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12월호

트럼프 2기, 발상 전환하면 한국엔 기회다

[특집 | ‘대략난감’ 트럼프 시대, 한국의 길] 트럼프 체면 세워주고 ‘핵 공유’ 실리 얻기

  • 차두현 아산정책연구원 수석연구위원

    입력2024-11-29 09:0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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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더 비싸고 불확실해진 한미동맹 우려하는 한국

    • 韓 지역 역할 확대 소홀, 트럼프 ‘보호’ 편견 낳아

    • 트럼프·김정은 ‘브로맨스’ 재현 쉽지 않을 것

    • 트럼프 2기, 우려 일변도로 볼 필요 없어

    • 글로벌 중추 국가 되겠다며 부담 피하는 모순 버려야

    • 동맹 위해 거래 마다않는 적극적 자세 필요한 때

    11월 6일(현지 시간) 미국 플로리다주 웨스트팜비치에서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당선인(공화당)이 대선 승리 선언을 하고 있다. [AP 뉴시스]

    11월 6일(현지 시간) 미국 플로리다주 웨스트팜비치에서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당선인(공화당)이 대선 승리 선언을 하고 있다. [AP 뉴시스]

    미국 대통령 선거운동 기간 중이던 4월 도널드 트럼프는 미국 시사지 ‘타임’과 인터뷰에서 “한국은 매우 부자 나라(wealthy country)”라며 “미국이 한국을 위해 4만 명의 미군을 주둔시키고 있는 데 반해 한국이 사실상 아무것도 대가를 지불하지 않고 있다”고 주장했다.

    그는 10월에도 시카고 경제인 클럽과의 간담회에서 한국을 ‘돈 버는 기계(money machine)’라고 지칭하고, “미국이 한국을 ‘보호’하는 데도 한국이 무임승차하고 있다”며 “내가 (바이든 정부 기간) 집권했다면 한국은 100억 달러를 냈어야 했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런 발언이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2016년 트럼프는 그의 첫 임기를 앞둔 선거운동 기간 중에도 비슷한 발언을 쏟아냈고, 2019년 한미 방위비분담협정(SMA) 협상 과정에서는 ‘50억 달러’를 제시하기도 했다. 두 번째 임기를 앞두곤 그 액수가 배로 뛴 것이다.

    트럼프가 미국 시장에 진출한 우리나라 대기업을 보는 시각은 경쟁자에 대한 경계심리에 가깝고, ‘돈 버는 기계’라는 말엔 한국을 동맹국의 희생을 바탕으로 부를 축적했으면서 자기 몫을 하는 데에는 소극적 국가로 보는 인식을 반영한다.

    반면 현재 한반도 안보의 가장 큰 저해 요인인 북한에 대한 그의 시각은 상대적으로 호의적이다. 트럼프는 집권 1기 기간 중 수차례 김정은과의 ‘브로맨스’를 과시했고, 이번 대통령선거 기간 중에도 자신이 김정은과 원만한 관계였음을 여러 차례 강조함으로써 바이든 정부의 외교적 무능을 공격하려 했다.

    “핵을 많이 가진 상대와 잘 지내는 것은 좋은 일이다”라는 공화당 전당대회 후보 수락 연설, “김정은은 매우 강인하고 영리하다. 그러나 그는 나를 좋아했고, 나는 그와 매우 잘 지냈으며, 우리는 안전했다”는 유세 중 발언은 ‘트럼프 2기’ 역시 북한과의 협상에 적극적일 가능성을 시사한다.

    이같이 트럼프는 북한이 핵 능력을 미국 본토를 공격하는 데 사용하지만 않는다면, 대북제재를 완화·해제하거나 북·미 관계 개선 작업, 그것도 또 한 번의 정상회담을 통해 ‘딜’을 할 수도 있다는 세간의 우려를 낳는다.

    결국 트럼프에 대한 국내외의 우려는 그가 한미동맹에 대해서는 매우 인색한 대신, 북한과의 정치·외교적 거래에서는 호의적일 가능성으로 집약된다. 과연 그는 더 비싸고, 안보보장은 불확실한 한미동맹 시대를 만들어낼까.

    사실 방위비 분담 문제를 주로 거론했지만 트럼프의 동맹국들에 대한 불만은 그들이 ‘공정(fair)’한 분담을 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이는 1차적으로 미군 주둔 경비에 대한 분담을 의미하고, 더 넓게는 세계질서 유지에 대한 부담을 분담하는 것과 연결된다. 흔히 트럼프 당선인의 ‘미국 우선주의(America First)’를 ‘고립주의’로 해석하지만 이는 미국이 모든 지역·세계질서 유지에 무관심하고 세계적 주도국으로서의 지위에도 신경을 쓰지 않을 경우에 적용된다.

    이 경우 미·중 전략 경쟁도 계속될 이유가 없지만, 트럼프는 오히려 미·중 전략 경쟁에 더 강한 드라이브를 걸 가능성이 있다. 그는 미국이 패권 세력이 되지 않아야 한다고 이야기한 적이 없다.

    한국, 방어 골몰하느라 시야 좁아졌다

    단지 그동안 미국이 이미 많은 기여를 했고, 미국이 구축한 국제질서 덕에 수혜를 본 동맹국·우방국들은 대가를 치러 이 질서를 지켜내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다. 트럼프는 첫 번째 임기에서 북대서양조약기구(NATO) 회원국들이 국내총생산(GDP) 대비 국방비를 2% 선까지 증액할 것을 강력히 요구했는데, 이는 바로 위와 같은 발상을 투영한 것이다.

    만약 트럼프가 정말 순수한 고립주의자였다면 세계적 개입 축소와 함께 미국 국방비도 줄이는 것이 순리다. 하지만 그는 집권 중 미국 국방비 수준을 유지하거나 다소 증액했다. 이는 미국 군사력에 대한 관념이 로널드 레이건 시대의 그것과 닮아 있음을 보여준다.

    1980년대 레이건 정부는 소련을 압박하기 위해 ‘별들의 전쟁(Star Wars)’으로도 불린 ‘전략방위구상(SDI·Strategic Defense Initiative)’을 추진하는 등 군비 증강에 나섰지만, 대외 개입은 가능한 자제했다. 이 시기 미국이 실제 군사력을 사용한 것은 1983년 카리브해의 그레나다 침공 정도였다.

    미·중 전략 경쟁에서 중국 압박을 위해 미국이 동맹국에 요구하는 것은 지역 안정 참여다. 한미동맹 역시 1990년대의 탈냉전시대 전개와 함께 지역 안보동맹으로 전환을 요구받기 시작했고, 미국의 바람은 1996년의 ‘미일 신(新)안보협력선언’ 이후 일본이 아시아 지역 내 역할을 확장하면서 더 커졌다.

    하지만 한국은 여전히 지역 역할 확대에 미온적 태도를 보였고, 1990년대 후반부터는 경제적으로 급성장한 중국과의 관계를 고려해 더욱 소극적으로 변했다. 노무현 정부 시절에는 한미동맹뿐 아니라 주한미군의 전략적 유연성(strategic flexibility)을 인정하는 데에도 신중한 태도를 보였다.

    핵 개발을 지속한 북한의 존재로 인해 한국의 지역 역할 유보에 대해서는 미국도 이해한다는 태도를 보이긴 했다. 하지만 한미동맹이 한반도 방어에만 몰입한 동안 우리의 전략적 시각도 한반도를 벗어나지 못했고, ‘포괄적·역동적·호혜적 동맹’이나 ‘21세기 전략동맹’의 수사(修辭)만 난무했다.

    물론 우리 외교·안보의 지평을 지역 및 세계 차원으로 확대한다고 해서 한반도 문제 해결이 등한시돼서는 안 될 것이다. 계속 높아지는 북한 핵 위협에 대한 경계도 늦추지 말아야 할 것이다. 그러나 NATO 및 미일동맹이 해당 지역을 넘어선 역할을 바라보는 동안 한반도 방어만을 고집스럽게 앞세우는 시각, 미·중 전략 경쟁의 각종 이슈에서 주변국들의 눈치를 보는 접근이 한국에 대한 트럼프의 ‘보호’ 편견을 불러일으킨 것은 아닌지 되돌아봐야 한다.

    북·미 협상 영향 미칠 촉진 요인·제약 요인

    한미동맹의 출발점은 북한의 위협에 대한 억제·방어였다. 따라서 북·미 협상과정은 한미동맹에 대해 분명한 영향을 미치며, 북한으로서는 북·미 협상을 이용해 한미동맹을 이완시킬 시도를 할 분명한 동기가 있다.

    하지만 ‘트럼프 2기’ 출범이 곧 트럼프, 김정은의 ‘브로맨스’ 재현으로 이어질 것으로만 보는 것은 무리다. 트럼프 2기가 북한과 조기 협상에 나서기엔 3가지의 ‘촉진 요인’과 ‘제약 요인’이 각각 존재한다.

    첫 번째 촉진 요인은 트럼프의 자신감이다. 그는 수시로 자신이 김정은을 잘 알고 있고, 능숙하게 다뤘다는 점을 강조했다. 재선을 기점으로 그 자신감은 더 높아졌을 수 있다. 두 번째 촉진 요인은 이제 그를 제약할 참모들이 존재하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는 점이다. 트럼프 1기 동안 그와 이견을 보였던 맥마스터(H.R. McMaster) 국가안보보좌관, 매티스(James Mattis) 국방장관, 볼턴(John Bolton) 국가안보보좌관은 모두 일찌감치 교체됐다. 이 가운데 맥마스터는 “1기 시절에도 트럼프에 대해 직언하는 참모들은 적었고 아첨하는 분위기가 팽배했다”고 회고하기도 했다. 트럼프는 이번 집권 기간엔 자신의 의견에 이의를 제기할 인물을 아예 참모로 쓰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 세 번째 촉진 요인은 북·미 협상을 통해 한미동맹에서 거래를 원활하게 하려는 트럼프의 계산이 작용할 수 있다는 점이다.

    다만 그에 못잖은 제약요인 역시 존재한다. 가장 큰 제약 요인은 트럼프 2기 대북정책의 우선순위가 그리 높지 않다는 점이다. 대외정책 우선순위는 미·중 전략 경쟁에서 확실한 우위 확보,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조기 종결, 이스라엘-하마스 전쟁의 종식(중동 내 반미·반이스라엘 세력 제거), 이란의 역내 영향력 대폭 축소 등이다. 외교협상에서 자신의 업적 과시를 중요시하는 트럼프의 성향상 트럼프·푸틴 회담이나 트럼프·네타냐후 회담이 김정은과의 브로맨스보다 더 매력적으로 생각될 수 있다.

    또 다른 제약 요인은 2019년 2월 ‘하노이 노딜’ 경험과 김정은에 대한 불신이다. 트럼프 1기에서 대북 협상이 부각된 것은 2018년 초에서 하노이 노딜에 이르는 약 1년간이고, 2019년 10월 스톡홀름 북·미 실무협상에서 협상이 결렬된 이후 2년간 별도의 진전은 이뤄지지 않았다. 이런 상황에서 이미 김정은과 북한의 행태를 경험한 트럼프가 스톡홀름 협상에 비해 파격적 양보를 해가면서 북한과 협상하기에는 한계가 있다.

    즉 ‘거래’의 달인임을 자부하는 트럼프에게 김정은은 외형적으로는 좋은 친구일지는 모르지만, 내면적으로는 여전히 믿을 수 없는 ‘애송이’일 수 있는 것이다. 2020년 이후 핵 능력 고도화로 몸집을 불린 김정은이 트럼프에게 이전과 같이 고분고분한 모습을 보일지도 미지수다.

    오랜 과제, 몰아서 풀 시간

    이러한 점들을 고려하면 트럼프 2기의 등장을 우려 일변도로 접근할 필요는 없다. 분명 트럼프의 복귀는 동맹을 ‘거래’의 대상으로 보며, 때론 동맹에 대해 방기(abandonment) 위협도 서슴지 않는 파트너의 등장이기에 불편한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어차피 거래는 위협 인식, 신뢰와 함께 동맹의 주요 요소 가운데 하나다. 70여 년 동안 동맹을 유지해 온 우리가 북한보다 미국에 더 도움이 되는 거래를 하지 못할 이유가 없다는 생각을 해야 한다. 실제 북한이 미국에 줄 수 있는 것은 ‘무언가를 하지 않는다’ 약속이지만, 우리가 제공할 수 있는 것은 ‘필요한 무엇인가를 한다’는 약속이기에 더 많은 쓰임새가 있다.

    트럼프의 한미동맹 관련 쟁점 가운데 가장 우선순위가 높은 것은 한국이 ‘비용 분담’을 대폭 늘려야 한다는 점이다. 그다음은 동맹 역할 확장, 즉 한반도에 고착된 동맹으로부터의 탈피(미·중 전략 경쟁에서의 기여)라 할 수 있다. 주한미군 규모나 한미 연합훈련 등은 부차적 문제다.

    트럼프가 내세운 방위비 분담금 ‘100억 달러’에 집착할 필요도 없다. 우리가 트럼프에게 줄 수 있는 것은 지금까지 어떤 미국 대통령도 한국으로부터 얻어내지 못한 폭의 방위비 분담금 증액이고, 그 최소 수준은 트럼프 1기 시절 합의한 연간 방위비 분담액 증가율 13.9%일 것이다.

    물론 트럼프의 정치적 체면을 세워줄 수 있는 파격적 비용 제시는 기존의 방위비 분담 협정 원칙을 뛰어넘을 것으로 전망된다. 이를 위한 국내적 설득, 특히 국회 동의가 쉽지 않은 것이 현실이다. 이와 관련해서 미국의 ‘확장억제’ 강화를 위해 한미 간 ‘핵 공유’가 필요하고, 그 관련 비용을 한국이 부담하겠다고 제의하는 것을 검토해 볼 수 있다.

    예컨대 기존 협정과 별도로 ‘확장억제 분담협정(가칭)’을 체결해 한국이 2025년 방위비 분담금(약 1조4000억 원)의 50%에 달하는 비용을 추가 부담하겠다고 한다면, 트럼프로선 매우 매력적 거래로 생각할 것이다. 만약 전술핵을 재배치할 경우, 한국이 관련 시설 건설비나 기타 추가 경비도 분담하겠다고 제안한다면 오히려 트럼프가 바이든 행정부에 비해 더 적극적일 가능성도 있다.

    이는 한미동맹 범위를 한반도를 넘어 확장하는 데에도 도움이 될 것이고, 미·중 전략 경쟁에서 한국이 적극적으로 기여할 의지를 밝히는 것이다. 이를 바탕으로 북·미 관계에 우리 의견을 반영할 경우 설득력이 높아질 것이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결국 북·러 혹은 북·중·러는 같은 편에 설 것이므로, 북·미 관계 개선을 통해 북한을 사실상 중립적 존재로 만드는 일임을 미국에 납득시키는 것이다. 북한이 한반도만을 겨냥해 핵전력을 유지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고, 중국과 러시아는 북한의 핵을 공동의 자산으로 삼으려 할 것이므로 북핵을 용인해선 안 되며, 이에 한국에 대한 핵 보장이 강화돼야 하고, 그래야 미국도 안전해진다는 흐름의 논리를 구사할 필요가 있다.

    이러한 조치들이 효과를 거둔다면 주한미군 주둔이나 한미 연합훈련 문제는 오히려 쉽게 풀릴 수 있다. 부담 분담 문제가 해결된다면 트럼프 2기 역시 주한미군 축소를 무리하게 추진할 이유가 없다.

    트럼프 2기를 대할 때 한국은 ‘글로벌 중추 국가’가 되겠다고 하면서도 부담 분담에선 ‘우린 아직…’ 식의 논리적 모순을 범한 적은 없는지 돌아봐야 한다. 거래할 것은 하고, 그것을 바탕으로 파트너에게 나에 대한 공감대를 키우는 접근, 오랜 과제를 집중적으로 몰아서 푼다는 자세가 필요하다. 동맹의 기초체력을 키우기 위해서는 거래도 마다하지 않는다는 적극적 자세가 필요한 때다.

    신동아 12월호 표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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