尹 일주일째 서류 거부, 탄핵심판 차질…野 “법꾸라지” 비판

  • 동아일보
  • 입력 2024년 12월 22일 19시 17분


22일 오후 서울 한남동 윤석열 대통령의 사저 입구가 바리케이트로 막혀 있다. 송은석 기자 silverstone@donga.com
국회의 탄핵소추안 가결로 헌법재판소의 탄핵심판을 받게 된 윤석열 대통령이 일주일째 관련 서류 송달을 거부하면서 탄핵심판 지연 우려가 커지고 있다. 법조계에선 윤 대통령이 대국민 담화에서 “법적·정치적 책임 문제를 회피하지 않겠다”고 밝힌 것과 달리 법률가의 지식과 경험을 활용해 고의적인 지연 작전을 펼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야권은 “상식 이하의 법꾸라지(법+미꾸라지)”라며 강하게 비판하고 나섰다.

22일 법조계에 따르면 윤 대통령은 헌재가 16일부터 우편 등을 통해 최소 11차례 보낸 탄핵심판 접수통지와 출석요구서, 준비명령 등의 서류를 22일까지 받지 않은 것으로 파악됐다. 헌재는 ‘접수통지서를 송달받은 날로부터 7일 이내에 답변서를 제출하라’고 요구했는데, 송달이 되지 않으면서 답변서 제출 역시 늦어지고 있다.

대통령 탄핵심판에서 첫 단추로 여겨지는 심판 서류가 일주일(가결 당일 포함)이나 송달되지 않은 것은 처음이다. 2004년 노무현 전 대통령은 국회 탄핵안 가결 다음 날, 2016년 박근혜 전 대통령은 가결 당일 서류를 수령했다. 현재 관저에 칩거 중인 윤 대통령은 수취 거부 이유를 명확히 밝히지 않고 있다.

법조계에선 윤 대통령이 헌재의 탄핵 심리 기간(최장 180일)을 최대한 늦추면서 지지층 결집을 유도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헌법연구관 출신인 노희범 변호사는 “극렬 지지 세력을 규합하고 국민 여론이 자신한테 동정하도록 함으로써 재판부를 압박하는 효과를 노리는 것 같다”며 “납득하기 어려운 전략이지만 헌재가 거기에 휘둘리진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의 공직선거법 위반 재판 2심 결과 등을 통해 여론 반전의 기회를 마련하기 위해 ‘지연 작전’을 구사하고 있다는 해석도 나왔다.

민주당은 윤 대통령을 겨냥해 “‘법꾸라지’처럼 탄핵 심판을 회피하려 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민주당 ‘윤석열 내란 진상조사단’ 부단장인 서영교 의원은 22일 기자들과 만나 “상식 이하의 사람”이라며 “이러한 모습을 보인 것까지 탄핵 심판 과정에서 (헌법재판관들이) 반영하게 될 것”이라고 했다. 민주당 윤종군 원내대변인도 21일 논평에서 “관저, 집무실 등에 인편, 우편 등 모든 수단을 동원해 보냈는데도 헌재의 서류를 거부하고 있다”며 “내란 수괴 윤석열의 ‘수취인불명’은 ‘체포영장’이 답이다”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尹, 법적 책임 회피하지 않겠다더니…법 악용해 고의 지연”

당초 법조계에선 윤 대통령이 검사 출신인 만큼 탄핵심판 등 법적 대응에 적극 나설 것이란 관측이 많았다. 윤 대통령 측 석동현 변호사도 17일 기자들과 만나 “윤 대통령 본인이 당연히 법정에 서서 당당하게 정말 소신껏 입장을 밝힐 것”이라고 밝힌 바 있다.

그러나 헌재가 16일부터 보낸 각종 서류 송달을 거부하면서 의도적인 지연 작전이란 비판이 확산되고 있다. 헌재는 우편, 인편, 전자(온나라 시스템) 등 여러 방법으로 4차에 걸쳐 최소 11차례 송달을 시도했지만 번번이 무산됐다. 서울 용산구 관저에 우편으로 보낸 서류는 ‘경호처 수취 거절’로, 대통령실로 보낸 서류는 ‘수취인 부재’를 이유로 배달되지 않았다.

법조계 “시간 끌며 여론 반전 기회 노려”

대통령 탄핵심판에서 서류 송달이 이렇게 지연된 것은 이례적이다. 노 전 대통령은 2004년 3월 12일 국회에서 탄핵소추안이 가결됐고, 다음날 서류가 송달된 것으로 알려졌다. 노 전 대통령 측은 3월 17일 의견서 등을 제출했다. 박 전 대통령의 경우 2016년 12월 9일 탄핵안 가결 직후 헌재가 인편으로 약 1시간 만에 대통령비서실을 통해 송달을 끝냈고, 7일 후인 16일 소송위임장과 답변서가 제출됐다. 두 전직 대통령의 탄핵심판은 이렇게 신속하게 진행되면서 각각 63일, 91일 만에 기각과 인용 결정이 내려졌다.

법조계에선 앞으로 본격화될 윤 대통령의 대응 전략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것이란 분석이 나온다. ‘탄핵심판 지연’의 전형적인 작전이라는 것이다. 장영수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민주당 이재명 대표의 공직선거법 위반 사건 확정 판결과의 ‘시간 싸움’에 들어간 측면이 있어보인다”고 분석했다. 1심에서 이 대표에게 피선거권 박탈형(징역 1년에 집행유예 2년)이 선고됐던 만큼, 2심 결과가 나올 때까지 탄핵심판을 최대한 지연시켜 여론을 바꿀 계기를 마련하려는 의도라는 것이다. 수도권 고법의 한 부장판사는 “탄핵심판 절차를 지연시키며 여론의 관심을 분산시킬 시간을 확보하려는 측면이 있어보인다”며 “이후 지지층 결집을 도모하고, 탄핵소추 자체를 정치적 탄압 이슈로 치환하려는 것 같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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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재 내부에선 당혹스런 분위기도 감지된다. 송달이 계속해서 늦어지거나, 윤 대통령이 대리인을 늦게 선임한 뒤 ‘준비가 되지 않았다’고 주장하면 27일 예정된 변론준비기일이 공전하거나 최악의 경우 연기될 가능성도 있기 때문이다. 다만 윤 대통령이 송달을 계속 거부하더라도 탄핵심판 자체가 불가능한 것은 아니다. 헌재는 우편을 발송한 시점에 송달된 것으로 간주하는 ‘발송송달’, 서류를 두고 오거나 직원 등에게 전달하는 ‘유치·보충송달’, 게시판 등에 게재한 뒤 2주가 지나면 효력이 발생하는 ‘공시송달’ 등 여러 방안을 검토한 뒤 23일 밝힐 예정이다.

변호인단 구성 난항…25일 출석도 불투명

윤 대통령이 이런 대응을 하는 이유는 탄핵심판 대리인단 구성에 난항을 겪고 있기 때문이란 분석도 나온다. 윤 대통령 측은 헌법에 이해도가 높은 헌재 고위직 출신 등에 대리인단 합류 의사를 타진 중이지만, 합류를 선뜻 밝힌 사람이 없는 것으로 전해졌다. 주요 후보로 거론됐던 강일원 전 헌재 재판관도 개인 일정 등을 이유로 맡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 수사에 대응할 변호인단 구성도 난항을 겪고 있다. 윤 대통령 측은 김홍일 전 방송통신위원장 등 검사 출신들을 중심으로 변호인단을 꾸려 대응한다는 구상이지만, 대부분 합류를 고사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특히 실무를 맡을 후배 기수들을 섭외하는데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한다. 석 변호사는 동아일보에 “(변호인단에 합류하려면) 일생을 걸어야 하고, 기존 클라이언트들도 안 좋아하지 않겠느냐”고 설명했다. 이에 따라 공수처가 2차로 통보한 25일 윤 대통령의 출석 역시 불투명한 상황이다. 윤 대통령은 15일 조사를 받으라고 한 검찰의 1차 출석 요구에 “변호인단 구성이 완료되지 않았다”는 이유로 응하지 않은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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