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완준

윤완준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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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부장을 거쳐 정치부장으로 있습니다. 베이징 특파원을 지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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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12-22~2025-01-21
칼럼97%
정치일반3%
  • [월요 초대석]“尹의 ‘나는 희생자-상대는 절대악’ 음모론 전략, 공적 신뢰 붕괴시켜”

    《“증오에 휩싸인 편집증자. 박해 망상과 자기 맹신 성향이 있다. 망상을 뒤엎는 합리적 증거가 밝혀져도 증거 자체가 오염됐다고 믿는다. 자신이 위협받으며 부당하게 비난받고 있다고 믿는다.” 2014년 전상진 서강대 사회학과 교수가 펴낸 ‘음모론의 시대’에서 규정한 음모론자의 특징이다. 편집증은 상대에게 적의가 있다고 맹신하며 자기 중심적으로 해석하는 망상 장애를 뜻한다. 15일 오후 서강대 연구실에서 만난 전 교수는 “증거가 없는 부정선거 음모론을 여전히 12·3 비상계엄을 정당화하는 이유로 강변하는 윤석열 대통령의 모습과 겹친다”고 말했다. 그는 “음모론자에 대한 이 정의는 미국 역사학자 리처드 호프스태터가 1964년 저서 ‘미국 정치의 편집증적 스타일’에서 제시한 내용”이라고 말했다. 호프스태터는 당시 미국 공화당 대통령 후보로 선출된 배리 골드워터를 주목했다. 골드워터는 미국이 온통 좌파의 음모로 위협받고 있다는 주장으로 극우 세력의 지지를 얻었다. 호프스태터는 “거대한 음모가 역사를 움직이고 있다”며 이를 막아낼 수 있는 건 ‘십자군 전쟁’뿐이라고 주장하는 골드워터의 모습을 편집증적 스타일의 정치라고 지적했다. 15일은 윤 대통령이 체포된 날이었다. 전 교수는 11년 전 음모론 관련 책을 내겠다고 했을 때만 해도 주변에서 “음모론을 믿는 거냐”는 얘기를 들을 정도였고 여전히 음모론 연구가 척박한 수준이지만 윤 대통령이 현실의 극적 사례를 제공했다고 지적했다. 그는 ‘음모론의 시대’ 후속으로 ‘대통령의 편집병’(가제)을 준비하고 있다고 했다.》―윤 대통령에게서 보인 편집증적 정치 스타일은 무엇인가. “그는 자신이 전능한 적과 대적하고 있다, 그 적으로부터 부당하게 피해와 박해를 당하고 있다고 믿고 있다. 그래서 부정선거 음모론을 주장하며 대통령임에도 현 제도에 대한 불신을 보였다. 이런 인식이 불법을 포함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그들(적)과 싸움을 벌여도 된다는 인식으로 나타난 것이다.” ―왜 하필 부정선거 음모론인가. “제도에 대한 음모론자의 불신은 두 가지 부류다. 하나는 제도로 인해 피해를 받은 사람이고, 다른 하나는 그 제도를 자의적으로 활용한 경험이 있어서 상대도 얼마든지 조작할 수 있다고 믿는 사람이다. 윤 대통령은 자신의 필요와 욕망에 맞춰 그 제도를 좌지우지한 경험이 있는 후자로 보인다. 검찰 수사에서 명태균 씨의 여론조사 조작 의혹이 드러난 게 그 단서다. 윤 대통령 자신도 그런 경험이 있으니 야당도 그렇게 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고 볼 수 있다. 그러니 중앙선거관리위원회가 부정선거의 증거가 없다고 아무리 밝혀도 오염된 증거라고 주장하며 부정선거 믿음을 고수하고 있는 것이다.” ―대통령에게 모든 정보가 집중되니 합리적으로 판단할 수 있지 않나. “윤 대통령은 그런 선택보다 대부분의 정책에 카르텔이라는 적을 상정했다. 반국가세력의 동의어라고 볼 수 있다. 자신의 정책을 왜곡하고 방해하는 거대한 세력, 모든 사회 영역에서 가면을 쓰고 암약하는 반국가세력으로 낙인찍고 자신을 고립된 피해자로 규정했다. 이런 과정을 통해 ‘내가 성공하지 못해도 강력한 용과 대적했다’며 정책 실패를 정당화하려 한 것으로 보인다. 그런 인식이 결국 계엄이라는 국가 범죄로 나타났다.” ―음모론의 공식을 그대로 따랐다는 것인가. “정치적 음모론자들은 상대를 음모 세력으로 악마화해 자신에 대한 비판을 무력화한다. 자신을 희생자로 만든 뒤 악마를 없애야 한다면서 지지자들을 동원한다. 음모의 세상에는 두 진영만이 존재한다. 절대적으로 선한 ‘우리’와 절대악의 이분법이다. 상대에 대한 증오를 이용해 책임을 전가한다. 윤 대통령에게 음모론은 정치 전략이었고 지금도 의존하는 유일한 정치적 자산으로 보인다.” ―책에선 린든 존슨 전 미국 대통령 사례를 들었다. “존슨 대통령은 베트남전쟁으로 지지율이 높아졌다가 전쟁 참상 고발 등으로 지지율이 떨어졌다. 언론을 컨트롤할 수 없는 상황에 이르렀다. 그러자 그는 정책을 수정하는 대신에 ‘미국의 거대한 음모 집단이 나를 망치려 이런 식으로 조작하고 있다’며 자신의 잘못에 대한 책임을 전가하기 시작했다.” ―21세기 한국 정치에서 이런 음모론이 통하는 이유는…. “상대 진영에 대한 미움을 바탕으로 하는 ‘안티 팬덤’ 정치 때문이라고 본다. 우리 정치는 누군가가 리더로 적합해 뽑는 것이 아니라 누군가를 혐오해 그 사람을 비토하기 위해 리더를 택한다. 음모론의 가장 중요한 정치 전략은 정적을 경쟁 상대가 아니라 원수이자 악마로 본다. 타협과 대화가 불가능하다. 정치가 ‘저자들을 죽이지 않으면 내가 살아남지 못한다’는 생사투가 돼 버린 것이다. 이는 음모론이 무럭무럭 자랄 최적의 토양이 됐다. 우리 편이 어떤 잘못을 저질러도 적진 앞에서 분열하면 우리가 죽는다. 그래서 서로가 서로를 북돋아줘야 한다는 식이다.” 윤 대통령 지지자들이 당시 한남동 관저에 계속 모여드는 이유를 묻자 전 교수는 미국의 사회심리학자 레온 페스팅거 얘기를 꺼냈다. 페스팅거는 1950년대 이른바 ‘종말의 날’을 믿은 종교 집단을 연구했다. 그 결과로 펴낸 책이 ‘예언이 끝났을 때’다. 종말의 날에도 아무 일이 벌어지지 않자 어떻게 됐을까. 다들 집단을 떠났을 것이라 믿으면 오산이다. 상당수가 집단에 남아 이전보다 더 적극적으로 포교에 나섰다. ―왜 그런 건가. “떠나지 못한 사람들은 그때까지 자신들이 투자했던 정신적 물질적 에너지, 충성과 헌신이 아까웠다. 그래서 자신의 믿음을 현실보다 중요하게 생각했고 믿음을 지키는 쪽으로 현실을 바꿨다. 이러면 자신과 비슷한 사람들하고만 친해지고 자신의 믿음을 지지해주는 정보만 편식하게 된다. 망상의 세계에 빠졌다는 건 곧 자신의 잘못된 신념, 생각이 현실과 충돌할 때 현실을 믿음에 맞게 왜곡시켜 본다는 뜻이다. 그렇게 해서 나온 개념이 인지부조화다. 음모론자들은 인지부조화를 해결하려 음모론을 채용하는 것이다.” ―그런 음모론을 믿는 윤 대통령의 지지자들은 비정상적인가. “음모론을 믿는 사람들을 미친 사람으로 보는 시각이 많다. 하지만 그렇게 간단하지 않다. 2016년 도널드 트럼프를 대통령으로 당선시키는 데 기여한 미 공화당의 강경 보수파 ‘티파티(Tea Party)’가 있다. 한 연구자가 티파티 관계자에게 왜 음모론을 믿느냐고 물었다. 그러자 ‘사실은 음모론을 믿지 않지만 믿는다고 얘기함으로써 우리를 관통하는 공통의 태도를 보여주고 싶을 뿐’이라는 취지로 답했다. 즉, 음모론을 믿지 않더라도 자신이 속한 신념의 공동체 또는 이익의 공동체가 믿는다고 하니 나도 힘을 합쳐야 한다는 태도일 수 있다.” ―윤 대통령과 자신의 정체성을 동일시하기 때문이라는 뜻인가. “지금 우리 정치는 정권을 잃으면 모든 걸 다 잃고 감옥에 간다는 식이다. 이런 사회에서는 내가 지지하는 대통령이 철퇴를 맞으면 자신이 정체성을 동일시하는 상징이 사라진다는 생각에 상실감이 클 수 있다. 이런 사회는 선거를 통해 정권과 국회의원을 교체하는 민주주의의 윤활유, 동력을 잃을 수밖에 없다.” ―트럼프의 재집권이 윤 대통령 지지자들을 더 과격하게 만드는 측면도 있는 듯하다. “2020년 대선 결과를 부정한 음모론, 민주주의를 부정한 1·6 의회 난입 사태에도 결국 트럼프가 권력을 되찾았으니 ‘그런 성공의 경험을 우리도 얻을 수 있을 것’이라는 믿음이 커졌을 가능성이 있다.” ―우리 민주주의가 큰 위기를 맞았다는 말로 들린다. “음모론은 책임 전가와 회피의 장치다. 음모론 정치는 우리 사회에 ‘책임의 위기’와 ‘민주주의 파괴’라는 심각한 악영향을 끼치고 있다. 책임을 남에게 전가시키는 게 당연시되면 책임을 지지 않고 과실만 따먹으려는 정치 세력이 득세한다. 우리 사회 민주주의를 지탱하는 근간이 무너지는 것이다.” ―해결이 쉽지 않아 보인다. “윤 대통령의 계엄은 정부와 군, 정치 등에 대한 공적 신뢰를 완전히 망가뜨렸다는 점에서 심각하다. 다른 누구의 얘기도 믿지 못하는 상황으로 가고 있다. 우리 사회의 공적 제도에 대한 신뢰가 붕괴하면 사람들은 더욱더 음모론에 손을 뻗을 수밖에 없다. 치유가 힘든 깊은 병증에 빠졌다. 이 ‘윤석열의 유산’을 두고 우리 사회는 꽤 오랫동안 싸워야 할 것이다. 썩은 사과만 골라내자는 접근법은 음모론자들을 단순히 미친 사람으로만 보는 것이다. 하지만 썩은 사과 박스 자체가 문제다. ‘안티 팬덤’의 우리 정치 문화를 근본적으로 바꿀 방법을 찾아야 한다. 음모론의 영향력을 약화시키기 위해서는 정부, 정치, 사법, 언론 등 공적 제도의 신뢰를 회복하는 데 전력을 기울여야 한다.”전상진 서강대 사회학과 교수(63)서강대 사회학과를 졸업하고 독일 빌레펠트대에서 교육 불평등 문제를 주제로 한 논문으로 사회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2003년부터 서강대 사회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한국사회학회 총무이사, 한국문화사회학회 회장 등을 역임했다. ‘음모론의 시대’ ‘세대 게임-세대 프레임을 넘어서’ 등의 저서를 펴냈다. 음모론, 세대 및 교육 문제 등의 연구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윤완준 논설위원 zeitung@donga.com}

    • 1일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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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횡설수설/윤완준]‘백골단’ 악몽이 누구에겐 추억이었나

    “백골단 10∼20명이 다가와 쓰러져 있는 우리를 U자형으로 에워싼 채 방패와 진압봉 구둣발로 구타했다. 전경의 욕설과 학생들의 비명소리가 뒤범벅됐다. 머리카락을 잡혀 꼼짝없이 끌려가는 학생도 있었다.” 1991년 5월 25일. 경찰은 노태우 정권 퇴진 시위에 나선 대학생들을 향해 다연발 최루탄을 발사했다. 서울의 한 좁은 골목에 학생들이 뒤엉켜 쓰러졌다. 숨 쉬기조차 어려운 그때 백골단의 무차별 구타가 이어졌다. 청바지와 티셔츠 차림의 한 학생이 엎드려 쓰러진 채 끝내 일어나지 못했다. 누군가 “여학생이 죽었다”라고 외쳤다. ▷동아일보는 그해 스물다섯의 성균관대 학생 김귀정의 죽음을 이렇게 전한다. 그 한 달 전 명지대 학생 강경대가 백골단의 쇠파이프 구타에 목숨을 잃었다. 1996년 연세대 학생 노수석은 백골단의 ‘토끼몰이’ 진압 과정에서 숨을 거뒀다. 백골단은 하얀 헬멧에 청재킷 청바지를 입고 다리 보호대를 찼다. 몽둥이와 방패를 든 그들은 사과탄이라 부르는 최루탄을 던졌다. 방독면 뒤에 얼굴을 숨겼다. 1980∼1990년대 시위 진압을 위한 사복경찰 부대였던 그들은 군부 독재의 폭력적 공권력을 상징했다. ▷2000년대 들어 잊혔던 백골단 명칭이 그제 느닷없이 등장했다. 부정선거 음모론을 주장해온 40대 유튜버 김모 씨는 20∼30대 30여 명으로 구성된 백골단을 조직했다고 주장했다. 그는 이들이 윤석열 대통령을 지키는 300명 민간 수비대의 핵심이자 훈련 조교라고 했다. 하얀 헬멧과 무릎보호대는 물론 ‘멸공봉’이라 부르는 붉은 경광봉을 갖췄고 방독면도 구비할 것이라고 했다. 왜 백골단이냐고 했더니 “국가비상사태에는 백골단처럼 강한 이미지도 나쁘지 않다”고 답했다고 한다. 자경단 역할을 한다고 했으니 여차하면 물리적 충돌도 불사하려 한 것이라 의심된다. ▷집권여당의 최고위원까지 지낸 김민전 의원은 ‘반공청년단’의 예하 부대로 활동한다는 이들이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할 수 있도록 주선했다. 이들은 ‘백골(白骨)’을 연상시키는 하얀 헬멧을 쓴 채 회견장에 나타났다. 폭력적 공권력의 상징을 차용해 법을 무시하고 폭력을 써서라도 윤 대통령을 지키겠다는 일그러진 인식을 여당 국회의원이 나서서 부추긴 셈이다. ▷논란이 커지자 김 의원은 뒤늦게 “송구하다”며 기자회견을 주선한 사실을 철회한다고 밝혔다. 80년대 학번인 김 의원이 전두환 정권 시절 대학 캠퍼스에 수차례 진입한 백골단이 어떤 의미인지 모를 리 없다. 그런데도 철회 이유에 대해 백골단 명칭이 좌파에 공격 명분을 주는 표현이라는 지적이 있었기 때문이란 취지의 변명을 하기도 했다. 끔찍했던 백골단 악몽이 김 의원에겐 추억이었나. 사리 분별을 하지 못하는 그의 행태는 우리 사회가 맞닥뜨린 민주주의 퇴행의 쓰린 민낯이다.윤완준 논설위원 zeitung@donga.com}

    • 2025-0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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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오늘과 내일/윤완준]신문 보지 말고 극우 유튜브 보라 한 尹

    지난해 총선이 보름도 안 남은 3월 말. 윤석열 대통령은 여권의 한 인사에게 텔레그램을 보냈다. “한일관계 정상화, 화물연대 대응, 민노총 건폭 혁파, 노조회계 투명화, 사교육 카르텔 혁파, R&D 혁신 구조조정, 늘봄학교 추진….” 그는 자신이 성과라고 생각한 일곱 가지를 나열한 뒤 여덟 번째로 “의료개혁 의사 증원”을 거론했다. 그러고선 “모두 정치적 불이익을 감수하고 국익과 국민만 보고 추진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여권 인사는 의대 정원 증원 문제는 선거 뒤 원칙대로 가는 방법도 있으니 유연하게 대처하는 것이 어떻겠느냐는 취지로 조심스럽게 답했다. “그런 식으로는 (선거) 못 이겨요. 신문 보지 말고 민심을 들으세요.” 돌아온 건 윤 대통령의 짜증 섞인 답글이었다. 놀란 그가 “죄송하다”고 했지만 윤 대통령은 그치지 않았다. “보수언론의 권력 지향 행각과 왜곡 선동이 도를 넘었지만 일반 민심을 봐야 한다”는 강변을 이어갔다.비판에 귀 닫은 시대착오적 언론관 윤 대통령은 이 발언으로 시대착오적 언론관을 그대로 드러냈다. 의대 정원 증원 규모를 2000명으로 못 박은 근거의 빈약함, 결정 과정의 절차적 문제, 교수도 시설도 확보하지 못한 여건을 조목조목 지적했던 언론의 비판이 왜 왜곡 선동인지 근거를 알 수 없다. 보수언론이라는 규정도 모호하지만 보수언론이라면 무조건 자기편을 들어야 한다는 것인지도 이해하기 어렵다. 언론마저 진영 대결과 정파적 이해관계의 셈법으로 적대시한 윤 대통령의 실체가 드러난 것이다. 합리적 비판에 귀를 닫은 채 정보를 독점하고 일방적으로 불러주는 대로 받아쓰라는 게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윤 대통령 임기 내내 참모들은 비판 기사에 지나치다 싶을 정도로 신경질적이고 적대적이었다. “당신들과 통화하다 감찰 조사를 받을 수 있다”는 얘기를 하는 이도 있었다. 이해하기 어려운 참모들의 행태는 왜곡된 윤 대통령 인식의 투영이었던 셈이다. 윤 대통령은 민심을 들으라 했다. 그가 말한 민심이 무엇이라고 생각했는지 여권 인사에게 물었다. 그는 “극우 유튜브”라며 극우화는 예정된 코스였다고 했다. 지난해 초부터 극우 유튜버들의 영상 링크를 공유하며 자신의 생각과 정말 맞는다는 식으로 얘기했다는 것이다. 윤 대통령이 비상계엄 관련 언급을 본격적으로 시작한 시기도 3월 말∼4월 초였다. 그의 이런 인식은 총선 직전 4월 초 담화로 그대로 이어졌다. 2000명 증원의 정당성을 강변한 그 담화의 초안은 훨씬 강경했다고 한다. 국민의힘마저 놀라게 한 그 담화는 김건희 여사 디올백 수수 의혹, 이종섭 주호주 대사 임명 논란과 함께 여당의 총선 참패를 가져온 오만과 불통의 대표 사례였다.극우의 좁은 대롱으로 만든 허상의 적 하지만 극우 유튜브라는 ‘좁은 대롱’으로 본 세상이 진실이라고 믿었던 윤 대통령은 참패가 자신 때문이 아니라 부정선거 탓이라는 망상에 빠졌다. 그 어떤 대통령보다 “가짜뉴스 척결”을 주장했지만 그 자신이 진짜이고 민심이라 믿은 그 내용이 음모론 수준의 가짜뉴스임은 깨닫지 못했다. 참패 책임을 돌리려 허상의 적을 만들었으니 실체가 불분명한 반국가 세력이고 중앙선관위였으며 언론이고 자신을 비판한 정치인들이었다. 극우라는 좁디좁은 세계로 걸어 들어간 그는 그 안에 스스로 갇히는 ‘자발적 유폐’를 택했다. 법원이 발부한 체포영장 집행을 거부하며 한남동 관저에 자신을 가둔 지금 상황과 오버랩된다. 대공황에 대처한 프랭클린 루스벨트 전 미국 대통령은 “이제까지 내가 만든 적이 누구인지 보고 나를 판단해 주길 바란다”고 말했다. 윤 대통령이 만들어낸 허상의 적을 보고 우리가 그에 대해 내릴 평가는 이미 정해져 있는 듯하다. 윤완준 논설위원 zeitung@donga.com}

    • 2025-01-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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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횡설수설/윤완준]“51번째 주지사” 트럼프에 조롱당한 트뤼도 사임

    쥐스탱 트뤼도 캐나다 총리는 2015년 집권 때부터 ‘캐나다의 오바마’로 불린 서구 진보 정치계 스타였다. 자유당 소속으로 보수당 10년 통치를 끝낸 그의 행보는 도널드 트럼프 당시 대통령과 극명하게 대비되며 지지율이 60%대까지 치솟았다. 트럼프가 이민을 막자 “박해를 피하려는 이들을 환영한다”고 했고, 캐나다산 철강에 고율 관세를 부과하자 보복 관세로 맞섰다. 2019년 나토 정상회의 땐 기자회견을 길게 한 트럼프를 조롱하는 장면이 공개될 만큼 껄끄러운 사이였다. ▷그랬던 트뤼도가 트럼프 당선 한 달도 안 된 지난해 11월 말 트럼프 사저 마러라고 리조트로 급히 향했다. 2200km 거리를 날아간 그는 리조트 회원들 사이에 끼어 트럼프와 같이 저녁을 먹었다. 다음 날 소셜미디어에 “우리가 다시 함께할 수 있기를 기대합니다”라고 올렸다. 캐나다가 불법 이민을 막지 않는다는 이유로 25% 관세를 부과하겠다고 한 트럼프의 나흘 전 엄포 때문이었다. 고물가 등으로 지지율이 20%대로 추락한 상태에서 관세 폭탄까지 맞으면 직 유지가 어렵다는 두려움에 마러라고행을 택했을 것이다. ▷불행히도 반전 기회로 삼으려 했던 그 만찬 테이블에서 트럼프의 ‘51번째 주지사’ 얘기가 처음 나왔다. 트럼프는 “(대미 흑자) 1000억 달러를 미국으로부터 뜯어내지 못하면 살아남지 못한다는 뜻이냐. 그럼 미국의 51번째 주가 돼라”고 했다. 주권을 침해하는 치욕적 발언에도 트뤼도는 어색한 웃음만 지었다고 한다. 귀국 뒤 오락가락하던 그의 모습에 여론이 돌아섰고 재무장관이 저자세라고 비판하며 그만둔 것이 결정타가 됐다. 트뤼도는 6일 “이제 리셋할 시간”이라며 사임 의사를 밝혔다. ▷모진 트럼프는 트뤼도의 사임 회견 뒤에도 ‘51번째 주’ 얘기로 또다시 조롱했다. 주요 7개국(G7) 멤버이자 미국의 2위 교역국 정상을 끝까지 놀림감 삼았다. 관세 폭탄을 앞세운 트럼프식 미국 우선주의 칼날이 취임도 전에 동맹국 정상을 쓰러뜨린 셈이다. 세계 주요 정상들이 마러라고에 가 고개를 숙이고, ‘퍼스트 버디’(1호 친구)라 불리는 일론 머스크의 노골적 내정 간섭에도 영국 독일 정부가 비판 한마디 제대로 못 하는 이유일 것이다. ▷그렇게 트뤼도는 ‘이익 앞에 적과 친구 구분 없다’는 트럼프의 첫 희생자가 됐다. 먼 나라 일로 치부할 게 아니다. CNN은 트럼프가 관세 위협을 이용해 캐나다의 정치 혼란을 부추기는 방식으로 이익을 취하려 한다며 모든 국가가 다음 차례가 될 수 있다고 경고했다. 사례로 든 나라가 탄핵 정국의 한국이다. 한국의 대미 흑자 규모는 캐나다(6위)에 이어 8위다. 지난해 557억 달러로 역대 최대 대미 흑자를 기록한 한국이 ‘트럼프 스톰’의 다음 타깃이 되지 말란 법이 없다.윤완준 논설위원 zeitung@donga.com}

    • 2025-01-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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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오늘과 내일/윤완준]손바닥 안의 王 윤석열

    여권 관계자가 전한 얘기다. 지금은 전직이 된 한 대통령실 참모가 임명된 지 얼마 안 돼 윤석열 대통령에게 보고를 하러 갔다. 윤 대통령은 이 참모에게 “아내에게도 같은 내용을 보내 달라”는 취지로 얘기했다고 한다. 그래서 그 뒤로 윤 대통령에게 보고하는 같은 내용을 김건희 여사에게도 전했다는 것이다. “여론조사 다 조작된 거 아닙니까” 여권의 다른 인사가 전한 말도 놀랍다. 낮은 국정 지지율에 윤 대통령에게 지지율을 높여야 제대로 국정을 운영할 수 있다고 조언했다고 한다. 돌아온 대답은 “지지율 여론조사는 다 조작된 것”이라는 취지였다. 윤 대통령이 “경기장 선수는 전광판을 보지 않는다”고 하더니 전광판을 의식하지 않겠다는 뜻이 아니라 전광판이 조작됐다고 생각했다는 얘기 아닌가. 이 말을 들은 때가 윤 대통령의 비상계엄 며칠 전이었다. 그런데 훨씬 전부터 윤 대통령이 부정선거가 진짜 벌어졌다고 믿고 있었다는 증언이 있었다. 또 다른 여권 관계자의 얘기다. 윤 대통령이 2022년 당선된 뒤 얼마 뒤의 일이다. 한 만찬 자리에서 윤 대통령은 자신이 대선에서 0.73%포인트 차로 이겼지만 실은 부정선거가 아니었으면 이재명 후보를 더 큰 격차로 이겼을 것이라는 인식을 드러냈다고 한다. 이 말을 들은 한 의원이 “부정선거로 표 차이가 줄어드는 일은 없다”고 지적하자 윤 대통령이 싸늘한 눈빛으로 쳐다봤다는 것이다. 비상계엄은 그의 이런 인식이 인식으로 끝나지 않은 결과다. 국회의 탄핵소추안 가결 뒤에도 그의 인식은 한 치도 달라지지 않았다. 본보 기자들이 계엄 해제 다음 날 김용현 전 국방부 장관으로부터 계엄군의 선관위 투입이 윤 대통령의 뜻이라는 얘기를 어렵게 들었다. 그런데 윤 대통령은 12일 담화에서 자신이 선관위에 계엄군 투입을 지시했다는 점을 자랑하듯 쉽게 공개했다. 독립된 헌법기관인 선관위에 계엄군을 진입시키는 게 위헌적임을 전혀 아랑곳하지 않는 태도였다. 그만큼 부정선거 의혹이 사실이라 믿고 있다는 뜻이다. 이날 그의 담화는 극우 극렬 지지층을 결집시켜 아스팔트에서 자신의 탄핵을 반대해 달라는 선동으로 보였다. 어쩌면 더한 집단행동을 부추기려 하는지도 모른다. 탄핵 심판의 법적 다툼은 헌법재판관들이 판단할 일이다. 하지만 이런 인식을 가진 사람이 설사 여당 일각과 극렬 지지층의 바람대로 직무에 복귀한다 한들 누가 그를 대통령으로 인정하고 신뢰하겠나. 대다수 국민이 그를 군 통수권자로 인정하겠나. 미국을 비롯한 우방국들이 그를 민주주의를 수호하는 지도자로 인정하겠나. 탄핵 심판과 별개로 그는 이미 스스로 대통령 자격을 잃게 만들었다. 스스로 대통령 자격 잃게 만들었다 돌이켜 보면 그는 2021년 국민의힘 대선 경선에서 이미 비상식적 인식을 드러냈다. 경선 손바닥에 임금 ‘왕(王)’ 자를 적은 채 대선 경선 TV토론에 나왔다. 한 번도 아니고 세 번이었다. 당시 무속인이 개입했다, 주술 대선이 되고 있다는 비판에 윤 대통령은 “토론을 잘하라는 지지자 응원 메시지였다”고 주장했다. 윤 대통령 측은 당시 “윤 후보가 손가락 위주로 손을 씻어 ‘왕’ 자가 안 지워졌다”는 앞뒤가 안 맞는 해명을 했다. 지금 보니 ‘건진법사’ 전성배 씨가 윤 대통령의 국민의힘 입당 전부터 윤 대통령을 도왔다는 증언이 나왔다. 윤 대통령은 손바닥 안의 ‘왕’ 자를 보며 대권을 꿈꿨을 것이다. 그는 3년 뒤 손바닥만 한 자기만의 세계에 갇히며 그 꿈을 이뤘다. 윤완준 정치부장 zeitung@donga.com}

    • 2024-12-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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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오늘과 내일/윤완준]“네가 대통령이냐!”

    4월 총선 뒤의 일이다. 국민의힘 공천에서 탈락한 인사를 윤석열 대통령이 대통령실 관련 직에 임명하려 하자 일부 용산 참모들 사이에서 적절하지 않다는 의견이 나왔다고 한다. 이를 들은 윤 대통령이 참모에게 화를 내며 했다는 말이다.“네가 대통령이냐!”이런 일도 있었다. 현 정부 각료 출신 친윤(친윤석열)계 인사가 전한 일화다. 2022년 인수위원회 시절 인사 문제와 관련해 공개적으로 의견을 얘기했더니 전화가 왔다. 윤 대통령이 혼을 내며 대뜸 했다는 말이다.“네가 대통령이냐!”“대통령에게 깨질까 봐 말 못해”윤 대통령은 참모들로부터 듣기 싫은 소리를 들으면 화내는 스타일이라는 말이 여권에서 돈다. 남이 해야 한다고 조언하면 일단은 안 한다는 게 여권 핵심 인사의 얘기다. 그런 윤 대통령 앞에서 직언을 할 용기가 있는 참모는 많지 않을 것이다. 대통령실 참모 출신 여당 인사는 “장관들이 보고 때 대통령의 화에 쩔쩔 매는 걸 보고 그건 ‘훈장’이라고 얘기해 줬다”고 했다.다른 여권 인사에 따르면 윤 대통령과 명태균 씨 육성 통화가 공개된 뒤 국민의힘 한동훈 대표는 당의 친윤 중진들에게 대통령이 이 문제에 대해 국민들에게 자세히 해명해야 한다는 얘기를 대통령에게 전해 달라고 부탁했다. 중진들의 반응은 “무슨 얘기를 들을지 몰라 못하겠다”는 것이었다고 한다.4월 총선 직전 윤 대통령은 의대 정원 증원 관련 담화를 냈다. 2000명 숫자를 강조한 강경한 발언으로 의료계 반발에 기름을 부은 그 담화다. 담화 전 참모들과 독회를 할 때 이견을 내 온 참모는 배제됐다는 얘기도 들린다. 의대 증원 문제에 대해 유연한 접근을 조언한 여권 인사들에게 “신문 보고 하는 소리냐, 신문 보지 말라”고 했다는 얘기도 있다. 총선 때 위기감을 전해 달라는 여당 의원의 요구에 대통령실 참모들이 “대통령에게 깨질까 봐 말을 못하겠다”고 했다는 전언도 있다. 대통령이 주변에 “날 가르치려 하느냐”는 취지로 화를 냈다는 말이 들린다.그런 윤 대통령이 어렵게 마음을 돌려 한 회견도 국민 눈높이엔 못 미쳤다. 보수층이 결집하며 국정 지지율은 반등했다. 여권에선 윤 대통령이 ‘봐라, 이 정도 했으니 오르지 않느냐’며 말로 한 쇄신 약속을 지키지 않을까 우려하는 말들이 나온다.쇄신 약속한 尹, 대통령답게 변해야동아일보는 윤 대통령 취임 1년인 지난해 5월에, 임기 반환점인 올해 11월에 여러 원로, 전문가들의 평가를 들었다. 노동부 장관을 지낸 김대환 인하대 명예교수, 교육과학기술부 장관을 지낸 김도연 태재미래전략연구원 이사장, 대통령 정책기획수석비서관 출신 이각범 KAIST 명예교수는 두 차례 인터뷰에 모두 응했다.주목되는 게 있다. 김도연 이사장은 윤 대통령 취임 1년 때 “당선 첫 발언인 국민통합에 성과가 없다”고 했다. 이번에도 “초심으로 돌아가 국민통합을 이뤄야 한다”고 했다. 이각범 명예교수는 1년 반 전 “국정방향의 전체적인 로드맵을 가지고 국민들과 소통해야 한다”고 했다. 이번에도 “치밀한 준비 없이 개혁을 말로만 서두른다. 의료개혁만 해도 의료계 목소리를 경청하지 못하고 무리하게 추진한 것 아닌지 되돌아볼 필요가 있다”고 했다. “개혁의 청사진을 제시해 국민적 지지를 얻는 노력과 전략이 상당히 부족했다”고 한 김대환 명예교수는 이번에도 “국민에 대한 전방위적 소통 부족, 여소야대 탓을 하는 전략 부재”를 지적했다.원로들의 얘기는 1년 반 전과 크게 달라진 게 없다는 것이다. 자신이 가장 많이 안다는 오만을 버리고 주변에 귀를 열어야 한다. ‘대통령답게.’ 윤 대통령 자신이 본질적으로 변해야 할 대목이다. 윤완준 정치부장 zeitung@donga.com}

    • 2024-11-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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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오늘과 내일/윤완준]대통령이 파국을 원하지 않는다면

    6350여 개. 올해 5월부터 북한이 한국에 날려 보낸 풍선 수다. 북한이 대남 전단이 담긴 풍선을 한창 보낸 2016년과 2017년 한 해 동안 날린 풍선이 약 1000개씩이다. 5개월 만에 그 수를 6배 이상 넘겼다. 오세훈 서울시장이 최근 오물풍선에 더 적극적으로 대응해야 한다고 군에 촉구했다고 한다. 풍선이 터지도록 발열 타이머와 화약을 부착한 탓에 화재 발생이 되풀이되는 게 오 시장의 우려를 키웠다. 북한산이나 남산에 떨어져 대형 산불이라도 나면 어떻게 하나. 인명 피해가 발생하는 참사가 일어날 수도 있다. 마땅한 방법이 없어 ‘떨어진 풍선을 빨리 수거하는 게 최선’이라는 군의 태도는 무대응에 가깝다. 많은 시민들의 일상이 위험에 노출된 채 시간이 흘러간다. 그러다 큰불이라도 나고 사람이 죽고 난 뒤 “단호한 군사적 조치를 취하겠다”는 건 파국을 바라는 것처럼 들린다.모래에 머리 파묻은 타조 같은 용산 그러는 사이 북한은 윤석열 대통령 부부를 원색적으로 비난하는 삐라 풍선을 보냈다. 삐라는 윤 대통령이 외국 정상을 맞는 국빈 환영식 행사장에 떨어졌다. 위성위치확인시스템(GPS)이 대통령실을 조준했을 것이다. 오물풍선이 올 때마다 군은 “안전에 위해되는 물질은 없었다”고 했다. 하지만 이제 시민의 생명을 위협할 물질로 타깃을 노리지 않으리라는 보장이 없다. 타조 효과다. 타조는 맹수를 만나면 모래에 머리를 파묻는다. 위기가 닥치고 있는데도 문제를 모른 체하고 방치한다. ‘김건희 리스크’에 대한 윤 대통령의 대응도 비슷하다. 4월 총선 전부터 김 여사의 디올백 수수 논란에 대해 사과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여당에서 터져나왔지만 1월 “박절하지 못했다”는 말로 피했다. 총선 참패 한 달 뒤 뒤늦게 사과했지만 이후 각종 의혹이 고구마줄기처럼 이어지고 있다. 김 여사가 직접 국민 앞에 사과하고 속시원히 설명해야 한다는 여당 내 요구가 뭍밑에서 대통령실에 전달됐다고 한다. 하지만 윤 대통령은 결심하지 못했고 지금까지 왔다. 한 여권 인사는 “대통령의 위기는 외부 폭발(explosion)이 아니라 내파(implosion)에서 왔다. 그래서 더 심각하다”고 했다. 그에 따르면 이명박 전 대통령 국정 지지율을 곤두박질치게 만든 광우병 파동은 원인이 외부 충격에서 온 ‘explosion’에 가깝다. 하지만 윤 대통령의 지지율 바닥은 ‘김건희 리스크’를 윤 대통령 스스로 오랜 시간 방치한 내부 모순이 만든 ‘implosion’이다. 타조가 모래에 머리를 파묻듯이 말이다.변화와 쇄신은 타이밍이 중요하다 ‘명태균 리스크’도 마찬가지다. 김 여사가 명 씨와 어떤 대화를 나눴고 그중 무엇이 문제 될 만한지 정확히 아는 대통령실 참모도 없는 것처럼 보인다. 무슨 대화를 나눴는지 조사해 보자고 윤 대통령에게 얘기할 참모도 없을 것 같다. 윤 대통령이 국민의힘 한동훈 대표와의 면담에서 “나와 달리 명 씨를 달래고 좋게 선거를 치르려 했다”고 말했다는데, 김 여사가 왜 명 씨를 달래려 했는지 설명은 없다. ‘김건희 라인’을 정리하라는 한 대표의 인적 쇄신 요구에 윤 대통령은 “그 사람들이 무슨 잘못을 했나”라는 태도다. 윤 대통령을 잘 아는 인사는 “윤 대통령은 마지막까지 얻어맞고 나서야 방향을 바꾸는 스타일”이라고 했다. 인적 쇄신은 구체적인 잘못이 있을 때뿐 아니라 민심이 요구할 때, 변화가 필요할 때 하는 것이다. 타이밍이 중요하다. 지금 방향을 바꿔야 한다. 파국을 원하지 않는다면.윤완준 정치부장 zeitung@donga.com}

    • 2024-1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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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오늘과 내일/윤완준]영부인의 금도

    “잽을 계속 맞다가 어느 순간 쿵 하고 쓰러질 수 있다.”한 여권 인사는 김건희 여사를 둘러싼 의혹이 끊임없이 불거지는 상황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논란이 쌓이고 쌓이다 어느 순간 둑이 무너질 수 있다는 얘기다.윤석열 대통령은 44일 뒤면 임기 반환점을 돈다. 여당의 많은 인사들이 김 여사 문제가 집권 후반기 여권의 최대 리스크가 됐다고 본다. 국민의힘 관계자는 “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 연루 의혹 사건에서 검찰이 불기소 처분을 내릴 경우 여론이 악화될 수 있다. 그 얼마 뒤 민주당이 또다시 낼 김건희 특검법 재표결을 그때 여당이 부결시킬 수 있을지 의문”이라고 했다.“의혹 쌓이다 한순간 둑 무너질 수도”“당원들조차 김 여사에 대한 불만을 거침없이 드러낸다.” 국민의힘 한 의원은 “최근 김 여사에 대한 여론이 진짜 안 좋다”고 했다.대통령실에서도 이런 우려가 나오지만 정작 김 여사 문제 해결 방안은 “참모들이 윤 대통령과 제대로 토론하기 어려운 분위기”라고 한다. 사과는 대통령과 김 여사가 결심할 문제이지 참모들이 이러쿵저러쿵할 사안이 아니라고도 한다.올해 초 당시 대통령실 관계자는 이런 얘기를 토로한 적 있다. 김 여사 디올백 수수 논란에 대해 대통령이 사과해야 한다는 여론이 나오던 때다. 언론이야 사과하라고 쓸 수 있지만 대통령이 사방에서 자신의 아내가 공격받고 있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다면 주변에서 어떤 논리로도 대통령을 설득하기 무척 힘들다는 것이다.여권 관계자는 “총선 전 의대 정원 증원 2000명을 결정할 때 한 참모가 2000명 숫자를 고집하지 말자고 했다가 윤 대통령에게 호되게 깨진 적이 있는 것으로 안다”고 했다. 참모들이 김 여사 문제를 직언하기 어려운 속내도 비슷한 이유일 것이다.총선 참패 뒤 대통령실은 “민심을 제때 정확히 전달하기 위해 민정수석실을 신설했다”고 했지만 민정수석실 역시 윤 대통령의 심기를 건드릴 민심을 전하지 않고 있는 건 아닌가. 그러니 여당에서 “민정수석실은 뭐 하느냐”는 비판이 나오는 것이다.한동훈 국민의힘 대표가 윤 대통령과 독대를 요청한 뒤 주변에 “용산에서 김 여사 얘기를 안 하니 나라도 해야겠다”고 말한 것도 이런 이유 때문일 것이다.김 여사 문제가 성역화되는 와중에 김 여사 관련 의혹은 자꾸만 나온다. 개혁신당 이준석 의원의 공개 발언을 보면 김 여사가 김영선 전 의원 문제와 관련해 명태균 씨든 누구든 텔레그램을 주고받은 건 분명해 보인다. 이 의원은 “메시지에 해줄 수 있는 게 없다는 취지의 내용도 있었던 것으로 기억한다”고 했다. 정말 총선 공천에 개입했는지 아닌지는 따져봐야 할 것이다. 하지만 공천 관련 얘기를 민감한 시기에 영부인이 외부인과 주고받았다면 그 자체가 부적절하다.그렇다 보니 여권에서 이런 한숨도 나온다. 김 여사가 의원 부인이라도 해봤으면 정치인 아내로서 사람이 얼마나 무서운지, 사람을 함부로 접하면 안 된다는 최소한의 금도(禁度)라도 깨달았을 것이라는 얘기다. 검찰총장을 지낸 공직자의 아내가 왜 그런 사실을 깨닫지 못했는지 의문은 둘째 치고라도 말이다.김 여사 문제 직언 어려운 분위기라니언제 둑이 무너질지 모른다는 우려가 있는데도 고양이 목에 방울 달기처럼 김 여사 논란 해결을 미루는 건 문제다. 시중엔 “김 여사가 V1이라 제2부속실을 만들 필요가 없다고 생각하는 것 아니냐”는 비아냥거림마저 돈다.전직 대통령실 인사는 총선 때 역대 대통령들이 레임덕에 빠진 과정을 다 찾아보다가 잠이 안 왔다고 했다. 지금 참모들은 어떨까.윤완준 정치부장 zeitung@donga.com}

    • 2024-09-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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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데스크가 만난 사람]“의료공백은 생사문제… 화물연대 파업처럼 처리할수는 없다”

    《‘이 말을 꺼내야 하나.’국민의힘 김종혁 최고위원은 그날 오전 3시까지 잠들지 못했다. 마음속에 품은 그 말을 공개 석상에서 해야 할지 머리를 싸맸다. ‘대통령실에서 당신이 뭔데 대통령 인사권을 건드리냐고 할 수 있다. 당에서도 왜 쓸데없이 문제를 일으키냐고 말이 나올 수 있다.’ 김 최고위원은 “괴로웠다”고 했다.‘하지만 이대로는 안 된다. 누군가는 얘기해야 한다.’뒤척이던 그는 여권의 많은 사람들이 비슷한 생각을 하며 걱정하는데도 아무도 문제가 있다고 얘기하지 못하는 현실이 안타까웠다. ‘국민 눈높이를 맞추겠다고, 수직적 당정관계를 바꾸겠다고 국민들과 약속하지 않았는가. 그래 놓고 아무말도 못 하면 안 된다.’》김 최고위원은 “처음에는 ‘책임자들’이라고 하려고 했다. 하지만 막판에 고쳤다. 경질 요구 범위가 확대되면 역효과가 날까 봐 책임자라고 했다”고 말했다. 응급의료 공백 우려가 확산되던 5일 아침 국민의힘 최고위원회 회의. 여권에 파장을 일으킨 박민수 보건복지부 2차관 경질론은 그렇게 나왔다. 김 최고위원은 “윤석열 대통령께 모든 게 괜찮을 거라 보고하고 막말과 실언으로 국민을 실망하게 한 당사자는 스스로 거취를 결정하기를 촉구한다”고 했다. 친한(친한동훈)계인 김 최고위원에게 발언 전 한동훈 대표와 상의했느냐고 물었다. “그럼 한 대표가 얼마나 부담스럽겠나. 제가 허락하고 말해야 하는 것도 아니고.” 한 대표가 최고위원으로 지명한 그는 30년 경력 언론인 출신이다. 2021년 최재형 전 감사원장 대선 경선 캠프에 참여하면서 정계에 입문했다. 2022년 정진석 비대위원장 체제에서 비대위원을 지냈다. 올해 4월 총선 때 경기 고양병에 출마했다가 낙선했다. 당시 한동훈 비상대책위원장이 조직부총장으로 임명했다. 그전까지는 인연이 없었다. “그전까지 얼굴 본 적도 없던 한 대표에게서 전화가 왔기에 정치 초보인 제가 어떻게 조직부총장을 하겠느냐고 했어요. 그랬더니 한 대표가 ‘저도 정치 초보인데요. 같이 해보시죠’라고 하더군요.” 대통령실과 여당에 공개적으로 쓴소리를 해온 김 최고위원을 10일 서울 여의도 국민의힘 당사에서 만났다. 그는 “내 발언이 외부에 여권 내 갈등으로 보이지 않을까 조심스러운 게 사실”이라면서도 “내 생각을 있는 대로 양심껏 말하겠다”고 했다.● “지금은 전시(戰時)가 아니다” ―윤 대통령은 의료개혁 관철 의지를 강조하고 있다. “1981년 미국 항공관제사 노조의 대규모 파업 때 로널드 레이건 당시 대통령은 1만 명 이상을 해고했다. 1984년 영국 탄광 노조 파업 때 마거릿 대처 당시 총리는 1년간 파업에 맞섰다. 유럽의 병자로 전락하게 만든 영국병을 치유하는 계기가 됐다. 정치 지도자는 당장의 이해관계보다 뚝심 있게 밀어붙여야 할 상황이 있다.” 그는 이 대목에서 “하지만”이라는 단서를 달았다. “의료개혁을 반대하는 건 결코 아니다. 대통령은 전쟁이 일어나면 국민에게 목숨을 바쳐 달라고 이야기해야 하는 자리다. 하지만 지금은 전시가 아니다. 의료개혁을 화물연대 파업처럼 처리할 수는 없다.” ―검찰 수사하듯 해결할 수는 없다는 얘기인가. “그렇다. 의료개혁은 국민 생명과 직결되는 문제다. 대통령은 의료인 양성의 효과가 10∼15년 뒤 나온다고 했다. 의료 공백이 악화일로를 거듭해 응급실 대란이 현실화한다면 ‘난 죽어도 좋으니 10년 뒤 개혁이 성공하길 바란다’고 말할 국민은 없을 것이다. 뚝심으로만 밀어붙이기엔 민감한 문제다. 국민 생명이 달린 문제에 정부 대응은 세심함과 세련됨이 많이 부족했다.” ―통일된 의견으로 방안을 제시하지 못하는 의료계도 문제 아닌가. “의사 단체들의 이해관계가 다 다르다. 이럴 때는 가져올 수 없는 걸 가져오라고 요구하기보다 최선이 아니라 차선이라도 불만스럽지만 어쩔 수 없이 수용할 수밖에 없는 방안을 만드는 것이 정부의 책임이다. 지금 정부 대응은 관료적 발상, 책임 전가처럼 보인다.” ―의사 단체들이 지나치게 이해집단 모습을 보이는 것 아닌가. “개혁은 필요하지만 특정 집단을 정책적 필요 때문에 이기적 집단으로 몰아서만은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 토착왜구니 부동산 투기꾼이니 반개혁세력이니 틀딱이니 하며 국민을 갈라놓은 더불어민주당 정권과는 달라야 하지 않겠나.”● “여당 최고위원에게 화낸 尹” 한 대표가 2026학년도 의대 정원 증원 유예안을 정부에 제안한 뒤인 지난달 26일 국민의힘 최고위원회 회의. 기자들이 다 보는 공개 회의 중간에 의사인 인요한 최고위원이 전화를 받았다. 윤 대통령에게서 온 전화였고 인 최고위원에게 유예안 등에 대해 화를 냈다는 건 여권에서 공공연한 비밀이다. 김 최고위원은 이에 대해 “내가 부인할 수도 없다”고 했다. ―윤 대통령의 그런 스타일이 직언을 못 하게 하는 분위기를 만드는 것 아닐까. “이런 모습이 (참모나 여권에) 잘못된 사인을 줄 수 있다. 악의가 없더라도 잘못된 결과를 가져올 수 있다. 대통령이 불통 이미지가 너무 강하다.” 다만 그는 2026학년도 의대 정원 문제를 제로베이스에서 논의할 수 있다고 한 대통령실 발표는 “대통령이 처음으로 뜻을 굽힌 것”이라고 해석했다. 그는 두 가지를 터닝포인트로 봤다. “하나는 지난달 29일 국민의힘 연찬회였습니다. 친윤(친윤석열) 의원들까지 조규홍 복지부 장관을 질타했어요. 정부가 혹을 떼러 왔다가 오히려 붙이고 갔죠. 집권 여당에서 친한 친윤 할 것 없이 불만이 많다는 걸 용산이 확인한 겁니다. 두 번째는 그날 윤 대통령의 기자회견이었습니다. ‘응급실에 가보라. 아무 문제 없다’는 취지의 얘기를 듣고 많은 사람들이 대통령의 현실 인식이 현장과 동떨어져 있는 것 아니냐, 대통령에게 저런 보고를 하는 사람이 누군가라는 의문을 품었습니다.” ● “尹, 예전 알던 동훈이 아니라고 생각해야” ―김경수 전 경남도지사 복권 반대에 이어 윤-한 갈등이 또 터졌다는 지적이 많았다. “당원들이 1만 명 넘게 아우성치는데 당 대표가 얘기하는 건 당연하다. 윤 대통령도 ‘이제 내가 예전에 알던 동훈이가 아니고 당 대표다. 저 친구가 당을 대변해 목소리를 내는 게 나쁘지 않다’고 생각해야 한다. 복권 결정이 나온 다음엔 한 대표가 그 문제를 당에서 더 거론하지 말라고 했다. 반대했지만 대통령 권한으로 결정한 사안은 ‘오케이’ 그렇게 간다는 것이다.” ―윤 대통령이 집권 반환점을 돈다. “윤 대통령에게 세 가지 제언을 하고 싶다. 하나는 한 대표와 자주 만났으면 좋겠다. 한 대표가 대통령의 오랜 후배이기 때문에 대통령은 ‘이 녀석이 말이야’라고 생각할 수 있다. 하지만 법무부 장관, 비대위원장까지는 대통령의 뜻이었지만 당 대표는 대통령이 임명한 자리가 아니다. 대통령과 당 대표의 공적 관계가 돼야지 검찰 선후배의 사적 관계가 되면 안 된다.” 그는 두 번째 제언은 인사 문제라고 했다. “국민 눈높이에 맞는 인사를 했으면 좋겠다. 이래서 안 되고 저래서 안 되고 하지만 찾아보면 괜찮은 사람이 많다. 그런데 꼭 논란이 되는 인물을 써야 하나. 쓸 사람이 저런 사람밖에 없느냐라는 인식이 계속되는 건 대통령에게 좋지 않다.” ―세 번째 제언은 뭔가. “국민과 더 소통하라는 것이다. 기자회견을 지금보다 더 자주 하는 것도 좋다. 기자들이 보기 싫고 껄끄럽더라도 몸에 좋은 쓴 약과 같다. 불편하지만 자꾸 만나고 회견하면 반드시 도움이 된다. 조롱의 대상이 되는 것도 두려워하면 안 된다. 언론인 출신 정치인으로서 드리는 고언이다.” ● “韓, 채 상병 특검법 딜레마는 분명” ―국민의힘도 집권 여당 역할을 제대로 못 한다는 비판이 많다. “1990년대 말 기자로서 신한국당을 출입했다. 30년 뒤 당에 다시 왔더니 DNA가 바뀐 게 없더라. 과거는 영남 당이어도 호남을 제외한 전국을 아울렀지만 지금은 영남 자민련으로 쪼그라들었다. 언제까지 ‘건국 이승만’ ‘산업화 박정희’만 얘기하면서 갈 수는 없지 않나. 우리 당원들은 끊임없이 변화를 요구하는데 당 지도부는 하나도 안 바뀌었다. 세대 교체, 시대 교체가 되지 않으면 이 당이 살아남을 수가 없다.” 그는 그래서 한 대표에게 전당대회에 나오라고 권했다고 했다. ―한 대표의 최근 지지율이 빠지고 있다. “당정관계가 삐걱거리고 경제 회복은 안 되는 데 대한 실망이 분명히 있다. 그건 인정해야 한다. 다만 한 대표가 의료공백 사태의 돌파구를 만들려고 노력하는 용기를 봐야 한다.” ―한 대표에게 포용력을 요구하는 이들도 적지 않다. “과거처럼 ‘형님 동생’ 하며 ‘우리가 남이가’ 이런 걸 포용이라고 하는지 모르겠다. 과거 정치 문법과 언어로 보면 ‘저런 싸가지가 다 있나. 형님이 부탁하면 들어줘야지 말이야’ 할 수 있다. 하지만 한 대표를 움직이는 판단 기준은 사람이나 감정이 아니라 논리다.” ―한 대표도 바꿔야 할 점이 있을 것이다. “한 대표는 판단이 진짜 빠르다. 속도전에 장기가 있다. (하지만) 다른 사람들이 자신처럼 그렇게 휙휙 (머리가) 돌아가지는 않는다. 한 대표 이야기를 바로 이해하지는 못한다. 빠른 결정으로 치고 나가는 것도 중요하지만 어떤 정책은 묵히고 천천히 가는 게 도움이 될 수 있다.” ―제3자 추천 채 상병 특검법이 한 대표에게 딜레마가 됐다는 지적이 나온다. “맞는 해법이지만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 수사 결과에 상관없이 추진하겠다는 한마디 때문에 야당 공격의 빌미를 제공해 본인이 굉장히 힘들어졌다. 딜레마에 처한 상황은 분명하다.” ―윤-한 관계가 집권 후반기 여권 향방을 결정할 것이다. “윤 대통령이 성공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정권 재창출이다. 윤 대통령과 한 대표는 같은 배를 탔다. 아무리 바보라도 서로 싸우다가 화난다고 밑바닥에 구멍을 뚫지 않는다. 그러면 망망대해에서 둘 다 죽는다. 두 사람을 갈라놓으려는 두 사람 주변의 사람들을 나는 간신배라 부른다.”김종혁 국민의힘 최고위원△ 1962년 인천 강화 출생△ 2012년 중앙일보 편집국장△ 2018년 JTBC 미디어텍 보도제작부문 대표(상무)△ 2021년 최재형 대선캠프 언론미디어 정책총괄본부장△ 2022년 국민의힘 비대위원△ 2024년 8월∼현재 국민의힘 최고위원.윤완준 정치부장 zeitung@donga.com}

    • 2024-09-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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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오늘과 내일/윤완준]응급실 옆 경교장

    ‘안응칠 역사’에 나오는 얘기다. “1894년 한국 각 지방에서는 소위 동학당이 곳곳마다 돌아다니며 관리를 죽이고 민중의 재산을 약탈했다. 나의 아버지는 동학당의 폭력을 견디다 못해 의병을 일으켰다.” 안중근 의사는 자서전에 그해 12월 황해도 청계산에서 ‘동학당 괴수 원용일’ 무리와 전투를 벌여 대승한 일을 적었다. ‘백범일지’에 나오는 얘기다. “나의 본진이 있는 (황해도) 회학동과 안 진사의 청계동이 불과 20리 거리라 내가 무모하게 청계동을 치려다 패하면 목숨을 보장하기 어려울 것이니 안 진사가 나를 위하는 호의로 이 밀사를 보냈다는 것이다.” 안 진사는 안 의사의 아버지 안태훈이다. 동학군과 전투를 벌이며 적개심을 드러낸 안 의사와 동학군이었던 김구 선생이 한때 서로 적으로 대치한 셈이다. 역사는 생각보다 복잡하게 얽혀 있다.역사 진영 싸움에 갇힌 응급환자 같은 한국 최근 가족이 아파 강북삼성병원 응급실에 갔다. 새삼 1945년 귀국한 김구 선생의 거처이자 임시정부 국무회의가 열렸던 경교장이 눈에 띄었다. 경교장 내부의 전시는 대한민국 정부가 모든 면에서 대한민국임시정부를 계승했다고 강조했다. 1919년을 대한민국 원년이라고 했다. 임시정부가 수립된 1919년이 건국 시점이라는 진보 진영 일각의 시각을 보여 주고 있었다. 보수 진영 일각은 1919년 건국설을 정면으로 비판한다. 임시정부는 국민 영토 정부 주권 요소를 갖추지 못했고 건국은 1948년 정부 수립 때 이뤄졌다는 것이다. 이 논란이 김형석 독립기념관장을 둘러싸고 다시 벌어졌다. 이종찬 광복회장은 김 관장이 1948년 건국절을 주장한다며 사퇴를 요구했다. 광복절은 둘로 쪼개졌다. 김 관장은 최근 국회 상임위에서 ‘1945년 광복을 인정하느냐’는 질문에 “코멘트하지 않겠다”고 했다. 그가 쓴 ‘끝나야 할 역사전쟁’을 들춰 봤다. 그는 1945년 8월 15일은 “복국(復國)의 임무를 끝내지 못한 해방기념일이고 당시 지도자들은 1948년을 독립 광복 건국기념일로 인식했다”는 취지로 썼다. 1948년 건국절을 주장하지 않았지만 1919년 건국설을 강하게 비판했다. 광복 80주년, 윤 대통령이 국론 분열 끝내라 건국절 논란의 기원은 임시정부 운영과 단독정부 수립을 둘러싼 이승만과 김구의 대립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보수 진영은 이승만이 국부라 하고 진보 진영은 김구가 국부라 한다. 해방 정국 이승만과 김구의 갈등에서 시작된 질기고 질긴 국론 분열의 역사가 지금 우리 사회를 ‘우파면 친일, 좌파는 반일’이라는 프레임으로 갈라 놓고 있는 것이다. 더 큰 문제는 이 소모적 국론 분열이 이번 광복절로 끝이 아니라는 점이다. 내년이 광복 80주년이다. 극단화된 역사의 진영 논리는 더욱 극렬해질 것이다. 김형석 관장 논란 이후 더불어민주당은 이른바 친일 행위를 미화하는 사람을 장차관이나 공공기관장으로 임명하지 못하게 하는 특별법을 당론 발의했다. 반일을 내세우며 상대 진영을 무작정 친일로 몰아붙이는 단순 논리는 곤란하다. 안중근 의사와 김구 선생 사례처럼 역사는 생각보다 복잡하게 얽혀 있다. 건국절 논란은 그런 역사를 포용하는 ‘우리’의 역사가 아니라 ‘너’의 역사로 적대한다. 윤석열 대통령이 그제 기자회견에서 “1948년 건국절을 추진하지 않는다”고 분명히 선언해 소모적 분열을 끝냈으면 좋았을 것이다. 다행히 가족은 응급실에서 치료를 받았다. 병원을 떠나며 광복 80주년을 앞두고도 이 역사의 진영 싸움에서 한 치도 벗어나지 못하는 우리 사회가 응급 환자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윤완준 정치부장 zeitung@donga.com}

    • 2024-08-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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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오늘과 내일/윤완준]윤-한 러브샷 뒤의 김건희

    제안은 윤석열 대통령이 했을 것이다. 한 참석자는 “한동훈 대표가 누가 시킨다고 하는 성격이냐”고 했지만 두 사람 성격을 볼 때 한 대표가 먼저 제안했을 리는 없다. 윤 대통령은 맥주잔, 한 대표는 평소 즐겨 마시는 제로콜라 잔을 들었다. 두 사람의 러브샷에 24일 만찬 참석자들이 박수를 쳤다. 총선 때 돌이킬 수 없다는 평가까지 들으며 정면충돌했던 두 사람이 잔을 부딪치는 모습에 대통령실은 “당정이 결속하는 건 선택의 문제가 아니라 당위”라고 수차례 강조했다.통 큰 선배와 변화 요구하는 후배 여권 관계자들은 총선 때와 달리 두 사람이 당장 극한 충돌로 치닫지는 않을 것이라고 했다. 두 사람을 잘 아는 한 의원은 “두 사람은 치열하게 싸우다가도 대의를 앞세우는 사람들”이라며 “충돌하다 정권 재창출을 못 했을 때 가장 타격을 크게 받는 게 바로 자신들”이라고 했다. 지난 대선 때 여유 있는 승리를 자신하다 0.73%포인트 차로 간신히 이긴 구도에서 3년 뒤 대선이 더 불리하면 불리하지 유리하지 않은 지형임을 두 사람 다 잘 알 것이라는 얘기다. 여권의 다른 고위 관계자는 “검찰에서 선후배 검사 사이는 원래 그렇게 싸우는 사이”라고 했다. “왜 시키는 대로 안 해”라고 후배 검사를 깼다가 시키는 대로만 하면 “왜 네 생각대로 안 해”라고 또 싸우는 세계에서 온 사람들이니 심하게 싸웠다고 오랜 신뢰가 깨지지는 않을 것이라는 얘기다. 24일 만찬에서 윤 대통령이 한 대표에게 했다는 말이 생각났다. “술은 안 마시더라도 술자리도 자주 해라, 상갓집도 가야 한다”고 말했다는 것이다. 술은 한 모금도 입에 안 대는 한 대표에게 사람들과 더 자주, 폭넓게 만나라는 통 큰 선배의 조언이었을 것이다. 한 대표는 윤 대통령과의 관계를 선후배로만 보지 않을 것이다. 그는 두 사람 관계가 선후배 관계를 넘어 공적 관계라는 점을 말해 왔다. 한 대표는 “압도적 득표율의 당심과 민심이 63%로 같게 나타난 점이 중요하다”며 당심과 민심 모두 당정 관계의 변화를 원한다고 강조하고 있다. 윤 대통령이 ‘다시는 충돌하지 말자’며 손을 내밀었지만 갈등의 핵심 원인을 풀지 않고 러브샷의 여운이 오래 지속될 수 있을까.러브샷보다 제2부속실 설치 두 사람 충돌의 핵심은 김건희 여사다. 한 대표의 당선 당일 발언 가운데 눈에 띄는 대목도 “검찰이 김 여사 수사 방식과 조사 장소를 정할 때 국민 눈높이를 고려했어야 한다”는 것이다. 한 대표가 1월 김 여사의 디올백 수수 논란에 대해 “국민 눈높이에서 생각할 문제”라고 했다가 사퇴를 요구받은 그 ‘국민 눈높이’를 다시 꺼낸 것이다. 두 사람이 김 여사 문제를 둘러싸고 다시 갈등할 가능성은 언제든 남아 있다. 김 여사를 둘러싼 논란은 대통령 부인이라는 공적 지위에 오른 뒤 사인(私人) 시절 알았던 사람이라도 만남을 조심하고 신원이 분명하지 않은 사람은 새로 만나지 않아야 하는 기본 처신을 제대로 못 한 데서 시작됐다. 올해 1월만 해도 대통령실 내부에선 미국처럼 대통령 배우자의 법적 지위를 분명히 명시해야 한다는 논문이 공유됐다. 영부인을 공식적으로 보좌하며 문제를 예방할 제2부속실 설치를 검토했다. 하지만 흐지부지되다 지금은 아예 만들지 않으려 한다. 윤-한 관계를 새로 정립할 여러 방법 중 한 가지는 러브샷보다 김 여사 문제에서 윤 대통령이 변화하는 것이다. 국민 눈높이에서 당장이라도 할 수 있는 게 제2부속실 설치다. 윤완준 정치부장 zeitung@donga.com}

    • 2024-07-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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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오늘과 내일/윤완준]이재명, 수박이 될 수 있나

    한 친명 의원은 “더불어민주당에 협치를 하라는 주장이 정말 현실을 모르는 것”이라며 이같이 이유를 설명했다.그가 말한 핵심은 민주당이 ‘240만 권리당원들이 주인 되는 정당’으로 완전히 새롭게 탈바꿈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 권리당원들의 절반 가까이가 민주당 이재명 전 대표가 대선 경선을 치렀던 2021년 이후 입당했다.그럼 그들은 주로 누구인가. 친명 의원의 설명에 따르면 극도로 양극화된 사회의 피해자들이 많다. 하루하루 허덕이며 생존해야 하는 삶으로 몰린 약자들이 많다. 그는 전세사기 피해자들을 예로 들었다. “전세사기 문제를 빨리 해결해 달라고 총선도 표를 몰아줬으니 당장 관련 법을 통과시키고 윤석열이가 거부권 행사하지 못하게 하라.” 이게 그들의 목소리라는 것이다. 이런 이들 앞에서 협치하겠다고 세월아 네월아 하는 걸 당원들이 받아줄 리 없다는 것이다.“협치 주장, 현실 모른다”는 친명그럼 그 당원들이 왜 이재명을 지지하는가. 친명 의원들의 설명은 이 전 대표가 “기존 정치권 바깥에서 생존을 쟁취해온 정치인이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물려받은 것 없고 하루하루를 생존해 가야 하는 많은 당원들이 그래서 이 전 대표에게 동질감을 느낀다는 것이다. 그래서 그들의 요구를 즉각 이행할 ‘생존과 쟁취의 이재명’ 아니면 그들도 ‘이재명의 민주당’을 지지할 이유가 없다는 설명이었다.민주당이 총선 이후 부쩍 ‘정치 효능감’을 얘기하는 것도 이런 이유다. 총선에서 압승해 국회를 장악했음을 당원들이 피부로 느끼도록 뭐라도 해야 한다는 것이다. 국회 법사위원장을 맡은 정청래 의원이 증인을 불러 벌 세우듯 호통친다. 운영위원장을 맡은 박찬대 원내대표가 ‘순한 맛’으로 회의를 진행하자 강성 지지층들은 “정청래 못 봤느냐” “박찬대 자르고 정청래를 운영위로 보내라”라고 한다. 이렇다 보니 민주당 의원들 너도나도 ‘강성’이 되려 한다.“시도 때도 없는 문자, 전화가 응원과 격려가 아니라 고통을 주는 것”이라며 전화번호를 바꿔야겠다고까지 말한 이 전 대표의 호소가 괜히 나온 것이 아니다. 강성 당원들 눈에는 ‘이재명을 가장 잘 뒷받침할 것으로 보였던’ 추미애 의원이 국회의장 민주당 경선에서 탈락한 뒤 탈당이 이어지자 이 전 대표는 국회의장 경선에, 원내대표 선거에 권리당원 투표권을 반영하라는 당원들의 요구를 받아들였다. 이 전 대표도 강성 당원들을 무서워할 수준에 이른 것이다. 친명 강성으로 분류되는 한 의원도 “이 전 대표의 민중 지향성이 과도해지면 대중 추수주의가 될 수 있다”고 우려했다고 한다.대표 연임, 李에 양날의 칼그래서 다음 달 연임은 이 전 대표에게 양날의 칼이 될 것이다. 9월 결심, 10월 선고가 예상되는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 재판 등 사법리스크 앞에 이 전 대표는 더욱 강성 지지층에 기대려 할 것이다. 하지만 여론조사를 보면 민주당 지지율이 국민의힘보다 낮다. 윤석열 대통령 지지율이 바닥이라지만 민주당 지지율이 그와 큰 차이가 나지 않는다. 계속 야당으로 독주하겠다면 지금처럼 하면 된다. 하지만 집권을 위한 수권정당으로 가겠다면 상황이 달라진다. 친명 좌장 정성호 의원은 인터뷰에서 “열성 당원들을 설득할 사람은 이 대표밖에 없다. 강성 지지층 견해가 국가 공동체 전체 이익과 다른 부분이 있다면 이 대표가 설득해야 한다”고 했다.지금 민주당에서 협치를 얘기하면 비명계 의원들을 비하하던 ‘수박’ 소리를 듣는다. 이 전 대표는 수박 소리를 들어가며 강성 당원들을 설득할 수 있나. 윤완준 정치부장 zeitung@donga.com}

    • 2024-07-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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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월요 초대석]“민주당, 집권세력처럼 행동말고 겸손해야… 李대표, 반대자 포용을”

    《더불어민주당 정성호 의원(5선)은 지난달 28일 인터뷰 전날 저녁에도 이재명 대표와 통화했다. 통화 당시 함께 있었던 사람들은 정 의원에게 “진짜 친명 좌장이시네”라고 했다. 정 의원에겐 ‘7인회 출신 원조 친명’이라는 수식어가 붙는다. 정 의원(63)이 이 대표보다 두 살 많은 형 동생 사이일 뿐 아니라 서로 인간적인 신뢰가 두텁다. 이 대표는 정 의원과 자주 연락하고 의견을 묻는다. 친명 핵심들이 모두 인정하는 사실이다 . 4월 총선 이후에도 이 대표는 정 의원과 만나 민주당이 가야 할 방향에 대해 장시간 얘기했다. 정 의원이 5월 국회의장 민주당 경선에 불출마한 뒤에도 두 사람이 만나 당내 상황과 국회 운영 방안에 대해 긴 시간 대화를 나눴다.》당시 이 대표는 연임 여부에 대해서도 정 의원에게 물었다. 자신의 거취를 상의할 정도로 신뢰한다는 얘기다. 사법연수원 시절부터 이 대표가 어려워하는 형이었지만 정 의원은 “이 대표를 존경한다”고 스스럼없이 얘기한다. 그는 “내가 신뢰하는 걸 아니 이 대표도 내가 무슨 얘기를 해도 이해해준다. 이 대표를 성공한 대통령으로 만들고 싶은 마음밖에 없다”고 했다. 정 의원은 민주당에 대한 쓴소리도 마다하지 않는다. 가까운 사람일수록 직언해야 한다는 게 그의 소신이다. 이 때문에 이 대표 강성 지지층인 ‘개딸’로부터 비명계를 비하하는 표현이었던 “수박” 비난을 듣고 있다. 정 의원 휴대전화로 욕설 문자를 보내고 사무실로도 전화해 욕한다고 한다. 이날 인터뷰를 시작하며 ‘친명 좌장으로서 민주당이 가야 할 길에 대해 무게감 있는 말을 듣고 싶다’고 했을 때 정 의원은 “비명횡사해서 무게감이 없는데”라고 농담을 던졌다. 강성 지지층들의 비난에 대한 뼈 있는 응수였다. “문자 폭탄에 전혀 신경 쓰지는 않습니다. 강성 지지층의 비판을 받지만 사익이나 자리를 탐하려는 게 전혀 아니니까요. 민주당이 수권정당으로 나아갈 수 있도록 국민들의 목소리를 전달할 책임이 국회의원에게 있지 않습니까.” 그는 “나는 체질적으로 비주류다. 당권이나 권력 가진 사람에 대한 맹목적 거부가 아니라 상식과 합리에 기반해 문제를 지적하려는 자세를 유지하려 노력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정 의원은 이 대표 체제 전까지 민주당의 대표적인 비주류였다. ―이 대표와 연임에 대해 어떤 얘기를 나눴습니까. “연임하면 이재명 일극체제로 간다는 비판이 나올 것이지만 그럼에도 이 대표가 가장 확고한 리더십과 구심력이 있지 않습니까. 그러니 연임이 불가피하다, 다른 선택의 여지가 없다고 얘기했습니다.” ―유인태 전 국회 사무총장은 ‘당 대표 선거에서 이 대표와 붙으라 하면 돌았냐 소리 들을 것’이라고 했습니다. “무리한 비판입니다. 유 전 사무총장 등이 하는 말은 이재명 일극체제 들러리 서는 것 아니냐는 것인데 이 대표가 의도적으로 만든 상황은 아니에요. 중요한 것은 이 대표가 연임한 뒤 어떻게 당을 운영할 것인지, 어떤 리더십을 보일지이지요.” ―어떻게 해야 ‘일극체제’ ‘사당화’ 우려나 비판을 극복할 수 있습니까. “민주당이 국민들의 신뢰를 얻어 수권정당 모습을 갖게 만드는 것이 가장 중요합니다. 신뢰를 받기 위해 민주당이, 민주당 의원들이 가져야 할 태도는 겸손입니다.” ―국회가 개원하자마자 민주당이 보인 모습은 오만해 보인다는 지적이 많습니다. “이 대표가 가장 많이 인용하는 말이 국민이 주인이라는 겁니다. 우리는 국민으로부터 권한을 위임받았기 때문에 국민 앞에 겸손해야 합니다. 국민들을 가르치려 하고 오만해 보이면 망하는 길이에요. 국회 운영 과정에서, 상임위원회 활동에서 정말 겸손한 태도를 보여야 합니다.” ―하지만 지금은 의석수로 밑어붙이는 일방적 독주 같습니다. “국회는 일당독재 체제가 아닙니다. 일방적으로 가는 모습을 보이면 안 됩니다. 그래서 협치를 강조하는 겁니다. 우리 민주당이 정부 여당과 소통하려는 자세를 보이는 것이 겸손한 태도입니다. 제가 협치 얘기하면 ‘수박’ 소리 듣지만 국회는 협의제 기구입니다.” ―최근 법사위에서 민주당 소속 정청래 위원장과 국민의힘 유상범 의원 간 설전처럼 코미디 같은 일도 벌어졌습니다. “수권정당으로 가려면 민주당이 보이지 않아야 할 모습입니다. 불필요한 일이죠.” ―국민들은 태도로 평가합니다. “사실 태도가 본질입니다. 본질이 태도로 나타나는 거예요. 위원장이 감정적으로 대응하고 여당이 윤리위 제소하겠다고 하는데, 싸움은 똑같은 사람들끼리 하는 겁니다. 악순환이죠.” ―민주당은 또 뭘 보여줘야 합니까. “실력입니다. 민주당이 혁신해서 다수 국민들의 뜻에 맞는 정책을 제대로 준비해야 합니다. 진보정당이 보수 정책도 필요하면 수용해야 합니다. 그래야 과거와 다른 정책 역량을 보여줄 수 있습니다. 국회에서 장관에게 호통 치는 모습이 아니라 정부 실무자를 찾아 목소리를 듣고 대안을 만들고, 그걸 가지고 정부 여당과 협상하는 실력을 보여줘야 집권할 수 있습니다.” ―협치 얘기하면 ‘수박’ 소리 듣는데 이 대표 강성 지지층들이 가만있을까요. “여야가 강하게 부딪치는 법안은 국회 제출 법안의 5%도 안 됩니다. 이 대표 연임 뒤 종부세, 상속세 등에서 당내에서, 또 지지자들 의견이 서로 다를 수 있습니다. 그럴 때 의원들과 열성 당원들을 설득할 사람은 이 대표밖에 없습니다.” ―이 대표가 욕을 먹더라도 강성 지지층을 설득하는 리더십을 발휘해야 한다는 뜻인가요. “그렇습니다. 민주당 의원들도 당원과 지지자 지지로만 당선된 건 아니에요. 저를 찍은 분들도 민주당 당원과 지지자뿐 아니라 중도적인 국민들이 많이 있어요. 지방선거와 대선에서 승리하려면 윤석열 정권에 실망한 분들이 민주당을 신뢰할 수 있도록 확신을 줘야 합니다. 중도층과 합리적 보수층 가운데 나라를 걱정하는 분들의 마음을 얻어야 합니다. 그런 면에서 이 대표가 협치하는 모습을 보이는 게 필요합니다.” 정 의원은 “강성 지지층 견해가 국가 공동체 전체 이익과 다른 부분이 있다면 이 대표가 설득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강성 신명(신친명)들이 이 대표 호위무사 친위부대처럼 행동한다는 지적이 많습니다. “이 대표 덕분에 대부분 당선됐으니 당원 목소리를 반영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국회의원들이 지지자들만 바라보는 정치를 해선 안 됩니다. 국가공동체를 생각해야죠. ‘윤 대통령이 극우 유튜브만 보며 정치적 판단을 한다’는 비판도 있지 않습니까. 반면교사로 삼아야 합니다. 민주당도 그러면 안 됩니다.” ―최고위원 출마자들이 ‘명비어천가’만 부른다는 지적도 적지 않습니다. “왜 자신이 최고위원으로 나왔는지, 민주당이 앞으로 어떻게 혁신해야 하는지, 어떻게 수권 역량을 길러낼지 자신의 비전을 제시하고 평가받으며 경쟁해야 합니다.” ―민주당 지지율이 박스권에 머물고 있습니다. “한 여론조사를 보면 민주당 지지율이 윤 대통령 국정 수행 긍정 평가와 비슷합니다. 이제 민주당은 윤 대통령 심판론 혜택을 보는 데만 그치면 안 됩니다. 다수당으로서 성과를 내야 하고 성과를 내려면 협치를 해야 합니다.” 정 의원은 이 대목에서 “겸손한 태도를 말씀드렸다. 우리가 마치 집권한 세력처럼 행동하면 안 된다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민주당이 집권당 세력처럼 행동하면 안 된다는 것이 어떤 뜻입니까. “국정 운영의 최종 책임은 대통령과 집권당이 갖고 있습니다. 국회에서 다 할 수 있는 게 아니라는 겁니다. (민주당이 다수당이지만) 민주당만으로 할 수 있는 건 없습니다. 우리가 집권당이 아닌데 집권당처럼 하면 안 됩니다. (다수당이 된) 효능감을 지지자들에게 보여주려면 민주당만으로 다 되는 게 아니라는 걸 설득하고, 협치해야 할 사안은 협치하는 노력이 필요합니다. 그러면서 집권당 대통령의 변화를 요구해야 합니다. 그래야 수권 정당이 됩니다.” ―윤 대통령은 어떻게 변해야 합니까. “여당 변화는 결국 대통령의 변화입니다. 야당과의 관계에서 대통령이 여당을 자유롭게 풀어줘야 합니다. 그래야 대통령 눈치 안 보고 여당이 야당을 만날 수 있습니다.” 인터뷰 말미에 이 대표가 앞으로 어떤 리더십을 보여야 하는지 물었다. 정 의원은 “유능한 혁신”과 “포용” 두 가지를 들었다. “이 대표가 성남시장 경기도지사일 때 인기가 높았던 건 혁신적 정책을 과감하게 추진했고 거기에 국민들이 박수를 보냈기 때문입니다. 두 번째는 포용입니다. 사실 이 대표가 그동안 반대자를 포용하는 모습을 보이지 못한다는 지적을 받았습니다. 물론 당내 비주류들이 이 대표에 대한 선입견만으로 비판하는 측면이 있었죠. 그럼에도 이 대표가 좀 더 반대자에 대해 포용력 있는 리더십을 보여야 합니다. 협치도 포용에서 나옵니다.” 정성호 의원 프로필△강원 출생(63) △대신고, 서울대 법대 졸업△사법연수원 18기△제17·19·20·21·22대 국회의원(2004∼2008년, 2012년∼현재)윤완준 정치부장 zeitung@donga.com}

    • 2024-06-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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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오늘과 내일/윤완준]미국 입장과 반대 선택을 할 때는

    요즘 각국 외교장관 중엔 회담 뒤 상대국과 휴대전화 번호를 주고받는 이들이 많다. 이후 메신저를 통해 바로바로 의견을 교환한다. 정부 당국자들의 얘기를 들어보니 조태열 외교부 장관도 그중 한 명이다. 급히 확인해야 할 각국 입장이나 정보가 있으면 비행기에서, 차로 이동 중에도 상대국과 직접 소통한다고 한다. 이를 통해 외교정책 의사결정을 위한 중요한 근거를 확보할 때가 적지 않다. 미 동맹 호주도 우리와 같은 선택 확인 민감한 팔레스타인 관련 정책을 결정할 때도 그런 일이 있었다. 정부는 지난달 10일(현지 시간) 유엔 총회에서 “팔레스타인의 유엔 회원국 가입을 긍정적으로 재고하라”는 권고를 안전보장이사회에 보내는 결의안 채택 표결에 참여했다. 선택은 찬성표였다. 143개국 찬성으로 결의안이 채택됐다. 그런데 문제가 하나 있었다. 팔레스타인 유엔 회원국 가입은 한국의 동맹 미국이 거부하는 이슈다. 이번에도 미국은 이스라엘과 함께 반대표를 던졌다. 한국의 선택은 이례적이다. 2012년 팔레스타인의 옵서버(참관국) 인정 표결 때는 기권했었다. 찬성표를 던지기 한 달 전인 올해 4월 18일에도 정부는 팔레스타인 유엔 가입을 권고하는 결의안의 안보리 표결 때 안보리 이사국 자격으로 참가했다. 그때도 찬성표였다. 상임이사국인 미국이 거부권을 행사해 결의안은 부결됐다. 미국이 반대하는 이슈에서 두 차례 연속 한국이 미국과 상반된 입장을 선택한 것이다. 그 배경은 이렇다. 국제사회에서 공감을 얻는 ‘이스라엘 -팔레스타인 두 국가 해법’에 동참한다는 원칙을 따랐다는 설명이다. 1948년 대한민국 정부 수립 이후 48년이 지난 뒤에야 유엔에 가입한 우리 역사도 고려 대상에 있었을 것이다. 중동 산유국, 개발도상국들로 경제외교를 확대하는 실리와도 관련돼 있을 것이다. 그런데도 4월 안보리 표결에 이어 유엔 총회 때 또 찬성표를 던지는 건 부담이었다. 실제 “미국을 고려해 이번엔 기권해야 하는 것 아니냐”는 의견도 나왔다고 한다. 한국만 미국 동맹에서 이탈했다는 비판이 나올 수도 있는 상황. 조 장관은 미국의 다른 동맹들이 찬성표를 던진다면 부담을 덜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조 장관은 이전에 호주 측과 팔레스타인 유엔 가입 문제를 토론한 적 있었다. 호주 측은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이 서로 국가로 인정하지 않는 상황에서 팔레스타인의 유엔 가입을 인정하기 어려울 것이라는 견해였다. 조 장관은 남북도 서로 인정하지 않지만 모두 유엔에 가입해 있다고 얘기했다는 게 당국자들의 전언이다. 호주 야당은 팔레스타인의 유엔 가입을 격렬히 반대했기에 호주가 5월 유엔 총회에서 찬성할지는 미지수였다. 표결 전 조 장관은 메신저로 호주 측과 의견을 나눴다. 호주 측이 곧바로 답했다. 찬성표를 던지기로 했다는 것. 조 장관은 마음이 놓였다. 미국의 파이브아이스 기밀정보 동맹이자 오커스 동맹인 호주가 찬성하면 부담이 적다. 유엔 총회 결과 일본도 찬성했다. 한미 관계의 까다로운 외교 이슈에서 실리도 명분도 얻었다. 현장 외교전, 정책 혼선에 참고해 보라 조 장관이 한 것은 국내로 보면 정책 발표 전 민심 파악을 위한 여론조사인 셈이다. 해외 직구 금지 등에서 연달아 보인 정책 혼선 논란이 떠올랐다. 민심과 동떨어진 정책을 고집하다 벌어진 일들이다. 문제가 어디 있는지 모르겠다는 정책입안자들은 팔레스타인 문제 외교전을 참고해 봐도 좋을 것이다. 윤완준 정치부장 zeitung@donga.com}

    • 2024-06-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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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오늘과 내일/윤완준]이만섭은 왜 무당적 국회의장이 됐나

    국회법은 국회의장의 당적 보유를 금지하고 있다. 이 국회법이 공포된 건 2002년 3월이다. 그 전까지만 해도 국회의장은 대통령이 내정할 때가 많았다. 국회의장은 권력의 눈치를 봐야 했다. 국회의장이 날치기 통과에 앞장서기도 했다.“청와대 소속당 눈치 안 보고 공정하고 싶었다” 작고한 이만섭 전 국회의장이 민주자유당 소속으로 1993년 14대 국회 전반기 의장이 됐을 때도 김영삼 당시 대통령이 지명했다. 새천년민주당으로 당적을 옮긴 그가 2000년 16대 국회 전반기 의장이 됐을 때부터 그는 의장은 당적을 가지면 안 된다고 강조하기 시작했다. 그가 의장이던 2002년 3월 국회의장의 당적 보유를 금지한 국회법이 공포됐다. 그 직후 그는 새천년민주당 당적을 포기했다. 당시 기사들은 그가 1948년 제헌국회 개원 이래 사상 첫 무당적 국회의장이 됐다고 기록했다. 그가 국회의장의 당적 포기를 주장한 이유를 들어보자. 2002년 4월호 신동아 인터뷰다. “국회의장이 청와대 눈치 안 보고 또 자기가 속해 있는 당의 눈치를 보지 않고 올바르게 국회를 운영할 수 있는 제도적 뒷받침을 마련한 겁니다. 국회를 민주적으로 운영할 수 있도록 진일보한 것이죠.” 그는 ‘친정 눈치를 안 볼 수 있겠느냐’는 질문에도 “당적을 떠나도 내가 돌아갈 당을 생각하면 불공정할 수 있지만 그래도 안 떠나는 것보다 낫다”고 했다. 그는 1963년 6대 국회 때부터 의원을 했다. 한평생 사무친 것이 국회 날치기였다고 회고했다. 그래서 평생 소원이 청와대나 소속 정당 눈치 보지 않고 공정한 사회를 보는 것이라 했다. 실제로 그는 YS가 임명했음에도 14대 국회의장 때인 1993년 12월 법정 기일 내에 정당법 안기부법 통신비밀보호법과 예산을 어떻게 해서라도 처리하라는 YS의 요구를 거절했다. 청와대 오찬에서 YS에게 “옛날엔 날치기를 반대해 놓고 왜 그러냐”고 한 뒤 자리를 떴다. 이 전 의장은 YS가 요구한 기일을 넘겨 여야 합의로 통과시켰다. 의장으로서 가장 보람 있었던 때를 그때로 꼽았다. 이 전 의장의 그 강단을 생각하면 정치는 수십 년 동안 오히려 퇴보했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지금 22대 국회의장 경쟁에 뛰어든 더불어민주당의 6선, 5선 중진 의원들은 너도나도 의장의 정치적 중립성을 포기하겠다고, 이재명 대표 정책을 밀어붙이겠다고 대놓고 얘기한다. 자신이 친명(친이재명) 인사라서 의장이 돼야 한다고 말한다. 강성 친명 그룹으로 이제 민주당의 최대 계파가 된 더민주혁신회의의 지지를 받아야 의장이 될 수 있다며 이들의 지지를 호소한다. 국회의장이 이 대표 눈치를 봐도 된다는 노골적 선언이다. 민주당 안에서는 “이 대표의 의중은 누구에게 있다” “마음이 완전히 누구에게 가 있다” “그래서 누구는 출마를 접었다” “이 대표의 의중이 곧 의원들에게 전달될 것”이라는 말이 공공연히 나온다. ‘꼭두각시 의장’ 자처하는 오늘, 정치의 퇴보 국회의장 무당적을 이뤄낸 이만섭의 고집을 돌아보면 지금의 ‘꼭두각시 선언’들이 한심하다. 한 전직 의원은 “지금 한국엔 정당이 실종됐다. 강성 유튜브 매체의 시대가 왔다”고 했다. 강성 팬덤에 기대고 정당은 기능부전 상태라는 것이다. 이 전 의장은 16대 국회 취임사에서 “의사봉을 칠 때마다 한 번은 여당을 보고 한 번은 야당을 보며 마지막으로는 국민을 바라보며 양심의 의사봉을 칠 것”이라고 했다. 그는 의사봉 자체는 가벼워 쉽게 두드릴 수 있다고 했다. 22대 국회의장은 의사봉을 칠 때 어디를 바라볼 것이며 의사봉의 무게를 어떻게 느낄까. 윤완준 정치부장 zeitung@donga.com}

    • 2024-05-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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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데스크가 만난 사람]“존폐 위기 與, 수도권 민심에 닿을 촉수가 없다”

    《“총선 때 국민의힘이 뭘 잘못했는지 묻는 건 질문이 잘못됐어요.”국민의힘 윤희숙 전 의원은 선거 참패의 결정적 원인을 묻자 대뜸 이렇게 강조했다. 누구나 물을 법한 이 질문에 문제를 제기한 건 의외였다. 하지만 1시간 반여 인터뷰를 진행하며 이 도발적 반박이 그가 반복해서 강조한 “존폐 위기에 놓인 보수정당”을 관통하는 핵심임을 알 수 있었다.》국민의힘이 총선에서 참패한 지 8일 만인 18일 서울 종로구 경제사회연구원에서 만난 그는 선거에서 나타난 문제는 “증상일 뿐”이라고 했다. 증상을 나타나게 한 본질적 문제는 훨씬 더 깊은 곳에서 치유가 불가능할지도 모르게 곪아가고 있다는 게 그의 진단이다. “이번 선거 때 뭘 잘못했는지 묻는 건 단기적이고 대증적이에요. 이번 선거는 이미 여당이 불리한 판에서 시작했습니다. 그 불리한 판을 만든 여당의 문제가 뭘까요.” 그는 “집권 2년간, 아니 4년 전 총선 참패 이후, 더 나아가면 20년 전 한나라당 천막당사 시절로 거슬러 올라간다”고 했다. 윤석열 정부 집권 2년간 정부 여당의 가장 큰 문제는 “민심에 둔감했다”는 것이다. 4년 전 국민의힘 전신 미래통합당이 참패했을 때도 똑같은 문제의식이 당내에서 나왔다. “그런데 4년간 달라진 게 없어요.” ‘차떼기당’ 비판 속에 ‘한나라당’ 간판을 떼고 천막을 쳤던 2004년. “그때도 민심에 둔감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원외에서 주민과 함께 호흡하며 언젠가 보수정당을 지지할 잠재적 지지층을 확대하는 것이 살길이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지금 달라진 게 있나요?”● “미움받는다는 느낌” 서울 서초갑에서 여유 있게 당선된 4년 전과 달리 윤 전 의원은 험지로 꼽히는 한강벨트 중-성동갑에서 그의 말대로 “어려운 선거”를 치렀고 낙선자가 됐다. 윤 전 의원은 그동안도 정부 여당에 대한 쓴소리와 직언으로 유명했다. 그런 그도 인터뷰 전 “지금 당이 완전 초상집이기도 하고, 낙선자로서 인터뷰하는 것이 이른 감이 있어 주저했다”고 했다. 설득 끝에 인터뷰에 응한 그는 “보수정당의 존폐”까지 거론하며 더욱 독하게 국민의힘이 처한 문제의 본질을 짚었다. 이번 선거 경험이 크게 영향을 미쳤을 것이다. 그래서 그가 이번 선거 때 들은 민심을 먼저 물었다. “지지하지 않는 분들도 만나잖아요. 보수정당이 어떻게 해야 한다, 터놓고 얘기하는 분들이 없어요. 그만큼 우리 당에 신뢰가 없다는 점을 깨달았습니다. 오히려 적개심을 보이고 무엇보다 미움받는 느낌이었어요. 보수정당은 ‘있는 사람을 위한 정당 이미지’라는 거예요. ‘너는 괜찮아도 당이 싫어서 찍지 못하겠다’ 이런 상황을 바꾸지 못하면 보수정당의 미래는 없어요.” 그는 이 말을 덧붙였다. “그런 문제가 있다는 걸 스스로 느끼지 못할 정도로, 그만큼 민심에 둔감할 정도로 촉수가 망가져 있다는 게 더 큰 문제예요.”● “수도권 민심 느낄 촉수가 끊겼다” 그가 말한 민심은 정확히 말하면 “수도권 민심”이다. 수도권 중에서도 여당 텃밭인 강남을 제외한 곳이다. 여당에 마음을 주지 않는, 아니 심지어 “미워하는” 시민들의 민심이다. 102 대 90. 그는 이 수치를 제시했다. 102는 더불어민주당이 수도권에서 차지한 지역구 의석수다. 90은 국민의힘이 전국에서 얻은 지역구 의석수다. “민주당이 수도권에서 얻은 의석수보다 국민의힘이 전국에서 얻은 의석수가 적어요. 이런 상태가 계속되면 정당의 존립 자체가 위협받게 되는 거죠. 정말 밑바닥으로 내려가 길을 찾지 않으면….” ―수도권 민심이 왜 중요합니까. “전국 민심의 풍향계입니다. 전국에서 이촌향도한 사람들이 다 모여 있잖아요. 글로벌 도시로 상식과 합리성에 대한 기대도 높아요. 다시 말하면 전국의 민심이 응축돼 있을 뿐 아니라 정치 수준에 대한 기대치가 높은 거죠.” ―그런데 그 민심에 둔감하다는 건…. “그 민심을 온몸으로 느낄 촉수가 국민의힘의 몸에 없어요. 예민한 수도권 민심을 빨아들일 촉수가 다 끊겨 있다는 말입니다.” ―왜 그렇게 됐습니까. “이번 선거를 치르면서 정말 많이 느꼈어요. 수도권 출신 정치인이 당에서 전혀 목소리를 내지 못하는 구조예요. 4년 전에 대패했을 때 제가 초선이었죠. 그때도 똑같았어요. 당 이름을 바꾸고 이름에서 보수를 빼고, 이는 전혀 본질이 아니에요.” 윤 전 의원은 여기에 국민의힘의 패착이 있다고 짚었다. “수도권에서 전멸했으면 수도권 시민들과 소통하고 그들에게 필요한 정책을 제시하는 게 정당이 할 일인데, 전혀 안 했어요.” 그의 목소리가 커져 갔다. “왜 그러냐고요. 수도권 정치인들은 대부분 낙선자들이거든요. 당선인보다 낙선자가 더 많죠. 그들이 선거 이후 시민들과 만나며 무엇에 실망했고 삶의 어떤 어려움을 해결해 줘야 하는지 듣도록 당이 지원하지 않았습니다. 그런 구조 자체가 없어요.” 윤 전 의원은 “지금도 선거 패배 수습을 위한 매우 피상적인 얘기만 오가고 있다”며 “이러면 4년 뒤 총선에서 수도권 의석수는 더 쪼그라들 것”이라고 했다.● “산업화 세대-강남 영남 의존 안 돼” ―그럼 어떻게 해야 합니까. “산업화의 승리의 기억을 가진 세대에만 의존하거나 특정 지역에 의존하면 안 돼요. 고단한 삶을 사는 주민들에게 위로가 되고 희망이 되는 당으로 가려면 촉수를 그 외 세대와 지역으로 뻗어야 합니다.” 그가 말한 특정 지역은 강남과 영남이다. “어느 사회나 두 날개를 가져야 해요. 진보적인 철학에 매력을 느끼는 젊은이도 있고 보수적인 철학에 자긍심을 느끼는 젊은이도 있어요. 그런데 보수적 지향을 가졌거나 가질 수도 있는 젊은이들을 당으로 끌어들이는 통로가 없잖아요. 보릿고개 기억을 가진 고령층 이외 세대들이 보수정당을 왜 사랑해야 하는지, 그에 대한 답이 끊임없이 재생산되고 흘러내려 가야 해요. 그런데 그 회로가 막혀 있어요. 이들이 우리 당의 잠재적인 지지자들인데 말이죠. 이들과 소통하도록 당이 체질을 근본적으로 바꿔야 해요.” ―구체적으로 무엇이 바뀌어야 합니까. “낙선자를 포함해 수도권 충청의 민심을 전할 수 있는 이들이 지역에서 주민들과 호흡하고 우리가 꿈꾸는 사회가 뭔지 계속 공감대를 넓혀 가도록 당의 체질을 바꿔야죠. 이들 지역의 3040 낙선자들의 당협 활동을 경제적으로 지원하고 당직에 기용해 당내 의사 결정에 참여하도록 해야 해요.”● “손을 잡아 일으키는 지혜로운 포퓰리즘” ―그게 정책으로 연결돼야 실력 있는 정당이 되는 것 아닐까요. “그렇죠. 지금 정부가 능력 있는 사람을 밀어주고 규제를 완화하는 건 잘하고 있다고 봐요. 하지만 고단한 삶을 살아가는 서민들, 사회적 약자들에 대한 애정을 더 보여야 합니다. 정치의 본질이 그것이죠.” 그는 이 대목에서 “지혜로운 포퓰리즘”이라는 표현을 썼다. ‘포퓰리즘 파이터’로 불리며 전임 정부의 현금 살포성 정책을 강하게 비판해온 윤 전 의원이 이런 말을 한 건 의외였다. “지혜로운 포퓰리즘은 나라를 말아먹는 갈라치기 포퓰리즘과는 달라요. 불안한 시대에 어려운 상황에 처한 국민에게 정부가 사랑한다는 걸 느끼게 해주는 거죠. 이를 표현하는 방법은 그 어려움을 헤쳐나갈 버팀목을 제공하는 거예요. 모든 사람에게 돈을 뿌리며 쇠고기 사먹으라고 하는 게 아니에요. 고물가로 고통받는 서민을 위해 돈을 왜 못 씁니까. 재정건전성은 이런 어려운 상황에 어려운 이들을 위해 돈을 쓰라고 유지하는 겁니다. 지금은 재정건전성을 어느 정도 허물어서라도 한계에 몰린 이들이 다시 일어설 수 있게 지원하는 것이 지혜로운 포퓰리즘입니다.” ―따뜻한 정당으로 지향점을 바꿔야 한다는 것인가요. “그동안 보수정당에 결핍된 것이 ‘내가 다시 일어날 수 있게 손을 잡아주는 따뜻한 느낌이 없다’는 점이에요. 당의 지향을 바꿔야 합니다. 이것 역시 민심에 둔감하면 깨닫지 못합니다. 그러면 당의 미래는 없는 거죠.” 윤 전 의원에게 총선 참패 이후 윤석열 대통령이 보인 모습에 대한 평가를 여러 차례 물었다. 그는 “직언은 내 스타일이지만 지금은 윤 대통령이 방향을 고심하고 있을 때이니 아직 평가할 시점이 아니다. 결과물이 나온 뒤 직언하겠다. 지켜보겠다”고 했다. 윤 전 의원에게 당권에 도전할 생각이 있느냐 물었다. 그는 “당을 위해 목소리를 내겠다”는 점은 분명히 하면서도 구체적인 계획은 아직 정하지 않았다고 했다. “4년 전 대학교수 관두고 정치에 뛰어들 때 공적인 삶을 살겠다고 했습니다. 제가 사회로부터 받은 혜택을 돌려주겠다고 마음먹은 것이죠. 낙선자로서, 정치인으로서 어떻게 그 목표를 채워 갈지 많은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언젠가 창이 열릴 거라 생각합니다.”윤완준 정치부장 zeitung@donga.com}

    • 2024-04-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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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오늘과 내일/윤완준]휴브리스, 대통령의 추락

    윤석열 대통령은 지난달 의료 파업에 참여한 의사들의 면허를 다 정지시켜야 한다는 취지로 주변에 말했다고 한다. 그래야 의사들이 정신 차린다는 인식을 드러냈다는 것이다. 윤 대통령이 총선 직전인 이달 초 발표한 의대 정원 증원 담화 초안은 공개된 담화보다 의사들에 대한 훨씬 더 강경한 비판이 담겨 있었다. 참모들이 대화 가능성을 더 열어둬야 한다고 설득해 그나마 발표된 담화로 정리됐다. 하지만 그 담화마저 의대 정원 2000명 증원의 당위성을 강조하는 데 할애됐다. 담화가 나온 뒤 참모들은 내용이 어떻게 읽힐지 전전긍긍하는 모습이었다.불통은 최고 권력 취한 오만에서 온다 국정 운영에 대한 윤 대통령의 태도, 인식을 보여주는 단면이다. 윤 대통령은 뚝심이라고 여길지 모르지만 민심은 이를 불통이라고 읽었다. 불통은 최고 권력에 취한 오만에서 온다. 휴브리스(Hubris). 권력자의 오만을 가리키는 이 말이 대통령이 성공할지 실패할지 가른다. 권력자의 추락 여부를 결정하는 그 오만은 어디서 비롯되는가. 공교롭게도 이번 총선 민심이 선택한 윤 대통령 심판은 조국혁신당 돌풍과 함께 일어났다. 문재인 정부 시절 검찰총장 윤석열의 이미지는 공정과 상식, 불의에 저항하는 뚝심이었다. 정권의 반대, 공격에도 굽히지 않고 원칙대로 조국 수사를 지휘한 리더십이 그에 대한 지지를 높였다. 책 ‘위기의 대통령’(함성득)에 이런 내용이 나온다. 2019년 9월 6일 문재인 당시 대통령과 윤석열 당시 검찰총장이 단둘이 저녁을 먹었다. 윤 총장이 조국 당시 법무부 장관 후보자의 문제를 설명하자 문 대통령은 “그럼 조국이 위선자입니까?”라고 물었다. 윤 총장은 “저의 상식으로는 잘 이해가 안 된다”라고 한 뒤 “조국 부인 정경심을 기소하겠다”고 보고했다. 문 대통령은 “꼭 그렇게 해야 하느냐”고 물었고 윤 총장은 “법리상 그렇게 해야 한다”고 답했다는 것이다. 윤 대통령의 이런 모습이 뚝심이자 원칙일 것이다. 당시 여권이 윤석열을 공격하면 할수록 윤석열의 존재감은 커졌다. 윤 대통령을 잘 아는 한 정치학자는 “지금은 공정과 상식, 원칙 같은 윤 대통령이 검찰총장 시절 보여줬던 리더십이 안 보인다”고 했다. 오히려 그 좋은 자질이 고집과 불통으로 바뀌었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조국혁신당의 돌풍을 “역사가 거꾸로 반복되는 아이러니”라고 했다. 조국 대표는 그런 상황을 십분 이용했다. 자신을 윤 대통령의 정치적 희생자이자 순교자로 규정하고 정권 심판을 윤 대통령 업보로 부각했다. 왜 그런 전략이 먹혔나. 부인 김건희 여사 디올백 수수 논란에 대해 분명한 사과 한마디 제대로 하지 않은 윤 대통령의 모습은 국민 눈높이에선 조국을 수사한 검찰총장 윤석열의 공정, 상식과 반대였다. 민심은 5년 전 조 대표에게 ‘내로남불’을 물었고, 이제 윤 대통령에게 ‘내로남불’을 물은 것이다.검사 마인드 버리고 국민에 고개 숙여야 대통령에게 모든 정보가 집중되니 시간이 지날수록 “내가 가장 잘 안다”고 생각하게 된다. 그러다 보니 민심의 도도한 흐름을 읽지 못한다. 뚝심이 고집으로 변하는 건 여기서 나오는 최고 권력자의 오만 때문이다. 많은 권력자들이 이 때문에 추락했다. 윤 대통령의 휴브리스는 김 여사, 이종섭, 의대 정원 증원 문제 등 곳곳에서 드러났다. 국민에게 진정 고개를 숙이고 겸손한 태도로 국민들의 마음을 달래는 것. 많은 이들이 윤 대통령에게서 그 느낌을 받은 적이 없다고 말한다. 범죄자 때려잡는 검사 윤석열이 아니라 정치인 대통령 윤석열로 마인드를 바꿔야 가능한 일이다.윤완준 정치부장 zeitung@donga.com}

    • 2024-04-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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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오늘과 내일/윤완준]윤-한 갈등은 정말 끝났나

    찐윤(진짜 친윤석열) 국민의힘 이철규 의원은 지난해 12월 한동훈 비상대책위원장 추대 과정의 여론전을 주도했다. 그달 비윤계에서 한 위원장 추대에 반발이 나올 때 이 의원은 “당원과 민심, 의원들의 선택은 압도적으로 한 위원장을 향하고 있다”고 했다. 친윤은 일사불란하게 한 위원장 추대 분위기를 만들었다. 이 의원을 필두로 한 친윤은 한 위원장 말고는 위기의 국민의힘을 반전시킬 카드가 없다고 봤다. 그런 그가 총선 후보 등록일 시작(21일) 하루 전날 “밀실”이라는 표현까지 쓰며 한 위원장과 공천 갈등이 있음을 적나라하게 드러냈다. 한 위원장의 공천이 한동안 ‘조용한 공천’ 평가를 받았지만 양측의 갈등은 누적되고 있었다. 공천 본격화 전 1월 윤석열-한동훈 1차 갈등의 본질이 공천 파워게임에 있다고 본 것도 그 때문이었다. 한 위원장이 이 의원에게 공천 관련 오해를 낳을 수 있으니 자신의 사무실에 자주 오지 말라는 취지로 얘기했을 때부터 균열은 시작됐다. 이 의원은 20일 회견에서 “상황의 본질, 전후관계를 밝히는 게 국민과 당원에 대한 도리라 생각하고 이 자리에 섰다”고 했다. “내가 월권이면 한동훈도 장동혁도 모두 월권이고 잘못된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 의원은 윤심(윤 대통령 의중)을 읽으며 이를 당에 전해왔다. 그런 점에서 이 의원의 회견은 한 위원장 공천에 대한 친윤 진영의, 나아가 윤 대통령의 잠복했던 불만을 쏟아낸 셈이다. 특히 ‘한 위원장에게 특정 개인을 요구했느냐’는 질문에 대해 이 의원이 한 말이 눈길을 끈다. “한 위원장에게 주기환 위원장 (추천을) 얘기했다.” 주기환 광주시당위원장은 윤 대통령의 20년 지기다. 윤 대통령과 특수 관계인 인물의 비례 추천 사실을 공개적으로 밝히며 “이게 사천이냐”고 했다. 그날 밤 늦게 발표된 비례대표 후보 조정 결과에 주 위원장은 포함되지 않았다. 그런데 바로 다음 날 윤 대통령은 민생특별보좌관을 신설해 주 위원장을 임명했다. 위인설관 논란이 뻔히 보이는데도 한 위원장에 대한 윤 대통령의 불쾌감을 드러내는 방식이 노골적이었다. 이 의원이 회견을 연 날은 여권이 ‘이종섭-황상무’ 문제를 둘러싼 윤 대통령과 한 위원장 2차 갈등 봉합 분위기를 만든 날이다. 이 의원은 이런 분위기에 자칫 찬물을 쏟을 수 있다는 걸 모르지 않았을 것이다. 여당 참패 위기론이 그토록 분출하는데도 공천 갈등의 치부를 밖으로 드러내며 분노를 쏟아냈다. 공천을 둘러싼 한 위원장과 친윤 간 갈등, 나아가 윤-한 갈등이 보이지 않는 곳에서 얼마나 격렬하게 진행됐는지 상징적으로 보여 준다. 정치인들은 국민을 위한 공천이라고 하지만 실제론 자기 사람을 넣기 위한 권력 투쟁이다. 남이 삼킨 음식을 목구멍에서 빼서 내 입에 넣는 게 공천이라는 말이 괜히 나오는 게 아니다. 윤 대통령의 임기는 3년 남았다. 차기 유력한 대권 주자인 한 위원장의 향방은 여당 총선 성적에 따라 달라질 것이다. 총선 결과가 어떻든 여당이 이전처럼 윤 대통령 말에 따라 일사불란하게 움직이라는 보장이 없다. 윤-한 갈등의 긴장은 현재진행형일 가능성이 높다. 윤완준 정치부장 zeitung@donga.com}

    • 2024-03-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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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오늘과 내일/윤완준]진보당 우려는 색깔론 아니다

    2012년 5월 4일 금요일 오후 2시경. 국회 의원회관에서 통합진보당 전국운영위원회 회의가 시작됐다. 통진당은 당시 총선에서 민주통합당과의 야권 연대로 의원 13명을 당선시켰다. 그중 6명이 비례대표였다. 이날 회의가 열린 이유는 비례대표 선출 경선 부정 의혹 때문이었다. 당시 통진당의 구성은 이랬다. 우선 경기동부연합을 핵심으로 하는 민주노동당(NL·민족해방계열) 출신들. 이들을 당권파라 불렀다. 국민참여당(친노무현 그룹) 출신과 진보신당 탈당파(PD·민중민주계열)가 비당권파였다. 이정희 유시민 심상정 공동대표가 각 계파를 대표했다. 비당권파를 중심으로 비례대표 부정 경선 의혹에 대한 진상조사 보고서를 냈다. 비당권파는 공동대표단 사퇴뿐만 아니라 경선으로 순번을 받은 비례대표 후보 14명 모두 사퇴해야 한다는 안건을 올렸다. 당시 현장 취재를 시작할 때만 해도 이 회의가 그렇게 오래 걸릴지 몰랐다. 33시간 40분. 회의는 5일 토요일 새벽을 넘겨 그날 오후 11시 40분경에야 끝났다. 그때 기사에 “진보의 가면 뒤에 숨었던 통진당 당권파의 비민주적, 비상식적 민낯을 들여다보기에 충분한 시간이었다”고 적었다. 그들은 부정선거 의혹의 진상을 밝히길 거부하며 자기 편 감싸기에 바빴다. 그들이 내세운 것은 당원이었다. 이정희 공동대표는 “국민을 두려워하는 만큼 당원을 두려워해야 한다”고 했다. 안건 표결을 “초헌법적인 쿠데타”라고 비난했다. 진상조사 보고서를 “사실이 아닌 부실한 의혹만 제기한 천안함 보고서 같은 진상 조작 보고서”라고 비난했다. 당권파들은 회의를 방해하며 비당권파들을 감금하려 하기도 했다. 오죽했으면 민노당 대표를 지낸 강기갑 당시 의원마저 이정희 대표에게 “야욕과 집착을 끊고 버려야 할 땐 정말 버려야 한다”고 했다. 유시민 대표가 “당 통합 전 느꼈던 막연한 두려움의 실체가 나를 힘들게 한다”며 눈시울을 붉히던 모습이 기억난다. 8일 뒤. 통진당 중앙위원회가 경기 고양시 일산 킨텍스에서 열렸다. 당권파는 단상에 난입해 비당권파 대표단을 집단 구타했다. 진중권 교수는 당시 “마치 사교 집단의 광란을 보는 느낌”이라고 했다. 그해 통진당은 분당으로 치달았다. 비당권파는 이석기 김재연 당시 의원의 사퇴를 요구했다. 12년 뒤. 더불어민주당은 진보당에 위성정당 비례대표 3석을 보장했다. 진보당은 통진당 당권파의 후신이다. 진보당이 비례대표 후보 3명을 확정했다. 통진당 후보로 총선에 출마했던 이는 이석기 전 의원의 사면 복권 운동을 주도했다. 진보당 홈페이지에 있는 강령을 보니 “불평등한 한미관계를 해체해 민족의 자주권을 확립한다”고 한다. 3월 첫째 주 한국갤럽 조사에 따르면 진보당 지지율은 1%다. 자력으로 비례대표 의석을 확보할 수 있는 3%에 못 미친다. 더군다나 민주당과 진보당은 지역구에서도 단일화를 하고 있다. 서울 서대문을 김영호, 경남 양산을 김두관 의원이 이미 진보당 후보와 단일화했다. 12년 전의 그 김재연 전 의원이 경기 의정부을 진보당 후보로 출마했다. “민주당이 통진당 부활의 숙주가 됐다”는 비판을 민주당은 색깔론으로 치부한다. 12년 전 통진당 당권파가 벌였던 행태를 떠올리면 색깔론이 아니다. 통진당 당권파는 민주주의를 정면으로 부정했던 세력이다. 그 민낯이 4월 총선 이후 다시 드러나지 말라는 법이 없다. 윤완준 정치부장 zeitung@donga.com}

    • 2024-03-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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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오늘과 내일/윤완준]野 공천 파동, 이재명 리스크

    “공천 잡음이 이어지며 우리 당에 따가운 비판이 있다.” “공천의 핵심은 잣대가 하나여야 하는데 자기편한테는 잣대가 구부러지고 미운 놈한테는 잣대를 꼿꼿이 세워 문제가 생겼다.” 더불어민주당의 ‘비명 공천 학살’ 논란 관련 발언이 아니다. 12년 전 민주통합당 공천 논란 때 얘기다. 첫 번째 발언은 김부겸 당시 최고위원, 두 번째 발언은 정동영 당시 상임고문이 했다. 당시 민주통합당은 이른바 ‘노이사’ 공천 논란이 지도부 내분으로 번졌다. 친노, 이화여대 라인, 486 운동권에 공천하고 옛 민주당 인사 등 비노 인사들을 공천에서 배제했다 해서 노이사였다. 이들을 중심으로 공천 대상을 미리 결정하고 회의에서 이를 밀어붙이고 경선을 지원했다는 비판이 거셌다. 그해 총선을 한 달도 남겨 놓지 않은 시점, 박영선 당시 최고위원은 “당에 보이지 않는 손이 있다. 지도부 누군가는 책임지고 국민께 사죄하고 용서를 구해야 한다”며 사퇴했다. 2011년 말 친노계와 시민단체 인사들 중심으로 혁신과통합을 만들었다. 2017년 대통령이 된 문재인 당시 노무현재단 이사장, 이해찬 전 총리가 주축이었다. 2007년 대선 패배 이후 스스로 폐족이라 부르며 2선으로 물러났던 이들은 총선을 앞두고 다시 등장했다. 민주당과 합당으로 민주통합당이 탄생했다. 혁신과통합 세력이 당을 장악하는 과정에서 공천 파동이 터졌다. “이들이 총선 승리보다 (2012년) 대선에서 친노 후보를 만들기 위해 당을 장악하려 무리한 공천을 하고 있다”는 당시 당내 비판이 지금도 기억난다. 민주통합당은 그해 총선 한 달 전 통합진보당과 야권 연대를 추진했다. 그에 힘입어 통진당은 13석을 얻었다. 통진당은 경기동부연합이 주축이 된 당권파의 비례대표 경선 부정 의혹으로 총선 뒤 사분오열된다. 그 과정에서 반대파를 무차별 린치하는 당권파의 민낯이 드러난다. 지금 이낙연 대표가 이끄는 새로운미래에 참여하고 있는 당시 통진당 새로나기특별위원회 박원석 위원장은 이렇게 비판했다. “당은 특정 정파의 도구가 아니다. 그럼에도 당권파는 민주적 운영 원리나 질서를 파괴하면서 당과 국민보다 정파 논리와 이익을 앞세우는 모습을 보였고 ‘당원’의 이름으로 그런 행위를 합리화하려 했다.” 2012년 총선 결과는 새누리당 152석, 민주통합당 127석. 민주통합당이 과반을 내주며 패했다. 2012년 상황을 잘 아는 민주당 의원은 “민주당이 지난 10여 년간 선거 과정에서 다시는 되풀이하지 말아야 한다고 했던 문제들을 한꺼번에 드러내고 있다”고 말했다. “친노 계파 공천, 통진당과 후보단일화로 그해 총선에서 졌다. 통진당 국회 입성으로 민주당은 19대 국회 시작 이후에도 계속 욕을 먹었다”는 것이다. 민주당 이재명 대표는 “박용진도 공천 걱정하지 않는 당을 만들겠다”고 했지만 ‘의원평가 하위 20%’의 칼날은 이 대표 체포동의안 가결 국면을 비롯해 이 대표 비판 의원들을 유독 향하고 있다. 민주당의 한 의원은 친명 지도부가 위성정당 참여 대가로 통진당 후신인 진보당에 의석수 최소 4석 확보 길을 열어준 데 대해서도 “정당 민주주의에 대한 인식이 통진당 당권파에 똑같아서 그런 것은 아닌가”라고 비판했다. 민주당이 이번 총선에서 이길지 질지는 지금 알 수 없다. 하지만 공천 과정은 한 정당의 민주주의 수준을 보여준다. “총선에서 져도 이재명당을 만들겠다는 것 아니냐”는 비판이 비명계뿐 아니라 중립 성향 의원들에게서도 나오고 있다.윤완준 정치부장 zeitung@donga.com}

    • 2024-02-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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