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진영 칼럼]판돈으로 ‘나라’ 건 尹과 李의 ‘오징어게임’

  • 동아일보
  • 입력 2024년 12월 31일 23시 21분


조기 게양한 채 맞이하는 을사년 새해
망국적 ‘버티기’ ‘입법독주’ 멈추라는 경고
드라마보다 잔혹한 현실 속 오징어 게임
與 헌재 구성, 野 쌍특검 양보로 끝내야

이진영 논설위원
이진영 논설위원
조기를 게양한 채 을사년 새해를 맞이할 줄은 몰랐다. 정부는 무안 제주항공 여객기 참사 희생자들을 위한 국가 애도 기간을 선포하고 전국에 합동분향소를 설치했다. 최상목 대통령 권한대행은 “정부 수반의 대행으로서 비통하고 송구한 마음”이라고 고개를 숙였다. 비상계엄 사태를 일으켜 놓고 수습은커녕 재난 대응 컨트롤타워 곳곳을 구멍 낸 정치권은 더욱 송구한 마음이어야 한다.

윤석열 대통령의 실패한 계엄 후 여야 간 예측 불허의 정쟁에 대해 외신은 ‘오징어 게임’ 같다고 보도했다. 탄핵이든 수사든 피해가며 어떻게든 자리를 보전하려는 윤 대통령, 그런 대통령을 빨리 끌어내리고 조기 대선에서 승리해 자신의 사법 리스크를 털어내려는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가 벌이는 혈투다. 얼마 전 공개된 ‘오징어 게임 2’가 반짝 흥행으로 끝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는 이유는 리얼리티쇼 ‘오징어 게임 계엄편’이 훨씬 극적이고 잔혹한 탓도 있을 것이다.

비석치기, 제기차기, 공기놀이로 승부를 가리는 드라마 ‘오겜2’와 달리 ‘오겜 계엄편’을 이해하려면 헌법 지식이 필요하다. 첫 번째 게임 ‘대통령 탄핵소추’가 이 대표 승리로 끝나고 한덕수 국무총리가 대통령 권한대행이 됐다. 두 번째 게임은 대통령 탄핵 여부를 결정할 헌법재판소 9인 체제 복원을 위한 ‘헌법재판관 3명 임명하기’. 뜻밖에 한 대행이 ‘여야 합의가 우선’이라며 임명을 보류하면서 결과적으로 대통령을 도운 ‘깐부’가 됐고, 대본에 없던 ‘한 대행 탄핵소추’와 ‘의결정족수’ 게임이 추가됐다. 이제 주인공은 최 대행. 그가 전임자와 달리 여당과 민주당이 추천한 헌법재판관 1명씩 2명을 임명하면서 탄핵심판 무력화라는 최악의 시나리오는 피해가게 됐다.

‘오겜 계엄편’의 출연진도 드라마의 상상력을 뛰어넘는다. 12개 혐의로 5개의 재판을 받고 있는 이 대표는 자신을 수사한 검사들은 ‘이재명 괴롭힌 죄’를 물어 탄핵하고 방탄용 입법을 남발하는 독한 빌런임에도 당내에선 ‘민주당 아버지’ ‘신의 사제’로 추앙받는다. 그런 이 대표도 검찰총장 출신 대통령으로서 헌법과 법률을 무시하고 계엄을 하려다 체포영장을 받아 든 경쟁자에 비하면 평범해 보일 지경이다.

통계학자인 아버지와 화학을 전공한 어머니 슬하에서 법학을 공부했건만 대통령 주변에선 법사와 도사와 보살들이 측근 자리를 놓고 신통력 경쟁을 벌였다. 부인도 “웬만한 무당보다 낫다”고 자부하는 인물이다. 동양철학자 임건순 씨에 따르면 무속은 철저한 현세주의이고, 모든 잘못은 남 탓, 악귀 탓이다. 무속에 빠진 사람들은 ‘어떻게 살 것인가’를 고민하지 않고 “나 감옥 가느냐”를 묻는다. 여사 의혹은 야당의 악마화 탓, 총선 대패는 선거 부정 탓, 비상계엄 선포는 야당의 입법 독주 탓이다. 대선 후보 시절 손바닥에 ‘왕(王)’자를 써 넣고 다닐 때 망국적 주술 정치를 예고하는 복선임을 눈치챘어야 했다.

참담한 사고로 잠시 멈춘 정쟁은 4일 애도 기간이 끝나면 재개될 것이다. 개인 목숨을 건 드라마와 달리 현실 속 오징어 게임엔 나라의 운명이 달려 있다. 계엄 사태로 주가가 내려앉고 원화 가치가 추락해 국제 투기 자본들이 알짜배기 기업을 헐값에 쓸어 담으려 어슬렁거리고 있으니 게임을 지속하는 건 경제적 자해 행위다. 제주항공의 아찔한 동체 착륙을 TV로 지켜본 사람들은 대내외적 난기류에 휩싸인 대한민국호가 비상 착륙을 해야 하는 상황이 온다면 살아남을 수나 있을지 공포감을 느꼈을 것이다.

윤 대통령은 조종석에서 제 발로 걸어 나올 용기도, 책임감도 없어 보인다. 그가 계엄 날 지시했다는 “총을 쏴서라도” “도끼로 문 부수고”를 검찰 공소장에서 확인한 정신과 전문의들은 수사보다 치료가 급하다고 한다. 헌재의 탄핵 심리 절차를 밟는 방법밖엔 없다. 아무리 못났어도 대통령을 파면한다는 건 주권자의 민주적 의사 결정을 파기하는 일이다. 9인 완전체라야 그 결정이 정당성을 가질 수 있다. 4월이면 대통령이 지명한 2명의 재판관 임기 만료가 돌아오는데 그때까지 탄핵 심리가 끝나지 않으면 다시 6인 체제가 되는 상황도 감안해야 한다.

결국 윤 대통령을 배출한 죄 있는 여당이 수습의 책임을 회피하지 않길 기대한다. 헌재 9인 체제 복원을 위한 여야 협의에 적극 나서고, 최 대행이 거부권을 행사한 ‘내란죄 특검법’과 ‘김건희 특검법’도 위헌 조항을 뺀 수정안으로 야당 동의를 얻어 ‘부부의 난’을 단죄하라. 제주항공 희생자 179명을 위해 울리는 조종(弔鐘)은 더 이상 한눈팔지 말고 앞을 똑바로 보라는 경종(警鐘)으로 들어야 한다.

#조기 게양#입법독주#헌재 구성#쌍특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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