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새 정부에 바란다 - ‘긴급 진단 탄소 중립 2050 시나리오’ 좌담
이덕환 서강대학교 자연과학부 화학과 명예교수
손양훈 인천대학교 경제학과 교수
조경엽 한국경제연구원 경제연구실장
사회 = 곽선미 산업부 차장
“5월에 들어서는 새 정부는 탄소중립이 그럴듯한 구호만으로 만들어지는 게 아니라, 상당한 희생과 노력에 의해서만 가능하다는 점을 명확히 인식해야 합니다.”
이덕환 서강대 자연과학부 화학과 명예교수, 손양훈 인천대 경제학과 교수, 조경엽 한국경제연구원 경제연구실장은 문화일보가 ‘새 정부에 바란다, 긴급 진단 탄소중립 2050 시나리오’를 주제로 진행한 좌담회에서 “문재인 정부의 탄소중립 정책은 대대적인 에너지 정책 대(大)전환에 대한 깊이 있는 고민과 통찰 없이 환경 일변도로, 졸속으로 밀어붙였다”며 이같이 지적했다. 탄소중립은 이산화탄소를 배출한 만큼 이산화탄소를 흡수하는 대책을 세워 이산화탄소의 실질적인 배출량을 ‘제로(0)’로 만든다는 개념이다. 지난해 정부는 ‘2050 탄소중립 시나리오’ 및 ‘2030 국가 온실가스 감축 목표(NDC)’ 상향(35%→40%) 등 탄소 중립 추진 대책을 발표했다.
전문가들은 에너지 대전환 과정에 산업계·국민 부담 등 천문학적 비용이 수반될 것은 불문가지라며 “환경과 에너지, 경제를 종합적으로 살펴 정책을 개발해야 한다”고 말했다. 최근 유럽연합(EU)이 원전 투자를 친환경(녹색) 활동으로 분류하는 ‘지속 가능한 금융 녹색 분류체계(Taxonomy·택소노미)’ 안을 확정했는데도, 한국 정부는 여전히 탈(脫) 원전 정책을 고수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좌담은 지난 8일 오후 서울 영등포구 여의동 전경련회관에서 진행됐다.
―탄소중립 필요성과 우리나라 정책 추진 방향을 종합 평가한다면.
△이덕환 교수 = 탄소중립이라는 개념이 굉장히 왜곡돼 있다. 기후 위기 극복을 위해선 기후 환경 속도를 완화(mitigation)하는 방향과 변화하는 환경에 적응(adaptation)하는 두 가지 방향이 있을 수 있다. 탄소중립은 완화의 현실적인 수단인데, 자연에 순응하자는 패러다임에서 자연을 인간의 힘으로 바꿔 보자는 방향으로 변모한 점은 철학적인 관점에서 유의미하다. 하지만, 실현 가능성이 의문이다. 전 세계의 탄소중립 시류에 동참은 해야겠지만, 엄청나게 큰 잔치판이 벌어진 것으로 착각하고 막춤을 추는 것은 곤란하다.
△손양훈 교수 = 지난해 지구촌에서 100개가 넘는 나라가 탄소중립을 선언했다. 다만, 각 나라가 처한 환경 조건, 생활상, 자연조건을 객관적으로 따져 볼 때 달성 가능한 목표를 제시한 국가는 소수에 불과하다. 더군다나 유럽 등 선진국 추이를 보면 탄소 피크(탄소 배출이 더 이상 늘어나지 않는 지점)에서 현재의 탄소 감축에 이르기까지 60년이 걸렸다. 그들의 사례를 적용해도 60년이 걸리는 일을, 우리나라는 30년 만에 하겠다고 하는 셈이다.
△조경엽 실장 = 각국은 탄소중립을 단순히 환경 문제, 기후 문제로 보지 않고 에너지, 환경, 경제를 망라한 종합적 시각으로 접근하고 있다. 그래서 아직 신중론을 유지하는 국가가 많다. 우리나라도 받아들일 수 있는 수준인지, 경제에 미칠 영향은 어느 정도인지를 꼼꼼하게 따져서 구체적으로 분석한 후 방향을 결정해야 한다.
―우리나라 탄소중립 정책(2050 탄소중립 시나리오)을 현실 가능성 측면에서 지적한다면.
△손 교수 = 문재인 정부 들어 탈원전, 에너지 전환, 그린 뉴딜, NDC 상향 등 환경 일변도 정책이 시행됐다. 그야말로 에너지정책이 급변 상황을 맞았다. 특히, 2050 탄소중립 시나리오는 과정은 생략된 채 목적만 나열했다는 데 심각한 문제가 있다. 정책을 펼 때 비용이 얼마나 드는지, 고통을 얼마나 감내해야 하는지, 산업에 영향이 얼마나 미칠지 등을 검토해야 한다. 이것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다. ‘비용 추계 불가’란 이유를 들어 정부의 탄소중립위원회(탄중위)가 이런 점들을 발표하지 않았다. 전력거래소, 한국전력 등 활용 가능한 ‘맨파워’가 있었음에도 명확한 비용 추계를 하지 않았다는 점에서 근본적으로 실효성에 의문을 제기하지 않을 수 없다.
△조 실장 = 탄소중립은 화석에너지로부터 완전히 독립한다는 의미며 무탄소 에너지원으로 가는 에너지 대전환의 문제다. 그렇기에 정부가 목표를 얼마만큼 정하고 나아갈 것인지, 기술적으로 가능한 수준인지 이런 점이 굉장히 중요하다. 그런데 아시다시피 문 대통령이 재작년 탄소중립을 거론하고 정부의 시나리오가 만들어지기까지 불과 10개월밖에 걸리지 않았다. 그나마 NDC도 지난해 말 상향했다. 임기 1년도 안 남은 정부가 대못을 박는 졸속행정을 추진했다는 점에서 향후 국민의 비판이 거셀 수밖에 없을 것이다.
△이 교수 = 현 정부의 에너지·환경·산업 정책은 지난 5년간 모두 길을 잃고 갈팡질팡했다. 이 정부는 처음부터 탄소중립을 목표로 정해 정책을 추진하지 않았다. 문 정부는 애초 ‘탈핵 국가’를 선언했고 그 표현이 적절치 않다는 지적이 나오자 ‘탈원전’을 꺼냈다. 뒤이어 깨끗하고 안전한 에너지로 전환하겠다는 ‘에너지 전환’을 이야기했다. 2020년 6월 ‘한국판 뉴딜’을 들고나오면서 신재생에너지 개념이 본격 등장했다. 그러다가 2020년 10월에 처음 탄소중립 개념이 등장했다. 같은 해 12월에는 보여 주기식 구호로 탄소중립이 자리잡게 된다. 다시 말해 문 정부의 핵심 정책이라 할 수 있는 탄소중립은 갈지자 행보를 보이던 에너지·환경·산업 정책이 어쩌다 닿은 종착역인 셈이다. 정책 변경에는 기술력과 경제력이라는 양 날개가 필요하다는 기본 상식도 없었던 게 아닌가 싶다. 비용 추계 불가라는 게 경제적 고려 자체가 없었다는 방증이다. 기술 역시 우리가 원하기만 하면 뚝딱 만들어지는 요술방망이가 있는 듯 착각하고 있다. 기술 개발이 얼마나 어려운 일이며, 불가능에 가까운 힘든 과정인지에 대해 전혀 고려하지 않은 정부였다.
―산업계나 일반 국민 관점에서 우리나라 탄소중립 정책에 대한 부담감은 어느 정도라고 보는가. 정량적 수치를 제시한다면.
△손 교수 = 탄소중립을 추진할 때 드는 비용과 피해 문제는 탄중위 전문가들이 추계를 했어야 했다. 그런데 그런 일을 방기하고 포기했다. 그 뒤 많은 전문가가 개별 차원에서 추계한 바에 의하면 그 전보다 최소 세 배는 들 것이라고 한다. 2020년 기준 한국의 산업용 전기요금이 kwh당 120원 정도이니, 360원이 되는 것이다. 우리나라는 3원의 전기요금을 올리는 데에도 전쟁을 하는 나라다. 그런 상황에서 이 엄청난 비용 증가가 어떤 부담으로 작용할지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런데 다수당인 더불어민주당은 명확한 비용 추계가 없는 상태에서 지난해 ‘기후위기 대응을 위한 탄소중립 기본법’을 국회 본회의에서 그대로 통과시켰다. 우리나라는 고도 산업 국가로 에너지 비용이 많이 든다. 지금이라도 궤도 수정을 하지 않는다면 막대한 피해를 피할 수 없게 된다.
△조 실장 = 탄소 배출 규제를 하게 되면 기업의 생산 비용이 상승하는 데 이어, 소비가 줄어들고, 이익 감소 투자가 된다. 이는 결국 수출 경쟁력 감소로 이어진다. 특히, 에너지(탄소)집약 산업의 경우 새로운 방식으로 전환이 불가피한데 그 과정에서 이익 감소가 엄청날 것이다. 한국철강협회의 최근 발표를 보면 포스코 1개사에 수소 환원 제철 투자가 진행될 경우 매몰 비용 27조 원, 새로 짓는 비용 27조 원 등 총 54조 원이 소요될 것으로 예상됐다. 수소 환원 제철 기술은 아직 초기 단계라 전면 도입되기에는 다소 시간이 걸리는데 그사이 배출 규제를 강화하게 되면 포스코와 같은 철강 산업의 부담은 매우 증가할 수밖에 없다. 한경연의 연구용역 결과에서도 국내 발전 비중에서 풍력과 태양광을 각각 15%, 50%로 높일 경우 에너지저장장치(ESS) 설치에만 1338조 원이 드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 교수 = 천문학적 비용이 든다는 측면은 동의하나, 이마저도 기술낙관주의적 시각이다. 그런데, ESS로 90기가와트가 넘는 국가 송전망을 가동하는 일은 사실 전 세계 그 누구도 가 보지 않은 길이다. 1887년 국내에 처음으로 전기가 들어왔고, 산간벽지에까지 전력화가 완성된 게 1980년의 일이다. 100년의 세월이 필요했다. 기술력이 뒷받침되지 않은 상황에서 이처럼 어려운 에너지 대전환을 현 정부가 30년 만에 한다고 하는 것이다.
―EU가 원전 투자를 친환경 활동으로 분류하는 ‘지속 가능한 금융 녹색 분류체계’안을 확정·발표했다.
△조 실장 = 원전 없이는 탄소중립을 달성할 수 없다는 걸 EU가 인정한 것이다. EU 택소노미가 나오기 전에 이미 미국, 중국 등 많은 나라가 원전 중시로 회귀하는 모습을 보였다. 미국 조 바이든 행정부는 지난해 행정명령에 원전을 무공해 전력으로 명시했다. 중국도 탄소중립 실현을 위해 150기를 더 건설하겠다고 발표했다. 차세대 원전이라고 하는 소형모듈원전 시장도 계속 확대돼 2050년엔 400조 원 규모로 성장할 것으로 전망됐다. 그런데 우리만 탈원전을 추진하며 이런 추세에 역행하고 있다. 세계에서 가장 좋은 기술을 지녔음에도, 인력 유출 기술 공급망 붕괴를 자초하고 있다. K택소노미는 금융 투자 등 산업 전체를 뒤흔드는 의미도 있는 만큼 우리 실정에 맞게 신중하게 체계적으로 차기 정부가 다시 만들어 가야 한다.
△이 교수 = K택소노미, 즉 우리나라 녹색 분류체계는 절망적이다. 환경부의 K택소노미를 보면 과연 우리가 주권국가인지 모를 지경이다. 첫 페이지부터 EU 택소노미의 번역판에 불과하다. 심지어 삽화까지 비슷하다. 환경부는 지난해 K 택소노미 자료를 내면서 원전 등과 관련해서는 EU 결정을 살펴보고 대응하겠다고 했다. 이제 EU의 결정이 나왔으니 정부가 명확한 입장을 다시 내놓을 차례다. 용어에서부터 정책 내용 등 모든 면에서 절실하게 한국화가 필요하다.
△손 교수 = 유럽에 원전 수출 노력을 기울이고 있고 유럽의 투자자금 유치도 경우에 따라선 필요하기 때문에 EU택소노미가 우리와 아주 상관없다고 할 순 없다. 더군다나 탄소 배출을 하지 않는 에너지원에는 수력, 풍력, 지력, 바이오 등도 있지만 우리나라의 경우 가장 잘할 수 있는 게 원전이다. 권투선수로 치면 전문 영역인 라이트 훅을 묶어 놓고 탄소중립을 추진하는 것인데 재고가 필요하다. EU택소노미를 보면 원전에 몇 가지 조건을 달았다. 고준위 폐기물 처리 계획 수립 여부 등인데 원전 전문가들과 이야기해 보면 조건을 갖추는 게 그렇게 어렵지만은 않다는 의견이다.
―대선과 차기 정부 출범이 임박했다. 후보들의 공약 평가와 함께 차기 정부의 에너지 정책을 다시 제시한다면.
△손 교수 = 지난 1년간 석유, 석탄, 천연가스 가격이 크게 올랐다. 리튬, 니켈, 망간, 구리 등 신에너지 재료도 엄청나게 올랐다. 블룸버그의 원자재 인덱스(COMMODITY INDEX)를 보면 현재 상황을 쓰나미로 보고 있다. 지금까지는 코로나19 팬데믹(세계적 대유행)으로 인해 공급과 수요가 균형을 이뤘지만, 팬데믹이 종식되면 에너지, 원자재 대란이 닥칠 것이다. 차기 정부가 이런 상황을 초기에 심각하게 경험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버린 자식이나 다름없었던 에너지 정책을 살려 내야 한다. ‘에너지 안보’야말로 새 정부의 최우선 과제라 할 수 있다.
우리가 유럽이 강조하는 대로 탄소중립을 펼쳐 갈 것인가 하는 문제도 근본적으로 생각해 볼 부분이다. 전통적으로 탄소를 많이 배출한 장본인인 유럽은 자신들의 소비 패턴, 생활은 바꾸지 않고 온실가스가 다량 배출되는 물건을 중국·한국 등에서 만들어 오는 우회적 방법을 취하고 있다. 우리가 책임져야 할 부분은 책임을 져야겠지만, 스스로 엄청난 자금을 들여 발목을 채우고 있는 게 아닌지 돌아볼 필요가 있다.
△조 실장 = 기본적으로 탄소중립을 환경적 측면에서만 다뤄서는 안 되며, 환경·에너지·경제를 종합적으로 바라봐야 한다. 그런 시각을 갖춘 정부가 출범해야 한다. 이재명 민주당 대선 후보는 NDC 50% 상향과 탄소중립 2040 달성으로 종전보다 목표를 높인 공약을 내놨는데 현실성 문제를 따져 봐야 할 것으로 보인다. 신한울 3·4호기 재검토 공약은 그나마 다행스러우나 과거 이 후보가 핵발전 전면 재검토와 원전 제로 국가를 강조했다는 사실을 간과할 수는 없을 것이다.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 후보와 안철수 국민의당 대선 후보는 NDC를 조정해서 실천 가능한 목표를 재설정한다고 공약했는데 실현될지 지켜봐야 할 듯하다. 원전 재개 등도 우리 실정을 고려할 때 반드시 필요하다.
△이 교수 = 미국의 경험에서 배울 점이 있다. 탄소중립의 정책 방향이 이념화됐다는 점이다. 미국 공화당은 탄소중립에 반대하고 기후위기도 부정하는데, 민주당은 적극 찬성하는 입장이다. 국론이 두 개로 분열된 상황이다. 우리나라도 탄소중립을 최고의 가치로 인식하고 줄기차게 밀고 나갈지, 깊이 있는 고민이 필요하다. 우리나라 탄소배출량은 세계 8위라고 하나, 실제 역사적 기여량은 1.5%다. 우리가 문제를 일으킨 만큼 (국제사회에) 이바지하면 되는 것이지, 전 세계를 선도할 필요는 없을 듯하다. 에너지를 잃으면 산업도, 국민 생활도, 나아가 국가 존립도 불가능하다. 현대사회에서 에너지의 중요성을 명확히 인식하고 차기 정부가 에너지 정책을 수립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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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덕환 서강대학교 자연과학부 화학과 명예교수
손양훈 인천대학교 경제학과 교수
조경엽 한국경제연구원 경제연구실장
사회 = 곽선미 산업부 차장
“5월에 들어서는 새 정부는 탄소중립이 그럴듯한 구호만으로 만들어지는 게 아니라, 상당한 희생과 노력에 의해서만 가능하다는 점을 명확히 인식해야 합니다.”
이덕환 서강대 자연과학부 화학과 명예교수, 손양훈 인천대 경제학과 교수, 조경엽 한국경제연구원 경제연구실장은 문화일보가 ‘새 정부에 바란다, 긴급 진단 탄소중립 2050 시나리오’를 주제로 진행한 좌담회에서 “문재인 정부의 탄소중립 정책은 대대적인 에너지 정책 대(大)전환에 대한 깊이 있는 고민과 통찰 없이 환경 일변도로, 졸속으로 밀어붙였다”며 이같이 지적했다. 탄소중립은 이산화탄소를 배출한 만큼 이산화탄소를 흡수하는 대책을 세워 이산화탄소의 실질적인 배출량을 ‘제로(0)’로 만든다는 개념이다. 지난해 정부는 ‘2050 탄소중립 시나리오’ 및 ‘2030 국가 온실가스 감축 목표(NDC)’ 상향(35%→40%) 등 탄소 중립 추진 대책을 발표했다.
전문가들은 에너지 대전환 과정에 산업계·국민 부담 등 천문학적 비용이 수반될 것은 불문가지라며 “환경과 에너지, 경제를 종합적으로 살펴 정책을 개발해야 한다”고 말했다. 최근 유럽연합(EU)이 원전 투자를 친환경(녹색) 활동으로 분류하는 ‘지속 가능한 금융 녹색 분류체계(Taxonomy·택소노미)’ 안을 확정했는데도, 한국 정부는 여전히 탈(脫) 원전 정책을 고수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좌담은 지난 8일 오후 서울 영등포구 여의동 전경련회관에서 진행됐다.
―탄소중립 필요성과 우리나라 정책 추진 방향을 종합 평가한다면.
△이덕환 교수 = 탄소중립이라는 개념이 굉장히 왜곡돼 있다. 기후 위기 극복을 위해선 기후 환경 속도를 완화(mitigation)하는 방향과 변화하는 환경에 적응(adaptation)하는 두 가지 방향이 있을 수 있다. 탄소중립은 완화의 현실적인 수단인데, 자연에 순응하자는 패러다임에서 자연을 인간의 힘으로 바꿔 보자는 방향으로 변모한 점은 철학적인 관점에서 유의미하다. 하지만, 실현 가능성이 의문이다. 전 세계의 탄소중립 시류에 동참은 해야겠지만, 엄청나게 큰 잔치판이 벌어진 것으로 착각하고 막춤을 추는 것은 곤란하다.
△손양훈 교수 = 지난해 지구촌에서 100개가 넘는 나라가 탄소중립을 선언했다. 다만, 각 나라가 처한 환경 조건, 생활상, 자연조건을 객관적으로 따져 볼 때 달성 가능한 목표를 제시한 국가는 소수에 불과하다. 더군다나 유럽 등 선진국 추이를 보면 탄소 피크(탄소 배출이 더 이상 늘어나지 않는 지점)에서 현재의 탄소 감축에 이르기까지 60년이 걸렸다. 그들의 사례를 적용해도 60년이 걸리는 일을, 우리나라는 30년 만에 하겠다고 하는 셈이다.
△조경엽 실장 = 각국은 탄소중립을 단순히 환경 문제, 기후 문제로 보지 않고 에너지, 환경, 경제를 망라한 종합적 시각으로 접근하고 있다. 그래서 아직 신중론을 유지하는 국가가 많다. 우리나라도 받아들일 수 있는 수준인지, 경제에 미칠 영향은 어느 정도인지를 꼼꼼하게 따져서 구체적으로 분석한 후 방향을 결정해야 한다.
―우리나라 탄소중립 정책(2050 탄소중립 시나리오)을 현실 가능성 측면에서 지적한다면.
△손 교수 = 문재인 정부 들어 탈원전, 에너지 전환, 그린 뉴딜, NDC 상향 등 환경 일변도 정책이 시행됐다. 그야말로 에너지정책이 급변 상황을 맞았다. 특히, 2050 탄소중립 시나리오는 과정은 생략된 채 목적만 나열했다는 데 심각한 문제가 있다. 정책을 펼 때 비용이 얼마나 드는지, 고통을 얼마나 감내해야 하는지, 산업에 영향이 얼마나 미칠지 등을 검토해야 한다. 이것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다. ‘비용 추계 불가’란 이유를 들어 정부의 탄소중립위원회(탄중위)가 이런 점들을 발표하지 않았다. 전력거래소, 한국전력 등 활용 가능한 ‘맨파워’가 있었음에도 명확한 비용 추계를 하지 않았다는 점에서 근본적으로 실효성에 의문을 제기하지 않을 수 없다.
△조 실장 = 탄소중립은 화석에너지로부터 완전히 독립한다는 의미며 무탄소 에너지원으로 가는 에너지 대전환의 문제다. 그렇기에 정부가 목표를 얼마만큼 정하고 나아갈 것인지, 기술적으로 가능한 수준인지 이런 점이 굉장히 중요하다. 그런데 아시다시피 문 대통령이 재작년 탄소중립을 거론하고 정부의 시나리오가 만들어지기까지 불과 10개월밖에 걸리지 않았다. 그나마 NDC도 지난해 말 상향했다. 임기 1년도 안 남은 정부가 대못을 박는 졸속행정을 추진했다는 점에서 향후 국민의 비판이 거셀 수밖에 없을 것이다.
△이 교수 = 현 정부의 에너지·환경·산업 정책은 지난 5년간 모두 길을 잃고 갈팡질팡했다. 이 정부는 처음부터 탄소중립을 목표로 정해 정책을 추진하지 않았다. 문 정부는 애초 ‘탈핵 국가’를 선언했고 그 표현이 적절치 않다는 지적이 나오자 ‘탈원전’을 꺼냈다. 뒤이어 깨끗하고 안전한 에너지로 전환하겠다는 ‘에너지 전환’을 이야기했다. 2020년 6월 ‘한국판 뉴딜’을 들고나오면서 신재생에너지 개념이 본격 등장했다. 그러다가 2020년 10월에 처음 탄소중립 개념이 등장했다. 같은 해 12월에는 보여 주기식 구호로 탄소중립이 자리잡게 된다. 다시 말해 문 정부의 핵심 정책이라 할 수 있는 탄소중립은 갈지자 행보를 보이던 에너지·환경·산업 정책이 어쩌다 닿은 종착역인 셈이다. 정책 변경에는 기술력과 경제력이라는 양 날개가 필요하다는 기본 상식도 없었던 게 아닌가 싶다. 비용 추계 불가라는 게 경제적 고려 자체가 없었다는 방증이다. 기술 역시 우리가 원하기만 하면 뚝딱 만들어지는 요술방망이가 있는 듯 착각하고 있다. 기술 개발이 얼마나 어려운 일이며, 불가능에 가까운 힘든 과정인지에 대해 전혀 고려하지 않은 정부였다.
―산업계나 일반 국민 관점에서 우리나라 탄소중립 정책에 대한 부담감은 어느 정도라고 보는가. 정량적 수치를 제시한다면.
△손 교수 = 탄소중립을 추진할 때 드는 비용과 피해 문제는 탄중위 전문가들이 추계를 했어야 했다. 그런데 그런 일을 방기하고 포기했다. 그 뒤 많은 전문가가 개별 차원에서 추계한 바에 의하면 그 전보다 최소 세 배는 들 것이라고 한다. 2020년 기준 한국의 산업용 전기요금이 kwh당 120원 정도이니, 360원이 되는 것이다. 우리나라는 3원의 전기요금을 올리는 데에도 전쟁을 하는 나라다. 그런 상황에서 이 엄청난 비용 증가가 어떤 부담으로 작용할지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런데 다수당인 더불어민주당은 명확한 비용 추계가 없는 상태에서 지난해 ‘기후위기 대응을 위한 탄소중립 기본법’을 국회 본회의에서 그대로 통과시켰다. 우리나라는 고도 산업 국가로 에너지 비용이 많이 든다. 지금이라도 궤도 수정을 하지 않는다면 막대한 피해를 피할 수 없게 된다.
△조 실장 = 탄소 배출 규제를 하게 되면 기업의 생산 비용이 상승하는 데 이어, 소비가 줄어들고, 이익 감소 투자가 된다. 이는 결국 수출 경쟁력 감소로 이어진다. 특히, 에너지(탄소)집약 산업의 경우 새로운 방식으로 전환이 불가피한데 그 과정에서 이익 감소가 엄청날 것이다. 한국철강협회의 최근 발표를 보면 포스코 1개사에 수소 환원 제철 투자가 진행될 경우 매몰 비용 27조 원, 새로 짓는 비용 27조 원 등 총 54조 원이 소요될 것으로 예상됐다. 수소 환원 제철 기술은 아직 초기 단계라 전면 도입되기에는 다소 시간이 걸리는데 그사이 배출 규제를 강화하게 되면 포스코와 같은 철강 산업의 부담은 매우 증가할 수밖에 없다. 한경연의 연구용역 결과에서도 국내 발전 비중에서 풍력과 태양광을 각각 15%, 50%로 높일 경우 에너지저장장치(ESS) 설치에만 1338조 원이 드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 교수 = 천문학적 비용이 든다는 측면은 동의하나, 이마저도 기술낙관주의적 시각이다. 그런데, ESS로 90기가와트가 넘는 국가 송전망을 가동하는 일은 사실 전 세계 그 누구도 가 보지 않은 길이다. 1887년 국내에 처음으로 전기가 들어왔고, 산간벽지에까지 전력화가 완성된 게 1980년의 일이다. 100년의 세월이 필요했다. 기술력이 뒷받침되지 않은 상황에서 이처럼 어려운 에너지 대전환을 현 정부가 30년 만에 한다고 하는 것이다.
―EU가 원전 투자를 친환경 활동으로 분류하는 ‘지속 가능한 금융 녹색 분류체계’안을 확정·발표했다.
△조 실장 = 원전 없이는 탄소중립을 달성할 수 없다는 걸 EU가 인정한 것이다. EU 택소노미가 나오기 전에 이미 미국, 중국 등 많은 나라가 원전 중시로 회귀하는 모습을 보였다. 미국 조 바이든 행정부는 지난해 행정명령에 원전을 무공해 전력으로 명시했다. 중국도 탄소중립 실현을 위해 150기를 더 건설하겠다고 발표했다. 차세대 원전이라고 하는 소형모듈원전 시장도 계속 확대돼 2050년엔 400조 원 규모로 성장할 것으로 전망됐다. 그런데 우리만 탈원전을 추진하며 이런 추세에 역행하고 있다. 세계에서 가장 좋은 기술을 지녔음에도, 인력 유출 기술 공급망 붕괴를 자초하고 있다. K택소노미는 금융 투자 등 산업 전체를 뒤흔드는 의미도 있는 만큼 우리 실정에 맞게 신중하게 체계적으로 차기 정부가 다시 만들어 가야 한다.
△이 교수 = K택소노미, 즉 우리나라 녹색 분류체계는 절망적이다. 환경부의 K택소노미를 보면 과연 우리가 주권국가인지 모를 지경이다. 첫 페이지부터 EU 택소노미의 번역판에 불과하다. 심지어 삽화까지 비슷하다. 환경부는 지난해 K 택소노미 자료를 내면서 원전 등과 관련해서는 EU 결정을 살펴보고 대응하겠다고 했다. 이제 EU의 결정이 나왔으니 정부가 명확한 입장을 다시 내놓을 차례다. 용어에서부터 정책 내용 등 모든 면에서 절실하게 한국화가 필요하다.
△손 교수 = 유럽에 원전 수출 노력을 기울이고 있고 유럽의 투자자금 유치도 경우에 따라선 필요하기 때문에 EU택소노미가 우리와 아주 상관없다고 할 순 없다. 더군다나 탄소 배출을 하지 않는 에너지원에는 수력, 풍력, 지력, 바이오 등도 있지만 우리나라의 경우 가장 잘할 수 있는 게 원전이다. 권투선수로 치면 전문 영역인 라이트 훅을 묶어 놓고 탄소중립을 추진하는 것인데 재고가 필요하다. EU택소노미를 보면 원전에 몇 가지 조건을 달았다. 고준위 폐기물 처리 계획 수립 여부 등인데 원전 전문가들과 이야기해 보면 조건을 갖추는 게 그렇게 어렵지만은 않다는 의견이다.
―대선과 차기 정부 출범이 임박했다. 후보들의 공약 평가와 함께 차기 정부의 에너지 정책을 다시 제시한다면.
△손 교수 = 지난 1년간 석유, 석탄, 천연가스 가격이 크게 올랐다. 리튬, 니켈, 망간, 구리 등 신에너지 재료도 엄청나게 올랐다. 블룸버그의 원자재 인덱스(COMMODITY INDEX)를 보면 현재 상황을 쓰나미로 보고 있다. 지금까지는 코로나19 팬데믹(세계적 대유행)으로 인해 공급과 수요가 균형을 이뤘지만, 팬데믹이 종식되면 에너지, 원자재 대란이 닥칠 것이다. 차기 정부가 이런 상황을 초기에 심각하게 경험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버린 자식이나 다름없었던 에너지 정책을 살려 내야 한다. ‘에너지 안보’야말로 새 정부의 최우선 과제라 할 수 있다.
우리가 유럽이 강조하는 대로 탄소중립을 펼쳐 갈 것인가 하는 문제도 근본적으로 생각해 볼 부분이다. 전통적으로 탄소를 많이 배출한 장본인인 유럽은 자신들의 소비 패턴, 생활은 바꾸지 않고 온실가스가 다량 배출되는 물건을 중국·한국 등에서 만들어 오는 우회적 방법을 취하고 있다. 우리가 책임져야 할 부분은 책임을 져야겠지만, 스스로 엄청난 자금을 들여 발목을 채우고 있는 게 아닌지 돌아볼 필요가 있다.
△조 실장 = 기본적으로 탄소중립을 환경적 측면에서만 다뤄서는 안 되며, 환경·에너지·경제를 종합적으로 바라봐야 한다. 그런 시각을 갖춘 정부가 출범해야 한다. 이재명 민주당 대선 후보는 NDC 50% 상향과 탄소중립 2040 달성으로 종전보다 목표를 높인 공약을 내놨는데 현실성 문제를 따져 봐야 할 것으로 보인다. 신한울 3·4호기 재검토 공약은 그나마 다행스러우나 과거 이 후보가 핵발전 전면 재검토와 원전 제로 국가를 강조했다는 사실을 간과할 수는 없을 것이다.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 후보와 안철수 국민의당 대선 후보는 NDC를 조정해서 실천 가능한 목표를 재설정한다고 공약했는데 실현될지 지켜봐야 할 듯하다. 원전 재개 등도 우리 실정을 고려할 때 반드시 필요하다.
△이 교수 = 미국의 경험에서 배울 점이 있다. 탄소중립의 정책 방향이 이념화됐다는 점이다. 미국 공화당은 탄소중립에 반대하고 기후위기도 부정하는데, 민주당은 적극 찬성하는 입장이다. 국론이 두 개로 분열된 상황이다. 우리나라도 탄소중립을 최고의 가치로 인식하고 줄기차게 밀고 나갈지, 깊이 있는 고민이 필요하다. 우리나라 탄소배출량은 세계 8위라고 하나, 실제 역사적 기여량은 1.5%다. 우리가 문제를 일으킨 만큼 (국제사회에) 이바지하면 되는 것이지, 전 세계를 선도할 필요는 없을 듯하다. 에너지를 잃으면 산업도, 국민 생활도, 나아가 국가 존립도 불가능하다. 현대사회에서 에너지의 중요성을 명확히 인식하고 차기 정부가 에너지 정책을 수립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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