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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의 해가 저물어갈때

2024.12.17. 오전 9:00

하루의 해가 저물어갈때

“갈수만 있다면, 나도 스위스에 가고 싶다.”

지인은 올해 연세가 아흔다섯인 시아버지의 말을 전했다. 앞뒤맥락 없이 들었다면, 아마 스위스여행을 하고 싶다는 것으로 알아듣기 딱 좋은 말이다.

하지만 시아버지가 지나가듯 그 말을 내뱉었을 때는 텔레비전에서 스위스의 조력자살이야기가 나오고 있을때였다고 한다. 에이, 아버님 무슨 말씀이세요. 아버지는 괜한 말씀을 하시고 그래요. 다들 한마디씩 했다는데 그의 시아버지가 덤덤한 목소리로 덧붙였다는 한마디는 이랬다.

“아무런 낙이 없지 않니.”

지인이 전하는 말을 들은 우리들 사이로 잠시 침묵이 흘렀다. 얼굴한번 뵌적 없는 지인의 시아버지를 생각했다. 아흔다섯의 연세에도 아침마다 신문을 보시고, 요즘 베스트셀러라는 책도 간간히 읽으시며 그 평을 내놓기도 하신다는 분이었다. 다만 거동이 자유롭지는 못하시니 혼자 10층 아파트 밖으로 나다니는 일은 거의 없다했다. 그분의 말은 어쩐지 계속 마음에 남아 오래 먹먹했다. 아무런 낙이 없지 않니.

낮에 이웃의 어르신이 돌아가셨다는 소식을 들었다. 며칠전, 상복을 입은 그 댁의 가족을 우연히 만난 일이 있다. 평소에도 그저 간단한 날씨 인사정도나 나누던 이웃인데, 그나마 상복을 입었으니 더더욱 조심스러워 눈인사만 하고 말았다. 하지만 내심 마음이 계속 쓰였다. 그 댁엔 할아버지도, 할머니도 계신다. 두분중 한분이 돌아가신 걸까. 그 궁금증은 며칠이 지나고서야 풀렸다.

사람이 죽는 일은 어쩔 수 없는 일이다. 하지만 어르신의 죽음이 갑작스런 병환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된 건 충격이었다. 그저 이웃에 사는 사람이라고 해도 아무렇지 않을 수는 없는 일인데 그 어르신은 내게 ‘그저 이웃’은 아니었다.

물론 나는 그분의 성함도, 인생도 알지 못한다. 단지 몇번 지나치면서 인사한 안면이 있을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유독 잘 알지도 못하는 그분에게 내적 친밀감을 갖는 이유는 사실 내 글에 있다. 한번도 흐트러진 차림으로 집밖을 나선 것을 본적이 없고, 건네는 인사는 늘 정중하게 받던 그 분을 떠올리며, 나는 상상력을 덧입혀 내 소설의 주인공으로 등장시킨적이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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