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를 여는 단어 ‘아보하’… 무탈하고 평범한 일상의 가치

  • 동아일보
  • 입력 2025년 1월 1일 01시 40분


[트렌드 NOW]
잘 먹고, 잘 쉬는 일상활동 부상… 혼자만의 시간 보내는 공간 등장
보여주기용 아닌 ‘진짜’ 취미활동
젊은 세대에 뜨개질-사우나 인기

‘아보하(아주 보통의 하루)’ 트렌드가 부상하면서 취미도 골프 같은 보여주기형이 아닌 뜨개질(위 사진), 달리기(아래 사진) 같은 취미생활이 인기를 끌고 있다. 동아일보DB
‘아보하(아주 보통의 하루)’ 트렌드가 부상하면서 취미도 골프 같은 보여주기형이 아닌 뜨개질(위 사진), 달리기(아래 사진) 같은 취미생활이 인기를 끌고 있다. 동아일보DB
을사년, 푸른색 뱀의 해가 밝았다. 2025년을 여는 단어로 ‘아보하’란 소비 트렌드를 소개한다. 아보하란 ‘아주 보통의 하루’의 줄임말이다. 아주 행복하지도, 아주 불행하지도 않은, 그저 무탈하고 안온한 하루를 가치 있게 여기는 태도를 뜻한다. 말도 많고 탈도 많았던 2024년을 떠나 보내며 무사한 한 해를 기원하는 마음이 이 단어에 담겨 있다.

아보하의 첫 번째 단면은 ‘일상’이다. 유치한 영화를 보며, 장난감을 모으며, 맥주와 함께 야구 중계를 보며, 각자의 일상에 몰두하는 하루에 감사한다. 잘 먹고, 잘 자고, 잘 쉬는 일상 활동도 부상한다. 잘 먹는다고 해서 근사한 외식을 즐기는 것은 아니다. 일상 속에서도 얼마든지 쉽고 간편하게 잘 먹을 수 있다. 최근 미국에서는 빵 치즈 올리브 과일 채소 등을 하나의 접시에 담아 저녁식사로 즐기는 ‘걸 디너(girl dinner)’가 유행이다. 별다른 조리과정 없이 대충 준비했음에도 화려한 색감에 영양까지 균형 잡혀 인기다.

‘잘 먹기’와 함께 부상하는 활동은 ‘잘 쉬기’다. 한국인들은 ‘쉼’에서조차도 생산성을 찾는다. 집에서 아무것도 하지 않고 시간을 보내면 게으르다는 평가를 받는다. 잘 쉬기 위해서는 적어도 바다가 보이는 호텔을 찾거나, 숲속 산장 정도는 머물러야 한다고 생각한다. 최근 이런 생산적인 쉼에 반대하는 움직임이 나타나고 있다. 틱톡에서 1500만 조회수를 기록할 정도로 인기인 단어 ‘베드로팅(Bed-rotting)’이 대표적이다. 베드로팅은 번역 그대로 ‘침대에서 썩는다’는 의미로 침대에 가만히 누워 있기, 침대에서 넷플릭스 보기, 침대에서 야식 먹기 등이 해당된다. 아무것도 하지 않는 휴식에 새로운 단어까지 붙여가며 의미를 부여한다.

아보하의 두 번째 단면은 ‘집’이다. 일상을 소중히 여기는 사람들은 ‘집’으로 모인다. 글로벌 가구 브랜드 이케아가 2024년 전 세계 22개국을 대상으로 실시한 조사에서 사람들은 집에서 혼자 휴식을 취하는 활동에서 즐거움을 얻는다고 응답했다. 미국 맨해튼 연구소 선임 연구원이자 블룸버그 오피니언 칼럼니스트 앨리슨 슈래거는 미국인들이 집 안에서 시간을 보내는 현상을 일컬어 ‘내향성 경제(Introvert Economy)’라 명명했다. 집 밖에서 파티를 즐기기보다는 집 안에서 친구들을 만나고, 외출을 하더라도 예전보다 일찍 귀가하는 사람들이 늘었다.

집 안에서도 가족들에게 방해받지 않고 혼자만의 시간을 보낼 수 있는 공간을 찾는다. 집 안 자투리 공간을 맞춤형 가구로 꾸민 ‘누크(Nook)’, 안방 안에 또 다른 작은 거실을 만들어 나만의 은신처로 삼는 ‘알코브(Alcove)’ 등이 새로운 공간으로 등장하고 있다.

집 밖에서도 나에게 집중하는 공간이 부상한다. 일본 전문가 정희선 애널리스트는 요즘 일본 20대들이 즐겨 찾는 공간으로 ‘사우나’를 꼽는다. 원래 사우나는 나이 지긋한 어른들이 주로 방문하는 곳인데 젊은 세대가 사우나를 나만의 도피처로 찾는다는 사실이 인상적이다.

일반 치약보다 3배는 비싼 ‘마비스’ 치약은 ‘나만의 즐거움’을 찾으려는 이들이 늘면서 판매량이 증가하고 있다. 동아일보DB
일반 치약보다 3배는 비싼 ‘마비스’ 치약은 ‘나만의 즐거움’을 찾으려는 이들이 늘면서 판매량이 증가하고 있다. 동아일보DB
아보하의 마지막 단면은 ‘나만의 즐거움 찾기’다. 아보하 트렌드를 따르는 이들은 행복을 소셜미디어에 전시하지 않는다. 내가 얼마나 행복한지를 남들에게 인정받으려 애쓰지도 않는다. 최근 경제불황 속에서도 일반 치약보다 3배 비싼 유시몰, 마비스 같은 치약 판매가 증가하고 있는데 이는 대표적인 아보하형 소비 품목이다. 고가 치약을 썼다고 남들이 알아볼 리 없다. 고급 치약이 주는 즐거움은 립스틱처럼 남들 눈에 보이지 않는 아주 사적인 즐거움이기 때문이다.

취미 영역에서도 보여주기형 취미가 아닌, 나에게 즐거움을 주는 취미활동이 부상하고 있다. 할머니에게서나 유행할 법한 뜨개질이 2030세대 사이에서 인기다. 신한카드 빅데이터연구소 분석에 따르면 ‘뜨개 전문점’과 ‘뜨개 카페’ 이용 건수가 2022년 대비 2024년 빠르게 증가하고 있다. 운동 영역에서도 골프나 테니스처럼 폼 나는 종목 대신 달리기와 등산 같은 진득한 운동에 관심을 두기 시작한다.

사회경제적 양극화가 심해지며 계층 간의 격차가 더 견고해지고 있고, 자랑과 과시로 가득한 소셜미디어가 우리 일상을 점령한 지도 오래다. 이런 상황에서 무언가 더하지도 빼지도 않은 평범한 하루는 어쩌면 가장 안온한 안전지대인지 모른다. 운동 후 개운함을 만끽하고, 멋진 풍경에 감탄하고, 귀엽고 예쁜 것에 감동할 줄 아는 현실 감각이야말로 2025년을 건강하게 견딜 수 있는 동력이 될 것이다.

#아주 보통의 하루#일상#취미활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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