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15-2] 한국외대 융합일본지역학부 이창민 교수
!['월급쟁이' 한국, 왜 지금 '건물주' 일본을 들여다봐야 하나? [한중일 톺아보기]](http://thumbnews.nateimg.co.kr/view610///news.nateimg.co.kr/orgImg/mk/2023/09/22/news-p.v1.20230922.54afbce95b9a4840817af1fd13a55bc9_P1.jpg)
“월급쟁이가 웬 건물주 걱정이냐”
일본 경제의 어두운 면이 거론되는 기사마다 어김없이 달리는 댓글 반응 입니다. 일본은 해외에 보유한 막대한 자산에서 배당과 이자가 발생하는데, 그렇지 못한 한국이 일본을 신경쓰는 건 마치 월급쟁이가 건물주 걱정하는 겪이라는 겁니다.
사실 한국도 5천억 달러에 달하는 상당한 규모의 대외 순자산을 보유하고 있습니다. 다만 30년 넘게 세계 1위인 일본의 대외 순자산 규모와 비교하면 15%정도 밖에 안될 뿐이죠. 경제규모에서도 일본은 여전히 한국 보다 2.5배 이상 큽니다. 현재 고령화율은 일본이 더 높지만, 한국의 출산율이 워낙 낮아 추세대로라면 얼마안가 따라잡힐수 밖에 없습니다. 때문에 지금 한국에게 일본 걱정따위를 할 여유는 분명 없어 보입니다.
그럼에도 일본 경제 전문가 이창민 교수는 여전히 한국이 일본을 제대로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고 지적합니다. 그는 일본이 잘나가던 때에는 “정면교사”, 그렇지 않던 때에는 “반면 교사”로서 한국경제에 일종의 “교과서 역할을 해주었다” 고 말합니다. 한국이 일본처럼 “그저 왕년에 잘나갔던 나라가 되지 않으려면 일본을 냉정하게 읽어 봐야 한다”는 그에게 그 이유와 일본 경제에 대해 흔히 제기되는 궁금점들을 물어봤습니다. 다음은 일문일답.
Q.일본 버블붕괴후 장기 침체 원인이 플라자 합의와 미일 반도체 협정 때문이라는 분석, 타당한가?
A: 한 두가지가 아닌 복합적 요소가 겹친 구조적 문제로 봐야 합니다. 단지 한 두번 충격으로 이런식의 장기 침체가 오기는 어렵거든요. 흔히 거론되는 플라자 합의와 미일 반도체 협정은 이런 충격에 가깝습니다.
플라자 합의는 인위적 엔고를 만들었지만, 사실 일본은 엔고 불황이 올 것을 생각해서 선제적 대응을 했습니다. 그런데 이것이 과잉대응이 됐죠. 1973년 변동환율제로 이양되고 나서 일본은 이미 엔고가 점점 진행되고 있었고 기업들도 여기 조금씩 적응하고 있던 상황이었습니다. 그래서 플라자 합의라는 트리거는 있었지만, 결국 일본 통화당국의 섣부른 대응과 구조적 문제가 더해져 유동성이 불어나 버블이 붕괴되는 결과를 낳은 거죠.
반도체 협정도 마찬가지 입니다. 일본이 1980년대 반도체 강국이 될 수 있었던 건 미국 정부의 반독점법 규제덕에 원천기술을 가진 미국 기업들이 특허를 개방하면서 일본기업으로 기술 유출이 자연스레 일어나면서 가능했던 거거든요.
반도체 협정으로 일본 기업들의 점유율이 내려간 건 맞습니다. 하지만 이 틈을 미국기업이 채운게 아니라 삼성전자 등 한국기업들이 성장하는 계기로 만들었기 때문에, 꼭 반도체 협정 때문에 일본 반도체가 망한 것이라고 보긴 어렵습니다. 종합적인 원인 중 하나로 이 역시 트리거는 될 수 있지만 본질적 원인이라고 할 순 없다는 거죠.
Q.일본 무역수지 장기간 적자다. 하지만 해외 자산이 워낙 많아 걱정할게 없지 않나?
A: 분명 일본이 보유한 해외 금융자산은 막대하고, 여기에서 엄청난 배당과 이자가 발생하죠.
그런데 2011년 부터 무역수지가 거의 매년 적자 거든요. 최근 10년 넘게 적자가 구조적으로 고착화 되고 있는데, 그럼에도 경상수지는 흑자입니다. 해외 자산에서 발생하는 이자와 배당소득 덕에 소득수지가 흑자이기 때문이죠. 지금 엔저 때문에 일시적으로 더 부풀어 오른 상태에요.
그럼 일본이 영원히 이런 상태를 유지할 수 있느냐?
현재 일본 경제는 ‘국제수지 발전단계설’로 보면 당연한 수순을 밟고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이 이론은 경제 발전단계에 따른 국제수지 패턴을 설명한 것인데요.
이에 따르면, 경제발전 초기 단계인 ‘미성숙 채무국’일때는 무역과 소득수지가 둘 다 마이너스 입니다. 제조업도 없고 자본도 없으니 전부 해외에서 들여와야 되니까요.
상품을 수출하면서 무역수지가 흑자로 전환되는 ‘성숙한 채무국’을 거쳐, 경제발전과 함께 무역수지 흑자가 소득수지 적자 규모를 넘어 경상수지가 흑자로 전환되는 단계에 이릅니다.
여기서 더 나아가면 대외 순자산이 플러스로 전환되는 ‘미성숙한 채권국’이 됩니다. 이 단계에서는 무역수지 흑자가 지속되고 소득수지도 흑자가되니 매우 행복한 상태가 되죠. 일본의 경우 안정 성장기 이후 오랫동안 이 단계에서 머문 것으로 보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더 나아가 ‘성숙한 채권국’ 단계에 접어들면 인건비도 올라가고 국내에서 공장을 돌리는 게 자본수익률이 떨어지니까 제조업들이 해외로 옮겨갑니다. 생산비용 상승으로 제품의 국제경쟁력이 떨어지면서 무역수지가 적자로 전환돼요. 한국도 그렇지만 일본에서 쓰이는 소비재 대부분이 수입이잖아요. 대신 해외 자산이 많기 때문에 소득수지와 경상수지는 흑자인데, 2011년 이후 일본이 이 단계에 접어들었다고 판단됩니다.
그리고 여기서 한발 더 나아가게 되면 마지막 단계인 ‘채권붕괴국’ 상태에 진입하게 됩니다. 기업들이 다 해외에 진출하면서 모든 것을 수입해야 되는 단계에요. 그러면 무역수지 적자폭이 더 확대되면서 소득수지 흑자규모를 넘어서게되고, 결과적으로 경상수지가 적자로 전환되게 됩니다. 원래 수입하던 식량, 에너지에 기계, 전자기기 이런 것들까지 수입하는 단계에 이르러서 갖고 있는 해외 자산까지 팔아야 되는 상황이 벌어지는 거죠.
그래서 이런 발전 단계를 밟아나가기 때문에 일본이 채권국으로서 보유한 금융자산이 엄청나지만, 평생 유지될 것이냐고 묻는다면 그렇지 않다는 거죠. 한국도 그렇지만 일본이 제조업 강국이라 버티고 있는 것이지만요.
Q. 한국과 일본은 공통적으로 노동생산성이 낮다. 양국민 모두 오래일하고 근면하기로 유명한데, 왜 생산성은 낮을까?
A: 바로 그 이유 때문 입니다. 생산성은 시간 대비로 따지는 건데 분모인 노동시간이 길면 길수록 생산성은 떨어질 수밖에 없죠.
한국도 그렇지만 일본도 아직까지 근무 이외에 인간관계를 위해, 또는 눈치 보는 분위기 때문에 야근을 하거나 회사에 오래 남아있는 경우가 많잖아요. 결국에는 순수하게 일하는 시간대비 생산하는 부가가치가 높지 않은 것이 노동생산성이 낮은 주요인 입니다.
현재 일본의 노동 생산성이 미국의 60% 밖에 안 돼요. 그래서 일본 정부도 기업도 근래 ‘일하는 방식의 개혁’이라고 해서 일본식 경영의 상징인 장기고용과 연공서열제를 타파하려 하고 있는 겁니다.
또 한 가지, 일본이 디지털화가 뒤처지다 보니 자본 장비율도 떨어집니다. 10명이 일 하는 것보다 단 1명이 일하더라도 기계를 쓰는 게 생산성이 높아질 수 있는건데 일본은 디지털 진척이 특히 공공부문에서 느리다 보니 생산성이 낮게 나타나고 있습니다. 2021년에 디지털청도 만들고 개선하려 노력하고 있지만 아직은 갈 길이 멉니다.
Q. 일본은 어쩌다 디지털화에 뒤처지게 된건가?
A: 일본에서 흔히 팩스, 도장, 종이를 ‘3종의 신기’ 라고 하는데, 이 3가지가 하나의 시스템 입니다. 1980년대 까지 팩스는 신문물이었어요. 팩스로 주고 받고, 도장 찍어서 서류 보관하는 시스템이 당시에는 최첨단 이었죠. 그리고 1980년대 까지 아주 초일류 국가였던 일본은 사무실마다 팩스가 있었습니다. 문제는 이 팩스를 중심으로 한 레거시 시스템이 아직도 강력하게 자리잡고 있다는 거에요.
18세기말 1차 산업혁명때는 범용기술이 증기기관이었고 100년 뒤 2차 산업혁명 때는 내연기관이 이걸 대체했죠. 그리고 20세기 말 3차 IT 혁명으로 컴퓨터와 인터넷이 범용기술이 됐습니다. 일본은18세기 말과 19세기 말까지 기술 혁신때 까지는 아주 잘 올라탔어요. 덕분에 이 시기동안 일본이 번영할 수 있었죠. 그런데 1990년대 버블 붕괴이후 침체에 빠지면서 3차 IT혁명때는 투자에 소홀했던 겁니다.
중요한 시기에 설비투자 여력이 부족했고 실제로 하지 않은 상태로 계속 흘러온 것인데, 본질적으로 기존 것에 안주하다가 변화의 물결에 제때 올라타지 못한 것이죠. 범용기술 도입 지체가 생산성 하락으로 연결되면서 다시 장기 침체 요인으로 작용했습니다. 1990년대 이후 IT 투자에 따른 생산성 향상이 성장의 원동력이 됐던 미국과는 대조적이죠.
그럼 4차산업혁명 시기 들어와서 일본이 역전할 수 있을까 라는 의문이 제기되는데, 개인적으로 쉽지는 않아 보입니다. 왜냐면 어떤 시스템이 이미 공고히 정착돼 있는 곳에서는 아무것도 없는 곳에서 시작하는 것보다 훨씬 많은 투자와 비용이 들기 때문입니다. 예컨데, 아프리카가 빠르게 IT환경을 확충해 나갈 수 있는 이유는 역설적이게도 아무것도 없기 때문입니다. 반면 일본은 새 시스템을 도입하려면 기존에 장시간 구축해놨던 시스템을 갈아엎으려면 몇배는 어렵거든요.
그래도 일본의 민간부문은 최근 적극 투자 하면서 바뀌어왔는데, 공공부분은 세금을 써야 하니까 늦어지는 경향이 강합니다. 사실 일본이 지금 민간부문은 한국에 비해 디지털화에 그리 뒤처져 있진 않습니다. 문제는 공공입니다. 코로나때 백신접종 처리를 종이로 하고 보조금 집행 명단도 플로피 디스크에 담아 옮기고 확진자 집계를 팩스, 수기로 하니까 그래프가 사무실 천장까지 올라가는 모습이 화제가 됐는데요. 공통점이 전부 공공부문 이라는 겁니다.
Q.일본 기업중 소니, 히타치는 사업재편과 디지털 전환 성공 등으로 잘나가고 있다. 반면 도시바,미쓰비시 자동차 등은 실패했다. 가장 큰 이유가 뭘까?
A: 일본에서 출간된 ‘실패의 본질’ 이라는 책이 있습니다. 미국과의 전쟁에서 왜 일본은 패할 수밖에 없었는지 조직론적 관점에서 분석한 책인데, 출간 초기에는 별 주목을 받지 못했지만 일본이 장기 침체기에 접어들면서 유명해졌어요.
책은 총 6개 전투를 통해 일본군이 저지른 조직의 실패에 대해 다루고 있는데, 하나만 예를 들겠습니다.
태평양 전쟁의 끝을 암시했던 임팔 전투때 일본군 사령관은 무타구치 렌야라는 독불장군식 인물이었습니다. 임팔은 인도와 미얀마의 국경지역인데, 패배를 거듭하던 일본군에게 남아있는 선택지는 인도 쪽으로 침공해 미국과의 휴전 회담을 유리하게 이끌어가는 것이었어요.
하지만 현실적으로 도저히 불가능한 작전이었습니다. 실패를 누구나 뻔히 예상할수 있었는데도, 사령관 눈치만 보면서 아무도 반대의견을 못냈습니다. 일본 대본영에서조차 “무타구치 군이 심혈을 기울여 계획한 작전이라 허락할 수 밖에 없다”는 이해할 수 없는 이유로 작전을 승인 했어요.
결국 작전을 강행한 일본군은 3주치 식량으로 4개월을 버티다 아사자가 속출하면서 전투 한번 제대로 못치르고 참패합니다. 합리성과 상관없이 인간관계와 조직내 융화를 중시하는 조직의 문제점이 드러났던 대표적 사례죠.
일본에서 흔히 쓰는 표현 중에 “공기를 읽어야 한다”는 말이 있습니다. 눈치없이 굴지말고 분위기 파악하란 뜻이죠. 그런데 정도가 지나쳐서 때로는 명백히 틀린 사안에 대해서도 모두가 “예스” 라고 할 뿐 “노”를 외치지 않습니다.
예컨데 분식회계를 저지른 도시바의 경우, 나중에 오랫동안 내부의 암묵적 동조가 있었고 발각 이후에 조직적 은폐시도까지 있었던 것으로 드러났죠.
그런데 “노”를 말할 수 없는 경직된 조직문화가 비단 일본만의 문제일까요? 실제로 국내에서 기업체 강연을 다니다 보면, 많은 분들이 자신이 속한 조직 문제로 “노”라고 할수 없는 분위기를 꼽습니다.
합리적 사고가 아닌 분위기가 조직을 지배하면 눈치보고 적당히 행동하는 보신주의가 만연하게 되죠. 곧 알게 모르게 조금씩 기업이라는 거목의 밑둥부터 갉아먹기 시작해 결국 쓰러지게 만듭니다. 일본의 실패 사례들을 한국에서도 진지하게 생각해봐야 하는 이유입니다.
※다음회에선 이준규 전 주인도 대사로부터 ‘세계 1위 인구대국 인도의 중국 대체가능성과 지금 한국에게 인도가 어느때보다 중요한 이유’에 대해 에 대해 들어봅니다. 하단 기자페이지 ‘+구독’을 누르시면 쉽고 빠르게 받아보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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