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1월호

임신 결정하는 건 여성, 출산율 높이고 싶다면 여성을 보라

[난임전문의 조정현의 생식이야기]

  • 난임전문의 조정현

    입력2025-01-10 09: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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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회 사정(射精)에 3억 마리의 정자가 분출돼도 난자에 수정을 시도할 수 있는 정자는 100여 마리에 불과하다. [Gettyimage]

    1회 사정(射精)에 3억 마리의 정자가 분출돼도 난자에 수정을 시도할 수 있는 정자는 100여 마리에 불과하다. [Gettyimage]

    세상에 만상에, 촌스럽기 짝이 없고 유치하기로 전 세계에서 1등이라고 해도 서럽지 않을 일이다. 2024년 11월 말, 50대 남성 톱배우가 30대 여성 모델이 낳은 아이의 친부임을 인정한 일이 있었다. 세계는 지금 동성애 커플의 출산도, 독신 여성의 출산도 인정하는 추세인데, 우리나라에서는 여전히 미혼 남녀 사이에 생긴 아기를 낳은 여성에게도, 당당하게 친부임을 밝힌 남성에게도 유치한 의혹과 질타를 쏟아낸다.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세계 초저출산율 1위’라는 부끄러운 타이틀에서 벗어나려면 이런 한국인의 가치관과 선입견은 이제 바뀌어야 하지 않을까.

    그래서 그런가. 많은 남성이 궁금해한다. 50대 남성도 자연임신이 그토록 쉽게 될 수 있냐고. 마음먹고 임신을 시도하면 그토록 힘든데, 짧은 연애에도 자연임신이 된 것이 놀랍다는 분위기다. 결론적으로 말하면 여성이 40세 이전으로 젊고, 남성이 성인병 중증 환자만 아니면 자연임신은 얼마든지 가능하다.

    정력과 수태력 비례하지 않아

    흔히 “남자는 걸어서 문지방을 넘을 힘만 있으면 수태력이 있다”고 말한다. 50대가 아니라 70대라고 해도 스트레스 없고 건강하다면 수태력이 없을 리 없다. 반대로 스트레스가 심하고, 술과 담배에 찌든 남성은 불혹의 나이만 넘어도 수태력이 급격히 떨어질 수 있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자연임신이 불가능한 것은 아니다.

    남성의 ‘정력’을 떠올리면서 수태력이 이에 비례할 거라 생각하는 이가 많은데, 결코 그렇지 않다. 정력은 말 그대로 몸과 마음이 리비도(libido・성욕구)에 맞게 언제 어디서라도 힘을 발휘할 수 있는 상태를 말한다. 반면, 수태력은 말 그대로 임신이 가능한 능력이다. 사정(射精)이 된 정자가 여성의 질(膣)을 통과해 난자가 기다리는 나팔관 안까지 무사히 이르러 수정하는 힘이라고 보면 된다.

    1회 사정에 3억 마리의 정자가 분출돼도 난자 옆에까지 가서 수정을 시도할 수 있는 정자는 고작 100여 마리에 불과하다. 이런 점을 감안하면, 평상시 정력이 넘쳐도 정자의 수가 적고 정자의 활동성(운동성)이 좋지 않으면 수태력이 떨어질 수 있다.

    매번 강조하지만 남성 수태력의 핵심은 고환에 있다. 고환은 정자를 만들고 남성호르몬(안드로겐, 테스토스테론)을 생성하는 생식 공장이다. 테스토스테론 분비량은 정자 생산량과 비례한다. 정자가 많이 생산되면 늘고, 정자 생산에 문제가 생기거나 생산 자체가 되지 않으면 급격히 줄어든다. 중년 이후에는 흡연과 음주를 지나치게 많이 하거나 스트레스가 심하면 혈중 테스토스테론 수치가 감소할 수 있다. 정자 수와 활동성도 나빠진다. 실제로 40대인데 자연임신이 불가능할 정도로 정자의 건강 상태(수와 활동성)가 나빠진 남성을 난임병원에서 흔히 볼 수 있다.

    수태력 좋은 남성이 되기 위해서는 생활 습관을 바꿔야 한다. ‘마음은 뜨겁게, 아랫도리는 차갑게’가 본질이다. 스트레스, 운동 부족, 만성피로, 흡연과 음주, 수면 부족 등으로 인해 ‘정자 감소증’이나 ‘정자 활동성 부진’이 될 수 있지만, 성기 주변이 너무 따뜻해도 문제를 야기 할 수 있다.

    몸에 딱 달라붙는 레깅스를 착용하는 습관은 정자의 활동성을 떨어뜨릴 수 있다. [Gettyimage]

    몸에 딱 달라붙는 레깅스를 착용하는 습관은 정자의 활동성을 떨어뜨릴 수 있다. [Gettyimage]

    ‌정자는 체온 상승에 매우 민감하므로 고환(정자 생산 공장)이 체온보다 2~3도 낮아야 한다. 운동도 하지 않고 온종일 책상 앞에만 앉아 있으면서 아랫도리를 따뜻하게 입고 생활한다면 아랫도리 혈류에 문제가 생겨 고환에 독소가 쌓일 수 있다. 생식기에 유해산소가 증가하면 정자 수와 활동성이 안 좋아질 수 있다. 따라서 수태력을 높이고 싶은 남성이라면 레깅스·삼각팬티·사우나 세 가지를 피해야 한다. 사우나에 오래 머무는 것은 좋지 않다. 대신 샤워할 때 아랫도리에 1분 이상 찬물 세례를 해보시라.

    남성은 리비도가 최상일 때 수태력이 급상승한다. 흔히 성교가 빈번할수록 임신할 확률이 높다고 생각하지만, 꼭 그렇지는 않다. 간절히 기다리던 연애(부부일지라도)의 절정에서 임신에 성공하는 경우가 더 많다. 가는 날이 장날이라고, 모처럼 성관계를 하는 날이 배란일이면 더더욱 임신 가능성이 높아진다. 심리학자들은 ‘인간 수태력은 리비도가 기본이지만 그 순간의 사랑, 위로, 소통에 영향을 받아 더 강해진다’고 말한다.

    여성의 마음 움직여야

    원하든 원하지 않든 생명의 잉태는 남녀 사랑의 결과이자 소중한 열매다. 비록 그날의 사랑이 충동적이었을지라도 그 순간의 열정은 진심이었고 ‘팩트’였다고 봐야 한다. 제발 한순간의 뜨거운 사랑이었을지라도 임신이 돼 출산을 선택하는 여성이 많아지길 바랄 뿐이다.

    다만, 한 가지 아쉬운 점은 뒤늦게 임신을 선택한다고 해도 여성의 수태력은 나이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는 것이다. 50대(초반이라 하더라도) 여성은 후하게 점수를 줘도 임신 가능성이 1% 미만이다. 여성은 200만 개의 원시 난자(난원세포 주머니)를 갖고 태어나지만 초경이 시작되면서 40만 개로 줄어들고 일생 동안 500여 개의 성숙 난자를 배란시킨다.

    500여 개 난자를 성숙시켜서 배란하기 위해 동원된 들러리 난자까지 계산하면 40대 중후반의 난소에는 겨우 몇천 개의 원시 난자만이 남아 있고, 이 중에서 1%를 제외한 99%가 부실 난자(염색체 이상 등)라고 보면 된다. 그러니 여성의 자연임신은 적어도 45세 이전이라야 성공을 기대할 수 있는 것이다. 인간 수명 100세 시대에 살고 있지만 난자의 수명(수태력)은 늘어나지 않는다는 것이 생식의학의 마지막 한계이자 딜레마다.

    거듭 강조하건대 임신의 주체이자 핵심은 여성이다. 임신 성공의 열쇠는 남성이 아니라 여성이 쥐고 있다. 시대가 바뀌어 세계는 지금 동성애자에게까지 시험관아기시술(IVF)을 허락하고 있다. 그렇다고 해서 그 나라의 출산율이 올라가진 않을 거라고 필자는 일찍이 내다봤다. 역시 적중했다. 프랑스가 저출생 극복을 목적으로 등록동거혼(PACS)을 도입해 자식 낳기를 용인했건만, 출산율은 매년 저하되고 있다고 한다. 반면, 영국은 남편 혹은 연인(파트너)이 없는 홀로 사는 여성(싱글)에게 정자은행을 통한 IVF를 하도록 한 결과, 매년 출산율이 높아지고 있다. IVF를 받는 싱글 여성의 평균 나이는 36.4세이며, 난자를 냉동하는 여성까지 늘어나는 추세다. 결국 출산율을 높이려면 여성의 마음과 몸이 아이를 가질 각오를 해야 한다.

    한국의 출산율이 세계 최하위가 될 수밖에 없는 것도 결국 임신을 거부하는 여성이 늘고 있어서라고 봐야 한다. 임신을 하고, 안 하고를 결정하는 건 여성이다. 여성이 자식을 낳기로 결심하면 결국 출산에 성공할 가능성이 높지만, 남성의 결심만으로 임신이 되는 건 어림 반 푼어치도 없는 일임을 인생을 살아보면 알게 될 것이다. 한 달에 딱 하루인 아내의 배란일을 남성이 어떻게 알 것이며, 안다고 한들 성관계를 혼자만의 힘으로 할 수는 없지 않은가. 또 임신이 된다고 해도 출산은 여성의 선택이다. 그러니 국가가 출산율을 높이고 싶으면 여성의 마음을 제대로 읽고, 여성들이 간절히 원하는 것이 무언인지를 간파하는 정책을 내놔야 할 것이다.

    조정현
    ● 연세대 의대 졸업
    ● 영동제일병원 부원장. 미즈메디 강남 원장. 강남차병원 산부인과 교수
    ● 대한산부인과의사회 부회장
    ● 現 사랑아이여성의원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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