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당은 토요일인 7일 국회 본회의를 열고 윤 대통령 탄핵소추안을 표결에 부쳤습니다. 지난 4일 탄핵안을 발의해 5일 새벽 본회의에 보고한 지 이틀만입니다. 이 사이 참 많은 일이 있었습니다. 사안을 계속 취재해 온 국회 출입 기자들도 흐름을 따라잡지 못해 버거울 정도였습니다. 숨 가빴던 4일을 한 번 돌아보겠습니다.
4일 오후 2시 40분경 민주당은 나머지 야당과 함께 윤 대통령에 대한 탄핵안을 국회에 제출했습니다. 이날 새벽 계엄선포가 해제된 지 불과 10시간 만이었죠.
그런데 국민의힘은 이날 밤 곧장 의원총회를 열고 ‘탄핵 반대’를 당론으로 정해버렸습니다. 대통령 탄핵안이 국회에서 통과되려면 재적 의원 300명 중 200명 이상의 동의가 필요합니다. 야당 의원 192명 외에 국민의힘(108명)에서 8표 이상 이탈 표가 나와야 하죠. 국민의힘에서 당론으로 반대를 정해버린 이상, 탄핵안 통과는 사실상 어려워졌다고 봐야 합니다.
이때부터 조금씩 의아했습니다. 그럼 민주당은 국민의힘 이탈 표도 확보 안 해놓고 탄핵안을 발의했다는 얘기니까요.
탄핵안은 발의 후 열리는 첫 본회의에서 보고하게 돼 있습니다. 뒤늦게 무를 수도 없습니다. 애초 5일 0시 땡 치면 발의하겠다고 벼르던 민주당은 국민의힘의 당론 반대 결정에 당황한 듯 예정보다 늦은 0시 49분에야 본회의에 탄핵안을 보고했습니다. 민주당 조승래 수석대변인은 본회의 후 브리핑에서 “국민의힘에서 탄핵안에 대한 부결을 당론으로 정했다고 한다. 매우 유감이고 강력하게 항의의 뜻을 전한다”고 했습니다. 국민의힘 내부 기류를 정말 전혀 몰랐나 봅니다.
5일 오전 민주당 지도부는 회의를 열고 탄핵안 표결 시점을 애초 예상됐던 6일보다 하루 늦은 7일로 정했습니다. 헌법상 탄핵안은 본회의에 보고되고 24시간 이후, 72시간 이내에 표결해야 합니다. 최대한 시간 여유를 두고 국민의힘에 대한 설득과 압박을 이어가겠다는 계획이었겠죠. 민주당 의원들은 이날부터 주말까지 72시간 국회에 비상대기하며 여당에 대한 여론전을 이어가겠다고 했습니다. 중진 의원들은 개별적으로 친한 국민의힘 의원들을 접촉해 설득하기로 했고요.
이때부터 당 안팎에서도 “탄핵안 발의 전 여당 설득 작업부터 먼저 했어야 했다”는 지적과 함께 “너무 성급했다”는 우려가 나오기 시작했습니다.
2016년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당시 민주당 원내대표를 맡아 탄핵안의 국회 통과를 주도했던 우상호 전 의원은 5일 동아일보와의 통화에서 “민주당의 탄핵 추진이 좀 빨랐다. 이런 분위기면 통과가 어렵다”고 내다봤습니다. 탄핵안을 발의하기 전에 미리 국민의힘 의원들을 설득해 10표 이상은 확보해 놓고 발의했어야 했다는 거죠. 탄핵안은 무기명으로 표결하기 때문에 구두로 탄핵을 찬성했더라도, 실제 투표장 안에서는 다른 선택을 할 가능성도 작지 않아 최대한 보수적으로 표를 세어야 한다는 겁니다.
실제 8년 전 우 전 의원은 박 전 대통령 탄핵 당시 당내 반발과 촛불집회 여론 압박 속에서도 탄핵을 신중하게 진행했습니다. 2016년 11월 말부터 대다수 민주당 의원은 “당장 탄핵을 추진해야 한다”고 요구했습니다. 하지만 우 전 의원은 “200명 확보가 쉽지 않다”, “탄핵 정족수가 확보되면 내일이라도 발의한다”고 속도조절을 이어갔죠. 당 차원의 ‘탄핵 추진 실무준비단’을 꾸려 차근차근 단계를 밟았고, 여당 내 이탈 표를 거듭 재확인하며 돌다리 두드리듯 접근했습니다. 당시 함께 근무했던 한 민주당 보좌관은 “탄핵안은 한 번에 완벽하게 통과시켜야 한다”며 “정말 치밀하게 표 단속을 거듭했다”고 기억했습니다. 당시 민주당과 야권 성향 무소속 의원을 모두 합치면 171명이었습니다. 지금 야당보다 21명이나 적죠. 새누리당(현 국민의힘)에서 최소 29명의 이탈 표가 필요한 상황이었습니다. 민주당 의원들이 탄핵안 부결 시 ‘의원직 총사퇴’라는 배수진까지 치고 그야말로 사활을 걸고 설득 작전에 뛰어든 결과 2016년 12월 9일 박 전 대통령의 탄핵안은 300명 중 234명 찬성으로 가결됐습니다. 여권에서만 62표의 이탈 표가 나온 겁니다.
8년 뒤인 2024년 12월 7일 윤 대통령에 대한 탄핵안은 재적 의원 200석이 안 돼 표결 자체가 불성립됐습니다. 국민의힘 의원들은 이날 탄핵안과 김건희 특검법에 모두 반대하기로 당론을 정했죠. 이들은 사전에 자기들끼리 약속한 대로 먼저 상정된 김건희 특검법에만 투표하고는 줄줄이 본회의장을 나가버렸습니다. 무기명 투표이니 혹시 모를 반란표를 원천 차단하겠다는 국민의힘 지도부의 방침이었습니다.
국민의힘에선 대통령 탄핵에 찬성했던 안철수 의원만 홀로 남아 끝까지 자리를 지켰죠. 여기에 탄핵안 표결 직전 되돌아온 김예지 의원, 그리고 김상욱 의원까지, 총 3명만 투표했습니다. (김상욱 의원은 탄핵에는 반대표를 던졌다고 밝혀 카이저 소제급 ‘반전’이었다는 평이 나왔습니다.)
민주당은 이날 단체로 일어서 이미 나가버린 국민의힘 의원들의 이름을 한 명씩 부르며 “돌아오라”고 외쳤습니다. 진작 불렀어야죠. 자신들의 밥그릇만 지키겠다는 국민의힘의 비겁함과 정치적 무책임함과 별개로, 민주당은 그 많은 의석수를 갖고도 전략적으로 완패한 셈입니다. 결국 총 195명만 표결한 탄핵안은 의결 정족수 미달로 개표도 해보지도 못한 채 그대로 폐기됐습니다.
이날 김건희 특검법도 역시 또 부결돼 폐기됐습니다. 거듭된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로 벌써 세 번째 국회로 돌아온 법이죠. 재표결 법안은 재적의원 과반 출석에, 출석 의원 3분의 2 이상 찬성 시 가결되는데, 이날 재석 의원 300명 중 찬성 198표, 반대 102표로 부결됐습니다. 국민의힘에서 이제까지 중 가장 많은 6표의 이탈표가 나온 건데, 결국 2표가 모자라 또 부결된 겁니다.
이 역시 결국 민주당 원내지도부의 전략 실패입니다. 아무리 강대강 대치 상황이라 해도, 벌써 세 번째 올리는 특검법인데 이번엔 여당 내 8명의 찬성은 이끌어 냈어야죠. 나와 생각이 다른 사람을 설득하고 타협으로 이끌어내는 과정이 결국 정치 아니겠습니까.
민주당은 11일 시작하는 임시국회에서 윤 대통령에 대한 탄핵안을 즉시 재추진한다 합니다. 이재명 대표는 “탄핵될 때까지 하겠다”고 했고, 박찬대 원내대표는 “탄핵안을 부결할 때마다 국민의힘 자체가 존속에 대해 엄청난 위협을 느낄 것이라 생각한다”고 했습니다. 이 대표는 심지어 탄핵을 ‘크리스마스 선물’이라 표현하기도 했죠.
윤 대통령의 어처구니없는 불법 계엄 사태 이후 수많은 국민이 PTSD 수준의 스트레스에 시달리고 있습니다. 여기에 더해 대책도, 전략도 없이 ‘될 때까지’ 매주 탄핵을 반복하겠다는 거야도 국민을 혼란스럽고 지치게 하긴 마찬가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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