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유경 회장의 승진, 계열 분리 공식 선언
완전한 계열 분리까진 상당 시간 소요 전망
관건은 정용진·정유경 회장의 성과 입증

[시사저널e=한다원 기자] 국내 최대 유통기업이자 재계 11위인 신세계그룹이 계열 분리를 공식화했다. 정유경 신세계 총괄 사장은 회장으로 승진하며 정용진 신세계그룹 회장과 함께 일명 ‘남매 경영’을 이끌게 됐다. 신세계그룹의 계열 분리는 다소 시간이 걸릴 것으로 예상되는 상황에서 본업 경쟁력 강화를 위한 경영 능력 입증이 관건으로 떠올랐다.

10일 유통업계에 따르면 신세계그룹은 ‘2025년도 정기 인사’를 통해 정유경 신세계 총괄 사장의 회장 승진으로 그룹의 계열 분리를 공식화했다. 신세계그룹은 2019년 백화점부문과 이마트부문을 신설하고 당시 총괄사장이었던 정유경 회장과 정용진 회장이 각각 맡아왔다.

신세계그룹 지분구조 및 백화점부문과 이마트부문 최근 실적 추이. / 표=김은실 디자이너
신세계그룹 지분구조 및 백화점부문과 이마트부문 최근 실적 추이. / 표=김은실 디자이너

◇수년 전부터 준비된 ‘계열 분리’

신세계가 정유경 회장 시대를 열면서 정유경 회장과 정용진 회장은 동일한 위상을 갖추게 됐다. 특히 두 남매의 보유 지분도 동일하다. 신세계그룹 지분도에 따르면 정용진 회장과 정유경 회장은 각각 이마트와 신세계 지분을 18.56%씩 보유 중이며, 이명희 총괄회장은 두 기업의 지분을 10%씩 갖고 있다.

신세계그룹은 지난 2011년부터 사실상 분리 계열을 준비해왔다. 당시 정용진 회장은 이마트를, 정유경 회장은 백화점 사업을 각각 맡아왔다. 이후 정용진 회장과 정유경 회장은 서로 갖고 있던 신세계와 이마트 주식을 맞교환했다. 또 이명희 총괄회장은 2020년 정용진 회장에게 이마트 지분을, 정유경 회장에게 신세계 지분을 증여하면서 분리 경영 기틀을 마련했다.

특히 그룹은 신세계와 이마트가 실질적인 지주사 역할을 할 수 있도록 준비해왔다. 이를 통해 백화점부문은 신세계백화점을 필두로 패션·뷰티와 면세, 아웃렛 사업을 통해 시장 경쟁력을 확대해왔다. 이마트부문도 이마트를 중심으로 스타필드, 스타벅스, 편의점, 슈퍼 등 고객 라이프스타일 전반을 선도하는 기업으로 입지를 다져왔다.

신세계그룹 관계자는 “올해가 본업 경쟁력 회복을 통한 수익성 강화 측면에서 성공적인 턴어라운드가 가시화되고 있다는 점에서 그간 물밑에서 준비해온 계열 분리를 시작하는데 적절한 시점이라고 판단했다”고 밝혔다. 다만 “아직 계열 분리에 대해 구체적으로 정해진 것은 없다”고 덧붙였다.

유통업계에선 “신세계그룹 계열 분리는 곧 본업 경쟁력을 키우기 위한 것”이라고 분석한다. 유통 3사(롯데·신세계·현대) 중에서 신세계그룹은 유통업 의존도가 높다는 평가를 받아왔다. 롯데는 유통과 화학을 두 축을 바탕으로 바이오, 2차 전지 등에 투자를 이어가고, 현대백화점은 가구, 의류, 건설장비, 화장품 등으로 사업을 넓혔다. 반면 신세계그룹은 백화점과 대형마트, 이커머스 등 유통업에 치우처있다.

무엇보다 신세계그룹이 계열 분리를 공식 선언했지만, 실제 진행되기까진 시간이 다소 걸릴 전망이다. 실제 과거 신세계그룹이 삼성그룹에서 계열 분리할 때도 1993년에서 1997년까지 4년 여 시간이 소요된 바 있다.

공정거래법상 친족 기업 간 계열 분리를 하려면 상장사 기준 상호 보유 지분이 3% 미만이어야 한다. 또 임원 겸임과 자금 대출도 없어야 한다. 현재 이마트와 신세계가 공동으로 지분을 갖고 있는 계열사는 SSG닷컴이 유일하다. SSG닷컴 지분은 이마트가 45.6%, 신세계가 24.4%를 갖고 있다. 업계 안팎에선 신세계가 SSG닷컴의 보유 지분을 이마트에 양도하는 방식을 택할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아울러 이명희 총괄회장이 보유한 이마트와 신세계 지분 정리도 필요하다. 추후 승계와 계열 분리, 지배구조 개편 마무리 작업에서 이 총괄회장이 보유한 이마트·신세계 지분을 정용진·정유경 회장에게 각각 증여할 것으로 예상된다.

◇관건은 두 회장의 경영 능력 입증

결국 정용진·정유경 회장은 성과를 입증해야하는 과제가 남겨졌다. 이마트는 올해 진행한 본업 경쟁력 강화 노력으로, 올 3분기 영업이익이 전년 대비 43.3% 증가하며 3년 만에 분기 최대 성과를 냈다. 그러나 아픈손가락으로 꼽히는 이커머스(SSG닷컴·G마켓)와 이마트24의 적자가 이어지면서, 전체 이마트 매출은 올 3분기 누적 기준 전년 대비 5.4%나 줄었다.

정용진 회장은 취임 후 개인 SNS(인스타그램)을 중단하고 구조조정을 단행했다. 이마트는 최근 점포 리뉴얼에 적극적이다. 지난 3월 창사이래 첫 희망퇴직에 나섰고, 이달에도 2차 희망퇴직 접수를 단행했다.

정유경 회장도 면세점이 부진한 터라 백화점을 중심으로 사업 경쟁력을 키우고 있다. 신세계는 강남점이 지난달 28일 기준 예년 대비 한 달 가량 빠르게 연매출(거래액) 3조원을 넘어섰지만, 전반적으로 오프라인 사업이 침체되면서 영업익 개선이 어려워지고 있다. 신세계는 올 3분기 누적 매출 8조3100억원으로 전년 동기 대비 3.7% 증가했지만, 영업익은 3734억원으로 604억원이나 줄었다.

이마트와 신세계를 둘러싼 평가도 엇갈린다. 이진협 한화투자증권 애널리스트는 리포트를 통해 “불확실성이 높은 외부 환경에도 유통업계에서 내년 실적 개선이 가장 확실한 곳은 이마트로 판단된다”면서 “스타벅스 가격 인상 효과, 원가 개선 작업, SSG닷컴의 사업 성장 및 물류 비용 효율화 등이 이마트 실적 개선에 기여할 것”이라고 밝혔다.

다만 이 애널리스트는 “정규 매장 운영 면적 확대로 인한 임차료 증가 영향으로 면세점의 부진은 올 4분기에도 지속될 것으로 단기 실적보다는 방향성에 초점을 맞출 필요가 있다”면서 “올해 소비 기저가 낮다는 점에서 내년 소비 개선 가능성을 높이고 있어 백화점에 주목해야 한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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