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자의 포비아(공포증)에 가까운 전기차 보조금 폐지 및 대중 배터리 공급망 견제 정책이 현실화하면서 국내 전기차·배터리 업계가 잔뜩 긴장하고 있다. 경기 침체와 중국의 저가 공습으로 수익성 하락을 겪고 있는 기업들이 철저히 자국 이익에 우선을 둔 미국의 '트럼피즘'으로 인해 이중고가 불가피할 전망이다.
17일 업계에 따르면 LG에너지솔루션, SK온, 삼성SDI 등 국내 배터리 3사와 LG화학, 포스코퓨처엠, 에코프로비엠, 엘앤에프 등 주요 배터리 소재 기업의 주가가 이날 일제히 3~8%가량 하락했다.
이는 16일(현지시간) 로이터통신이 트럼프 정권 인수팀의 내부 문건을 입수해 인수팀이 IRA(인플레이션감축법)에 근거한 최대 7500달러(약 1077만원) 규모 전기차 보조금을 즉시 폐지하고, 전 세계 모든 배터리 소재에 관세를 부과해 미국 내 생산을 장려하면서 동맹국과 개별적인 협상을 통해 관세 면제 방안을 검토하는 중이라고 보도한 데 따른 시장 반응이다.
실제로 트럼프 당선자는 이날 대선 승리 후 첫 기자회견을 열고 “관세가 미국을 부유하게 만들 것”이라며 “모든 카드를 갖고 관세 협상에 나서겠다”고 말했다. 이는 철강에 이어 전기차·배터리 시장에서도 중국 영향력을 떨어뜨리고 자국의 공급망을 확보하려는 행보로 풀이된다.
정책이 현실화하면 당장 한국 배터리 소재 기업에 악영향을 끼칠 전망이다. IRA 혜택을 받고자 북미에 대규모 투자를 추진 중인 배터리 소재 기업들은 미국 정권 교체로 인한 관세라는 이중고를 짊어질 위험에 처했다.
한국무역협회 통계에 따르면 한국의 대미 양극재 수출량은 올해 1~11월 17만2500톤(t)으로 전년동기와 비교해 14.1% 늘었다. 한국 배터리 기업이 북미 공장 가동을 지속해서 확대한 데 따른 결과다.
황경인 산업연구원 부연구위원은 "배터리 소재 관세가 현실화되면 국내 소재 기업들의 미국 수출 비용이 늘어나고, 미국 내 공장에서 배터리를 만드는 국내 기업들도 다른 나라에서 소재를 수입하는 데 드는 비용이 증가하면서 부정적인 영향을 받게 될 것으로 보인다"고 예측했다.
IRA 보조금 삭감으로 전기차 캐즘이 장기화하면서 배터리 3사 실적 회복에 악영향을 미칠 가능성도 제기된다. 앞서 블룸버그통신은 보조금 삭감 시 미국 내 연간 전기차 등록 대수가 31만7000대가량 줄어들 것이란 분석을 내놓은 바 있다. 이 경우 GM, 포드 등 미국 주요 자동차 기업은 내년 전기차 생산량을 더 줄일 수밖에 없고, 이들과 국내 배터리 기업의 북미 합작 공장의 배터리 생산량도 함께 줄어들 전망이다.
한 배터리 업계 관계자는 “기업의 로비가 활발히 진행 중인 상황에서 정책 방향이 어떻게 흘러갈지는 아직은 모른다”며 “현시점에서 바로 대응책을 마련하기보다는 상황을 예의 주시할 수밖에 없는 답답한 상황에 처했다”고 말했다.
다만 배터리 업계에선 트럼프 2기 행정부의 정책이 충분히 예상 가능한 범위였고 한국 기업이 이에 맞춰 많은 대비를 해온 만큼 타격을 최소화할 수 있을 것이란 분석도 나오고 있다.
다른 배터리 업계 관계자는 “배터리 부품과 광물에 대한 관세를 올려서 중국을 배제한 미국 중심 공급망을 구축하고 미국 투자 기업에 대해 우호적인 접근을 한다는 트럼프 2기 행정부의 정책은 충분히 예상됐던 부분”이라며 “대미 투자를 많이 진행해 온 한국 기업 입장에선 긍정적인 영향도 있을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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