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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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사 이후 근로계약서 작성을 차일피일 미룬 직원이 한달 만에 퇴사하면서 퇴사 관련 서류 제출도 거부하더니, 되레 사업주를 '근로계약서 미작성'과 '임금 체불'로 신고하는 일이 벌어졌다. 전문가들은 "영세사업주들의 실수를 유도해 법적 절차를 밟는 근로자들이 많이 늘고 있다"며 철저한 근로기준법 준수를 주문했다.

22일 법조계에 따르면 의정부지방법원은 근로기준법 위반 혐의로 기소된 사업주 A씨에 대한 1심 공판에서 최근 유죄를 인정하고 벌금 25만원을 선고했다.

○한 달 만에 퇴사한 직원...날아온 고소장

경기도 양주에서 식당을 운영하는 A 사장은 황당한 일을 당했다. 지난해 10월 4일 취업사이트를 통해 직원을 한 명 뽑았는데 되레 이 직원이 취직 이후에도 근로계약서 작성을 차일피일 미루는 것이다. 취업사이트를 통해 직원에게 근로계약서를 전송한 후 싸인하라 요청했지만 직원은 이마저도 외면했다. 결국 A가 보낸 근로계약서는 '작성 기한 만료'가 돼버렸다.

미심쩍어도 일손이 급해 일단 일을 맡겼지만 해당 직원은 한 달도 채 안 된 다음달 3일 퇴사하겠다고 밝혔다.

퇴사 과정에서도 이상한 일이 벌어졌다. A 사장은 직원에게 ‘통장 사본, 보건증, 주민등록등본을 제출해야 4대 보험을 신고하고 월급을 계산해서 줄 수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직원은 ‘퇴직하는 상황에서 서류를 제출할 필요가 없다’며 제출을 거부했다.

며칠뒤 임금을 언제 줄 거냐고 독촉하던 해당 직원에게 A 사장은 "서류를 보내주면 근로기준법에 정해진 대로 퇴사일 2주(14일) 내로 주겠다"고 답했지만, 직원은 "계약 상 월급날(월 말일)에 주겠다"며 서류 제출을 또다시 미뤘다.

이후 이 직원은 퇴사일로부터 14일이 지나자 기다렸다는 듯 A사장을 '서면 근로계약서 미작성'과 '임금체불'로 고소했다.

근로기준법은 사용자에게 근로계약을 체결할 때 근로자에게 임금, 소정근로시간, 휴일, 연차유급휴가 등이 담긴 근로계약서를 작성하도록 하고 있다. 사용자가 자신의 우월한 지위를 남용해서 근로조건의 불확정 상태 아래에서 근로를 시키는 것을 방지하기 위한 차원에서다. 임금이나 퇴직금도 퇴사일로부터 14일 이내에는 지급해야 한다.

○임금체불 '무죄'...근로계약서 미작성 '유죄'

결국 A는 기소돼 재판정에 섰다. A 사장은 근로계약서 미작성에 대해 "보건증, 주민등록등본, 통장 사본을 모두 제출해야 근로계약서를 작성할 수 있는데 이에 협조하지 않아 작성하지 못했다"며 "근로기준법 위반의 고의가 없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재판부는 이런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법원은 "근로조건의 서면 명시 의무는 근로계약을 ‘체결할 때’ 이행돼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어 "주민등록등본을 통해 정확한 신원을 확인하지 못해 근로계약서를 작성하지 못한다는 A사장의 주장은 근로관계를 맺어도 되는지 여부를 아직 확신하지 못했다는 취지"라며 "(하지만) 근로를 시작하도록 한 점을 보면, 이는 근로계약서 미교부의 정당한 사유가 된다고 볼 수 없다"고 판단했다.

A는 사이트를 통해 근로계약서를 보냈다고 주장하며 만료된 계약서 사본도 캡처해 제출했다. 하지만 법원은 "이것만으로는 보낸 시점을 확인할 수 없다"며 "서로 주고받은 카카오톡 대화 내용에도 근로계약서 작성에 관한 대화 내용은 없어서 사용자가 해야 할 의무를 다했다고 보이지 않는다"고 지적하고 A의 주장을 일축했다.
다만 임금체불 혐의에 대해서는 무죄를 선고했다.

재판부는 "직원이 서류를 제출하면 세금 등을 정산한 후 근로기준법에서 정한 대로 퇴직 후 14일 이내에 임금을 지급하겠다고 밝혔지만, 해당 직원은 월급 날짜를 고집하며 서류 제출을 거부했다"며 "임금 미지급엔 이런 직원의 비협조가 작용했고 이로 말미암아 임금의 정확한 액수도 산출할 수 없었다"고 판단했다.

김상민 법무법인 태평양 변호사는 "영세사업주들을 상대로 근로기준법 위반 사항을 꼬투리 잡아 형사 고소하고 합의금을 받아 내는 행태가 적지 않다"며 "일손이 급하고 번거롭더라도 노동법 사항을 철저히 준수하는게 리스크를 최소화할 수 있다"고 조언했다.

곽용희 기자 ky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