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대 국회 들어서도 ‘정치 실종’ 사태가 악화 일로를 걷고 있다. 국회 다수당인 더불어민주당의 각종 법안 단독 처리와 윤석열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라는 도돌이표 소모전이 한없이 반복되고 있고, 감사원장과 검사 등 공직자 탄핵을 둘러싼 다툼도 점점 더 치열해지고 있는 것이다.
윤 대통령은 이르면 금주 중 민주당 주도로 본회의를 통과한 국회법 개정안과 ‘농업4법’ 개정안 등 법률안 5건에 대해 거부권을 행사할 것이라고 한다. 얼마 전 ‘김건희 특검법’에 대해 세 번째 거부권을 행사한 데 이어 이들 법안에 대해서도 거부권을 행사하면 윤 대통령이 재임 2년 7개월 동안 국회로 돌려보낸 법률안은 30개가 된다. 거부권 행사가 가장 많았던 이승만 정부(12년동안 45회)에 비해서도 훨씬 잦다.
민주당은 대통령 관저의 한남동 이전 부실 감사 등을 이유로 최재해 감사원장에 대한 탄핵안을 2일 발의하겠다고 한다. 김 여사에 대한 수사 부실을 이유로 이창수 서울중앙지검장 등 검찰 간부 3명에 대해서도 함께 탄핵안을 발의하기로 했다. 이렇게 되면 민주당이 이른바 ‘탄핵 리스트’에 올린 윤 정부의 공직자는 18명으로 늘게 된다. 그러나 일부는 발의안 자체가 폐기됐고 현재까지 5명이 헌법재판소로 넘어갔는데 이 중 3명은 기각 판정을 받았다.
거부권 30회, 탄핵 18명은 윤 정부와 여소야대 국회의 정치 실종이 빚은 참담한 기록이다. 87년 체제 이래 제한적이나마 정치가 작동하던 시절엔 여야는 가능한 한 합의로 법안을 통과시켰다. 그렇게 통과된 법안이 대통령에게 거부당하는 일은 극히 드물었다. ‘의회주의자’를 자처했던 김영삼 김대중 대통령 시절 거부권 행사가 1차례도 없었던 것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김대중 정부는 지금처럼 5년 내내 여소야대 정부였다.
공직자 탄핵 추진 역시 지금처럼 잦지 않았고, 대부분 표결 없이 폐기됐다. 소수 야당의 탄핵안 발의는 정치적 의사표시로 여겨졌고, 거대 야당이라 할지라도 탄핵안보다 구속력이 낮은 ‘장관 해임건의안’ 처리로 정부를 압박하곤 했다. 대통령도 장관 해임 등 정치적 조치를 통해 정국의 돌파구를 열었다. 대통령 탄핵안 외에 이전 정부까지 공직자에 대한 탄핵안 의결은 딱 한 차례 있었다.
그러나 지금은 각자 입법권, 거부권 등만 내세울 뿐 일말의 양보도 타협도 찾아볼 수 없는 지경이다. 또한 서로 정치적 사활(死活)을 건 싸움 속에 상대의 사법 리스크를 키워 정치적 타격을 줄 궁리만 하고 있다. 이런 식의 정치력 부재에 민생도 실종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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