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달러 환율이 1500원 선을 위협하는 등 당분간 달러 수요는 계속될 전망이다. 12·3 비상계엄 사태 이전부터 글로벌 강달러 기조가 이어져 왔던 데다가 국내 정치적 이슈가 기름을 부은 격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최근 외환시장에서는 외국인보다 내국인 자금 이탈이 더 컸던 것으로 분석된다.
29일 신한투자증권은 당분간 원달러 환율이 1400원 중후반 선에서 하한선이 고착화될 것으로 내다봤다. 여야 간 정치적 대립 가운데 불확실성이 가중되고 있는 데다가 내수 경기가 좋지 않기 때문이라는 설명이다.
김찬희 신한투자증권 연구원은 "대외 달러화 강세는 주춤했으나 대내 정치 불확실성 장기화에 따라 자금 이탈 압력이 지속되고 있으며, 외국인 자금보다 내국인 자금 이탈이 주도하는 모습"이라며 "1400원대 중후반에서 하방경직적 흐름이 이어질 전망이며, 여야 간의 정치적 대립이 지속되면서 피로도가 누적된 상황"이라고 분석했다.
윤석열 대통령의 비상계엄 사태 이후 헌법재판관 임명 거부를 둘러싸고 한덕수 대통령 권한대행에 대한 탄핵안도 가결되면서 불확실성은 더욱 확대된 상황이다. 한 권한대행 탄핵으로 최상목 경제부총리가 권한대행을 맡게 됐는데 국내 정치 불안이 조기에 해결될 가능성은 낮아지며 투자심리도 안전자산 선호로 돌아섰다.
실제로 한 총리에 대한 탄핵안이 상정됐던 국회 본회의가 열린 지난 27일에는 서울 외환시장에서 원달러 환율이 장중 1486.7원까지 튀어오르기도 했다. 장 후반 들어서는 다시 상승폭을 반납했지만, 고점과 주간 거래 종가의 장중 변동성은 19.2원에 달했다. 특히 장중 고가 기준으로는 금융위기 당시였던 2009년 3월16일 1488원 이후 15년 9개월 만에 최고 수준을 기록했다.
국내 정치 불확실성이 해소되더라도 단기적으로는 20~30원가량 하락하는 데 그칠 것으로 관측됐다. 국내 내수경기가 좋지 않은 데다가 글로벌 달러 강세 분위기가 지속되면서다. 대외적으로 보면 이달 미 연방준비제도(Fed)의 금리인하 속도조절 언급 이후 달러가치가 치솟았고, 트럼프 행정부 2기 출범을 앞두고 있는 데 대한 미국의 정책 불확실성으로 글로벌 투심도 안전자산으로 쏠리고 있다.
김 연구원은 "국내 정치 불확실성이 해소될 경우 오름폭이 20~30원 가량 되돌려질 여지가 있으나 부진한 내수 경기에 하방 압력을 더하는 것이 문제"라며 "달러화 흐름이 과거 트럼프 1기 당시와 유사한 궤적을 이어가고 있는데 1월 20일 취임 이후 선반영된 불확실성이 되돌려질 가능성도 염두에 둘 필요가 있다"고 했다.
KB증권에서는 단기적으로 원달러 환율의 상방을 1500원대 초반까지 열어놨다. 다만 중장기적으론 불확실성 해소에 따른 환율 폭등세가 진정되면 1300원대로 내려올 것으로 봤다.
오재영 KB증권 연구원은 "향후 환율의 상방은 정치적 이벤트의 전개에 달렸을 것으로 보인다"며 "내년 연준의 금리인하 속도에 대한 불확실성, 트럼프 정권 출범 이후 미국 정책 불확실성 등이 부각되면 원달러 환율은 1500원대 초반까지도 오버슈팅할 수 있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이어 "현재 환율이 1997년 국제통화기금(IMF) 외환위기, 2008~2009년 리먼 사태 이후 가장 높은 수준까지 상승했지만, 펀더멘탈로만 비교하면 양호한 외환보유고와 대외지급능력 등이 유지되고 있다"며 "향후 정치 이슈 해소 및 글로벌 유동성 확대 등으로 강달러 완화 시 원달러 환율은 1300원대로 하락 안정될 전망"이라고 덧붙였다.
한편 지난 주(23~27일) 원달러 환율은 서울 외환시장에서 종가 기준으로 1452원에서 출발해 1467.5원에 거래를 마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