널 ‘오징어 게임 시즌2’(감독 황동혁)는 약점이 많은 콘텐츠다. 당초 시즌제 제작을 염두에 두지 않고 1편을 만들었기 때문에 서사를 확장해가는데 제약이 적잖았다. ‘평범한 놀이를 하다가 패배하면 진짜 죽는다’는 설정은 시즌2의 새로운 참가자들만 모를 뿐, 시청자들은 이미 알고 있다. 이는 대단히 큰 스포일러다. 게다가 넷플릭스에서 공개된 역대 콘텐츠 중 가장 크게 성공했다는 왕관의 무게는 황 감독과 출연자들의 어깨를 짓누른다. 웬만한 만듦새로는 ‘성에 안 찬다’는 말이 나올 것이 자명하기 때문이다.

평범을 비범으로 바꾸기 위해 황 감독은 ‘메기 효과’를 떠올렸다. 활동성이 떨어진 미꾸라지통에 메기를 넣으면 미꾸라지들이 잡아먹히지 않기 위해 발버둥치며 활기를 띠듯, 황 감독은 프론트맨의 가면을 과감히 벗기고 게임 한가운데로 내던졌다. 그리고 그 어려운 임무는 배우 이병헌이 맡았다. ‘오징어 일병 구하기’의 첨병에 선 존 밀러 대위(톰 행크스)의 역할인 셈이다.

이병헌 역시 이 결정이 시즌2의 변곡점이 됐다는 것을 부인하지 않았다. 8일 서울 삼청동 카페에서 만난 이병헌은 "드라마 ‘우리들의 블루스’ 촬영 때 황 감독님과 같이 밥먹으면서 시즌2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다. 그 때는 서로 아무런 생각도 없을 때였는데, 이후 6개월 동안 대본을 썼다고 하더라. 프론트맨의 전사를 다룰 거라 생각했고, 시즌1 이후의 현재진행형 이야기가 될 것이라 상상도 못했다"면서 "프론트맨이 게임에 참여하게 되는 3부 마지막 부분을 읽고 저도 깜짝 놀랐다"고 떠올렸다.

게임에 참여한 프론트맨의 표정은 복잡다단하다. 이 판을 모두 읽고 있는 프론트맨으로서, 그를 ‘참가자 1번 오일영’으로 믿는 동료들의 조력자로서, 그리고 프론트맨이 되기 전 가족을 잃고 좌절한 경찰 황인호로서의 고뇌와 고민이 동시에 드러난다. 가히 이병헌이 아니었다면 불가능했을 연기라 할 만하다.

"4부를 읽으면서 ‘어렵겠다’, ‘이걸 어떻게 연기하라는 거지’라고 생각했다"고 운을 뗀 이병헌은 "가족을 잃고 삶의 아무런 희망이 없던 황인호는 굉장히 어두울 것이라 생각했다. 얼굴에 그늘이 있을 수밖에 없는 인물인데, 오일영으로 게임에 참여해 환호하는 모습의 적정선을 지키는 것이 제일 큰 고민이라 황 감독님과 많은 대화를 나눴다. 신경이 많이 쓰였지만 재미도 있었다"고 말했다.

이미지 크게보기 ‘오징어 게임2’ 오일영

이병헌은 할리우드에 진출한 1세대 배우다. 내로라하는 배우들과 여러 블록버스터로 참여했다. 하지만 그는 "할리우드 블록버스터로도 받지 못한 환호를 ‘오징어 게임’으로 받았다"면서 "‘지.아이.조’, ‘터미네이터 제니시스’, ‘매그니피센트7’에 출연하며 ‘이제 세상 사람들이 다 날 알겠구나’ 생각했는데 현지에서 아무도 몰라보더라. 입국 심사를 받을 때도 ‘어디서 본 것 같은데…’정도였다"고 말했다.

‘오겜’ 시리즈 출연 후 상황은 180도 달라졌다. 그는 "시즌2 공개 전 홍보 때문에 해외에 갔는데, 2000명도 넘는 사람들이 환호를 지르더라. 할리우드 블록버스터에서 영어 연기를 했을 때 접하지 못한 상황을 한국 감독, 동료들과 한국어로 연기한 작품으로 경험하게 돼 묘하고 뿌듯했다"고 덧붙였다.

이병헌은 황 감독과 영화 ‘남한산성’을 함께 한 인연으로 시즌1에는 특별출연 형식으로 참여했다. 하지만 예상치 못한 흥행에 시즌2가 제작되며 실질적인 주인공인 프론트맨으로 참여하게 됐다. 정체를 숨긴 프론트맨은 그의 신분을 모르는 주인공 성기훈 일행 외에도, 이 판을 모두 읽고 있는 프론트맨이 어떤 결정을 내릴지 여부를 두고 시청자들과도 ‘밀당’(밀고 당기기)을 한다. 그의 계산과 결정을 예측해보는 것이 시즌2를 보는 또 다른 재미다.

이병헌은 "저와 시청자들만 아는 비밀을 은밀하게 건드리는 듯한 느낌으로 연기했다"면서 "시즌1에서는 오일남(오영수 분)이 정체를 내내 숨기다가 후반부에 큰 반전으로 활용했다면, 이번에는 아예 반대되는 전략을 택한 것이다. 모두가 아는 프론트맨을 게임에 넣어서 꾸준한 긴장감을 주는 것이 목표였다"고 말했다.

이병헌은 ‘소처럼 일하는 배우’로도 유명하다. 순간의 인기와 성공에 취해 안주하는 법이 없다. 항상 도전하고, 또 성과를 낸다. 그의 바쁜 행보는 을사년에도 이어진다. 오는 6월쯤 ‘오징어 게임’ 시즌3가 공개되고, 연말에는 박찬욱 감독의 신작 ‘어쩔수가없다’ 개봉을 앞두고 있다. 여전히 왕성한 활동을 이어가고 있는 그는 "박 감독님과는 20년 만에 작업하지만 쿵짝이 잘 맞는다. 끊임없이 대화하고 새로운 아이디어를 내고 고민하는 시간들이 너무 좋다"면서 "올해 개봉작과 홍보 활동이 많아 신작 촬영을 포기해야 하는 상황이 될 수 있다"며 못내 아쉬워했다. 안진용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