中·日산 열연강판 가격, 국내산 比 10% 낮아
반덤핑 제소, 무역 보복 등 셈법 복잡
"관세 부과시 원가 부담 커져"···중견제강사 불만 토로
[시사저널e=정용석 기자] 최근 현대제철이 중국·일본산 열연강판에 대해 반덤핑 제소에 나선 가운데 1위 철강사인 포스코는 뚜렷한 움직임을 보이지 않는 모양새다. 올해 상반기 포스코의 전체 해외 매출 중 중국의 비중은 고작 1.3%에 불과하지만, 중국과의 역학관계를 고려할 수밖에 없다는게 업계의 설명이다. 또한 포스코가 국내 열연강판 시장 점유율 80%를 차지하고 있어 반덤핑 관세를 반대하는 중소 제강사를 의식해 쉽사리 반덤핑 제소에 나서지 못할 것이란 의견도 있다.
22일 철강업계에 따르면 현대제철은 지난 19일 산업통상자원부 무역위원회에 중국산·일본산 열연강판 대상 반덤핑 조사를 신청했다. 무역위는 반덤핑 조사 신청이 접수됨에 따라 신청인 자격과 덤핑 관련 증거에 대한 검토를 거쳐 2개월 안에 조사 개시 결정 여부를 결정할 예정다.
현대제철은 앞서 중국산 후판에 대해서도 반덤핑 조사를 신청한 바 있다. 지난 7월 중국산 후판에 대한 무역위 조사가 시작됐는데, 5개월 만에 열연강판에 대해서도 반덤핑 제소 카드를 꺼낸 것이다.
열연강판은 쇳물을 굳혀 만든 반제품 슬래브를 고온으로 가열한 뒤 두께를 얇게 만든 철판이다. 앞서 현대제철은 지난 10월 3분기 실적발표 컨퍼런스콜에서 “후판 제품뿐만 아니라 열연강판에 대해서도 산업피해 심각성에 관한 사실관계를 파악 중이며 적극적으로 반덤핑 제소를 검토하고 있다”고 밝혔다.
저가 철강 제품이 국내 시장을 잠식하고 있지만 별다른 해법을 내놓지 못하면서 철강업계의 수익성만 하락하고 있어 현대제철이 ‘총대’를 맨 것이다. 중국에 이어 일본마저 열연강판을 자국 판매가보다 13% 낮은 가격에 덤핑식으로 밀어내면서 국내 철강 시장이 저가 해외 철강재에 잠식되고 있다는 게 업계의 설명이다.
한국철강협회에 따르면 올해 1월부터 11월까지 국내에 수입된 열연강판은 총 342만7537톤(t)으로 집계됐다. 이 중 일본산 수입 비중은 51.64%에 달했다.
반면 국내 열연강판 시장 점유율 80%를 차지하고 있는 포스코는 별다른 움직임을 보이지 않고 있다. 포스코는 현대제철이 중국산 후판에 대해 반덤핑 제소를 신청할 때에도 “정부가 덤핑 조사에 나선다면 포스코의 전략이나 상황에 맞게 답변 자료를 제출하겠다”며 다소 소극적인 태도를 보였다.
국내 철강사들이 중국과의 역학관계가 복잡하게 얽혀있어 선뜻 나서기 쉽지 않다는 분석이 나온다. 철강업계 관계자는 “포스코의 경우 중국 수출 물량도 있어 외교적 마찰을 피하고자 적극적인 제소에 나서긴 쉽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현대차 그룹 내부 물량을 통해 안정적인 일감을 확보할 수 있는 현대제철과도 다른 사업구조를 가지고 있다는 설명이다.
포스코가 이번 열연강판 대상 반덤핑 조사 신청에 나서지 않는다면 동국제강, 세아제강, KG스틸 등 중견 제강사들과의 마찰도 피할 수 있다. 이들 중견 제강사들은 포스코와 현대제철 등으로부터 열연강판을 구매하고 후공정을 통해 제품을 생산한다. 관세 부과로 수입 열연강판 가격이 높아지면 원재료 가격 상승에 따라 중견 제강사들의 이익은 감소하게 된다.
한 중견 제강사 관계자는 “열연강판 반덤핑으로 원가 부담이 증가하면 포스코와 현대제철 말고는 모두가 피해를 보는 구조”라며 “중국과 일본산 열연강판 수입 규모도 지난 2014~2017년 당시보다 작은 수준”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