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상계엄·탄핵으로 조기 대선 눈앞
헌재 심판 때 尹 직접 변론 나설 듯
이재명 선거법 유죄 확정 땐 대선 출마 못 할 수도
‘탄핵 찬성’ 한동훈, 국민의힘 잔류할까
탄핵 찬성파 일부 개혁신당行 가능성
친문 뿌리 비명계, 조국혁신당과 합칠 수도
12월 14일 우원식 국회의장이 국회 본회의장에서 윤석열 대통령에 대한 탄핵소추안이 찬성 204표로 가결됐음을 선포하고 의사봉을 두드리고 있다. [지호영 기자]
윤석열 대통령이 2024년 12월 3일 비상계엄을 선포하고 있다. [동아DB]
벚꽃 대선, 장미 대선, 여름 대선
2004년 노무현 전 대통령 탄핵 심판은 국회에서 탄핵안이 가결된 후 63일 만에 기각 결정이 내려졌다. 2017년 박근혜 전 대통령 때는 91일 만에 탄핵 인용 결정이 나왔다. 노 전 대통령 때처럼 윤 대통령 탄핵 심판이 60여 일 후인 2월에 나오면 4월 벚꽃 피는 시기에 대선이 치러진다는 점에서 ‘벚꽃 대선’ 얘기가 나온다. 박 전 대통령처럼 3개월 뒤인 3월에 탄핵 심판 인용 결정이 나오면 5월에 대선이 치러질 수 있어 ‘장미 대선’이 현실화할 수 있다.
헌재는 탄핵안 접수 후 180일 이내에 선고토록 돼있다. 따라서 최장 2025년 6월 11일까지 탄핵 심판이 늦춰질 가능성도 있다. 더욱이 윤 대통령은 비상계엄 선포가 ‘통치행위’라고 주장하는 반면, 야당은 ‘내란죄’라고 맞서고 있어 치열한 공방이 예상된다. 탄핵 소추 당사자인 윤 대통령이 헌재에 직접 나가 자신을 변론할 수 있다는 얘기도 나온다. 여권의 한 관계자는 “소수 여당 출신 대통령으로서 거대 야당 횡포로 국정 운영에 한계를 느낀 국정 최고 책임자로서의 절망감을 헌재에서 소상히 밝혀 자신의 비상계엄 발동의 정당성을 항변할 수 있다”고 내다봤다.
윤 대통령은 2024년 12월 12일 대국민담화에서 “비상계엄은 대통령의 통치행위였다”고 주장한 데 이어 14일 탄핵안 가결 직후에도 “절대 포기하지 않는다” “끝까지 가겠다”고 굳은 다짐을 밝힌 바 있다. 일부 헌법학자들은 “대통령 탄핵 소추가 입법부의 행정부 견제 기능이라면 계엄 발동은 대통령의 고유 권한”이라며 정치투쟁으로 보는 시각도 있다. 이 같은 점을 고려해 볼 때 헌재의 탄핵 심판은 과거 두 전직 대통령 때에 비해 상당히 늦춰질 공산도 있다. 만약 2025년 6월에 탄핵 심판이 이뤄지면 8월에 대선이 치러지게 돼 ‘여름 대선’이 현실화할 수 있는 것이다.
벚꽃이든, 장미든, 여름이든 조기 대선 전망은 헌재가 대통령 탄핵을 인용할 것임을 전제로 하고 있다. 반대로 헌재가 12·3 비상계엄이 대통령의 합법적인 통치행위라고 인정할 경우 윤 대통령은 헌재 결정 즉시 대통령직에 복귀하게 돼 차기 대선은 당초 예정대로 2027년 3월 10일에 치러지게 된다. 2004년 3월 탄핵됐던 노무현 대통령도 그해 5월 헌재 기각 결정으로 다시 대통령직에 복귀해 3년 이상 대통령 직무를 더 수행했다.
‘구속영장 발부’가 ‘유죄’를 의미하는 게 아니듯, 국회 탄핵안 가결이 곧 ‘대통령 파면’을 뜻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국회는 재적의원 3분의 2 동의로 헌법이 보장한 ‘대통령 탄핵소추권’을 행사해 대통령의 직무를 정지했다. 대통령을 파면해야 할 만큼 12·3 비상계엄이 헌법과 법률을 위반했는지는 헌법재판소에서 변론과 평의를 거쳐 결정하게 된다. 헌재 결정에 윤 대통령의 정치적 명운이 걸려 있는 셈이다. 그뿐만 아니라 차기를 노리는 대선주자들의 대선 시간표도 그에 연동돼 있다.
이준석 “대선 출마 진지하게 검토 중”
대통령 리더십이 헌재의 탄핵 심판이라는 시험대 위에 오르자 여야 차기 주자들은 대선 경쟁에 본격적으로 뛰어들었다. 가장 빠르게 차기 대선을 향해 손들고 나선 이는 이준석 개혁신당 의원이다. 이 의원은 “2월에 탄핵 결과가 나오면 (조기 대선) 참여가 가능할 텐데, (출마를) 진지하게 검토하고 있다”고 말했다.
1985년 3월생인 이 의원은 현시점에서는 만 40세가 되지 않아 대선 출마를 할 수 없는 상황. 헌재에서 1월에 탄핵 결정을 내려 3월에 대선이 치러질 경우에도 이 의원은 ‘나이 제한’에 걸려 대선 출마가 불가능하다. 하지만 2월 이후 탄핵 심판 결정이 나온다면 대선에 출마할 길이 열린다. 헌법 67조 4항은 대통령 피선거권을 갖기 위해서는 만 40세를 넘겨야 한다고 규정돼 있는데, 1985년 3월 31일생 이 의원은 ‘3월 개나리 대선’은 참여할 수 없지만 ‘4월 벚꽃 대선’ 이후부터는 출마 자격이 생긴다.
이 의원의 차기 대선 출마가 주목받는 것은 대통령 탄핵 이후 국민의힘이 혼란에 빠질 가능성 때문이다. 8년 전 박 전 대통령 탄핵 이후 새누리당이 분열했던 것처럼 국민의힘이 탄핵 후폭풍으로 당내 갈등이 증폭해 또다시 분열하게 되면 보수에 뿌리를 둔 개혁신당이 대안이 될 수 있다는 관측에서다. 대통령 직무를 정지하는 데 앞장 선 ‘찬탄(탄핵 찬성)’ 인사들에 대한 ‘배신자 프레임’은 언제든 작동할 수 있다는 점에서다.
8년 전에는 박 전 대통령 탄핵에 동참했던 의원 29명이 새누리당을 탈당해 바른정당을 창당했다. 이번 윤석열 대통령 탄핵에는 최다 23명이 당론(탄핵 부결)과 다르게 투표했다. 이들이 앞으로 어떤 정치적 선택을 하느냐에 따라 국민의힘의 미래가 크게 달라질 것으로 예상된다.
12월 14일 탄핵 직후 국민의힘은 최고위원이 모두 사퇴하면서 ‘한동훈 지도 체제’가 붕괴했다. 16일 한 대표까지 사퇴하면서 국민의힘은 당분간 권성동 원내대표 중심으로 운영될 예정이다. 22대 총선을 앞두고 ‘비대위원장’으로 화려하게 정치권 전면에 등장했던 한 전 대표는 1년 만에 불명예 퇴진했다. 그런 그가 헌재의 탄핵 인용으로 조기 대선이 치러지더라도 국민의힘 대선후보로 나설 수 있을지는 불투명한 상황이다.
이미 ‘한동훈 격하’가 본격화하고 있다. 홍준표 대구시장은 “(탄핵) 찬성으로 넘어간 12표를 단속하지 못하고 이재명 2중대를 자처한 한동훈과 레밍(집단 자살 습성이 있는 나그네쥐)들 반란에 참담함을 금할 길 없다”며 한동훈 책임론을 제기했다. 나경원 의원도 “한동훈 비대위원장 등장이 불행의 시작이었다”며 “총선 후 대표로 등장한 한 전 대표는 총구가 항상 대통령에게 가 있었다”며 책임론에 불을 지폈다.
한동훈 ‘비상계엄 반대 세력 규합’ 나서나
2024년 12월 16일 한동훈 국민의힘 대표가 기자회견을 통해 대표직 사퇴를 발표하고 있다. [뉴스1]
8년 전에는 반기문 전 유엔 사무총장이라는 대안이 있었기에 새누리당 분당이 상대적으로 수월했다는 관측도 있다. 그 때문에 여권 내 유력 차기 주자로 여겨지던 한동훈 전 대표가 향후 어떤 선택을 하느냐에 여권 분열이 가속화할 수도 있고, 잦아들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만약 한 전 대표가 당에 잔류하고 조기 대선이 가시화했을 때 당내 경선에 뛰어든다면 분당 가능성은 극히 낮아진다. 반면 한 전 대표가 ‘비상계엄 반대 세력’을 규합하려 독자 세력화에 나선다면 여권 분화로 이어질 가능성이 있다.
한 전 대표는 12월 16일 긴급 기자회견에서 대표직 사퇴를 밝히며 “(비상계엄이 선포된 12월 3일 밤) 당대표와 의원들이 국민과 함께 제일 먼저 앞장서서 우리 당이 배출한 대통령이 한 불법 계엄을 막아냈다”며 “그것이 진짜 보수의 정신”이라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그는 “우리가 부정선거 음모론자들, 극단적 유튜버들 같은 극단주의자들에게 동조하거나, 그들이 상업적으로 생산하는 공포에 잠식당한다면 보수의 미래가 없을 것”이라고 밝혔다. 듣기에 따라서는 ‘진짜 보수의 정신’을 지켜내기 위해 새 길을 갈 수 있음을 암시한 것으로 볼 수 있다. 대통령 탄핵 이후 대표적 친한계로 분류되는 김예지 의원은 ‘제명’을 요구하며 다른 길을 갈 결심을 내비쳤다. 김 의원은 이른바 ‘한동훈 원픽’으로 22대 총선에 비례대표로 재선에 성공한 케이스다.
비상계엄과 곧바로 이어진 대통령 탄핵으로 대부분의 이슈가 묻혀 있지만 12월 3일 구속 기소된 명태균 씨 재판 진행 과정도 여권 분화를 촉발할 변수다. 앞으로 어떤 휘발성 큰 얘기가 나올지 알 수 없다는 점에서다. 더욱이 명 씨가 특검을 요구하고 있어 더불어민주당 등 야당이 ‘명태균 특검’을 통해 여권의 자중지란을 가속화할 가능성도 있다.
대통령 탄핵 이후 여권은 분열이냐 단일 대오냐 갈림길에 서 있다. 한동훈 전 대표도 당 잔류냐, 독립이냐의 기로에 서 있다. 범보수로 시야를 넓히면 이준석 개혁신당 의원도 범보수 진영을 대표한 차기 주자로 발돋움할 기회를 엿보고 있다. 탄핵 소용돌이에 빠져 구심력보다 원심력이 크게 작동하고 있는 여권이 앞으로 어떻게 지금의 혼란을 극복해 나갈지 지켜볼 일이다.
이재명 “언행에 각별히 유의하라”
2024년 12월 15일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뉴시스]
공직선거법의 경우 1심은 6개월 이내, 2심과 3심은 각각 3개월 이내 선고토록 권장되고 있다. 2024년 11월 15일 이 대표에 대한 1심이 선고됐다는 점에서 2심과 3심이 각 3개월 이내에 재판 결과가 나오고, 윤 대통령에 대한 탄핵심판이 최장 180일간 지속된다면 이 대표에 대한 선거법 최종심이 헌재 탄핵결정 전에 나올 수 있는 상황이다. 즉 윤 대통령 탄핵 심판 전에 이 대표의 선거법 유죄가 대법원에서 확정되면 ‘출마’ 자체가 어려울 수 있다.
이 대표는 1심 선고 이후 한 달 가까이 항소심 소송기록을 접수하지 않아 아직 항소심 재판이 시작되지 않고 있다. 국민의힘 법률자문위원장을 맡고 있는 주진우 의원은 12월 6일 “이재명 대표의 공직선거법 위반 사건 항소심이 접수됐지만, 소송기록 접수를 거부하고 있어 항소심 재판이 지연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항소심은 본인 또는 변호인이 소송 기록을 접수해야 시작되는데, 이 대표 측이 소송기록 접수를 거부해 항소심 재판이 시작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민주당이 2024년 12·3 비상계엄 사태 이후 대통령 탄핵을 거세게 밀어붙인 배경 중 하나가 이 대표에 대한 사법 리스크 때문 아니냐는 얘기가 많았다. 즉 탄핵과 헌재 결정이 신속히 이뤄지면 이 대표에 대한 사법 처리가 현실화하기 전에 조기 대선을 치를 수 있다는 점을 노린 것 아니냐는 것. 이 대표는 윤 대통령 탄핵안이 가결된 바로 다음 날인 12월 15일 기자회견을 열고 ‘국정안정협의체’를 제안하면서 헌재를 향해서는 “윤 대통령의 파면 절차를 신속히 진행해 달라”고 촉구했다. 이준석 의원은 “이 대표는 본인 선거법 재판의 신속한 판결을 같이 외치는 진정성 있는 모습을 보여달라”고 꼬집었다.
국회에서 대통령 탄핵안이 가결된 후 이 대표는 ‘신중 모드’로 전환했다. 그는 “(탄핵안 가결이) 승리는 아니다”라고 밝혔다. 이 대표는 “책임감 있고 신뢰를 주는 당과 국회의 모습이 중요하다”며 “분출된 광장 에너지로 분란을 빠르게 수습하고 긍정적인 변화를 이끌어내는 동력으로 삼아야 한다”고 말했다. 노종면 민주당 대변인은 “본의가 아니더라도 제3자가 보기에, 국민이 보기에 오해할 수 있는 언행들이 있다”며 “각별히 유의해 달라는 당부가 있었다”고도 전했다. 탄핵안 가결로 대통령 직무를 정지했을 뿐인데, 이미 정권을 잡은 것처럼 승리 분위기에 도취되지 말라는 경고를 한 것이다.
조국혁신당과 비명계 손잡을까
12·3 비상계엄과 12·14 대통령 탄핵 국면에 가장 기민하게 움직인 사람 중 하나가 김경수 전 경남지사다. 독일에서 유학 중이던 김 전 지사는 12·3 비상계엄 직후 “대한민국을 지키기 위해 국민과 함께하겠다”며 모든 일정을 취소하고 귀국했다. 당초 김 전 지사는 독일 유학을 마친 후 미국으로 건너가 2025년 2월쯤 귀국할 계획이었다. 비상계엄 사태로 국내 상황이 긴박하게 돌아가자 시시각각 변하는 국내 정치 상황 변화에 적극 대처하기 위해 귀국 시점을 크게 앞당긴 것이다.
더욱이 12월 12일 조국 조국혁신당 대표가 대법원 확정 판결로 수감되면서 친노·친문 진영에서는 조기 대선이 현실화할 경우 대표선수로 내세울 인물이 필요한 상황이다. 김 전 지사가 귀국을 서두른 것은 조기 대선이 현실화할 경우를 대비해 야권 내 이른바 ‘비명계’ 구심 구실을 하기 위함으로 해석된다.
현재 민주당은 ‘비명횡사, 친명횡재’ 총선 공천 여파로 외형상 친명계가 다수를 점하고 있는 모양새다. 그러나 야권 전체로 놓고 보면 문재인 정부 5년을 거치면서 청와대와 내각 등에서 정치적 몸집을 키운 인사들이 적지 않다. 이들 중 일부는 ‘이재명 대통령 만들기’에 동참할 가능성이 있다. 하지만 ‘비명횡사’ 공천을 지켜본 이들 가운데 상당수는 2026년 지방선거와 2028년 총선에 정치적 활로를 열기 위해 탄핵으로 조기 대선이 현실화한 시점에 독자 세력화에 나설 가능성도 있다.
헌재 탄핵 심판으로 치러지는 조기 대선은 ‘정권교체’, 즉 한 사람을 대통령으로 만드는 데 의미가 있지만, 2026년 지방선거는 전국 17개 광역단체장과 223개 기초단체장을 비롯해 1000여 명 가까운 지방의원을 선출한다. 친명으로 전향하지 않은 비명계 인사들이 다가올 지방선거와 향후 총선에 ‘비명횡사’ 당하지 않기 위해 조기 대선 국면에 자력갱생을 위한 독자 세력화에 나설 수 있는 것이다. 이들에게는 ‘이재명 대통령’ 탄생이 아니라 자신들의 입후보와 당선이 더 중요하기 때문이다.
22대 총선 당시 야권은 민주당과 조국혁신당으로 양분됐다. 하지만 야권 지지층은 ‘윤석열 심판’이란 공동 목표 달성을 위해 ‘지민비조(지역구는 민주당, 비례는 조국혁신당)’ 구호에 호응한 투표 성향을 보였다. 그러나 2024년 10월 재보선을 계기로 ‘지민비조’는 더는 유효하지 않다는 게 확인됐다. 비명계는 정권교체를 위해 ‘이재명 대통령 만들기’에 동참할 것인가. 아니면 2026년 지방선거와 2028년 총선을 위해 독자 세력화에 나설 것인지 선택의 기로에 놓여 있다.
차기를 노리는 인사가 친명이 장악한 당내 대선 경선에 참여할지도 현재로서는 불투명하다. 더욱이 조국 전 대표가 대법원 확정 판결로 의원직을 잃고 수감되면서 12석의 조국혁신당은 새 구심점이 절실한 상황이다. 따라서 친문이라는 정치적 뿌리를 같이하는 비명계 인사들이 조기 대선이 확정되면 새로운 선택을 하게 될 것이란 관측도 나온다. 대통령 탄핵에 따른 분열의 싹은 여권뿐 아니라 야권에서도 무럭무럭 자라나고 있는 셈이다. 비상계엄은 탄핵을 낳고, 탄핵은 조기 대선을 잉태했으며, 조기 대선은 정치권 지각변동을 촉발하고 있다.
구자홍 기자
jhko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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