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블랙박스 ‘사라진 4분’… 전력보조장치 없었다

  • 동아일보
  • 입력 2025년 1월 13일 03시 00분


충돌직전 기록 없어, 셧다운 가능성
국내 동종 절반에만 해당 장치 탑재

12일 오전 무안국제공항 활주로 인근에는 제주항공 여객기 동체가 천에 쌓여 있다.2025.1.12/뉴스1
12일 오전 무안국제공항 활주로 인근에는 제주항공 여객기 동체가 천에 쌓여 있다.2025.1.12/뉴스1
무안 제주항공 참사 여객기에 설치된 블랙박스가 충돌 약 4분 전부터 작동하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가장 긴박했던 순간 조종사들의 대화는 물론이고 사고기의 속도, 고도 등을 담은 비행 기록도 모두 저장되지 않은 것이다. 특히 사고기에는 전력공급중단(셧다운) 상황에서도 블랙박스에 전원을 공급할 수 있는 보조전력장치가 없었던 것으로 드러났다. 사고기의 마지막 4분 기록이 사라지면서 사고 원인 규명이 어려워지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국토교통부 항공철도사고조사위원회(사조위)는 11일 “미국 워싱턴에 있는 국가교통안전위원회(NTSB)에서 사조위 조사관 입회하에 자료를 분석한 결과 충돌 직전 4분 동안 음성기록장치(CVR)와 비행자료기록장치(FDR)가 작동하지 않은 것을 확인했다”며 “블랙박스 2개(CVR, FDR)가 모두 정지된 원인을 파악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블랙박스 작동이 멈춘 것으로 확인되면서 사고기가 셧다운 상황이었을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다. 엔진이 모두 정지돼 비행기에 전력 공급이 중단된 것이다. 이에 따라 조류와의 충돌이 셧다운을 유발했는지를 규명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

전문가들은 사고기에 블랙박스 전용 보조전력장치가 없었다는 점을 아쉬운 대목으로 꼽고 있다. 2018년 이후 국내에 도입된 항공기에는 셧다운 상황에서도 블랙박스에 전력을 공급할 수 있는 보조전력장치 장착이 의무화됐다. 하지만 사고기는 2017년에 도입돼 해당 규정의 적용을 받지 않았다. 현재 한국에서 운항 중인 사고기와 동일 기종(보잉 737-800)인 비행기 2대 중 1대는 블랙박스 전용 보조전력장치가 없는 것으로 확인됐다. 김인규 한국항공대 비행교육원장은 “사고가 나지 않으면 드러나지 않을 사실이 이제야 밝혀진 것”이라며 “규정 적용 대상이 아니더라도 항공사가 자체적으로 안전 확보를 위해 노력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국내 보잉 737-800 절반, 블랙박스용 보조전력장치 없어


[무안 제주항공 여객기 참사]
셧다운 대비 장치, 2018년 의무화
사고기, 시행前 도입돼 대상 제외

무안 제주항공 참사 여객기에는 전력공급중단(셧다운)에 대비해 블랙박스에 전력을 공급할 보조전력장치(RIPS)가 없었던 것으로 드러났다. 블랙박스는 비상시 최후의 상황을 기록하는 장치인 만큼 최악의 상황을 대비한 보조전력장치 탑재가 반드시 필요하다. 2018년부터 의무화됐지만 사고기는 관련 규정 시행 전에 도입돼 의무 대상에서 제외됐다.

12일 국토부와 항공업계 설명을 종합하면 보조전력장치는 기장과 관제사 간 교신 등 조종실 음성을 기록하는 블랙박스인 ‘음성기록장치(CVR)’에 부착하는 일종의 보조 배터리다. 셧다운 상황에서도 CVR에 9분 이상 전력을 공급할 수 있도록 설계돼 있다.

국토부가 고시한 ‘고정익항공기를 위한 운항기술 기준’에 따르면 2018년 1월 1일 이후 국내 도입된 항공기는 CVR에 보조전력장치를 설치해야만 운항할 수 있다. 해당 규정은 소급 적용되지 않았고 2017년 국내로 들여온 사고기도 설치 의무를 적용받지 않았다.

문제는 보조전력장치 없이 운항하는 항공기가 더 있다는 점이다. 국토부에 따르면 국내에서 운항 중인 사고기 동일 기종(보잉 737-800) 101대 중 보조전력장치 탑재율은 50% 미만이다. 두 대 가운데 한 대에는 보조전력장치가 없는 셈이다.

전문가들은 보조전력장치 탑재율이 저조한 원인으로 비용 절감을 꼽고 있다. 국내 저비용항공사(LCC)는 해외 항공사에서 비행기를 임차(리스)해 운영하는 경우가 많아 안전 성능을 더 강화할 유인이 낮다는 것이다. 이번 사고기 역시 유럽 저가항공사인 라이언에어에서 임차해 들여온 비행기다.

김인규 한국항공대 비행교육원장은 “LCC 대다수는 기존에 운영하던 항공기를 재구매하거나 신형을 구입하더라도 최소한의 옵션만 부착하는 것이 대다수”라며 “새롭게 보조전력장치를 부착하는 것도 비용이기 때문에 이를 최소화한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한편 CVR에 보조전력장치 설치가 의무화된 것과 달리 또 다른 블랙박스인 ‘비행기록장치(FDR)’에는 해당 의무가 없다. FDR은 비행 경로, 속도 등 전자 신호를 기록하는 장치다. 항공기가 셧다운이 되면 전자 신호가 모두 사라져 기록할 데이터 자체가 없다 보니 굳이 보조전력장치를 둘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보조전력장치
셧다운 등 비상시 블랙박스인 조종실 음성기록장치(CVR)에 전력을 공급하는 배터리 장치. 국내에선 2018년 1월 1일 이후 도입된 항공기부터 장착이 의무화됐다.

#무안 제주항공 참사#블랙박스#셧다운 대비 장치#보조전력장치#국내 저비용항공사#사라진 4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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