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연금 수탁위 앞둔 고려아연, 경영권 갈등 이유 돌아보니[시장팀의 마켓워치]

  • 동아일보
  • 입력 2025년 1월 14일 11시 30분


지난해 9월 본격화된 영풍-MBK파트너스 연합과 최윤범 고려아연 회장 간 경영권 분쟁이 약 4개월 만에 분기점을 맞이하고 있습니다. 오는 23일 임시주주총회가 예고돼 있고, 이에 앞선 17일 고려아연 주요 주주이자 캐스팅 보트인 국민연금(7일 기준 고려아연 지분 4.5% 보유)이 수탁자 책임위원회를 통해 임시 주총에서 의결권 행사 방향을 결정하게 됩니다.

임시 주총을 앞두고 고려아연의 역사, 이 과정에서 장 씨 측과 최 씨 측의 갈등, 이번 경영권 분쟁의 진짜 이유, 양측이 예고한 경영 방향 등에 대해서 살펴보겠습니다.

● 고려아연 두고 벌인 최(崔)·장(張) 갈등의 역사

고려아연은 1974년 영풍에 의해 설립됐습니다. 1949년 이후 동업을 이어오던 최씨 가문과 장씨 가문이 1970년 경상북도 봉화군에 석포제련소를 지은 뒤 두 번째 아연 제련소를 차렸습니다. 석포제련소는 청정지역인 데다 주변이 산지라 공장 확장의 어려움이 있었습니다. 때마침 정부에서 울산 온산지역에 비철금속단지 조성에 나서자, 아연을 비롯한 납 등 비철금속까지 제련할 수 있는 제련소를 만들기 위해 고려아연을 설립합니다. 이후 회사가 커가는 과정에서 장 씨는 영풍을, 최 씨는 고려아연을 맡게 됩니다.

1976년까지 비슷했던 장 씨(28.33%)와 최 씨(26.97%) 영풍 지분율은 고(故) 최기호 공동창업주가 별세하기 2년 전인 1978년부터 최씨 가문에서 지분을 정리하면서 차이가 나기 시작합니다. 당시 장 씨(27.17%), 최 씨(12.88%)의 지분율은 15%포인트가량 벌어졌는데, 이후 이 같은 비율이 유지됐습니다.

그러다가 1990년 초 최 씨와 장 씨 간 1차 경영권 분쟁이 터집니다. 최 공동 창업주의 장남이자, 최윤범 회장의 부친인 최창걸 명예회장이 영풍 지분 매집에 나서면서입니다. 하지만 당시 장 씨 측은 계열사를 동원해서 방어했습니다. 양측의 지분 격차가 줄어들지 않는 상황에서 출혈 경쟁만 이어지다가, 1996년 2월 양 가문은 서로 신사협정을 맺게 됩니다. 장 씨는 고려아연에 대한 의결권을 최 씨 측에 넘기고, 최 씨는 영풍에 대한 의결권을 장 씨에 넘기기로 합니다. 이 계약은 지난 2016년까지 총 20년간 유지됐습니다.

● 공개매수 경쟁에 고려아연 주가 240만 원까지 치솟아

2차 분쟁에 대해 양측 의견은 다르지만 장 씨 측은 2022년 8월 최 회장이 한화와 지분 교환을 했을 때로 보고 있습니다. 고려아연은 한화의 해외 계열사에 유상증자하는 대신 한화는 장내 매수, 자사주 맞교환 등으로 고려아연 주식을 취득했습니다. 고려아연은 LG화학, 현대자동차 등과도 신주 발행, 주식 맞교환 등의 거래를 합니다. 장 씨 측은 고려아연 지분을 희석하면서 최 회장이 우호 세력을 확보했다고 주장하고, 최 회장 측은 미래 신성장 사업 확보를 위한 전략적 제휴였다고 맞서고 있습니다. 어쨌든 장씨 가문보다 턱없이 부족했던 최 씨의 지분율이 우호 세력을 통해 꽤 커진 것은 사실입니다.

최 회장이 영향력을 넓히고 나서자 장 씨 측은 태클을 걸고 나섰습니다. 최 회장은 2024년 3월 주총에서 해외 법인 합작뿐만 아니라 국내 법인을 대상으로도 제3자 유증이 가능하도록 정관 변경을 추진했습니다. 좀 더 많은 사업 제휴를 통해서 우군을 확보한다는 복안이 있었을 것으로 예상됩니다. 이에 장 씨 측은 반대하면서 정관 변경을 부결시킵니다.

주총 이후 양측의 갈등은 더 깊어집니다. 최 회장 측에서 양 가문 공동 경영의 또 다른 상징인 서린상사를 접수합니다. 서린상사는 영풍그룹의 비철금속 해외 유통 및 판매 계열사로, 고려아연이 대주주지만, 대표자는 영풍 쪽에서 내세우는 형태로 공동 경영을 해왔습니다. 하지만 고려아연은 서린상사의 이사회 9명 중 8명을 고려아연 사람으로 채웠습니다. 대표도 즉각 교체했는데, 서린상사의 전임 대표는 장형진 영풍 고문의 둘째 아들인 장세환 씨였습니다.

최 회장의 일격을 맞은 장 씨 측은 즉각 반격에 나섰습니다. 자금력을 통해 고려아연 지분 확대에 나선 것이죠. 장 고문은 국내 최대 사모펀드(PEF)인 MBK파트너스에 영풍이 보유한 고려아연 지분(33.13%) 중 절반 이상인 16.56%+1주를 넘기기로 약속합니다. MBK파트너스는 추석 연휴를 앞둔 지난해 9월 13일 고려아연 지분을 주당 66만 원에 사들이겠다고 공개매수에 나서면서 경영권 분쟁의 서막이 올랐습니다.

이후 최 회장이 고려아연의 자사주 매입을 통한 대항 공개매수에 나섰고, 양측은 서로 공개매수 가격을 올리면서 출혈 경쟁에 나섭니다. 영풍-MBK 측의 최종 공개매수 가격은 83만 원, 고려아연의 최종 공개매수 가격은 89만 원까지 올라갔습니다.

양측이 한 발도 물러서지 않는 공방을 벌이면서 고려아연의 주가는 미친 듯이 올라갔습니다. 공개매수가 종료된 이후 잠잠해질 것이라고 예측했지만 양측에서 장내 매집에 나서면서 고려아연 주가는 100만 원을 훌쩍 넘겼습니다. 지난달 6일에는 장중 240만 7000원까지 올랐습니다.

공개매수와 장내 매집을 통해 영풍-MBK파트너스는 40% 넘는 지분을 확보했고, 최 회장은 기업들의 우호 지분을 제외하고 17.5%의 지분을 보유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지분율 차이는 나지만, 국민연금 등 주요 주주들의 결정이 남았고, 고려아연에서 집중 투표제 도입을 히든 카드로 내놓으면서 이번 임시 주총은 안개 국면입니다.

집중 투표제는 주식 1주당 선임할 수 있는 이사 수만큼의 의결권을 갖습니다. 한 명의 이사를 선임할 경우 한 표를 행사할 수 있지만, 열 명의 이사를 선임할 경우 10표를 행사할 수 있습니다. 회사에서 다수의 이사를 선임할 경우 주주는 한 명에게만 표를 몰아줄 수 있어, 적은 지분이더라도 전략에 따라 원하는 후보를 이사회에 진입시킬 수 있습니다. 애초 영풍-MBK파트너스는 신규 이사를 대거 선임해서 경영권을 가져온다는 생각이었지만, 집중 투표제를 도입할 경우 이 같은 계획이 어그러질 수 있습니다.

● 명분 싸움 돌입한 양가문소액 주주 결정은?

결국 양 가문의 고려아연 경영권 분쟁의 키는 소수 주주가 쥐고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최 씨와 장 씨, 장 씨와 최 씨는 서로를 공격하면서 경영권 분쟁에서 명분을 쌓으려 하고 있습니다. 최근 여론전을 통해 상호 비방에 나선 것도 소수 주주를 확보하기 위한 전략입니다.

장 씨 측은 최 회장 부임 이후 회사 자금으로 자신의 영향력 확대에 나섰다고 비판하고 있습니다. 최 회장의 ‘트로이카 드라이브’ 추진 과정에서 과도하게 많은 회사 자금을 썼다는 점도 지적하고 있습니다. 트로이카 드라이브는 이차전지 소재, 신재생에너지, 자원순환 사업 추진 등 미래 신성장 동력 확보를 위해 현대차·LG화학·한화 등과 전략적 동맹을 맺었던 것을 의미합니다. 이 과정에서 조 단위가 넘는 회삿돈을 썼다는 겁니다. 장 씨 측은 그런데도 고려아연 주가가 40만~50만 원대를 벗어나지 못하는 등 주주 가치 제고도 하지 못했다면서 최 회장의 경영 능력에 대해 의문을 제기했습니다.

이 외에 원아시아파트너스를 통한 SM엔터테인먼트 지분 투자, 미국 전자폐기물 재활용 업체인 이그니오 투자로 회사에 손실을 입혔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또 최 회장이 고려아연을 동원한 자사주 공개매입에 나서면서 대규모 차입을 일으킨 것도 회사의 부담을 키웠다면서 공격하고 있습니다.

반대로 최 씨 측은 석포제련소 경영에 실패한 영풍이 고려아연을 인수할 경우 회사가 위기에 처할 수 있다고 맞섰습니다. 또 영풍이 석포제련소 관련 환경 문제가 해결되지 않자, 고려아연 경영권 장악으로 방향을 틀었다고 지적했습니다.

석포제련소는 폐수 무단 배출에 따라 조업 중단 판결을 받았습니다. 오는 2월 26일부터 58일 동안 조업을 중단하게 됩니다. 하지만 아연 제련 특성상 조업 중단에 약 2개월, 조업 재개까지 약 2개월의 준비 기간이 필요해 사실상 올해 상반기(1~6월)까지 실적이 크게 부진할 것으로 예상됩니다.

이번 조업 중단이 끝이 아니라는 점도 지적하고 있습니다. 지난 2015년 4월 봉화군은 석포제련소가 아연 생산 후 발생한 잔재물의 장기 방치로 인해 인근 토양이 오염됐다며, 약 10년 동안 토양을 정화할 것을 명령했습니다. 하지만 영풍에 따르면 이행 명령 지시 후 9년이 지난 지난해 6월 말까지 정화 면적은 전체 30.6%에 불과했습니다. 이행 마감 완료 시한인 올해 6월 말까지도 41.9%에 불과한 수치를 예상했습니다. 사실상 추가 징계가 불가피한 상황으로 조업 중단이 길어질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옵니다.

관련해서 영풍 소액주주들도 문제 제기에 나섰습니다. 영풍 소액 주주들은 영풍의 석포제련소가 2013년부터 2022년까지 76건의 환경 법령 위반 사실이 적발됐고, 최근 노동자 사망 사건으로 대표이사 두 명이 연속으로 구속됐다고 지적했습니다.

● 고려아연 경영 누가 잘할까

결국 주주들의 선택은 누가 고려아연을 맡아 경영을 잘할 수 있을지에 달려 있습니다. 하지만 현재까지 양측이 내놓은 주장은 모두 허점이 있습니다.

먼저 최 회장은 고려아연 성장을 내걸었습니다. 기존에 진행돼 오던 트로이카 드라이브를 통해 신성장 동력을 확보한다는 전략입니다. 동시에 고가 인수 의혹이 제기되는 이그니오가 트로이카 드라이브 밸류 체인의 핵심이라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전기차 캐즘(일시적 수요 정체)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인의 대선 승리로 당분간 신재생에너지 관련 사업 환경은 크게 악화했습니다. 시작 단계에 있는 트로이카 드라이브가 글로벌 대외 환경 변화를 버텨낼 수 있을지는 의문입니다. 주주들의 신뢰 회복을 위해서는 지속적으로 제기돼 왔던 원아시아파트너스를 통한 투자 등에 대한 해명도 필요합니다.

영풍과 MBK파트너스는 지배구조 개선을 통해 주주 이익 극대화에 나선다는 방침입니다. 최근 5년간 지배구조 문제로 손실이 커졌다면서 전문 경영인을 내세워 효율 경영에 나설 것임을 밝혔습니다. PEF는 지배구조 문제를 해결하고, 이를 통해 회사 가치를 높입니다. 실제로 MBK파트너스는 국내외 다수 기업을 인수, 회사 가치를 높인 후 매각에 성공하면서 큰돈을 벌었습니다.

하지만 영풍과 MBK파트너스가 고려아연을 인수하는 과정에서 대규모 차입을 일으킬 가능성이 높습니다. 이자뿐만 아니라 원금도 고려아연의 이익을 통해 지급됩니다. 고려아연이 지금보다 더 많은 돈을 벌지 못한다면 대규모 차입금의 부담 때문에 회사가 망가질 수 있습니다. 과거 MBK파트너스가 인수했던 케이블업체 딜라이브(옛 C&M)도 해마다 수천억 원의 돈을 벌었지만, MBK파트너스가 빌린 돈을 갚지 못해 파산 위기를 맞기도 했습니다.

또 영풍과 MBK파트너스가 내놓은 아연 공동 구매 등도 ‘바잉파워(구매력)’을 높일 수 있다고 했으나, 최근 아연 공급 부족에 시달리는 상황에서 고려아연에 짐이 될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옵니다. 석포제련소에서 아연을 생산한 후 발생하는 잔재물을 고려아연에서 정제해 추가 이익을 얻을 수 있다는 주장에 대해서도 폐기물 처리 비용이 더 들어간다는 측면에서 오히려 고려아연 실적 감소에 영향을 줄 수 있다는 반박도 제기됩니다.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翻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