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년 3월 도입 예정인 인공지능(AI) 디지털 교과서 법적 지위를 교과용 도서(교과서)가 아닌 ‘교육자료’로 인정하는 법안이 국회 본회의에서 통과됐다. 이에 이주호 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은 “재의 요구를 제안하겠다”고 나서, 한덕수 대통령 권한대행이 거부권을 행사할지 관심이 쏠린다.
26일 국회 본회의서 의결된 초·중등교육법 개정안은 인공지능 교과서를 ‘지능정보 기술을 이용한 학습지원 소프트웨어’로서 교육자료로 규정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이에 따라 정부가 내년 새 학기부터 초등 3·4학년, 중·고교 1학년 등을 상대로 영어, 수학, 정보 교과에서 의무적으로 인공지능 교과서를 쓰려던 계획이 차질을 빚게 됐다. 개정안이 시행되면 학교장 재량으로 채택 여부를 결정하면 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마저도 아직 불투명하다. 개정안은 정부로 이첩돼 공포 즉시 시행되지만, 정부가 거부권을 행사하면 사정이 다시 달라질 수 있다. 이 부총리는 개정안 통과 뒤 정부 서울청사에서 브리핑을 열어 “개정안이 정부로 이송되면 재의요구를 건의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또 “내년 1년은 교과서 지위를 유지하되 특별히 시범 기간으로 해서 각 학교가 선택할 수 있도록 한다는 타협 방안을 (더불어민주당에) 제시했다”며 “교육자료가 될 경우 학생과 학부모에게 부담이 전가되고 교육격차와 학습격차가 나타날 것”이라고 밝혔다.
한덕수 대통령 권한대행이 이 부총리 요구대로 해당 법안을 거절할 경우 인공지능 교과서를 교육자료로 규정하는 개정안에 대한 국회 재표결 과정 등을 거쳐야 한다. 1∼2달 정도의 국회 재논의 기간 인공지능의 법적 지위도 여전히 표류할 수밖에 없다.
교육 단체는 개정안 통과를 환영하며 이 부총리의 재의 요구 건의를 비판했다. 한성준 좋은교사운동 공동대표는 “개정안 본회의 상정 전에도 학교마다 (불안정한 상황에) 선택을 유보하는 등 혼란이 있었다”며 “(부총리의 재의 요구 건의는) 학교 현장에 혼란을 더하는 무책임한 행위”라고 비판했다.
아울러 전국교직원노동조합을 포함한 126개 교육·시민·사회단체가 모인 ‘인공지능 디지털교과서 중단 공동대책위원회’(공대위)는 성명을 내어 “크게 환영하며 교육부가 즉각 인공지능 교과서 도입 강행을 중단할 것을 강력히 촉구한다”고 밝혔다. 반면 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는 “정치에 따라 교과서 정책이 요동치며 자칫 소송 분쟁까지 더해져 학교 혼란이 가중될 수 있다”고 밝혔다.
한편 인공지능 교과서의 법적 지위를 둘러싸고 이날 국회 본회의 표결을 앞두고 여야 의원들도 첨예하게 다퉜다. 서지영 국민의힘 의원은 토론에 나서 “(교육자료가 될 경우) 학교에서 비용 문제로 채택하는 것을 꺼릴 수밖에 없고, 형편이 어려운 학생들은 새로운 기술을 통해 교육받을 기회를 박탈당하게 된다”고 주장했다. 반면 고민정 민주당 의원은 “에이아이 교과서는 선생님처럼 학생이 모르는 것을 가르쳐주고 끌어주는 생성형 에이아이가 아니라 시중에 나와 있는 디지털 학습지처럼 단순 문제 풀이 학습에 불과하다”며 교과서로 인정할 수 없다고 주장했다.
신소윤 기자 yoo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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