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경춘추] 진짜와 가짜](http://thumbnews.nateimg.co.kr/view610///news.nateimg.co.kr/orgImg/mk/2024/01/09/20240110_01110129000001_M00.jpg)
새해가 되어 제자가 아이를 데리고 인사를 왔다. 출산했다고 한 것이 얼마 전인 것 같은데 아이는 훌쩍, 두 돌이 넘어 있었다. 가만히 있지 못하고 계속 돌아다니면서 사부작거리는 아이의 성장에 깜짝 놀랐다. 신이 나서 제자는 아이가 축구하는 사진을 계속 보여준다. 두세 살만 되어도 이렇게 성장하는구나. 새삼 인간의 신비로움에 잠시 감탄한다. 태어나서는 우는 것밖에 할 수 없었던 아이가 1년만 지나도 서기 시작하고 걷고 그리고 한두 마디 말을 시작한다.
이러한 능력에 대해 선천적인 유전적 힘이라는 관점과, 태어나서 학습과 경험의 힘이라는 주장이 팽팽하다. 사실 학습과 경험의 그 근원에는 인간이 지닌 모방본능이 한몫한다고 할 수 있다. 다른 사람을 모방하면서 언어도 행동도 심지어 가치관, 태도, 믿음 등 수많은 부분이 형성된다. 모방본능은 상당히 강력한 영장류 특성 중 하나로서 때로는 문제 해결과 무관한 행동도 모방하려는 과잉모방으로 연결된다. 모방을 기반으로 새로운 것이 창조되기도 한다. 단순히 남을 따라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자신의 생각이 더해지기 때문이다. 이렇게 무한한 힘을 가진 모방은 때로는 부정적인 측면도 있어 자살이나 범죄에도 영향을 주게 된다. 실제로 우리는 타인의 부정적 행동을 보면서 그것이 옳다라는 확신을 갖고 그런 행동을 모방하여 과감히 행동으로 옮겨버리기 때문이다. 그런데 무언가를 모방하려는 경향이 가짜를 양산하게 한다는 점에서 상황이 더 복잡해지는 것 같다.
최근에는 가짜가 얼마나 정교한지 또는 거기에 살짝만 다른 것을 가미해서 그럴듯하게 내놓게 될 때 우리는 진짜와 가짜를 굳이 구분하고 싶지도 않고 구분하기도 어려워진다. 점점 진실과 거짓의 차이가 모호해지는 것이다. 더욱이 인간은 정보 추구 욕구도 가지고 있어서 계속 새로운 정보를 습득하려고 한다. 진화심리학적으로 원시사회에서 정보가 많으면 생존에 유리했다. 산길에서 위험한 포식동물이 출몰하는 것, 산사태가 일어날 것 등을 미리 알면 피신할 수 있기에 늘 새로운 정보에 귀를 쫑긋하고 있다. 이런 정보 추구 욕구와 모방 욕구로 인한 지식 획득과 창조는 결국 인류가 가장 진보한 종족으로 발전하게 하였다.
현대사회에서도 마찬가지이다. 새로운 정보를 습득하게 되면 더 아이디어를 낼 수 있고, 남들보다 앞서나갈 수 있게 된다. 이렇게 늘 정보를 찾고 있는 현재의 우리는 넘쳐흐르는 정보를 소화하지 못하는 소화불량 체증을 보이고 있다. 가짜 정보의 범람으로 현대인의 일상은 점점 더 피곤해지고 있다. 챗GPT로 인해 전문 영역에조차 파고든 가짜는 때로는 진짜보다 더 그럴듯하기도 하다. 진짜인지를 알아보기 위해 과거보다 더 많은 시간을 들여야 한다.
학생들의 보고서나 논문 초안을 받아들고는 이전에는 하지 않았던 고민을 하곤 한다. 본인이 쓴 것인지 아니면 챗GPT가 쓴 내용을 그대로 가져왔는지를 가늠하려다 보니 머리는 아프고 스스로의 능력에 회의가 들기조차 한다. 정보가 범람하는 사회에서 진짜와 가짜를 구분하는 것은, 정보가 턱없이 적었던 과거에는 없었던 괴로움이다. 살아갈수록 익숙해지는 것이 아니라 살아도 살아도 역시나 힘든 세상인 것 같다.
[곽금주 서울대 심리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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