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과 인간[이준식의 한시 한 수]〈295〉

  • 동아일보
  • 입력 2024년 12월 19일 22시 57분


달빛, 강 건너고 누각 지나노니 닿는 곳마다 환한 세상.
사람과 계수나무를 품은 채 아득히 멀리서도 맑은 기운 그득하지.
갓 돋아오를 때나 이지러질 즈음이면 공연히 슬퍼들 하지만,
둥글 때라고 꼭 우리에게 정감을 갖는 건 아니라네.
(過水穿樓觸處明, 藏人帶樹遠含淸. 初生欲缺虛惆愴, 未必圓時即有情.)

―‘달(월·月)’ 이상은(李商隱·812∼858)


물 위든 누각이든 그 손길이 닿은 곳이라면 어디든 온통 환하게 빛나는 오묘한 달빛 세례. 그에 더하여 달 속에는 선녀 항아(姮娥)가 숨어 있고 계수나무가 자라고 있다. 아득히 먼 곳에서 맑디맑은 기운을 보내니 그 신비감은 더한층 고조된다. 하나 달은 홀로 오연(傲然)히 무한의 세월을 지나왔을 뿐, 인간 세상과는 무연(無緣)하다고 시인은 말한다. 초승달이나 이지러진 하현달이 풍만함을 잃었노라 슬퍼하는 인간을 시인은 냉소한다. 얼토당토않은 감정이입이라 치부한다. ‘둥글 때라고 꼭 우리에게 정감을 갖는 건 아니라네.’ 이 한마디에 인간의 가여운 짝사랑은 여지없이 허물어진다.

한데 인류는 달의 형형(熒熒)한 빛, 변화하는 형상과 오래도록 교감을 나눈 터. ‘촛불 끄니 그 더욱 눈 부신 달빛, 어느새 옷에도 촉촉이 젖는 이슬./달빛 두 손 가득 못 드릴 바엔, 꿈에서나 만나랴 잠들어 보리(장구령·張九齡, ‘달 보며 그리는 임’)라 했고, ‘반달은 왠지 아쉽고 그믐달이면 괜스레 서럽고 보름달이면 사람들이 마구 그리워진다’(한석산, ‘가슴에 달그림자 하나 키우며 산다’)라고도 했다.

#달#인간#이준식#한시 한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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