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1월호

“이순신 3부작 완결은 天幸이었다”

‘노량: 죽음의 바다’ 김한민 감독

  • 김지영 기자 kjy@donga.com

    입력2023-12-20 14:48: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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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통쾌한 한산, 끓어오르는 명량, 장엄한 노량

    • 장군의 북소리는 대의의 표상

    • 러닝타임 153분, 길지만 길지 않다

    “흥행 욕심보다 이순신 3부작을 잘 완성해야 한다는 사명감이 앞섰다.”

    영화 ‘노량: 죽음의 바다’(이하 ‘노량’)를 연출한 김한민 감독은 어떤 마음으로 촬영에 임했느냐는 물음에 이렇게 말문을 열었다. 오늘 개봉한 ‘노량’은 한국영화 역대 흥행성적 1위인 ‘명량’(2014), ‘한산: 용의출현’(2022, 이하 ‘한산’)에 이은 이순신 3부작의 완결편이다. 임진왜란이 일어난 지 7년이 지난 1598년 12월, 왜군의 수장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갑작스러운 사망 소식을 접하고 조선에서 황급히 퇴각하려는 왜군을 섬멸하기 위한 이순신 장군의 최후 결투를 그린다. 이순신 3부작의 완결편인 노량의 러닝타임은 한국영화 평균보다 긴 153분이다.

    김한민 감독은 영화 전반부에서 노량해전이 일어난 배경과 이순신(김윤식 분)이 이 해전에 특별한 의미를 부여한 이유를 다양한 각도로 조명한다. 이순신은 ‘왜군을 완벽하게 섬멸하는 것이 이 전쟁을 올바르게 끝내는 것’이란 생각으로 일관한다. 명나라와 조명연합함대를 꾸려 왜군의 퇴각로를 막고 적들을 섬멸하기로 결심하지만 왜군의 뇌물 공세에 넘어간 명나라 장수 진린(정재영)이 왜군에게 퇴로를 열어주려 하는 바람에 긴장감이 고조된다. 설상가상으로 왜군 수장인 시마즈(백윤식)의 살마군까지 왜군의 퇴각을 돕기 위해 노량으로 향하며 죽음의 바다에서 펼쳐질 치열한 전투를 예고한다.

    김 감독은 “해전이 벌어지기 전 서사를 두고 지루함을 느끼는 관객이 있을 수 있지만 이순신 장군이 이 전투에서 왜군을 섬멸하고자 했던 강한 의지와 결기를 보여주는 것이 해전 신만큼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개봉 전날인 12월 19일 서울 종로구 삼청동에서 넓은 탁자를 사이에 두고 마주한 그는 이순신 3부작을 만드는 데 할애한 지난 10년을 돌아보며 호탕하게 웃기도 하고, 눈시울을 붉히기도 했다.

    김한민 감독은 “마음이 착잡할 때 난중일기를 들여다보면서 용기를 얻고 위로를 받았다”고 말했다. [(주)에이스메이커무비웍스, 롯데엔터테인먼트]

    김한민 감독은 “마음이 착잡할 때 난중일기를 들여다보면서 용기를 얻고 위로를 받았다”고 말했다. [(주)에이스메이커무비웍스, 롯데엔터테인먼트]

    위기를 기회로 만든 이순신 3부작

    이순신 장군이 치른 전투 중 가장 애정이 가는 것은 뭔가.

    “딱 하나를 고르긴 힘들다. 통쾌하기로는 ‘한산’이 으뜸이고, 뭔가 끓어오르는 건 ‘명량’이고, ‘노랑’은 너무 장엄하다. 그런 느낌을 영화에 녹였다.”



    이른바 이순신 3부작을 완결했다. 소감이 어떤가.

    “감개무량하다. (이순신) 장군님 워딩을 빌리자면 (지난 10년 동안 3부작을 완결한 것은) 천행(天幸)이었다. ‘명량’을 찍을 땐 세월호 참사가 있었다. ‘한산’, ‘노량’을 촬영할 때는 코로나 사태가 터졌다. 위기가 있었지만 운이 좋았다.”

    어떤 면에서 운이 좋았다는 건가.

    “하마터면 ‘명량’을 개봉하지 못할 뻔했다. 세월호 참사로 온 국민이 충격과 실의에 빠져 있었다. 비슷한 해역에서 찍은 ‘명량’ 개봉을 계속 연기하자는 의견이 거셌다. ‘한산’과 ‘노량’ 때는 코로나 때문에 언제 촬영을 멈춰야 할지 모르는 상황이었다. 강원도 평창 동계올림픽 스피드 스케이트장을 폐쇄하려고 했는데 우여곡절 끝에 밀어붙여서 촬영을 마쳤다. 그때 촬영을 멈췄으면 이번 영화를 개봉할 수 없었을 것이다.”

    어쩌다 이순신이라는 인물에 천착하게 됐나.

    “원래는 역사 3부작을 기획했다. 일제강점기를 배경으로 한 ‘봉오동전투’와 병자호란 때 신궁을 다룬 ‘최종병기 활’. 임진왜란을 배경으로 한 ‘명량’이다. ‘명량’을 준비하면서 이순신이라는 인물을 더 파봐야겠다는 생각이 강해져 해전을 3부작으로 선보이게 됐다. 이순신 장군이 치른 해전은 저마다 특색이 있다. 명량은 모두가 두려움과 좌절에 빠져 있을 때 인간의 나약한 감정을 용기로 전환시킨 해전이고, 그 어려운 일을 해낸 사람이 이순신이다. 두려움을 용기로 바꿔가는 과정의 중심에 이순신이라는 인물이 있었다. 한산도대첩은 수세적 국면에서 철저한 준비와 전략전술로 대처해 전투를 승리로 이끌어냈다. 노량해전은 모두가 끝났다고 생각하는 전쟁이었지만 적들을 돌려보내선 안 된다는 생각으로 치열하게 싸운 전투다. 후손인 우리가 복기해볼 필요가 있는 해전이어서 영화로 만들었다.”

    러닝타임 153분에 영화로 보여주고자 하는 노량해전을 짜임새 있게 담아내기가 쉽지 않았을 것 같다.

    “각본 단계와 촬영 도중 포기하고 싶었던 지점이 몇 번 있었다. ‘명량’을 통해 선보인 해전 설계가 관객들에게 공감대를 이끌어내고 큰 호응을 받았다고는 하지만 노량해전은 설계 자체가 힘든 느낌이 굉장히 강하게 들었다. 해전을 왜 이렇게 치열하게 보여줘야 하는지 답을 찾는 일이 무엇보다 중요했다. 이순신 장군이 어떤 자세로 해전에 임했는지, 심지어 당신이 돌아가시면서까지 이 해전을 수행하려고 한 이유가 뭔지를 제대로 이해해야만 관객들에게 공감을 불러일으키고 해전을 리듬감 있게 설계하는 것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해전을 리듬감 있게 전개해야 관객이 그 리듬을 따라 영화에 빠져들 수 있다.”

    지난 1년 동안 후반 작업을 진행할 때 어떤 부분을 보완했나.

    “가장 크게 보완한 건 CG(컴퓨터그래픽)다. 25개 업체에서 한 800명이 참여했다. 웬만한 CG 업체는 다 참여한 셈이다. 그러다 마지막에 사운드 설계라는 복병을 만났다. 사운드에 따라 영화의 느낌과 몰입도가 크게 달라지기에 무척 중요한 작업이다. 다양한 고민과 시도 끝에 사운드의 밸런스를 찾는 데 성공했다.”

    ‘노량: 죽음의바다’ 포스터. [(주)에이스메이커무비웍스, 롯데엔터테인먼트]

    ‘노량: 죽음의바다’ 포스터. [(주)에이스메이커무비웍스, 롯데엔터테인먼트]

    역사에 대한 호기심의 발로

    이순신 장군이 치는 북소리가 강렬한 여운을 남긴다. 실제로 북을 치다 돌아가신 게 맞나.

    “맞다. 북을 치다 총에 맞아 돌아가셨다. 그 북소리는 이순신 장군이 품은 대의를 함축적으로 표상하고 있다. 해전에 임하는 명나라 장수 진린과 다른 조선 장수들을 독려하고 용기를 북돋워 주는 북소리요, 왜군 수장 시마즈를 너무 괴로워 몸부림치게 하는 북소리다. 시마즈와 합류하기로 한 고니시는 북소리 때문에 생각을 바꾸고 도주하게 되며, 심지어 그 북소리로 인해 이순신 장군은 살신성인하게 된다. 영화 도입부에 북소리를 사용한 것도 그런 상징적 함의를 보여주기 위함이다.”

    이순신 장군이 싸움을 그만두고 싶어하는 진린에게 ‘노량해전에서 싸움을 끝내야 한다. 왜군을 섬멸해야 한다’고 여러 번 말한다. 그건 고증한 문헌에 나와 있는 내용인가.

    “매우 정확하게 나와 있다. 그 때문에 진린과 큰 갈등을 겪는다. 심지어는 진린이 ”내가 황제가 준 이 칼로 당신을 처단할 수 있다“고 윽박지르기도 한다. 그럼에도 이순신 장군은 의연하게 거절하면서 그럴 거면 조명연합수군을 해체하자고 한다. 참 아이러니하게도 ‘픽션일 거야’ 하는 게 진짜고, ‘저건 실제일 거야’라고 하는 게 픽션인 장면이 꽤 있을 거다.”

    3부작 속 이순신을 모두 다르게 캐스팅한 특별한 이유가 있나.

    “명량의 이순신은 용장, 한산의 이순신은 지장, 노량의 이순신은 현장이다. ‘명량’에서는 수세에 있던 전투를 역전시켜야 했고 사람들이 갖고 있던 극한의 두려움을 용기로 바꿀 만큼 용맹스러운 장군의 기개와 아우라가 필요했다. 그런 지점에서 최민식이라는 배우가 적임자라 판단했다. ‘한산’에서는 지략과 치밀한 전략전술을 준비해가는 장군의 모습이 중요한 포인트였다. 그런 모습을 표현하기에 박해일의 차갑고 냉철한 이미지가 잘 맞을 거라고 봤다. ‘노량’에서는 전쟁의 종결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를 멀리까지 내다보고 있던 장군의 지혜로움과 무모함을 겸비한 모습이 필요했다. 그런 모습을 표현하기에 김윤석 배우가 적격이라고 여겼다.”

    사극 영화를 잘 만든다는 평이 많다. 실제로 역사 3부작과 이순신 영화 모두 관객 반응이 좋았다. 대학(연세대)에서 경영학을 전공했던데 그때도 역사에 관심이 많았나.

    “내가 고등학교를 다닐 때는 역사가 내신에서 선택과목이었다. 역사를 가르치지 않아 불만이 있었다. 역사를 들여다보면 선조의 숨결이 느껴지는 듯하다. 역사책을 이렇게 보고 있으면 왜 이런 표현이 있을까 궁금해지고 그런 것들이 계속 호기심을 자극한다. 궁금증을 해소하려고 계속 공부하고 파헤친 것이 역사 3부작과 이순신 영화를 만드는 동기가 됐다.”

    영화를 만들면서 이순신 꿈을 꾸지는 않았나.

    “전혀 꾸지 않았다. 긍정적으로 생각한다. 이순신 장군에게 별로 거슬리게 한 것이 없어서 그런 게 아닌가 하고 말이다. 하하하. 마음이 착잡할 때 난중일기를 자주 들여다본다. 그러면 신기하게도 용기가 생기고 위로가 된다.”

    끝나지 않은 이야기, 8부작으로 재조명

    김 감독의 이순신 3부작은 끝났지만 임진왜란 이야기는 앞으로 계속된다. 김 감독은 임진왜란 7년을 배경으로 한 8부작 OTT 드라마 ‘7년 전쟁’을 선보일 준비를 하고 있다. ‘7년 전쟁’은 ‘오성과 한음’으로 유명한 조선 최연소 대제학 한음 이덕형을 주인공으로 내세워 한‧중‧일 삼국의 이야기를 입체적으로 다룰 예정이다.

    “배우 캐스팅이 거의 다 됐고 제작 관련 논의도 상당히 진전된 상태다. 임진왜란 7년 동안 정치 외교사적 입장이 기민하게 돌아가는 이야기다. 임진왜란 당시 명나라와 왜군 사이에서 우리 땅을 어떻게 나눌지를 두고 중대한 이야기가 오간다. 이때 조선의 입장을 배제할 수 없도록 강하게 압박한 인물이 한음 이덕형과 남쪽에서 무력시위를 주도한 이순신이다. 우리가 알고 배우고 또 복기할 필요가 있는 사실이어서 다뤄보고 싶었다. 그 당시의 외교 전술이나 지혜를 배울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이순신 장군의 최후의 결전 ‘노량’은 20일 개봉하자마자 관객몰이를 하고 있다. 사전 예매한 관객만 30만 명을 넘는다. 900만 관객을 돌파한 ‘서울의 봄’보다 좋은 성적을 거둘지도 지켜볼 일이다. ‘명량’은 누적 관객 1761만 명, ‘한산’은 726만 명을 기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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