승강기 사고 51%가 이용자 과실
안전장치 작동을 승강기 ‘고장’으로 봐…
고장 오인으로 소송‧보상 다툼 빈번
최저가 낙찰제로 유지관리비 홍콩 10분의 1도 못 미쳐
‘3D 업종’으로 인식돼 인력난 심각
업계 “정부 차원의 제도 개선‧현실화 시급”
2024년 9월 25일 경기 안성시 스타필드 안성에서 열린 ‘2024 승강기 사고대응 합동훈련’에서 유관기관 관계자 및 소방대원들이 승강기에 갇힌 이용객을 구출하는 훈련을 하고 있다. [뉴스1]
이처럼 생활 속에 자리 잡은 승강기지만 종종 발생하는 ‘사고’는 이용자의 불안을 초래한다. 승강기를 사용하지 않을 수 없기에, 그 사고가 언제든 자신에게도 닥칠 수 있다는 우려 때문이다.
흔히 발생하는 문제는 ‘승강기 내 갇힘’이다. 2024년 11월 12일엔 충북 청주시 청원구 율량동‧주중동의 3300가구에서 정전이 발생해 승강기에 5명이 갇혔고, 18일엔 전북 전주시 덕진구 덕진동 한 빌딩의 승강기가 갑자기 멈춰 7명 갇히는 일이 발생했다.
승강기 내 갇히는 상황에 처하면 답답함‧당혹감에 사람들은 탈출하려는 시도부터 하게 되는 경우가 많다. 예컨대 2024년 9월 25일(현지 시간) 중국 산시성 진중시의 한 아파트에선 승강기에 갇힌 한 소년이 문을 강제로 열고 나가 언론에 화제가 된 바 있다. 하지만 문을 강제 개방하고 나가는 행동은 열린 문틈으로 떨어져 추락하거나, 문틈에 끼이는 등 2차사고 위험이 크다.
2024년 9월 25일(현지 시간) 중국 산시성 진중시의 한 아파트에서 승강기에 갇힌 소년이 승강기 문을 강제로 열고 있다. [docnhanh 캡처]
승강기 갇힘 사고 시 이용자 대처요령. [한국승강기안전공단]
현재 승강기 업계는 이러한 승강기 갇힘 상황에 따른 부수적인 문제 이외에도 저가 유지관리비 문제, 심각한 인력난 등 산적한 과제로 어려움을 겪고 있다. 승강기 업계의 어려움은 승강기 산업 발전을 저해하고, 이는 결국 이용자의 불편으로 돌아온다. 이에 ‘신동아’는 업계의 목소리를 통해 승강기 업계가 직면한 문제의 실태와 해결책을 모색했다.
사고 51%가 이용자 과실인데… “돈 요구하며 협박하기도”
승강기 업계에선 현행 승강기 안전관리법이 안전을 위한 조치마저도 ‘중대한 고장’으로 분류해 업계에 과도한 부담을 지우고 있다는 지적이 제기되고 있다. 2024년 8월 29일 서울시 용산구 숙명여대 르네상스플라자에서 열린 ‘2024년 승강기 정책제안 연구결과 설명회’에서 이민권 대한승강기협회(KOLA) 상근부회장은 “승강기 안전관리법은 이용자가 안전한 상태로 승강기 내부에 구출대기 상태로 대기하는 것마저도 ‘중대한 고장’으로 정의돼 있어 불필요한 소송과 보상다툼이 일어나고 있다”고 지적한 바 있다.
승강기 사고 발생에 따른 중대한 사고로 인정되면 사고 귀책 여부에 따라 유지관리업체는 법에 따른 영업정지나 과징금 등의 행정처분뿐만 아니라 이용자가 이를 악용하여 업체가 민·형사상 법적책임까지 받는 등 타 법령에 비해 과도하게 엄격하다는 게 업계의 중론이다.
또 승강기가 멈추는 이유의 대다수는 승강기에 큰 충격이 가해지거나 문 사이 이물질이 유입되는 등의 원인에 의해 안전장치가 작동하는 것이다. 즉, 사례를 살펴보면 승강기 멈춤의 원인으로 ‘이용자들의 승강기 안전수칙 미숙지’가 영향을 미치는 경우도 적지 않다.
승강기 안전수칙을 살펴보면 △승강기 안에서 뛰거나 발 구르기를 하면 멈출 수 있으니 하지 말 것 △승강기 문이 닫힐 때 손이나 옷소매 등이 끼이지 않도록 주의할 것 △내부에 갇힌 경우는 안전한 상황이니 절대 탈출을 시도하지 말 것 △승강기가 운행하지 않는 경우 비상호출 버튼을 눌러 통화할 것 △승강기가 도착 후 문이 열리면 바닥을 확인할 것(단차가 30cm 이상이면 내리거나 탑승하지 말 것) △승강기 벽에 기대면 운행 중 승강장 벽과 부딪칠 수 있으니 기대지 말 것 △승강기 운행 중 억지로 문을 열려 하지 말 것(승강기가 급정지할 수 있음) △비가 오는 경우 우산‧우비 등으로 물이 승강로로 들어가지 않도록 주의하고 들어가면 유지관리자에게 통보해 조치할 것 △비상통화장치 또는 휴대폰을 사용하여 구조를 요청한 후 구출 대기할 것 등이다.
실제 한국승강기안전공단에 따르면 2014년부터 발생한 554건의 승강기 사고(2024년 8월 기준) 가운데 51%인 284건이 이용자 과실로 발생했으며, 유지관리업체의 과실은 15%인 84건에 불과했다.
이에 대해 한 유지관리업체 대표는 “중대사고가 발생하면 승강기 유지관리업자는 행정처분에 대한 부담으로 인해 탑승객과 합의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며 “이를 알고 있는 일부 이용객들은 반대로 금전을 요구하며 협박을 하기도 한다”며 토로했다.
하지만 이는 승강기 안전기준에 명시된 정상적인 안전장치의 작동이다. 승강기 안전관리법에 따른 행정안전부 고시 ‘승강기 안전부품 안전기준 및 승강기 안전기준’에 따르면, 전기 안전장치의 작동은 ‘구동기의 즉시 정지’ 또는 ‘운행 정지 시’로 규정한다. 또 추락방지안전장치, 완충기, 문열림출발방지장치, 상승과속방지장치 등의 정상 작동도 제동·정지로 규정돼있다. 즉, 안전장치의 정상 작동마저도 ‘승강기 중대한 고장’으로 여겨지는 문제가 발생하는 것이다.
이용자 위험 초래하는 저가 유지관리비‧인력난
승강기는 모든 사람이 이용하는 현대 생활의 필수요소로 자리 잡았다. [gettyimage]
또 승강기 유지관리 계약의 약 58.4%가 월 5만 원에서 10만 원 사이에 이루어지고 있으며, 12.2%는 5만 원 미만(최저 2만4267원)의 금액으로 계약이 체결되고 있는 것으로 파악됐다. 이러한 저가 계약은 최저가 낙찰제로 인한 과당경쟁의 결과다. 이에 대해 한 유지관리업체 대표는 “중대한 사고가 발생하면 승강기 유지관리업자는 행정처분에 대한 부담으로 인해 탑승객과 합의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며 “이를 알고 있는 일부 이용객들은 반대로 금전을 요구하며 협박을 하기도 한다”며 토로했다.
“지금도 대다수 관리주체들은 저가 승강기 유지관리 업체를 선호한다”며 “그러나 유지관리 업체에서 제대로 된 서비스를 제공받기 위해서는 관리주체가 저가 서비스를 지양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국내 승강기 유지관리비가 해외와 비교할 때 얼마나 차이가 나는지 살펴보면 그 격차는 놀라울 정도다. 대한승강기협회에 따르면 한국 수도권의 승강기 유지관리비는 약 7만6645원인 반면 홍콩은(2022년 하반기 기준) 최저 76만9000원에서 161만9000원에 이른다.
유지관리비가 낮아지면 이용자의 안전도 보장하기 어려울 수 있다. 한 업계 관계자는 “현재의 유지관리비로는 기본적 인건비와 부품 교체 비용도 충당하기 어렵다”며 “이는 결국 승강기 안전에 부정적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다”고 경고했다.
인력난도 승강기 업계의 어려움을 더한다. 승강기 설치·유지관리 분야는 높은 전문성 대비 낮은 임금으로 인해 타 산업 대비 ‘3D 업종’으로 인식되고 있다. 이로 인해 신규 기술인력 유입이 부족하고, 기존 기술 인력의 고령화가 빠르게 진행돼 자연스럽게 이탈이 발생하고 있다.
“정부‧업계‧학계 협력‧소통 필요한 때”
이러한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해 업계에선 다양한 개선 방안이 제시되고 있다. 첫째는 중대사고의 범주에서 ‘피해자의 고의 또는 중대한 과실로 발생한 사고’와 ‘안전장치의 정상작동에 의한 사고(멈춤)’를 제외하고, 인적 피해 기준도 현행 ‘1주 이상의 입원치료나 3주 이상의 통원치료’에서 ‘12주 이상의 요양’으로 현실화해야 한다는 것이다.
둘째는 유지관리비 현실화를 위한 정부 차원의 제도개선이다. 국토교통부 공동주택관리법 시행령에 따른 ‘주택관리업자 및 사업자 선정지침’ 내 승강기 유지 분야를 ‘용역’이 아닌 ‘안전관리’ 분야로 별도 분리해서 적격심사 및 입찰 시 최소 유지관리비(표준유지관리비의 70% 이상) 의무화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셋째는 공신력 있는 기관에서 관리·발급할 수 있는 실적증명·기술인력 경력관리 시스템 구축이다. 효율적인 적격심사를 위한 평가표 보완, 승강기 업계 종사자의 표준품셈을 신설, 승강기산업 종사자들이 본인의 경험과 역량에 맞는 임금을 받을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넷째론 승강기 설치 기술인력에 대한 비자 발급 대상 추가, 외국인력 고용허용 업종에서 ‘승강기 설치공사 및 유지관리업’을 추가하는 등 인력난 해소를 위한 노력이 꼽힌다.
승강기 업계에 따르면 세계 승강기 산업은 2025년까지 약 194조 원 규모로 성장할 것으로 전망된다. 하지만 업계에선 “현재로선 과도한 규제와 불합리한 제도가 산업 발전에 걸림돌이 되고 있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승강기의 안전 및 산업 발전을 모두 실현하기 위해선 현실적‧합리적 제도 개선이 시급하다는 것이다.
따라서 승강기 안전관리법의 ‘중대한 고장 및 사고’ 정의 개선, 유지관리비 현실화, 인력난 해소를 위한 제도 개선 등 다각도의 노력이 필요하며, 이를 통해 승강기 업계의 부담을 줄임과 동시에 이용자의 안전을 보장하는 균형 잡힌 정책이 마련돼야 할 것으로 전망된다.
이에 대해 한 업계 관계자는 “승강기 산업의 발전을 위해서는 안전과 산업 진흥이라는 두 가지 목표를 균형 있게 추구해야 한다”며 “이를 위해 정부‧업계‧학계의 긴밀한 협력과 소통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정혜연 차장
grape06@donga.com
2007년 동아일보 출판국에 입사. 여성동아, 주간동아, 채널A 국제부 등을 거쳐 2022년부터 신동아에서 근무하고 있습니다. 금융, 부동산, 재태크, 유통 분야에 관심이 많습니다. 의미있는 기사를 생산하는 기자가 되기를 꿈꿉니다.
탑승자 181명 대부분 사망 추정... 소방 당국 실종자 수색 중
윤석열 대통령, 공조본 3차 소환도 불출석..체포영장 청구하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