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에 맞는 약 아닌 환자에 도움되는 약 만들어야[기고/이장익]

  • 동아일보
  • 입력 2024년 12월 17일 22시 51분


이장익 서울대 약학대학 교수
이장익 서울대 약학대학 교수
지난달 29일 골관절염 유전자 치료제 ‘인보사케이주(인보사)’의 주성분을 속였다는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이웅열 코오롱그룹 명예회장이 1심에서 무죄를 선고받았다. 이날 서울중앙지법 재판부는 선고와 함께 “과학 분야에 대한 사법적 통제는 어떻게 진행돼야 하는지 깊이 생각해볼 문제”라며 검찰의 기소 만능주의 행태에 일침을 가했다. 이어 “미국 식품의약국(FDA)은 과학적 관점에서 검토한 뒤 임상 3상 시험을 승인한 반면에 한국은 식품의약품안전처가 허가 취소 후 행정소송이 진행 중이고, 관련된 직원들에 대한 형사재판도 이어지고 있다”고 지적했다.

인보사 사태에서 극명하게 나뉘는 한국과 미국 규제기관의 태도는 많은 것을 함의하고 있다. 일단 약에 대한 접근에서부터 차이를 보인다. 모든 약은 환자에게 투여했을 때 치료 효과와 부작용을 동시에 보인다. 임상 과학에 근거해 치료 효과의 효용(benefit)이 부작용에 따른 위험(risk)보다 크다면 ‘약’인 것이고, 위험이 크다면 ‘독’이 되는 것이다. 규제기관이 해야 할 일은 임상 데이터에 근거해 이 약의 효용과 위험 중 어느 쪽이 더 큰지를 확인하는 것이다.

필자는 11년간 미국 FDA 임상약리심사관과 과학조사관으로 일하면서 이 개념을 확실하게 배울 수 있었다. 이번 인보사 사태에서도 알 수 있듯이 한국의 규제기관은 환자들이 누릴 수 있는 약의 효용과 위험을 과학적으로 분석하기보다는, 법이 규정하는 절차를 밟지 않았다는 것에 더 큰 의미를 부여했다. 사회에 필요한 약은 아픈 환자를 나을 수 있게 만드는 약이지, 법의 절차에 맞게 만들어진 약이 아니다. 하지만 식약처와 검찰청은 정부가 정해놓은 법이나 규칙을 얼마나 잘 지켰느냐의 잣대로 환자를 위한 과학의 산물을 판단해버렸다.

이 같은 한국 규제기관의 관점을 바꾸기 위해서는 좀 더 전문적인 인력이 필요하다는 게 필자의 생각이다. 안전성만을 강조하는 규제기관의 태도는 어찌 보면 약이 가지고 있는 효능과 위험을 구체적으로 파악하기 어렵기 때문이라고 여겨진다.

의사 면허를 보유한 인력을 2000명 이상 확보하고 있는 FDA의 경우 인보사의 임상시험이 들어가기 전 약을 방사선에 노출시키는 것을 권고했다. 만에 하나 암을 유발할 수 있는 신장유래세포가 남아있을 가능성을 고려한 결정이었다. FDA 권고를 받아들인 코오롱티슈진은 2액을 방사선에 노출시킨 뒤 임상시험에 돌입했고, 우리나라에서도 출시 전 모두 방사선 노출 과정을 거쳤다. 이런 과정이 있었기에 FDA는 일시적으로 인보사의 임상을 중단시켰지만, 이후 약의 효능에 비해 위험성이 낮다고 판단해 임상 재개를 허락했다.

우리나라 규제기관 역시 이런 전문성을 가지고 국민들에게 도움이 될 수 있는 약을 키워내야 한다. 지금과 같은 환경에서는 혁신이 피어나기 어렵다. 인보사 사태를 목격한 국내 바이오 기업들은 우리나라를 제치고 미국이나 유럽 등에서 임상시험을 수행하고 신약 출시를 계획하고 있다.

인보사 문제가 불거진 2019년 봄 이후 거의 6년 동안 식약처는 단 한 건의 세포치료제나 유전자치료제도 허가하지 않고 있다. 인보사 사태는 규제과학을 가르치는 대학교수로서, 무엇이 옳고 그른가를 깊이 생각하게 한다. 이제는 규제기관이 ‘약의 존재 가치는 무엇인가’라는 가장 근본적인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지고, 답에 맞는 규제 환경을 마련해야 할 때다.

#골관절염#유전자 치료제#인보사케이주#인보사#주성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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