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 칼럼/신진우]트럼프발 ‘방위비 스톰’에 맞서는 자세

  • 동아일보
  • 입력 2024년 12월 29일 23시 12분


신진우 워싱턴 특파원
신진우 워싱턴 특파원
“방위비 디펜스(방어)에 집착할수록 한국 정부가 꺼낼 카드는 더 줄어들지 않겠나?”

도널드 트럼프 미국 행정부 1기 시절인 2018년, 미 당국자가 기자에게 한 말이다. 그는 한국 정부가 실제 걸려 있는 것 이상으로 방위비 분담금 협상에 부담을 느끼는 것 같다며 “(그렇게 할수록) 트럼프는 그걸 공략 포인트로 여길 것”이라고 꼬집었다. 우리가 방위비 문제로 안절부절못하면 이를 약점으로 여겨 오히려 노골적으로 물고 늘어질 수 있단 취지였다.

걱정인지 충고인지 모를 오묘한 그의 말을 곱씹을 겨를도 없이 트럼프 1기는 저물었다. 방위비 5배 인상을 주장했던 트럼프 당시 대통령의 거친 압박에 우리 정부는 고민이 컸지만 어쨌든 큰 타격 없이 버텼다.


트럼프 요구하면 방위비 재협상 불가피


트럼프 1기 때 진전되지 못한 방위비 협상은 조 바이든 정부 출범 뒤 급물살을 탔다. 한미는 11차 방위비분담금특별협정(SMA)에 합의했다. 바이든 대통령의 임기 마지막 해인 올해, 조기에 새 방위비 협상에 나서 12차 SMA 타결까지 전격 발표했다. 양국은 2026년 첫해 분담금을 전년 대비 8.3% 증액하고, 이후 분담금 인상률은 물가상승률에 연동시키는 방식으로 5년간 적용하기로 합의했다. 기대 이상으로 선방한 협상이란 평가가 정부 안팎에서 나왔다.

그 기쁨도 잠시, 불과 33일 후 트럼프 대통령 당선인의 백악관 재입성이 확정됐다. 정부의 안도감은 불안감으로 바뀌었다. SMA는 국회 비준 절차가 필요한 한국과 달리 미국에선 ‘행정협정’이다. 의회 동의 없이 대통령 결심만으로 얼마든지 재협상 요구가 가능하다.

내년 1월 20일(현지 시간) 취임할 트럼프 당선인은 대폭 인상된 ‘방위비 청구서’를 들이밀 것으로 보인다. 이미 올해 대선 과정에서 한국을 “머니 머신”(현금인출기)이라고 칭했다. 또 “내가 대통령이었다면 한국은 (방위비로) 연간 100억 달러(약 14조7600억 원)를 냈을 것”이라고 장담했다. 우리 정부도 재협상 자체는 기정사실로 받아들이는 분위기다. 정부 고위 소식통은 “결국 얼마짜리 수표를 서로 적어 낼지가 관건”이라고 했다.


방위비 협상, 손실 최소화에 집중해야

트럼프발(發) ‘방위비 스톰(폭풍)’이 다가오면서 정부 안팎에선 이미 다양한 대응책들이 거론되고 있다. 방위비 인상 요구에 맞서 아예 우린 자체 핵무장 등을 주장하자는 다소 과격한 옵션부터 한미 관계의 현주소나 동맹의 중요성 등을 차근차근 알려 ‘감정 과잉’ 트럼프 당선인을 누그러뜨리자는 말까지 나온다.

동맹 관계는 ‘거래’로만 볼 수 없다. 주한미군 주둔은 미국의 전략적 이익에도 부합한다. 그런데도 트럼프 당선인이 한국을 방위비 ‘무임 승차국’으로만 매도한다면 그런 그의 인식에 분명 문제가 있는 게 맞다.

다만 트럼프 2기 행정부가 과도한 방위비를 요구한다면 그때도 우리가 생각하는 방위비 액수만 손에 꼭 쥐고 버티는 게 맞을까. 앞서 방위비 협상에 참여해 본 정부 당국자들은 공통적으로 이런 말을 했다. 방위비 협상은 “경제나 비용 문제를 뛰어넘는 ‘그 무엇’”이라고. 방위비 이슈 자체가 반미 감정 등과 묶여 있고 국익과 직결되는 지표란 인식이 워낙 강하다 보니, 협상 과정에서 정치나 진영 논리 등을 의식하지 않을 수 없었단 얘기다.

방위비 인상은 분명 부담스럽다. 하지만 ‘방위비만’ 지키려다 초조함을 노출한다면 트럼프 당선인 측은 이를 간파해 방위비를 협상 카드로 다른 곳에서 훨씬 더 큰 매물을 요구할지 모른다. 방위비 협상 테이블에 앉아야 한다면 이념이나 정치적 판단은 배제해야 하는 이유다. 현실적이고 냉정하게 접근해 손실을 최소화해야 한다.

#트럼프#방위비 스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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