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설수설/김승련]“국무위원들, 경제 고민 좀 하고 말하라”

  • 동아일보
  • 입력 2025년 1월 3일 23시 24분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가 2일 신년사를 낭독하다가 “최상목 (대통령) 권한대행에게 많은 비판이 있는 걸 안다”고 운을 뗐다. “(한국은행) 간부들이 공보관을 통해 (총재가 신년사를) 그냥 읽고 오시고, 절대 애드립(즉흥 발언)하지 말라고 했는데, 한마디 안 할 수가 없다”면서 시작한 말이다. 이틀 전 최 권한대행은 헌법재판소 재판관 3명 임명을 거부하다가 탄핵당한 한덕수 전 대행과 달리, 그중 2명을 임명했다. 중앙은행 총재가 신년사에서 이런 민감한 정치 문제를 꺼낸 것이다.

▷이 총재는 “최 대행을 비판하려면, 특히 국무위원은 해외 신용평가사에 미칠 영향도 고려해 주셨으면 한다”고 말했다. 신년사 직후 기자간담회 때는 한술 더 떠 “국무위원들은 경제 고민 좀 하고 얘기하라”고 했다. 헌재 재판관 임명은 윤석열 대통령 탄핵심판 일정이 더는 늦춰지지 않도록 한 조치다. 지금 같은 환율 급등 국면에서 외국 투자자에게 한국의 안정성을 보여주는 데 필요한 일이었다.

▷이 총재의 발언은 지난해 12월 31일 국무회의에서 벌어진 ‘소동’을 겨냥한 것이다. 최 대행은 그날 국무회의 모두발언에서 사전에 예고가 없었던 헌재 재판관 임명 계획을 발표했다. 그러자 몇몇 장관이 “왜 상의도 없이 중대 사안을 발표하느냐”고 강하게 반발했다고 한다. 정치인 출신 김문수 고용노동부 장관, 윤 대통령과 대학 동기인 유철환 국민권익위원장, 윤 대통령의 개인변호사였던 이완규 법제처장 등이라고 한다. 하지만 최 대행은 장관들과 동료인 경제부총리가 더 이상 아니다. 재판관 임명 여부는 대통령 권한대행의 권한이지, 토론해 정할 성격은 아니다.

▷이 총재가 해외 신용평가사를 거론한 건 국가 신용등급 때문이다. 1997년 국제통화기금(IMF) 금융위기 때 무디스, S&P 등 이름도 생소하던 글로벌 신용등급회사가 한국의 국가등급을 낮추는 일이 환율 폭등 및 차입금리 급등과 맞물려 진행되던 기억이 생생하다. 무디스는 12·3 계엄 직후 Aa2라는 우리 신용등급은 유지하면서도 “정치 사정에 따라 변동될 수 있다”고 경고했다. 이 총재는 자신이 10년 전 IMF 국장을 지내며 40여 아태 국가에 대한 경제리스크 보고서를 작성했던 책임자였기 때문에 더 민감했을 수 있다.

▷한국은행 총재는 발언이 금융시장에 미치는 파급력 때문에 말과 행동의 절제를 요구받는다. 이 총재는 이런 상식을 깨고 한은의 업무 영역과는 전혀 관계가 없는 대학입시 문제에까지 의견을 내 왔다. 그의 행보를 놓고 “오지랖이 넓다”는 지적도 나온다. 이런 점을 감안하더라도 “국무위원들은 경제 고민 좀 하고 얘기하라”는 말의 내용에는 뭐라 토를 달기 어려울 정도로 우리 경제는 ‘리스크의 지뢰밭’을 걷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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