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13일 서울 강남구에서 만난 오토바이 배달 기사 조모 씨(26)는 “불법 주정차로 신고당해 경찰서에서 사실확인요청서가 날아왔는데 주변에 조언을 구해 들은 얘기”라며 이렇게 말했다. 조 씨는 “오히려 경찰서에 출석하면 교통법규위반으로 범칙금을 내야 한다고 하는데 진짜 맞는 얘기냐”고 되물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이후 배달 문화가 확산된 가운데 오토바이 등 이륜차 주정차 위반 신고가 4년 만에 24배나 폭증한 것으로 확인됐다. 문제는 이륜차 주정차 위반은 과태료가 아닌 범칙금만 부과할 수 있다는 점이다.
범칙금은 위반 사항에 대해 벌점이 부과되는 운전자 기준 처분이다. 반면 과태료는 벌점은 부과되지 않고 차량 소유주 기준 처분이다. 오토바이의 경우 인도 등에 불법 주정차한 현장에서 운전자에게 직접 범칙금을 부과할 수 있다는 얘기다. 오토바이 소유주에게 과태료는 부과되지 않는다.
앞서 자동차는 이번 달부터 1분만 주정차 위반을 하더라도 과태료를 부과하도록 처벌 규정이 강화됐다. 하지만 여전히 오토바이 등 이륜차에 대한 처벌 규정은 바뀌지 않아 행정 사각지대에 놓여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 이륜차 불법 주정차 신고, 4년 만에 24배 증가
서울 중랑구의 한 프랜차이즈 음식점에서 배달 전문기사로 활동하는 장모 씨(33)도 “집으로 주차 위반했다는 종이(교통법규위반 사실확인요청서)가 하루가 멀다고 날아온다”며 “직접 운전자가 출석해야 부과하는 범칙금인 걸 알아서 경찰서에 출석 안 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런 상황 때문에 교통 경찰들도 골머리를 앓고 있다. 온라인 신고는 급증하는데 이를 처리할 방법이 사실상 없어 “왜 내가 신고한 걸 처리해주지 않느냐”는 민원까지 들어오고 있다고 한다.
경찰청에 따르면 2018년 2896건이던 이륜차 주정차 위반 신고 건수는 2022년 6만8875건으로 약 24배(2278%) 급증했다. 서울 일선 경찰서 교통과에 근무하는 한 경찰은 “이륜차 온라인 신고 폭주로 업무가 마비될 정도”라며 “특히 주정차 위반에 대해서는 과태료 부과가 안 돼 당장의 조치도 못 하는 상황이라 민원인들이 ‘왜 처리 안 해주느냐’며 따질 때가 많다”고 말했다. 이어 “교통과 업무가 폭증해 근무 기피 부서가 됐다”며 한숨을 내쉬었다.
유튜브를 운영하며 2년 동안 8000건의 이륜차 불법 교통 행위를 신고해왔다는 김모 씨(35)는 “2년 전만 해도 제보 처리 결과에 대한 답변이 빠르게 돌아왔는데 요즘은 한 달 가까이 걸리는 것 같다”고 말했다.
● “공용주차장 이륜차 주차 허용 등 제도 정비해야”
오토바이 운전자들은 “현실적으로 주차할 공간이 마땅치 않다”고 항변한다. 이미 2012년부터 법적으로 이륜차를 일반 주차장에 주차하는 게 가능하다. 하지만 아직도 주차 공간 부족 등을 이유로 이륜차 주차를 허용하지 않는 분위기가 팽배한 게 현실이다.
중랑구 신내동의 한 아파트에 사는 강모 씨(39)는 “일반 자동차도 주차할 곳이 없는 상황이라 주차장에 주차해 놓은 오토바이를 보면 달갑진 않다”고 말했다. 오토바이 운전자들은 “주차 공간에 세워두면 주민 민원에 시달리다보니 어쩔 수 없이 인도 등에 세우는 것”이라고 입을 모았다.
인도 등에 불법 주정차 된 이륜차가 늘어나면서 보행하는 시민들은 불편을 호소하고 있다. 급기야 이를 피하려다 자전거에서 넘어지는 등 관련 사고까지 이어지고 있다.
그러자 지자체들은 앞다퉈 관련 대책을 내놓고 있다. 경기 용인시는 올 6월부터 공용주차장에 ‘이륜차 전용’ 주차 공간을 시범 운영하고 있다. 부산에서도 4월 ‘이륜차 전용 주차구역 설치 조례안’이 부산시의회 상임위원회를 통과했다.
전문가들은 “오토바이가 주차장을 이용하는 걸 허용하는 문화가 자리 잡아야 한다”고 했다. 법무법인 L&L 소속 정경일 변호사는 “법적으로 일반 승용차를 위한 주차장도 이륜차가 주정차할 수 있도록 허용되는 곳”이라며 “주차장을 함께 쓰는 주민들도 무조건 배척만 할 게 아니라 서로 이해하고 양보하는 문화가 정착돼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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