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1월호

전관예우 척결하자던 이재명, 결국 전관예우 신도로…

[강준만의 회색지대] 민관합동으로 만든 법조공화국⑤

  • 강준만 전북대 명예교수

    입력2025-01-02 09:00:02

  • 글자크기 설정 닫기
    • 대형 로펌의 숨은 힘, 1심서 14.3% 무죄 선고

    • 법조계 선·후배 사이의 불공정(不公正) 카르텔

    • 퇴임 대법관 14명 가운데 8명이 상위 10대 로펌행

    • 전관예우금지법 사실상 무용지물, ‘얼굴 변호사’ 뒤 수렴청정

    • 전관예우 척결 외치던 이재명, 전관 ‘초호화 변호인단’ 구성

    • 민주당을 통째로 자신의 ‘방탄 로펌’으로 만든 이재명

    [Gettyimage]

    [Gettyimage]

    2008년 1월 ‘법률사무소 김앤장: 신자유주의를 성공 사업으로 만든 변호사 집단의 이야기’라는 제목의 책이 출간됐다. 변호사 출신 국회의원 임종인과 투기자본감시센터 정책위원장 장화식이 쓴 책이다. 이 책은 그간 ‘보이지 않던’ 국내 최대 로펌을 보이게끔 한 시도였는데, 김앤장을 비롯한 대형로펌은 2010년대부터 전관예우 논란에서 강력한 변수로 등장했다.

    대법원의 국회 국정감사 자료에 따르면 2006∼2009년 7월 김앤장, 태평양, 광장, 세종, 화우 등 5대 로펌은 형사피고인 1682명의 변호를 맡아 1심에서 240명(14.3%)의 무죄선고를 이끌어냈다. 이는 2006∼2008년 전국 법원이 1심에서 형사피고인 전체 64만4011명 가운데 9505명(1.5%)에게 무죄를 선고한 것보다 10배가량 높은 비율이었다.

    이에 동아일보는 ‘대형 로펌의 숨은 힘?’(최창봉 기자, 2009년 10월 11일)이라는 제목의 기사에서 “대형 로펌에 사건이 몰리고 무죄선고율도 높아지면서 변호사 업계의 양극화 현상은 더 뚜렷해지고 있다”고 진단했다. 민주당 의원 우윤근은 “수천만 원대의 수임료를 받는 대형 로펌의 무죄선고율이 형사사건 평균을 훌쩍 뛰어넘는 것으로 나타나면서 서민들은 더 높아진 법률서비스의 장벽을 체감할 것”이라며 “이들 로펌이 퇴직한 고위급 판검사를 경쟁적으로 영입해 전관예우 혜택을 노리면서 사법체계에 대한 불신감도 커지고 있다”고 말했다.

    대형 로펌의 ‘숨은 힘’인가

    그간 법조계 스스로 전관예우의 해결책을 내놓아야 한다는 비판의 목소리는 자주 터져 나왔지만, 그런데 그게 과연 가능한 일이었을까. 1980년대의 구(舊) 변호사법엔 ‘퇴직 전 2년 이내에 근무했던 지역에선 3년 동안 변호사 개업을 할 수 없다’는 조항을 두었지만 1989년 직업 자유에 대한 과도한 침해라는 이유로 헌법재판소에서 위헌(違憲) 결정이 났다. 2004년, 2007년에도 퇴임한 후 일정 기간이 지나지 않은 변호사의 형사사건 수임을 제한하는 변호사법 개정안이 국회에 제출됐지만 통과되지 못했다.

    2010년 3월 23일 조선일보는 ‘전관예우는 법조계 후진성의 상징이다’라는 제목의 사설을 통해 “김영삼 대통령 시절 사법제도발전위원회(1993), 김대중 정부의 사법개혁추진위원회(1999), 노무현 정부 사법개혁추진위원회(2006) 모두가 전관예우 앞에선 손을 들고 말았다”며 다음과 같이 말했다.

    “전관예우는 법조계 선후배 사이의 불공정(不公正) 카르텔이다. 후배 판검사가 퇴직한 선배 변호사의 사건을 유리하게 처리해 주는 이유는 같은 직장에서 일했다는 인간 정리(情理) 때문이라기보다 자기도 퇴직해서 전관예우의 덕을 보겠다는 계산에서다. 그래서 이 불공정 카르텔이 잡초처럼 끈질긴 생명력을 유지하고 있는 것이다.”

    로펌은 그런 인간 정리나 이기심의 문제를 조직화하고 시스템화해 매끄럽게 처리해 주는 역할을 수행함으로써 많은 전관이 로펌을 찾게 만들었다. 특히 세금 문제가 미친 영향도 컸다. 경향신문은 ‘공직자 전관예우 실태’를 다룬 특집기사에서 “2000년대 이전까지만 해도 판검사 출신 유명 변호사들은 대부분 단독으로 개업했다”며 다음과 같이 말했다.

    “어차피 변호사 이름을 보고 사건이 오는 것이기 때문에 구태여 로펌에 들어가 이익을 나눌 이유가 없었다. 중앙지검 특수부 부장검사나 서울고법 부장판사가 몇 년 만에 수백억 원을 번다는 얘기도 많았다. 하지만 2000년대 중반 들면서 개인 개업은 위험한 일이 됐다. 아무리 철저히 해도 세금을 관리하기가 어려웠다. … 이런 상황에서 몸집을 불려온 로펌들은 퇴직을 앞둔 고위 법관들을 활발하게 스카우트했다.”

    김영란, “내가 年 100억 받을 수 있다니…”

    서울 종로구 김앤장 법률사무소. [뉴시스]

    서울 종로구 김앤장 법률사무소. [뉴시스]

    대법원과 법무부 자료에 따르면, 2005년부터 2010년 7월까지 5년 7개월간 법원을 떠난 퇴직 판사 520명 전체를 분석한 결과, 절반이 넘는 273명(52.5%)이 로펌을 택한 것으로 나타났다. 김앤장·광장·태평양 등 상위 10대 로펌(변호사 수 기준)으로 자리를 옮긴 판사는 168명(32.3%), 20대 로펌까지 합하면 196명(37.7%)의 판사가 로펌 변호사의 명함을 새로 찍었다. 개인 법률사무소를 개업한 인원까지 합하면 449명(86.3%)이 변호사로 새출발을 했다.

    고위 법관일수록 상위 로펌을 선호했다. 사법부 최고 수장인 대법원장을 포함해 퇴임 대법관 14명 가운데 8명이 상위 10대 로펌에, 1명이 20대 로펌에 입성했다. 20대 로펌행 비율은 고법 부장판사의 경우 28명 가운데 21명(75%), 지법 부장판사는 203명 가운데 72명(35.5%)이었다. 224명의 평판사 가운데 20대 로펌으로 간 사람은 79명(35.3%)이었다.

    판사들이 특정 로펌이 대리한 사건을 심리하거나 선고한 직후 해당 로펌에 영입되는 일이 많은 탓에 판사들이 ‘퇴직 이후’를 고려해 판결한다는 비판이 제기됐다. 그러자 2009년 대법원 공직자윤리위원회는 로펌과 취업 협상을 할 때는 재판의 공정성을 의심받지 않도록 유의하라는 권고 사항을 결정하기도 했다. 권고 사항은 “사건을 완결한 뒤 상당한 기간이 경과한 후에 취업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했지만, 강제력이 없어 근본 대책은 되지 못했다.

    동아일보 논설위원 육정수는 ‘전관예우 요지경’이라는 제목의 칼럼(2011년 1월 16일자)에서 “로펌의 고위직 출신 선호는 전관예우가 존재한다는 증거로 볼 수 있다”며 다음과 같이 말했다. “무슨 대단한 일을 하기에 중견 봉급쟁이의 10년 이상 연봉을 몇 달 만에 받는지 일반인들은 궁금하다. 고법 부장판사를 지낸 한 로펌 변호사도 ‘월 1억 원의 급여 수준에 박탈감을 느낀다’고 말한다. 만약 판사와의 사이에 돈이 오가고 그로 인해 억울한 상대방까지 생긴다면 그것은 중대한 범죄행위에 속한다. 전관예우는 반드시 단절해야 하는 법조계의 후진적 악습이요, 공정사회를 좀먹는 대표적 불공정이다.“

    2011년 2월 23일 국민권익위원장 김영란은 취임 후 처음 연 기자간담회에서 “전관 변호사에 대한 수요가 많다”며 지난해 대법관 퇴임 때 로펌들이 추산한 자신의 ‘몸값’을 거론했다. “제가 대법관 퇴임 후 ‘로펌에 가면 1년에 100억 원까지도 받을 수 있다’고 하더군요. 12개월로 나누면 한 달에 거의 10억 원씩 벌게 되는 셈이죠. 또 어떤 로펌은 ‘열심히 하면 50억 원 정도는 가능할 것’이라고 했고….” 그는 “우리나라의 부패인식지수(CPI)가 다른 선진국보다 낮은 주된 요인 중 하나가 바로 이 전관예우”라며 “부패를 저지른 사람도 전관 변호사를 쓰면 가벼운 처벌을 받을 수 있다는 인식을 바꿀 대책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런 목소리들이 분출하면서 이른바 ‘전관예우 금지법’으로 불린 개정 변호사법이 2011년 5월 17일부터 시행에 들어갔다. 개정법은 판검사, 군법무관, 공무원으로 재직한 변호사는 공직 퇴임 전 1년 동안 근무했던 법원, 검찰청, 군사법원, 금융위원회, 공정거래위원회, 경찰서 등이 처리하는 사건을 퇴직일로부터 1년 동안 수임하지 못하게 했다. 예컨대 서울중앙지법에서 판사로 퇴직한 경우 1년간 서울중앙지법뿐만 아니라 서울중앙지검 사건도 수임할 수 없다. 그러나 서울중앙지법·지검 관할이 아닌 곳, 예를 들어 서울서부지법이나 서울북부지검 사건은 맡아도 무방했다.

    그런데 이 개정법은 퇴직 판검사들의 로펌행을 더욱 늘리는 결과를 초래했다. 로펌에 들어가면 개인 이름 없이 회사 차원에서 움직일 수 있어 이 제약을 무마시킬 수 있었기 때문이다. 수임계를 내지 않고 전화로 변론하고 로펌에서 상여금을 받으면 그만이었다. 로펌의 이름 뒤에서 돈을 버는 것은 공직 재진출에도 도움이 됐다. 적어도 겉으로는 맡은 사건이 없으니 문제 될 일도 줄어들기 때문이다. 그래서 ‘공직→로펌→공직’을 오가는 공직자가 늘어나기 시작했다.

    변호사 10명 중 9명 “전관예우 여전”

    서울 서초구 대법원. [뉴시스]

    서울 서초구 대법원. [뉴시스]

    법학자 이국운은 2012년 4월에 출간한 ‘법률가의 탄생: 사법불신의 기원을 찾아서’에서 “참으로 통탄할 일은 이 비극의 본질이 인질극이라는 사실에 있다. 형사사건에 관한 한 전관예우의 시작과 종료는 어떤 시민의 구속과 석방, 그의 몸의 감금과 해금의 다른 표현들일 뿐이다”라며 다음과 같이 말했다.

    “판결을 내린 판사가 석궁을 맞아도 그 판사가 옹호되는 것이 아니라 석궁을 쏜 피의자가 옹호되는 한국 사회의 이 엄혹한 역설은 지금 우리가 명상하고 있는 인질극의 법리에 의해서만 설명될 수 있다. … 한국 사회에 만연하고 있는 ‘사면(赦免)의 일상화’라는 현상도 이런 맥락에서 설명이 가능하다. … 사면은 마지막까지 합법을 사지 못했던 최후의 인질들에게 제공되는 합법의 대바겐세일, 폭탄 세일이다. 아니, 끼워팔기, 떠넘기기가 난무하는 마감 장의 떨이 판매다.”

    그런 어지러운 시장판에서 ‘전관예우 금지법’의 효용을 기대하긴 애초부터 어려운 일이었다. 서울신문(2013년 3월 2일자)은 ‘전관예우 공화국’을 다룬 특집기사에서 “전관예우금지법은 사실상 무용지물이라는 지적도 제기되고 있다. 전관들은 착수금과 성공보수 모두 세무 당국에 신고하지 않는다. 불법이다. 이런 불법이 가능한 건 전관들이 선임계를 내지 않고도 사건을 해결할 수 있기 때문이다. 제3의 인물을 ‘얼굴 변호사’로 내세운 뒤 뒤에서 수렴청정을 하는 것이다”라며 다음과 같이 말했다.

    “전관들은 후배 판검사를 사석에서 만나거나 전화로 ‘그 사건 내 사건이야’라고 한 마디만 할 뿐이다. 일반 변호사들과 달리 변호를 위해 하는 일이 없다. 변호사들은 ‘전관들이 받는 돈은 정당한 노동의 대가가 아니라 로비의 대가’라고 못 박았다. … 변호사들은 ‘사건 의뢰인, 변호사, 사무장만 알기 때문에 내부고발을 하지 않는 한 적발이 안 된다’면서 ‘전관들이 나중에 어떤 위치에 올라갈지 모르기 때문에 후배 검·판사들이 폭로하지도 않는다’고 말했다.”

    전관예우뿐만 아니라 전관이 고위공직에 다시 돌아올 경우에 대비하는 ‘후관예우’는 더 문제라는 비판도 제기됐다. 이 말은 판사의 경우엔 판사가 전에 근무하던 로펌의 사건을 봐줄 위험이 있다는 의미로 쓰였다. 한국일보(2013년 3월 4일자)는 “로펌으로서는 전관들이 나중에 다시 고위공직자로 롤백할 경우에 대비해 보험성 대우를 해준다. 공직사회는 또 이들이 언제 다시 돌아올지 몰라 의식할 수밖에 없다. 전관들과 현직 공직자들, 로펌 사이에 3각 유착 관계가 형성되는 셈이다”고 했다.

    서울지방변호사회가 2013년 6월 소속 변호사 761명을 상대로 ‘전관예우가 존재한다고 생각하느냐’고 물은 결과, 90.7%(690명)가 ‘존재한다’고 대답했다. 전관예우금지법에 대해선 “전관 변호사가 우회적으로 사건을 수임해 사실상 효과가 없다”(63%)는 평가가 많았다. “사건 수임이 어려워져 효과가 있다”는 응답은 17%에 그쳤다. 전관예우 근절 방안으론 “평생법관제·평생검사제 정착”(22%)을 가장 많이 꼽았다. 이어 재판 모니터링 강화(19%), 전관 변호사 수임 내역 공개(17%) 순으로 조사됐다.

    2015년 1월 13일 제48대 대한변호사협회 회장에 선출된 변호사 하창우는 당선 후 첫 기자회견에서 “전관예우는 우리나라에만 존재하는 잘못된 법조계 관행”이라고 비판했다. 그는 “전관들이 로펌 등에 들어가 자신의 이름을 드러내지 않은 채 사건을 수임해 결과적으로 수임 제한 규정을 어기는 탈법 행위를 저지르고 있다”며 “변협 내 전관예우 신고센터를 만들겠다”고 밝혔다. 변협과 언론이 전관예우를 없애기 위해 그 나름대로 애를 썼지만, 전관예우가 창궐한 풍토 자체를 바꾸기엔 역부족이었다.

    갈수록 심화하는 ‘전관예우 불패’ 현상

    2017년 1월 동아일보가 여론조사 회사인 엠브레인과 함께 20대 이상 남녀 1000명에게 모바일 설문조사를 벌인 결과, 무려 91%가 한국은 ‘유전무죄(有錢無罪)·무전유죄(無錢有罪)’가 통하는 사회라고 응답했다. 심지어 71.4%는 “매우 그렇다”라고 답했다. 그럴 만도 했다. 전관예우는 ‘사회 신뢰 좀먹는 암덩어리’(변호사 임수빈)임에도, 사람들은 그 암덩어리의 발호에 최소한의 분노마저 잃은 지 오래였으니 말이다.

    당파 싸움엔 열을 올려도 당파를 초월해 작동하는 법칙에 대해선 별말이 없었다. 아니 정부는 오히려 전관예우의 브로커 역할까지 떠맡고 나섰다는 게 2018년 7월 검찰 수사 결과 밝혀졌다. ‘공정거래’를 책임진다는 공정거래위원회는 매년 10여 명을 대기업에 재취업시켜 주면서 고시·비고시 출신을 나눠 ‘억대 연봉 지침’까지 기업에 정해 줬다. ‘행정고시 출신 퇴직자’는 2억5000만 원 안팎, ‘비행정고시 출신 퇴직자’는 1억5000만 원 안팎이라는 억대 연봉 가이드라인까지 책정해 준 것이다.

    조선일보는 사설에서 “심지어 어떤 퇴직자는 1억9000만 원 연봉을 받으면서 ‘출근할 필요 없다’는 계약 조건을 단 경우도 있었다. 출근하지 않고 억대 연봉을 챙길 수 있는 직장은 세계에서 한국 공정위가 유일할 것이다”라며 “다른 조치에 앞서 제발 간판에서 ‘공정’이라는 말이라도 뺐으면 한다”고 했다.

    2018년 10월 대법원 산하 ‘국민과 함께하는 사법발전위원회’가 발표한 ‘전관예우 실태조사 및 근절방안 마련을 위한 연구조사’ 결과에 따르면, 법조 관련 종사자(법원·검찰청 직원 포함) 가운데 “전관예우가 있다”고 응답한 비율은 전체의 55.1%였다. 판사는 응답자 중 23.2%, 검사는 42.9%, 변호사는 75.8%가 인정했다. 이들은 그 근거를 직간접적인 경험에서 찾았다. ‘(전관예우를) 실제 사건 처리 과정에서 경험했다’고 답한 비율이 51.6%로 가장 높았고, ‘주변에서 경험한 사실을 직접 들었다’가 39.2%로 뒤를 이었다.

    전관 변호사가 실제 기소 여부와 재판 결과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응답률도 절반에 가까웠다. 설문조사 참여자 가운데 검사의 15.9%가 전관이 개입되면 “기소와 불기소 여부를 바꾼다”고 했으며, 판사의 13.3%는 “형사재판의 결론을 바꿀 수 있다”고 답했다. 법조직역 종사자 5명 중 1명꼴로 “돈이 더 들더라도 전관 변호사를 선임할 것을 권한다”고 답했다.



    동아일보 2019년 4월 22일자 ‘전관예우, 반칙이고 범죄입니다’ 기획기사. [동아DB]

    동아일보 2019년 4월 22일자 ‘전관예우, 반칙이고 범죄입니다’ 기획기사. [동아DB]

    ‌동아일보는 법조윤리협의회로부터 한 해 2000여 명에 달하는 전관 변호사 등의 7년치 자료(A4 용지 70만 장에 달하는 분량)를 확보해 분석한 결과를 2019년 4월 22일 ‘전관예우, 반칙이고 범죄입니다’ 기획기사를 통해 보도했다. 이 기사에 따르면 2018년 ‘공직퇴임 변호사’의 수임 실적은 서울 지역 변호사 평균의 2.9배에 달했는데, 이 수치는 2012년의 1.6배에 달하는 것이었다. 이른바 ‘전관예우 불패’ 현상이 갈수록 심화한다는 사실이 구체적 통계수치로 확인된 것이다.

    그간 전관예우를 거의 망국병처럼 비판하면서 수많은 대응 방안이 거론됐고, 일부는 실제로 시도됐지만, ‘백약무효(百藥無效)’라는 게 입증된 셈이다. 물론 ‘전관예우 불패’는 2024년에도 건재했다. 2024년 10월, 4·10 총선에서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로 기소된 여야 의원 14명 중 11명이 판검사 출신 전관 변호사를 기용한 것으로 확인됐다. 이는 무엇을 말하는가. 국회의원들마저 평소엔 전관예우를 맹비난하다가도 막상 자신의 발등 위에 불이 떨어지면 전관 변호사를 구명줄처럼 여긴다는 걸 말해 준 게 아닐까.

    전관예우 맹비난했던 이재명의 언행 불일치

    16년 전 변호사 정정훈은 한겨레(2008년 10월 30일)에 ‘유사종교로서의 전관예우’라는 제목의 칼럼을 기고했는데, 새삼 이 진단이 옳은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해보게 된다. 그는 “매번 되풀이되는 문제 제기에 대해 법원과 검찰에서는 억울하다는 반응을 보인다”며 다음과 같이 말했다.

    “문제의 핵심은 전관이 판결에 영향을 끼칠 수 있다는 ‘부당한 믿음’이 여전히 확고하고, 일부 전관들이 그런 ‘부당한 믿음’에 기대어 퇴직 후 1~2년 소송을 ‘싹쓸이’하는 프리미엄을 적극적으로 행사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 전관 변호사들은 바로 얼마 전에는 억울함을 호소하던 현직 판사·검사였으며, 앞으로도 많은 판검사가 ‘전관’이 되어 ‘부당한 믿음’에 응답하는 구조가 계속될 수 있을 것이라는 점이다. … 소송 당사자의 불안을 먹고 기승하는 부당한 믿음, 이 믿음에 기대어 공생하고 기생하는 전관예우의 관행은 이미 한국 사회에서 유사 종교적 현상의 하나가 되었다.”

    이 유사종교 현상의 근절을 위해 그간 가장 속 시원한 사이다 발언을 한 사람은 누구일까. 단연 현 민주당 대표인 이재명이다. 성남시장으로서 민주당 대선 경선 후보가 된 이재명은 2017년 2월 12일 자신의 SNS를 통해 “전관예우로 인해 가장 공정해야 할 법조계가 가장 부패한 곳으로 변질됐다”며 법조계의 전관예우를 ‘형사사건 변호사 보수 상한제’로 뿌리 뽑겠다고 공언했다. 그는 “대형 로펌은 재벌 총수를 위해 담당 판검사와 인연이 있는 전관 변호사들을 총동원하고, 심지어 증거 조작까지 한다. 그리고 그 대가로 천문학적인 액수의 변호사 보수를 받는다”면서 “불법의 대가”라고 비판했다. 이어 그는 “대가가 워낙 크니까 서슴지 않고 불법을 저지르는 것”이라고 지적하고, “따라서 전관예우, 무전유죄, 유전무죄를 척결하기 위해선 형사사건 변호사 보수에 제한을 둬 이들로부터 경제적 이익을 제거해 버려야 한다”고 주장했다.

    아, 이 얼마나 속 시원하며 감동적 발언인가! 과격하게까지 들리는 발언을 저렇게 서슴지 않고 말하다니, 역시 이재명이다. 그러나 그런 감동은 오래가지 않았다. 그는 다음 해인 2018년부터 전관예우라는 유사종교의 신도로 변신했으니 말이다. ‘공정과 상식’을 팔아 대통령이 된 윤석열은 ‘김건희 리스크’를 해소하라는 검사 선배들의 조언에 “제가 집사람한테 그런 말 할 수 있는 처지가 아니다”라며 손사래를 쳤다던데, 두 사람 모두 ‘처지’에 따라 달라지는 카멜레온인가.

    그렇다. 문제의 핵심은 바로 ‘처지’다. 달리 말하자면, 내로남불이다. 남을 향해 ‘공정과 상식’을 외쳐댈 때엔 추상과 같지만 자신에게 ‘공정과 상식’을 적용해야 할 때엔 자신이 언제 그런 말을 했느냐는 듯 오리발을 내민다. 그게 마치 정치인이나 고위공직자가 되기 위한 필수 자질이나 조건이 되는 것처럼 말이다.

    ‘이재명 로펌’이 된 민주당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2024년 11월 25일 서울 서초구 중앙지방법원에서 위증교사 혐의 재판 1심 선고 무죄판결을 받은 후 법원을 나서고 있다. [뉴시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2024년 11월 25일 서울 서초구 중앙지방법원에서 위증교사 혐의 재판 1심 선고 무죄판결을 받은 후 법원을 나서고 있다. [뉴시스]

    자신의 부인 김혜경이 ‘혜경궁 김씨’ 사건으로 수사를 받게 되자 이재명은 2018년 변호인단에 수원지검 공안부장 출신 변호사인 이태형을 영입했다. 김혜경을 수사하는 곳이 수원지검인데 수원지검 출신 변호사를 선임한 것이다. 꼭 그래서 그런 건지는 알 수 없지만 이재명은 검찰의 불기소처분이라는 승리를 이끌어냈다. 경찰은 ‘혜경궁 김씨’ 트위터 계정주는 김혜경이라고 결론을 내렸음에도 말이다.

    2019년 9월 6일 이제 경기도지사가 된 이재명은 큰 정치적 위기에 몰렸다. 4개월 전 친형 강제 입원·선거법 위반 등에 대해 모두 무죄판결을 내린 1심과는 다른 항소심 판결이 나왔기 때문이다. 강제입원에 대해 사실과 다른 내용을 당선 목적으로 토론회에서 발언했기에 공직선거법상 허위사실공표죄가 유죄로 인정돼 벌금 300만 원형을 받고 당선 무효 위기에 몰린 것이다. 다급해지니까 전관예우 척결 약속을 잊은 걸까.

    상고심 재판을 위한 변호인단 구성은 어떠했던가. 그야말로 전관예우의 극치를 보인 ‘초호화 변호인단’이었다. 전 대법관 이상훈을 비롯해 전 대법관 이홍훈, 전 헌법재판관 송두환, 그리고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 전 회장 최병모와 백승헌, 전 서울지방변호사회 회장 나승철 등 전직 주요 변호사단체장들도 상고심 변호인으로 참여했다.

    2019년 10월 18일 국회 행정안전위원회 경기도 국감에서 자유한국당 의원 안상수는 “이상훈 변호사가 현재 이 지사님 배정 사건의 대법관과 함께 근무했던 분. 전관예우 기대를 하시는 것은 아니냐?”고 물었다. 이재명은 “절대 아니다. 법리적으로 뛰어나신 분”이라고 답변했다. 안상수는 “자기가 편할 때 상대방을 공격하고 자기한테 엄격하지 않은 것은 국민이 정치인을 혐오하게 만드는 요인이 된다”고 꼬집었다.

    2020년 7월 16일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이재명을 공직선거법상 허위사실공표죄로 처벌할 수 없다는 다수의견으로 원심을 파기하고 무죄 취지로 파기환송함으로써 이재명의 불안과 공포를 해소해 줬다. 수원고등법원은 같은 해 10월 16일 열린 파기환송심에서 무죄를 선고했다. 이재명은 ‘법리적으로 뛰어난’ 변호사들 덕분에 무죄라는 선물을 받게 됐는지는 몰라도, 그의 언행 불일치는 전관예우가 유사종교라는 걸 웅변해 주는 데엔 모자람이 없었다.

    제20대 대선(2022년 3월 9일)에서 실패한 후 이재명은 인천 계양구 을의 보궐선거에 출마해 2022년 6월 1일 금배지를 획득했고, 이어 2022년 8월 28일 민주당 대표에 당선됐다. 낙선한 대선후보가 곧장 보궐선거와 당대표에 선거에 출마하는 전례가 없었기에 그의 이런 파격적 행보는 자신의 ‘사법리스크 방탄’을 위한 것으로 여겨졌으며, 이는 곧 사실로 드러났다.

    이재명은 검찰이 기소해도 대표직을 유지할 수 있게 방탄 당헌으로 고치고, 제22대 총선(2024년 4월 10일)에서 공천권을 무기로 ‘비명횡사, 친명횡재’를 밀어붙여 민주당을 이재명 자신의 사당(私黨)으로 만드는 데 성공했다. 민주당에 유리한 지역에 공천을 받아 당선된, 이재명과 측근의 대장동 사건을 맡은 변호사는 5명이나 됐다. 여당은 “이재명의 대장동 변호사 공천은 변호사비 대납하는 것”이라고 비난했지만, 그게 무슨 소용이랴. 총선 결과는 민주당의 대승이었으니 말이다.

    이후 이재명은 “‘이재명 로펌’이 돼가는 민주당”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민주당을 통째로 자신의 방탄 로펌으로 활용하는 천재적 재능을 선보였다. 이미 2년 전 경향신문 정치부장 박영환은 “민주당은 ‘이재명 로펌’ 말고도 해야 할 일이 많다”고 충언을 했지만, 자주 사고를 쳐 민심으로부터 멀어지기 바쁜 윤석열-김건희 부부의 간접적 도움 덕분에 ‘이재명 로펌’은 탄탄대로를 내달렸고, 이로써 이재명은 한국 전관예우 역사의 새로운 장을 활짝 열어젖혔다.

    7년 전 “전관예우로 인해 가장 공정해야 할 법조계가 가장 부패한 곳으로 변질됐다”며 ‘전관예우 척결’을 부르짖었던 사람이 그래도 되는 걸까. 그러나 반대편엔 ‘박근혜 트라우마’에 기대 ‘지지층의 상처 혹은 공포심을 인질 삼아 버티는 정권’(중앙일보 정치부장 최민우)이 있으니, 무슨 일을 해도 무사하다. 윤석열과 이재명이 협업으로 연출해 내는 ‘적대적 공생’이라는 거악(巨惡) 체제하에서 전관예우는 얼마나 사소하고 하찮은 것인가.

    스스로 자기 무덤을 판 윤석열의 충동적이고 자멸적인 12·3 비상계엄 선포 사건으로 인해 그 ‘적대적 공생’의 균형은 깨졌다. 하지만 법조인과 법조인 출신이 과도한 권력을 행사하는 ‘법조공화국’의 기본 질서엔 아무런 변함이 없다. 얼른 생각하면 법조 우대와 동경이 세계 최고 수준이기에 법조 신뢰와 존중도 세계 최고 수준일 것 같지만, 오히려 정반대라는 데에 법조공화국의 비극이 있다. 법조 우대와 동경이 사적 욕망을 충족시키는 것과 밀접하게 연결돼 있기 때문이다. 최근 행시·외시 출신 공무원들과 대기업 사원들에게까지 불어닥친 ‘로스쿨 입시 광풍’이 그걸 단적으로 말해 주고 있지 않은가.

    강준만
    ‌● 1956년 출생
    ● 성균관대 경영학과 졸업, 미국 위스콘신대 메디슨캠퍼스 언론학 박사
    ● 저서 : ‘발칙한 이준석: THE 인물과사상 2’ ‘싸가지 없는 정치’ ‘부동산 약탈 국가’ ‘한류의 역사’ ‘강남 좌파’ ‘노무현과 국민사기극’ ‘김대중 죽이기’ 外




    댓글 0
    닫기

    매거진동아

    • youtube
    • youtube
    • youtube

    에디터 추천기사

      翻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