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게 따려는 ‘깐부’들 욕심에 게임 계속돼
‘내 편’ 승리 위해 직업정신도 아랑곳 안해
일상화된 善惡대립, 게임 멈출 리더 필요
‘오징어 게임’ 시즌2만 기다리고 있다는 일본인 친구가 있었다. 숱한 화제에도 불구하고 나는 그 드라마를 본 적이 없었다. 작년 연말에 드디어 시즌2가 나온다는 뉴스에 그 친구 말이 생각나서 뒤늦게 시즌1을 봤다. 보고 나니 그 마음을 100% 이해할 수 있었다. 시즌2는 시즌1보다 더 몰입해서 봤다.
시즌2에서는 게임을 끝내려는 참가자들과 계속하려는 참가자들이 첨예하게 대립한다. 시청자 대부분은 게임을 끝내고 싶어 하는 이들을 응원하지 않을까 싶다. 그럼에도 게임이 계속되는 상황이 억지스럽지 않다. 게임을 끝내려는 참가자들은 그 정도 상금이면 됐다고 생각한다. 더 욕심을 내다가 목숨을 잃으면 안 되니까. 그래서 게임을 끝내고 상금을 나누자고 한다. 게임을 계속하려는 참가자들은 그 정도 상금으로는 의미가 없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남들은 죽더라도 나는 살아남을 거라고 믿는다. 혹은 죽을 때 죽더라도 한판 크게 걸어보자는 생각이다.
그리고 마치 일부러 그런 듯, 시즌2는 지금의 한국 상황과 묘하게 닮아 있다. 멈춰야 할 게임이 계속되는 것은 그 게임에서 크게 따고 싶어 하는 사람들의 욕심 때문이다.
정권이 바뀌면 어이없는 인사가 난무한다. 편향된 뉴스로 선동을 일삼던 유튜버들이 국민의 세금으로 운영되는 공중파 방송의 진행자가 된다. 자극적 뉴스, 때로는 허위 정보로 구독자를 모으던 사람들이다. 그들은 영화 ‘반지의 제왕’이나 ‘스타워즈’에서나 볼 법한 선과 악의 대립으로 현실을 왜곡한다. 윤석열이 이재명을 쳐부수거나 이재명이 윤석열을 쳐부수어야 한국 사회가 구원받는다는 사이비 교리의 전파자들이다. 그들은 게임이 계속돼야 돈을 벌 수 있고 한 자리를 차지할 수 있다.
정치권은 말할 것도 없고 언론, 학계, 법조계에도 게임에 참여하는 사람들이 있다. 내가 ‘깐부’로 참여한 편의 승리를 위해 내가 마땅히 가져야 할 사명감이나 직업정신은 아랑곳하지 않는다. 내 편이 정의이기 때문에 ‘나는 정의를 위해 일한다’는 자기 기만에 빠진 사람들이다. 내 편의 불의에는 침묵하거나 변명하지만, 상대편의 불의에는 인격 살해조차 망설이지 않는다. 내 편이 게임에서 이겼을 때 얻을 수 있는 큰 상금 때문에 그들은 게임이 계속되기를 바란다. 편향된 유튜버와 다를 게 없는 사람들이다. 지금 한국 사회에서 그런 언론, 학자, 법조인의 양심이란 도대체 어떤 의미가 있는 것일까?
그래서 사회 전체적으로 대립이 일상화돼 있다. 조금만 더 논의하고 타협하면 지금보다 나은 결론이 있을 수 있는 일도 선과 악의 대립으로 몰려 진전이 없다.
정치권의 각종 특검법은 말할 것도 없고 사회, 경제의 미래를 결정할 중요한 입법도 대립을 일삼다 표류한다.
연금 개혁과 정년 연장은 서로 불가분의 관계이기 때문에 깊이 있는 검토와 토론이 필요하지만 우리 언론은 그 토론의 장을 마련하지 않는다. 윤석열이 악마인지 이재명이 악마인지에 대한 토론만 넘쳐날 뿐이다. 반도체 기업들은 일부 연구직에 한해 주 52시간 제한을 완화해 달라 요청한다. 우리는 대상이 되는 연구자들도 그것을 원하는지, 해외 사례는 어떤지, 찬성하는 혹은 반대하는 사람들의 논리는 무엇인지 등에 관해 구체적 내용을 알지 못한다. 정보가 부족한 상태에서 이런 이슈는 걸핏하면 친기업과 반기업이 싸우는 게임으로 변질된다.
탄핵 정국이 끝나면, 그리고 새 대통령이 선출되면 이 모든 게임이 끝나는가?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문재인 정권, 윤석열 정권을 거치면서 게임은 더 난폭해지고 더 일상화되었다. 그래서 게임을 끝내려면 이 게임에서 얻을 게 없는 사람들이 목소리를 높여야 한다. 언론인에게, 학자에게, 법조인에게 어느 편의 깐부가 되지 말고 당신이 마땅히 해야 할 일을 하라고 촉구해야 한다.
우리에게 정치가 필요한 것은 연금 개혁, 정년 연장, 노동시간 규제, 원자력발전, 최저임금, 비정규직 차별, 차별금지법 등 이해관계가 엇갈리거나 사회 구성원들이 갈등하고 있는 각종 이슈에 대해 합의를 끌어내기 위해서지, 그 이슈를 이용해 오히려 대립을 증폭시키고 서로 죽이는 게임을 하기 위해서가 아니다. 다음 대선은 게임을 이용하는 후보가 아니라 게임을 멈추고 우리 사회를 살리는 정책 비전을 가진 후보를 찾는, 그래서 ‘오징어 게임’을 끝내기 원하는 사람들이 이기는 장이 되기를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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