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대는 전 세계에 있지만 순댓국은 고유의 K푸드[권대영의 K푸드 인문학]

  • 동아일보
  • 입력 2024년 12월 26일 22시 54분


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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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대영 한식 인문학자
권대영 한식 인문학자
세계의 전통음식 발달을 연구하기란 어려울 거라 생각하는데, 접근법이 과학적이면 사실은 그리 어렵지 않다. 특히 우리나라에서는 이런 연구가 한자 문헌에 전적으로 의지하다 보니 한자를 아는 사람들만이 하는 것으로 생각돼 더욱 어렵게 느껴졌던 것 같다. 하지만 더욱 중요한 것은 그 민족의 뿌리와 그 민족이 처했던 역사적 지리적 환경, 즉 농경학적 토대다. 이런 측면에서 어떤 전통음식은 세계에서 매우 유일하고 독특한 음식이 되고, 어떤 음식은 매우 보편적인 음식이 된다. 김치가 전자에 해당하고 후자는 순대다. 김치는 세계 어느 나라에도 같은 것이 없는 독특한 발효음식이지만, 순대는 아프리카, 아시아, 유럽 등에서 그 민족의 기호와 음식 철학에 맞게 다양한 형태로 존재한다.

스페인의 모르시야(morcilla), 프랑스의 부댕(boudin)을 비롯해 이탈리아, 영국, 동유럽(옐리토, jelito), 몽골, 동남아시아, 아프리카에서까지 순대와 비슷한 것을 먹는다. 우리나라 순대와 생김새마저 매우 비슷한 것도 있다. 이를 본 어떤 음식학자들은 서양, 몽골, 심한 경우 시경(時經)의 기록을 들면서 중국 지방의 순대가 우리 순대의 뿌리일 것으로 추정해 이들이 어떻게 들어왔을 것인지를 이야기하고 그럴듯한 설을 만든다. 음식 발달의 철학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탓이다.

20세기 조선 시대 말까지도 시골에서는 동네에 큰 잔치가 있을 때 닭, 돼지 심지어 소까지 잡았다. 소의 경우는 읍내에서 잡아 오거나 전문가의 손을 빌려 잡는 경우가 많지만, 돼지는 대부분 동네에서 잡는다. 돼지는 그 피를 모두 빼는 것이 고기 맛과 질에 매우 중요하다. 따라서 가장 먼저 하는 것이 목의 동맥을 끊어 피를 빼내어 받는 것이다. 우리나라는 피를 항아리에 받아 주로 파나 부추를 넣어 보관해 두었다. 또한 내장과 창자도 아까워 이를 버리지 않고 어떻게 맛있게 먹을 것인지 고민하였다. 소나 돼지의 창자를 뒤집어서 잘 씻은 다음, 이 창자에 받아낸 피를 부어서 삶아 낸 것이 순대다. 우리 조상들이 음식을 맛있게 먹기 위해 가장 처음 하던 일이 바로 누린내를 비롯한 잡내를 없애는 것이었다. 여기에서 각 지방의 순대 맛과 비결이 달라졌다.

우리 조상들은 다른 나라나 다른 지방의 음식을 공부할 기회가 없었다. 어떻게 하면 맛있게 먹을 수 있는지 그 방법을 스스로 깨치고 만들어 보고 자자손손 대물림한 것이다. 순대에 관한 한 다른 나라도 다를 바가 없다. 기본적으로는 소나 양, 돼지 심지어는 개를 잡을 때도 그 지역의 식문화에 맞게 내장과 창자를 어떻게든 이용하려고 했다. 그것이 진화, 발전한 게 순대다. 그래서 순대의 뿌리가 외국에서 왔을 거라는 발상은 올바른 생각이 아니다.

결과적으로 순대라는 음식은 같으나 나라별, 지역별로 만드는 방법이 가지각색이다. 그래서 세계에는 매우 다양한 순대가 존재한다. 그 나라 식문화에 따라 먹는 방법이 다를 뿐이다. 우리나라 안에서도 유명한 순대가 지역별로 따로 있고, 만드는 법도 조금씩 다른 이유이다.

서양은 접시 문화여서 순대를 대부분 요리 형태로 꾸며 맛을 내어 먹었다. 하지만 우리나라는 밥상 문화이기 때문에 순대를 국 형태로 주로 먹었다. 순대 문화는 동서양을 불문하고 있기 때문에 우리나라 순대가 지금 K푸드로 인기를 끌고 있는 것이다.

#권대영의 K푸드 인문학#순대#순댓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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