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11월호

바이든이 ‘미운 놈’ 비트코인과 동행하는 이유

[잇츠미쿡] 잠깐, 잘 쓰면 괜찮겠는데?

  • 황장석 ‘실리콘밸리 스토리’ 작가·전 동아일보 기자 surono@naver.com

    입력2022-11-07 10: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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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환경에 善이자 惡

    • 유용한 잉여전력 소비 수단

    • 재생에너지와의 共生

    • 에너지 최후 구매자

    비트코인은 채굴에 많은 전력이 소모돼 미국 바이든 정부로선 달갑지 않은 존재다. 하지만 재생에너지 산업 활성화, 잉여전력 사용 등 도움이 되는 점도 있어 채굴을 금지하기엔 모호한 면이 있다. [Gettyimage]

    비트코인은 채굴에 많은 전력이 소모돼 미국 바이든 정부로선 달갑지 않은 존재다. 하지만 재생에너지 산업 활성화, 잉여전력 사용 등 도움이 되는 점도 있어 채굴을 금지하기엔 모호한 면이 있다. [Gettyimage]

    2050년까지 온실가스 배출 없는 나라를 만들겠다는 미국 바이든 정부에 비트코인 채굴은 악(evil)이다. 전력이 많이 들기 때문이다. 생산과정에서 전력을 사용하면 대기오염물질을 배출해 환경을 해치는 결과를 가져온다는 게 이른바 ‘ESG(환경·사회·지배구조)’를 강조하는 바이든 정부의 기조다. 그럼에도 바이든 정부는 ‘비트코인과의 동행’을 고려하고 있다. 역설적이게도 환경 때문이다.

    멈춰라, 電氣 너무 많이 든다

    9월 8일 백악관 과학기술정책실(OSTP)은 ‘미국에서 암호자산이 기후와 에너지에 대해 갖는 함의(Climate and Energy Implications of Crypto-Assets in the United States)’라는 A4용지 46쪽 분량 보고서를 발표했다. 3월 9일 바이든 대통령이 행정명령으로 연방정부 관련 부처에 ‘비트코인을 비롯한 디지털자산(암호자산) 산업의 규제 발전 방안을 연구해 6개월 내에 보고서를 제출하라’고 지시한 데 따른 것이다. 보고서 내용은 퍽 파격적. 사실상 ‘비트코인 채굴 금지’를 주장했다. 전력 소모가 크다는 게 이유다. 내용은 다음과 같다.

    “연방환경청과 에너지부, 그리고 다른 연방정부 부처는 환경을 고려하는 암호자산 기술을 만들고, 발전시키고, 사용하도록 각 주 정부와 지역사회, 암호자산업계 등과 협력해 환경성과 기준(environmental performance standards)을 만들어야 한다. 에너지(전력)·물 소비량이 낮고, 소음을 적게 유발하며, 청정에너지를 사용하는지 따져야 한다. 만약 이런 조치가 환경 피해를 줄이는 데 효과가 없다면, 대통령 권한으로 에너지 소비량이 많은 암호화폐 채굴을 제한하거나 금지하는 방안을 검토해야 한다. 의회의 경우 해당 사항 관련 입법을 고려할 수 있을 것이다.”

    비트코인 채굴에 많은 전력이 소모되는 까닭을 이해하려면 채굴 원리를 살펴야 한다. 비트코인 채굴은 특수한 컴퓨터를 이용해 비트코인 네트워크의 거래를 승인하고 보안을 강화하는 ‘암호 풀이’ 경쟁이다. 채굴자는 컴퓨터 프로그램을 돌려 암호를 찾아내야 한다. 컴퓨터 성능이 더 좋을수록, 시도 횟수를 늘릴수록 암호를 찾을 확률이 높아진다. 단, 더 많이 시도할수록 더 많은 전력이 소모된다.

    채굴자가 암호를 찾으면 블록(거래 기록 묶음)을 추가할 권한과 보조금 및 수수료를 받는다. 비트코인은 대략 10분마다 하나의 블록을 추가하는데, 채굴자가 받는 보조금은 현재 블록당 6.25BTC(비트코인 단위)이며 수수료는 거래당 1달러 수준이다. 하나의 블록에는 1774건(9월 20일 기준)의 거래 기록이 담긴다.



    마이클 세일러 마이크로스트래티지 회장은 비트코인 옹호론자다. 채굴에 드는 비용보다 편익이 훨씬 크다고 주장한다. [마이크로스트래티지]

    마이클 세일러 마이크로스트래티지 회장은 비트코인 옹호론자다. 채굴에 드는 비용보다 편익이 훨씬 크다고 주장한다. [마이크로스트래티지]

    환경정책에 기여한다고?

    여기까지만 보면 미국 정부가 비트코인을 배타적으로 바라보는 것 같지만 꼭 그렇지도 않다. OSTP 보고서는 비트코인 채굴의 해로움뿐 아니라 유용성 또한 인정했다. 잉여전력을 활용하며 전력 공급 상황에 유연하게 대처하는 방안이 있기 때문이다. 비트코인 채굴은 필요에 따라 채굴기를 껐다, 켰다 할 수 있다. 잉여전력이 발생해 전기요금이 쌀 땐 채굴기를 켜고, 전력 수요가 많아 전기요금이 비쌀 땐 채굴기를 끄면 된다. 암호화폐와 에너지 산업을 분석한 유진투자증권의 9월 13일자 ‘비트코인 에너지: 크립토 산업의 현재와 미래’ 보고서엔 이런 대목이 있다.

    “미국은 수요보다 약 14% 많은 전력을 생산하고 있다. 한국도 10% 이상 초과 공급 상태다. 과다 생산되는 전기는 저장 기술의 한계로 대부분 버려지거나 발전소 작동을 멈추게 한다. 전기산업 비효율을 개선하려면 잉여전력을 소비해 줄 유연한 수요처가 필요하다.”

    재생에너지는 발전 조건이 까다롭다. 원하는 시간에 원하는 만큼 전력을 생산하기 어려워 잉여전력이 다량 발생한다. 미국 정부는 이를 비트코인 채굴에 이용하면 ‘일거양득’ 효과를 볼 것으로 기대한다. [Gettyimage]

    재생에너지는 발전 조건이 까다롭다. 원하는 시간에 원하는 만큼 전력을 생산하기 어려워 잉여전력이 다량 발생한다. 미국 정부는 이를 비트코인 채굴에 이용하면 ‘일거양득’ 효과를 볼 것으로 기대한다. [Gettyimage]

    OSTP 보고서는 비트코인 채굴이 풍력발전, 태양광발전 등 재생에너지 잉여전력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이 될 수 있어 재생에너지 산업에 ‘인센티브’가 된다고 밝혔다. 재생에너지 발전은 바람이 불거나 해가 떠 있는 등 자연 조건이 맞아야 전력을 생산할 수 있다. 원하는 시간에 원하는 만큼 전력을 생산하기 어려워 잉여전력 문제가 더 심각하다. 현재 기술 수준으론 저장장치(ESS)에 담아두는 데도 한계가 있고, 다른 지역으로 보내주기도 어렵다. 결국 잉여전력은 버려지기 일쑤고, 때론 잉여전력이 생기지 않게끔 아예 발전시설 가동을 중단하기까지 한다. OSTP 보고서에 따르면 2019년 풍력발전의 경우 미국 전 지역에서 총 2.6%의 전력이 버려졌다. 태양광발전의 경우, 텍사스주에서는 연간 5%, 캘리포니아주에서는 연간 2.4%의 전력이 같은 이유로 버려졌다. 정부가 비용을 보전해 주지 않으면 풍력·태양광 발전시설을 운영하는 민간업자는 손실을 뒤집어써야 한다.

    비트코인 채굴에 잉여전력을 공급하면 채굴업자는 전력을 싸게 공급받고 전기업자는 버려야 할 전력을 팔아 돈을 벌 수 있다. OSTP 보고서는 만약 비트코인 채굴업자가 직접 풍력·태양광 발전시설을 지어 지역사회에 재생에너지를 공급함과 동시에 채굴까지 하게 된다면 전력산업과 환경정책 모두에 기여할 수 있다는 점도 인정했다.

    재생에너지와 함께 가는 비트코인

    미국 에너지정보청(EIA)에 따르면 지난해 미국에서 생산된 전체 전력량에서 재생에너지가 차지하는 비율은 20%다. 2010년과 비교하면 93% 증가했지만 막대한 돈을 투입한 데 비하면 초라한 성적이다. 천연가스가 전체 전력 생산량의 38%, 석탄이 22%, 원자력이 19%를 담당하고 있다. 오바마 정부 때 시작해 바이든 정부까지 집중적으로 투자하고 있는 풍력·태양광이 책임지는 전력량은 각각 9.2%, 2.8%에 그쳤다.

    바이든 정부는 재생에너지 산업, 특히 태양광·풍력 발전에 공을 들이고 있다. 백악관과 민주당이 손잡고 8월 의회에서 통과시킨 ‘인플레이션 감축법(Inflation Reduction Act)’은 최대 7500달러(약 1070만 원)까지 지원하는 전기차 보조금과 더불어 2030년까지 태양광 패널 9억5000만 개와 풍력발전기 12만 대 설치, 대형 배터리 공장 2300개 건설을 내용으로 담았다. 획기적 기술 발전으로 잉여전력을 대형 저장장치에 담아뒀다가 필요할 때 쓸 수 있게 된다면 몰라도 현재로선 현실적 대안이 필요한 상황이다.

    재생에너지를 사용하는 비트코인 채굴업자는 늘고 있다. 세계 비트코인 채굴 50.5%를 차지하는 45개 채굴업체가 참여해 분기마다 발표하는 비트코인채굴위원회(Bitcoin Mining Council·BMC) 보고서에 따르면 6월 30일 기준 비트코인 채굴에 사용되는 전력의 59.5%가 지속가능 전력(sustainable power)이다. 지속가능 전력은 수력, 태양광, 풍력 등 재생에너지로 생산한 전력을 포함해 ‘장기적으로 환경을 해치지 않는 자원으로 생산한 전력’을 뜻한다.

    미국 채굴업체가 대부분인 BMC 회원만 기준으로 하면 66.8%로 더 높았다. 물론 재생에너지 전력을 사용하는 비트코인 채굴업체가 늘고 있는 건 환경보호나 효율적 전력 사용에 협조하기 위해서가 아니다. 재생에너지 발전으로 잉여전력이 많이 생산돼 싼값에 전력을 사용할 수 있기 때문이라고 봐야 한다.

    환경·돈 一石二鳥

    3월 26일 CNBC는 미국 최대 석유기업 엑손모빌이 노스다코타 유정(油井)에서 원유를 추출할 때 발생하는 천연가스로 생산한 전력을 사용해 비트코인을 채굴하는 사업을 1년 넘게 진행해 왔다고 보도했다. 원유를 생산하는 과정에선 초기 고압의 천연가스가 뿜어져 나온다. 양이 많지 않거나 관으로 운반하기 어려운 경우 안전을 위해 현장에서 태워버린다. 천연가스를 대기 중에 그대로 방출하면 폭발의 위험이 있는 데다가 이산화탄소보다 훨씬 더 대기오염을 일으키는 메탄이 다량 함유돼 있기 때문이다. 이를 가스 플레어링(gas flaring)이라고 한다. 문제는 태워 없애는 게 그냥 방출하는 것보다는 낫지만 여전히 메탄과 이산화탄소 같은 온실가스를 적지 않게 배출한다는 점이다.

    엑손모빌은 크루소에너지라는 회사와 손을 잡고 비트코인 채굴 사업을 진행한 것으로 전해진다. 크루소에너지는 원유 생산과정에서 태워 없애는 천연가스로 전력을 생산해 비트코인 채굴이 가능하게끔 해주는 업체다. 오만(Oman)투자청과 아랍에미리트(UAE) 국부펀드의 투자를 받아 오만에서도 같은 사업을 한다.

    엑손모빌이 크루소에너지를 파트너 삼아 비트코인 채굴에 나선 건 수익 창출보다는 온실가스 배출을 줄여야 하기 때문인 것으로 해석된다. 우선 엑손모빌은 다른 석유회사들과 함께 월드뱅크가 추진해 온 ‘2030년까지 가스 플레어링 없애기(Zero Routine Flaring by 2030)’ 협정에 서명했다. 월드뱅크에 따르면 세계적으로 1년 동안 원유 생산과정에서 태워 없애는 천연가스 양은 유럽연합이 생산하는 전력의 3분의 2에 이를 정도로 막대하다. 또 가스 플레어링 과정에서 4억t의 온실가스를 배출하는 걸로 추정된다. 2018년 아르헨티나가 배출한 양과 맞먹을 만큼 막대한 양이다.

    다른 이유도 있다. 화석연료 산업에 적대적인 바이든 정부가 메탄 감축을 강하게 추진해 왔기 때문이다. 석유회사들은 인플레이션 감축법에 따라 원유·천연가스 생산과정에서 배출하는 메탄이 일정 기준 이상을 넘으면 부담금을 내야 한다.

    원유 생산과정에서 나온 천연가스를 판매하는 경우에는 천연가스 생산량의 0.2%를 초과해 메탄을 배출하면 t당 2024년엔 900달러(약 128만 원), 2025년엔 1200달러(약 142만 원), 그다음 해엔 1500달러(약 213만 원)를 내야 한다. 천연가스를 판매하지 않는다면 원유 생산량을 기준으로 메탄 배출량이 일정 기준(원유 100만 배럴당 메탄 배출량 10t)을 넘을 경우 같은 금액의 부담금을 매긴다. 참고로 1월 석유업계와 민간단체가 참여하는 메탄가이드원칙(Methane Guiding Principles)이 발표한 엑손모빌 보고서를 보면 2020년 엑손모빌은 메탄 500만 t을 배출했다.

    9월 12일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매사추세츠주 로건 국제공항에서 연설하고 있다. 바이든 대통령은 인플레이션 감축법 등 법안 통과를 홍보하면서 미국 내 투자를 강조한다. 인플레이션 감축법 실현을 위해선 재생에너지 산업 활성화가 필요하다. 비트코인 채굴이 방안으로 떠오르고 있다. [AP 뉴시스]

    9월 12일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매사추세츠주 로건 국제공항에서 연설하고 있다. 바이든 대통령은 인플레이션 감축법 등 법안 통과를 홍보하면서 미국 내 투자를 강조한다. 인플레이션 감축법 실현을 위해선 재생에너지 산업 활성화가 필요하다. 비트코인 채굴이 방안으로 떠오르고 있다. [AP 뉴시스]

    밉지만 쓸모 있으니까…

    바이든 정부가 비트코인 채굴의 긍정적 역할을 인정한 건 ‘에너지 최후 구매자(buyer of last resort)’ 성격 때문이다. 재생에너지 발전에서 많이 발생하는 잉여전력이나 원유 생산과정에서 채산성이 없어 태워버릴 수밖에 없는 천연가스 등을 누구도 활용하지 않을 때, 가장 마지막으로 의지할 수 있는 구매자가 비트코인 채굴업자라는 뜻이다.

    지난해 9월 비트코이너(bitcoiner)이자 투자전략회사를 운영하는 린 올든(Lyn Alden) 이코노미스트 기자가 유튜브 채널 ‘Intelligence Squared’에서 진행한 비트코인 관련 토론에서 이렇게 설명했다.

    “재생에너지 발전은 잉여전력을 생산할 수밖에 없다. 이는 (구매하려는) 라이벌이 없는, 버려지는 에너지다. 비트코인 채굴은 잉여전력을 흡수한다. 재생에너지 산업에 인센티브가 된다.”

    비트코인 채굴이 전력을 낭비한다고 비판하는 진영에선 한 해 동안 비트코인 채굴에 사용하는 전력이 웬만한 나라의 1년 전력 소비량에 맞먹는다고 주장한다. 영국 케임브리지대 대체금융센터(Center for Alternative Finance)는 비트코인 채굴에 드는 전력 사용량을 분석해 케임브리지 비트코인 전기소비지수(Cambridge Bitcoin Electricity Consumption Index)를 발표하고 있다. 이에 따르면 한 해 동안 비트코인 채굴에 사용되는 전력량은 96.74TWh다. 1년 동안 전 세계가 생산하는 전력량의 0.43%에 해당한다. 연간 금 채굴에 사용되는 전력량은 131TWh, 미국에서만 한 해 동안 냉장고에 사용되는 전력량이 104TWh다. 필리핀이 1년 동안 사용하는 전력량은 90.9 TWh다.

    특정 산업이 전력을 낭비한다고 비판하는 논리엔 해당 산업이 충분한 가치를 생산하지 못한다는 전제가 깔려 있다. 100이라는 에너지를 사용해 120, 130 등 더 큰 가치를 만든다면 에너지 사용 자체를 비판하기는 어렵기 때문이다. 상장기업 중에서 가장 많은, 13만 개의 비트코인을 보유하고 있는 마이클 세일러 마이크로스트래티지 회장은 그런 생각을 정면으로 반박한다. 9월 중순 자신의 웹사이트에 비트코인 채굴과 환경 간 관계에 대한 글을 썼다. “저널리스트와 투자자, 규제 당국, 그리고 비트코인과 환경에 관심이 있는 모든 분께”라는 문구로 시작한 글은 다음과 같은 내용을 담았다.

    “비트코인은 현재 시점에 시가총액이 4200억 달러(약 597조 원), 1년 동안 4조(약 5686조 원) 달러 결제가 이뤄지는 네트워크입니다. 이것이 작동되는 데에 매해 약 40억 달러(약 5조6900억 원)의 전력이 사용됩니다. 40억 달러 에너지를 투입해 4200억 달러를 버는 겁니다.”

    비트코인은 태생적으로 반정부적이다. 정부가 결코 좋아할 수 없는, 없앨 수만 있다면 없애고 싶은 물건이다. 중앙은행이 찍어낼 수 없어 국가의 통제를 받지 않기 때문이다. 당연한 말이지만 미국 정부가 비트코인과 동행을 고려하는 건 네트워크 가치를 인정했기 때문은 아니다. 재생에너지 산업을 키우고, 온실가스를 감축하는 데 유용하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라고 보는 게 타당하다. 미국과 비트코인의 아슬아슬한 동행은 언제까지 이어질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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