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태령의 기적에서 받은 마음, 무안에 돌려주려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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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게 공동체고 사람 사는 세상이구나 하는 걸 남태령에서 난생처음 느꼈거든요.”

지난해 세밑, 오순이(55) 사무처장을 비롯한 전국여성농민회총연합(전여농) 광주전남연합 소속 여성 농민들은 카카오톡 단체 대화방에서 머리를 맞대고 있었다. 지난달 21∼22일 트랙터 행진 중 경찰에 가로막힌 농민들을 도우려 시민들이 서울 남태령으로 달려가 결국 경찰의 차벽을 열게 한 ‘남태령 대첩’에 보답할 방법을 논의하던 와중에, 전남 무안국제공항에서 발생한 제주항공 참사로 179명이 사망했다는 소식을 전해 들었다.

오 사무처장은 즉시 무안군 여성농민회에 전화를 걸었다. “우리가 잘하는 밥이라도 지어 보냅시다.” 무안 여농 회원들은 이미 쌀을 물에 담가 불리고, 찹쌀을 방앗간에 맡기는 등 밥 지을 준비를 알아서 하고 있었다고 한다.

“세월호 참사(2014년), 구례 수해(2020년) 등 재난·재해 때마다 가까이서 도우며 ‘관(정부·지방자치단체)에서 미처 못 하는 구멍이 많다’는 걸 모두가 학습한 거죠.” 이들은 한달음에 공항으로 달려가 유족들에게 따뜻한 밥을 전했다.

사고 수습과 현장 감식, 자원봉사 등을 위해 공항을 찾는 이가 날마다 늘어났다. “새해 첫날 저녁밥 800인분이 필요한데…”

공항 쪽에서 또다시 연락이 왔다. 이번에는 화순, 담양, 진도, 순천 등 4개 시군 여농이 팔을 걷어붙였다. 누구는 직접 기른 농산물을, 누구는 한 해를 보내려 만들어 둔 김장 김치를 아낌없이 내놨다.

몇년 전 지병을 앓던 자식을 하늘로 보낸 한 엄마는 “내 일 같다”며 돼지고기 200인분을 사 보냈다. 마을회관마다 “여기는 국 끓이고, 저기는 돼지주물럭 만들며” 당초 계획보다 훨씬 많은 1000인분의 식사를 준비했다.

각지에서 음식을 십시일반 모으다 보니 김치만 해도 배추김치부터 알타리김치, 깍두기, 물김치, 열무김치 등 수십 가지에, 나물도 고사리, 호박나물, 죽순 등 각양각색이었다. 온기가 식지 않게 스티로폼 상자에 꽁꽁 싸 공항 관리동 2층 구내식당으로 실어 날랐다.

행여 식사를 거르는 유가족이 있을까 봐 손으로 직접 쓴 안내문도 공항 곳곳에 붙였다. 여성 농민 30여명이 1일 오후 3시부터 10시까지 송골땀을 내며 유족들을 조금이라도 위로할 밥상을 차려냈다.

먹거리는 남태령 대첩 때에도 농민들과 시민들을 끈끈하게 이어 줬다. 오 사무처장은 “(경찰의 통제로) 트랙터가 21일 낮부터 남태령에 갇혀 ‘언제 연행돼 가려나’ 하고 있는데 어느 순간 캐리어에 간식을 잔뜩 담은 사람들이 나타나기 시작하더니, 밤 10시 정도가 되자 일대가 응원봉으로 밝아졌다”고 했다.

“기적 같은 순간이었다. 이런 게 공동체, 사람 사는 세상이란 걸 난생처음 느꼈다”고 돌아봤다. 직접 현장을 찾지 못한 시민들도 무작정 ‘남태령역으로 가 주세요’ 하며 배달 오토바이로 김밥, 죽, 피자 등 따뜻한 음식을 보내 농민들의 허기를 채워 줬다.

“사실 우리 농민들은 ‘우리 국민이 농업 문제에 너무 무관심하다’고 섭섭해 왔어요. 그런데 남태령을 찾은 시민들, 특히 2030 여성들이 계속해서 ‘그동안 무관심해 미안하다, 우리 밥상 지켜 줘 감사하다’고 말하더라고요. 양곡관리법에 대한 정부의 계속되는 거부권(재의요구권) 행사가 왜 문제인지 그 자리에서 공부해 즉석 발언을 하기도 하는 모습에 정말 큰 위로를 받았죠. 그래서 밥이라도 차려 그 받은 마음을 조금이라도 되돌려드린 거예요.”

오 사무처장은 “이런 참사가 일어날 때마다 유가족뿐 아니라 온 국민이 상처를 다양하게 받고 있다. 이런 참사를 줄이기 위해 우리 사회가 무얼 해야 하는지 세월호나 이태원 참사를 거치며 배워 온 만큼 안전한 사회를 위한 대책이 마련돼야 하는데 여전히 같은 일이 반복되는 게 안타깝다”고 말했다.

이어 “정부 당국에 꼭 부탁하고 싶은 게 있다”고 했다. “지금은 유가족들이 경황이 없어서 어떨지 모르겠지만 가족들의 주검을 일일이 확인하다 보면 나중에 엄청난 트라우마가 남을 텐데, 트라우마 치료를 나중이 아닌 지금부터 빨리 좀 잘 신경 써 줬으면 좋겠습니다.”

무안/정인선 기자 re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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