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10월호

이런 일

故 이대우 교수 10주기 추모식

“‘백만 학도여! 일어서라!’ 외치던 의로운 청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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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배수강 기자

    bsk@donga.com

    입력2019-09-19 14:0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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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호영 기자]

    [지호영 기자]

    “백만 학도여! 피가 있거든 우리의 신성한 권리를 위하여 서슴지 말고 일어서라!” 

    대구 2·28민주운동 주역인 고(故) 이대우 부산대 교수(1942~2009) 10주기 추모 행사가 8월 26일 국립4·19민주묘지에서 열렸다. 이날 행사는 이 교수의 유족과 제자들, 2·28민주운동기념사업회(회장 우동기) 회원들과 최맹호 전 동아일보 대표 등 전국에서 100여 명이 참석해 고인의 숭고한 뜻을 기렸다. 

    김영휘 목사의 예배로 시작된 추모식은 제자들의 추모사와 영상 시청, 유족대표 인사 순으로 진행됐다. 제자인 백승주 자유한국당 의원은 “교수님은 1980년대 초에는 생활고로 힘든 운동권 선배들에게 당신이 지급받은 양권(糧券·쌀 교환권)을 몰래 전달하라는 ‘임무’를 내리기도 했다”며 “당신이 강조한 자유, 민주, 정의는 지금도 제자들의 인생 나침반이 되고 있다”고 말했다. 

    김홍수 부산대 교수(전 대통령비서실 교육문화비서관)는 이 교수와 유족과의 추억을 소개하며 “항상 사람을 배려하고 공평하게 대하는 법을 가르친 큰 스승”이라고 회고했고, 이 교수의 경북고 동기인 권준화 뉴욕코리아센터 대표는 “대구 동인동 이 교수의 골방에서 자유당 독재에 맞서 싸우자던 그 모습이 그립다”며 떠난 친구를 그리워했다. 장남 중화 씨(미국 노스다코타대 교수)가 인사말을 할 때 추모객들은 ‘고인이 그립다’며 눈시울을 붉히기도 했다. 

    2·28민주운동은 자유당 정권이 1960년 2월 28일 야당 장면 부통령 후보의 연설회에 학생들의 참여를 막은 게 발단이 됐다. 당시 경북고 학생부위원장이던 이 교수는 자신의 집에서 8개 고교 학생 대표들과 시위를 계획했고, 이튿날 경북도청으로 향하면서 경찰과 투석전을 벌였다. 이 교수 등 숱한 학생이 연행돼 고초를 겪었지만, 의거 소식이 알려지면서 마산 3·15의거와 4·19혁명의 기폭제가 됐다. 지난해 2월 국가기념일로 공포됐다. 



    고인은 2·28민주운동기념사업회 이사 등을 지내며 평생을 2·28 정신 계승을 위해 헌신했다. 추모식은 매년 4월 19일과 기일인 9월 13일 두 차례 열리는데, 올해는 추석과 겹쳐 이날 열렸다.



    배수강 편집장

    배수강 편집장

    굽은 나무가 선산을 지키듯, 평범한 이웃들이 나라를 지켰다고 생각합니다. ‘남도 나와 같이, 겉도 속과 같이, 끝도 시작과 같이’ 살려고 노력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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