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1월호

“주유 배달로 유류 유통 혁신 바람 일으킬 것”

[주목! 이 기업] 국내 최초 배달 주유 시대 열어가는 ebts

  • 김건희 객원기자 kkh4792@donga.com

    입력2025-01-06 09: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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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앱 통해 주유량 등 입력하면 조합 가맹 주유소가 찾아가

    • 5년여 연구·기술개발 끝에 2024년 10월 서비스 시작

    • 주유소 기반 배달 주유, 영세 주유소와 상생 추구

    • 장·노년층 일자리 제공, 근로자 ‘저녁 있는 삶’ 실현

    2024년 12월 10일 경북 경주시 감포에 위치한 독도사랑주유소 1호점과 ebts 직원들. [ebts]

    2024년 12월 10일 경북 경주시 감포에 위치한 독도사랑주유소 1호점과 ebts 직원들. [ebts]

    경북 경주시 조양동 687번지. 농가가 밀집한 이곳에서는 주유소에 직접 찾아가지 않고 애플리케이션(앱)을 통해 유종(油種)과 주유량, 주유 가능 시간 등을 입력한 뒤 기름을 배달받는 주민을 적잖게 볼 수 있다. 저유 탱크가 장착된 유조차에는 경유 또는 등유가 한가득 실려 있다. 겨울이 되면서 농가나 건설 현장으로 기름을 배달시키는 이가 많아졌기 때문이다.

    2019년 배달 주유 사업 ‘시동’…전국 200여 주유소 참여

    마을 주민들에게 주유 배달 서비스를 제공하는 곳은 소셜벤처기업 ebts(Energy Bank Terminal Systems) 협동조합(이하 ebts)이 보유한 주유소 1호점이다. ebts는 대한민국 최초로 배달 주유 시대를 열어가고 있다. 2024년 6월 26일 문을 연 경주 ebts 주유소는 주민들 사이에서 ‘주유 맛집’으로 통한다, 대로변에 위치해 눈에 잘 띄고, 왕복 4차선 도로와 맞닿아 있어 접근성도 좋다.

    이 지역은 농업에 종사하는 이가 많아 농업용 경유 수요도 많다. 농사가 끝나갈 무렵에는 ‘신(新)주유천하’ 로고가 새겨진 주유 배달 차량이 마을 곳곳을 누비며 임무를 완수한다. 경주에 ebts 주유소가 문을 연 후 앱 또는 전화를 이용해 주유 배달을 요청하는 이가 부쩍 늘었다고 한다. 경주의 한 이용객은 ebts 배달 주유 서비스에 대해 “배달비가 무료인 데다 주유 가격과 품질도 괜찮은 거 같아 종종 이용하고 있다”며 “무엇보다 직접 주유소에 가지 않아 편하다”고 말했다.

    ebts가 국내에선 처음 주유 배달 서비스를 시작해 눈길을 끈다. ebts는 2024년 9월 주유 배달 앱 ‘신주유천하’를 출시하고, 10월부터 배달 주유 서비스 및 유통 사업에 본격적으로 뛰어들었다. 신주유천하는 고객이 있는 곳에서 주유 배달이 가능한 ebts 주유소를 검색해 배송을 요청할 수 있는 앱. 배송 시간도 고객이 직접 정할 수 있고, 주유 선주문 및 예약도 가능하다. 신주유천하는 출시 3개월 만에 구글플레이 스토어 기준 다운로드 1000회를 기록하는 등 서서히 알려지고 있다. 현재는 경북 경주와 포항, 전남 광양 등 일부 지역에서만 이용할 수 있지만 향후 전국으로 확대할 예정이다.

    주유 배달 플랫폼 구축 사업은 5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ebts는 2019년 11월 국립금오공대 IT융합학과와 기술협약을 체결하고 배달 주유 기술 개발을 시작했다. 2020년 9월에는 국립금오공대 산학협력단과 함께 앱을 이용한 ‘에너지 충전 관리 시스템’ 특허를 내는 등 기술력도 인정받았다. 배달 주유를 실현할 기술적 기반을 마련한 것이다. 이후 앱 실용화를 위해 자체 부설연구소인 전국에너지경제연구소의 연구를 거쳐 2023년 3월 ebts 조합원 워크숍에서 유류 배달 앱을 처음 시연했다. 그동안의 기술적 성과를 입증한 것이다. 앞서 2021년에는 ‘한국일보’가 주관하고 한국환경공단, 한국에너지기술평가원이 후원한 ‘제15회 대한민국 녹색에너지 우수기업’ 녹색기술 부문 대상 기업(조합)으로 선정되기도 했다.

    연구개발과 함께 전국의 주유소를 찾아다니며 사업 설명회를 열기도 했다. 2019년 9월부터 휴업 중이거나 경영난에 처한 전국의 주유소를 대상으로 조합 가맹 주유소를 모집하기 시작해 현재 조합원 주유소는 경북 경주, 포항, 구미, 경남 창원, 전남 광양, 전북 남원, 울산, 대구 등지 200여 곳으로 늘었다. 이 중 20여 곳이 직영 주유소이고, 나머지는 가맹 체제로 운영된다. 가맹 주유소를 관리하는 지점도 전국 70여 곳에 달해 유류 시장에서 자리를 잡아가고 있다. 이는 가맹사업자가 수익을 창출할 수 있는 경쟁력을 확보했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ebts 측은 “현재까지 500여 명이 가맹 의향을 밝혀 2025년에는 더 많은 가맹점을 오픈할 것으로 예상한다”고 전망했다. ebts 관계자는 “영세 주유소들이 배달 주유 앱 시스템을 도입한 뒤 경영 여건이 개선된 것은 물론 기름을 공동 구매할 수 있어 원가 절감 등의 시너지 효과를 얻고 있다”고 전했다.

    현행법에 따르면, 이동식 주유기가 부착된 ‘홈로리’(기름 수송 및 배달하는 차량)로 차량에 주유하는 것은 금지돼 있다. ‘석유 및 석유대체연료사업법’은 주유소를 ‘고정된 주유설비를 이용해 다른 주유소, 일반판매소, 실소비자에게 직접 판매하는 소매업자인 석유판매업자’로 규정한다. 다만 휘발유가 아닌 등유와 경유는 농업용과 건설 현장에 한해 주유소에서 이동 판매를 허용한다. 따라서 ebts는 무점포 배달 주유가 아니라 법에 따른 주유소 기반 배달 주유 원칙을 고수한다. 이렇게 유류 시장에서 혁신을 도모하면서, 동시에 조합 가맹 주유소들이 자본, 서비스, 인력 등을 효율적으로 결합해 시너지 효과를 내는, 이른바 ‘가치사슬 연계’를 할 수 있도록 기존 주유소들과 협력해 왔다.

    주유소 종사자 근로 문화 개선

    ebts는 주유소 근무자들의 저녁이 있는 삶을 강조하며 경영난에 처한 영세 주유소의 영업 정상화를 실현하기 위해 ‘신주유천하 캠페인’을 전개하고 있다. [ebts]

    ebts는 주유소 근무자들의 저녁이 있는 삶을 강조하며 경영난에 처한 영세 주유소의 영업 정상화를 실현하기 위해 ‘신주유천하 캠페인’을 전개하고 있다. [ebts]

    이승원 ebts 이사장은 “그동안 배달 주유 앱을 통해 사업을 확장하려던 IT(정보기술) 업체들이 있었지만 기존 주유소를 배제하면서 영세 주유소 사업자들과 갈등을 빚다가 결국 사업이 실패했다”며 “우리는 경영난을 겪는 주유소와 사실상 방치된 주유소를 사업에 참여시켜 영세 주유소를 활성화하고, 이를 통해 방치된 주유소로 인한 토양오염도 막는 등 여러 효과를 기대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렇게 연대의 폭이 넓어지면서 할 수 있는 일이 더 많아졌다. 최근 시작한 ‘저녁이 있는 삶, 신주유천하 캠페인’도 이 과정에서 나왔다. 이 이사장의 설명은 이렇다.

    “조합 회원사 근로자들이 주유소에서 일하며 겪는 많은 문제점을 토로했다. 그중 가장 심각한 건 경쟁이 과열되면서 이른 아침부터 늦은 밤까지 일하는 경우가 많아 장·노년층과 여성 근로자들의 ‘워라밸(일과 삶의 균형)’이 무너졌다는 거였다. 일부 주유소 근무자들은 혹서기와 혹한기에도 24시간 근무하는 열악한 환경이다. 이 과정에서 노년층 근로자가 빙판길에 넘어지거나 여성 근로자들의 안전 문제도 제기된다. 이 문제를 해결할 방법이 뭘까 고심하다가 ‘저녁 있는 삶’이 떠올랐다.”

    주유소 근로자들에게 ‘저녁이 있는 삶’을 보장해 주는 캠페인을 전개하자는 아이디어도 여기서 나왔다.

    ebts가 직접 운영하는 ‘독도사랑주유소’는 주유 업계 최초로 ‘오전 8시부터 오후 6시까지 주유’라는 새로운 운영 방식을 도입했다. 이는 주유 종사자들이 ‘저녁이 있는 삶’을 누릴 수 있도록 돕기 위한 조치로, 단순한 운영시간 변경이 아니라 주유소 운영의 새로운 패러다임으로 평가받는다.

    독도사랑주유소는 대형 정유사와 공급 계약을 거절당한 영세 주유소들로 구성된 주유 공동체. 영세주유소는 주유 업계에서는 멀리 떨어져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보석 같은 존재로 반드시 지켜야 한다는 의미로 ‘독도사랑’이라는 이름을 붙였다고 한다.

    주유 종사자들에게는 더 나은 근무 환경을 제공하고, 이용자들에게는 미리 주유하는 운전 습관을 권장하며 모두를 위한 긍정적 변화를 지향하자는 게 캠페인 취지다.

    사회적 가치 실현하는 ebts의 꿈

    2024년 6월 26일 경북 경주 산업로에 위치한 ebts 주유소 1호점의 개소식이 열렸다.[ ebts]

    2024년 6월 26일 경북 경주 산업로에 위치한 ebts 주유소 1호점의 개소식이 열렸다.[ ebts]

    주유 업무는 인생 2막을 준비하는 장·노년층 근로자들이 할 수 있는 만큼 이들을 위한 정년 없는 안정적 일자리를 제공하고, 배달 주유는 청년들과 취약계층에게 문호를 개방해 일자리 창출 효과를 기대한다.

    ebts는 신주유천하의 배달 주유 외에도 다양한 일자리 창출도 준비하고 있다. 소멸 위기에 처한 전국의 시·군·구를 대상으로 기존 가옥을 리모델링한 노인요양전원마을을 조성하는 사업도 펼치고 있다. 여기에 사회복지사 자격을 가진 이들을 보호 인력으로 투입해 새로운 일자리 창출도 구상하고 있다.

    여기에 무연고자나 고독사 장례를 지원하고, 청소년 자살 예방 활동을 펼치며 소외계층을 위한 사회사업도 추진하고 있다. 우리 사회에 좋은 사회사업이 많아지고 사회적 가치를 생각하며 소비하는 분위기가 형성되는 데 앞장서는 게 ebts의 미션이다. 이어지는 이 이사장의 설명이다.

    “현재 유류 시장은 이미 레드오션이 돼 경영난에 처한 영세 주유소가 많다. 새로운 고속도로가 많이 생기면서 과거 국도에 설치된 주유소는 찾는 이가 없는 경우가 허다하다. 따라서 새로 생겨난 주유소보다 휴업 또는 폐업하는 주유소가 압도적으로 많아졌다. 휴업하는 주유소가 폐업 주유소보다 많은 건 주유소 철거 비용과 조건이 부담되기 때문이다. 주유소가 폐업하려면 주유소 바닥에 묻힌 석유 저장탱크를 들어내고, 토양오염평가를 받아 합격 판정을 받은 뒤 평가서를 지방자치단체에 제출해야 폐업이 가능하다. 이러한 작업에는 수억 원이 든다. 따라서 폐업은 못 하고 ‘울며 겨자 먹기’식으로 휴업을 선택하는 영세 주유소들의 경영 여건을 정상화하는 게 중요하다. ebts는 이들의 버팀목이 되고 싶다. 유류 업계와 유통시장에 혁신의 바람을 일으켜 사회적 가치를 실현하고도 싶다. 향후 법이 개정되면 휘발유 배달 시장에도 참여할 계획이다.

    협동조합을 시작하면서 늘 사회적 가치를 실현하겠노라 다짐했는데, 에너지는 물론 노년층 및 취약계층 서비스를 종합적으로 제공하는 기업으로 성장하고 싶다. 그때가 되면 우리의 가치가 더 잘 실현될 수 있을 거 같다(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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